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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40년(2010)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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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巡文藝입상작 : 내가 장외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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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장외수요

 

 

산동9 방면 교감 유근준

 

  내가 휴일을 저당 잡히고 퇴근 후의 자유까지 구속된 것은 순전히 부모님 때문이었다. 회사 근처 오피스텔을 얻어 다분히 청춘을 누리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혼자 살면서 그런 비싼 곳은 필요치 않다는 아버지의 현실적인 이유와 무엇보다 어머니의 반대가 결정적이었다.

  “저 혼자 알아서 하겠습니다.”

  “아니다. 지금이야 괜찮을지 몰라도 몸은 젊을 때 아껴야 한다. 아침도 안 먹고 퇴근 후에는 술자리도 많을 텐데 아침 먹을 수 있는 곳이 좋겠다.”

  평생 아침 거르는 법이 없으신 어머니의 그 아침밥 이유 때문에 대학 다닐 때 느꼈던 하숙생활의 설렘이 이제 사회생활을 하면서 짐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일요일 느지막이 일어나고 싶었지만 아침밥을 신신당부하신 부모님의 부탁 때문인지 하숙집 아주머니, 아니 선각이라고 부르기를 강요하는 그 무서운 선무의 성화는 휴일이라고 거르는 법이 없었다.

  “장외수 일어났어요?”

  “아…예”

   “아침 먹어야지요?”

  “아…예”

  “사람이 말을 하면 무슨 대꾸가 있어야지 장외수는 ‘아… 예’ 소리밖에 못해요?”

  “……”

  오늘 하루도 저 성화를 어떻게 견딜까 중얼거리며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었다. 사실 조금 더 우겼으면 오피스텔을 얻을 수도 있었지만 어머니의 말처럼 혼자 살면서 아침 먹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밥하랴 반찬하랴, 다소 일상은 편할지 모르겠지만 끼니를 거르는 것이 다반사였을 것이다. 게으름도 더 늘 것 같고 해서 못이기는 척 하숙생활을 시작했던 것인데 일이 이렇게 될 줄 몰랐다.

  퇴근이 좀 늦어지면 전화통에 불이 난다. 술이라도 마시고 오는 날에는 거의 고문에 가까운 잔소리였다. 쉬는 날에는 아침을 안 먹는다 해도 극구 아침밥상에 앉히고야 마는 우리의 하숙집 사장님. 오십 줄에 들어선 아주머니다운 오지랖이, 나에게는 모든 것이 일상의 간섭이었다. 거기다가 약간의 푼수기까지….

  내가 입도를 하고 “장외수”라는 호칭을 쓰게 된 것도 그 아주머니, 아니 하숙집 선각의 집요한 관심 -본인은 정성이라고 함- 과 푼수기 있는 아주머니답지 않은 해박한 지식 때문이었다. 어디서 들었는지, 처음 듣는 이야기를 정말 신기하게 들었는데 그것 때문에 어느 날 나도 모르게 장외수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러고 그 이후의 생활은 하숙생이 아니라 부모 눈치 보는 자식 같은 상황이 되어 가고 있었고, 오늘 아침 역시 휴일의 달콤함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장외수 오늘 약속 있어요?”

  이때는 말을 잘 해야 된다.

  “예… 친구 하고 점심 먹기로 했는데요.”

  “장외수는 서울에 친구 없다고 했잖아요. 전부 시골에 있다면서요.”

  “그야… 대학 친구도 있고 회사 사람도 있고 아는 사람 많습니다.”

  “없는 친구 억지로 만들지 말고 오늘은 나 하고 포덕소 갑시다. 친구는 생기면 만나고.”

  이런! 이상하게 저 아주머니하고 말을 하면 뭔지 모르게 말려든다 말이야. 가지 말까 보다!

  “상제님의 해원상생은 사회에서 말하는 공존공생이 아닙니다. 간혹 우리 수도인들이 해원상생이라고 하면 공존공생을 이야기하는데 그 뜻이 전혀 다릅니다. 상생은 ‘서로 같이’라는 뜻이 있지만 반드시 해원이 전제 되어야 합니다.”

  포덕소에서의 교감 교화였다. 해원상생이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대부분 그 정도로 알고 있는 것 같았고 나 역시 그렇게 이해해 오던 터였다.

  “사람이 아프면 낫는 것이 해원입니다. 배고프면 밥을 먹고 괴로우면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 해원입니다. 나아가 사람과 사람, 나라와 나라, 민족과 민족, 하늘과 땅, 신명과 인간 사이의 막혀 있는 모든 것을 통하게 하는 것이 해원입니다. 겁액을 풀고 막힌 것을 통하게 하는 것이 해원이지, 그 상태로 같이 존재하는 것이 해원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내 옆집에 무서운 사람 혹은 도둑이 살고 있다면, 그리고 내 주위에 힘없고 병든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들과 어떻게 공존·공생합니까? 도둑은 마음을 바꿔 먹어 착한 사람이 되고, 가난한 사람은 부자가 되고 병든 사람은 완쾌를 했을 때 공존·공생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상태로 계속 존재하고서는 해원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해원의 뜻은 이와 같습니다. 또한 이와 같이 해원이 되었을 때 서로 같이 즉 상생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맞는 말이다. 정말 맞는 말이다. 그렇지만 그것을 어떻게 이루어야 하며 또한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가? 된다면야 이것보다 좋은 것이 있을까? 얼마 되지 않는 나의 지식과 머리로는 답을 찾기 어려운 까마득한 의문이었다.

  저편에 앉은 아주머니 아니 선각을 보았다. 그런데… 신기하네! 푼수기 있는 오지랖 넓은 하숙집 아주머니가 아니라 근엄하기까지 한 모습으로 교화를 듣고 있었다. 정말 이해하고 듣는지 아니면 듣는 척을 하는지, 어쨌든 듣는 모습 하나는 어느 누구 못지 않았다.

  처음 아주머니 이름을 알았을 때 당황스러웠다기 보다는 황당과 허탈의 그 언저리쯤 이었다. 왜냐하면 평소의 말과 행동을 생각하면 그 이름과 연결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마희진. 그것이 아주머니, 아니 선각인 마선무의 이름이었다. 성씨도 특이했으려니와 내가 아는 ‘희진’이라는 이름과의 이미지와 너무 달라서 전혀 ‘희진’스럽지 않았던 것이다.

  젓갈 장수 아주머니가 만원버스를 탔다. 발 디딜 틈이 없는 시골 장날의 버스였는데 운전수는 계속 손님을 태웠다. 이렇게 가다간 아무래도 젓갈에 무슨 사단이 날 것 같았다. 화가 난 아주머니가 기사에게 소리쳤다.

  “아저씨, 젓 터져요!”

  이때는 웃어야 될까 말아야 될까? 내가 마희진 선무의 이름을 처음 알았을 때 기분이 이와 같았다.

  돌아오는 시간 내내 그 교화가 생각났다. 해원상생. 세상의 모든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방법. 과연 그것이 가능한 것일까? 될 수는 있을까? 인종과 종교와 이념을 넘어서 이룰 수 있는 것일까? 이루어지지 않고 이론으로만 존재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 것은, 아직도 그때의 그 시간들이 너무나 강렬하게 기억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프가니스탄.

  이 나라에 파병되는 재건팀에 내가 지원한 것은 호기심 때문이었다. 한 달 치 월급이 한국에서의 서너 달보다 많았던 것도 있었지만 전쟁영화에서나 봤음직한 그러한 일들을 직접 경험해보고 싶었던 것이 더 큰 이유에서였다. 어쩌면 거의 들뜬 마음까지 있었던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막상 그곳의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아프가니스탄 재건팀으로 파병이었지만 우선은 언제 공격해올지 모르는 탈레반 세력들의 공격으로부터 부대를 지키는 것이 급선무였다. 부대 주위 4km 내에서는 항상 안전을 확보해야 했고 수시로 수십km 밖에까지 수색 정찰을 나가야 했다. 모래 속에 숨어 있다가 공격하는 스나이퍼, 즉 저격수의 실력은 거의 수준급이었다. 또한 갑자기 불어대는 모래 폭풍은 사람을 거의 공황상태에까지 몰고 가곤 했다. 영화에서나 드라마에서 보아왔던 그러한 전쟁이 아니었던 것이다. 조금은 낭만적인 생각으로 지원했던 부대 생활에 서서히 지쳐가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옆에 있던 미군 부대에서 아프가니스탄 수도인 카불 시내로 수색을 나간다고 했다. 특별히 무슨 일이 있어서가 아니고 일부 탈레반 세력이 시내에 숨어들었다는 정보가 있었던 모양이다. 경험 삼아 그리고 한국군과 미군이 같이 군사행동을 함으로써 결속을 다지는 의미가 있기도 했음인지 우리 부대에도 수색 정찰 명령이 떨어졌다. 부대장 역시 일상적인 정찰의 임무에 지나지 않으니 긴장할 것 없다고 했다. 그렇게 일상의 작전이려니 생각하고 도착한 그날의 카불은 눈이 시리도록 푸른 하늘이었다.

  “1소대는 좌측 대로변, 2소대는 우측 대로변을 시작으로 수색한다. 3소대는 나와 같이 움직인다. 상황발생 시 선 조치 후 보고하라 이상.”

  중대장의 지시가 있었고 곧바로 대원들의 움직임이 있었다. 저 멀리 미군들이 손 흔드는 것도 보였고 크게 일이 있을 것 같지 않다고 생각하던 그 순간이었다. 갑자기 총소리가 들려오고 귓전을 때리며 소형 로켓포가 터졌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때 어떤 건물을 향해 집중 사격을 하고 있었다. 나 역시 미친 듯이 총을 쏘았다. 표적은 보이지 않았다. 다만 옆에서 쏘니까 쏠 뿐 그때의 내 정신은 온전한 정신이 아니었다. 쌍방간의 총격전이 어느 정도였을까? 사격중지 명령이 내려졌다. 조용했다. 건물을 수색하라는 명령과 함께 건물로 뛰어 올라갔다.

  그런데 거기서 본 것은 나에게는 너무나 익숙지 않은 주검이었다. 아이들이었다. 이제 겨우 14, 5살이나 되었을까, 제 키보다 더 큰 총을 안고 열 명 남짓한 아이들이 모두 죽어 있었다. 적과 싸워 이겼다는 마음보다 죄책감이 밀려왔다. 아무리 전쟁 중이라지만 이제 갓 중학교를 졸업했을까? 멍하니 서 있는 나에게 소대장이 힘주어 말했다.

  “정신 차려! 저들을 아이들로 보면 안 돼. 죄책감에 빠질 필요도 없어. 지금은 전쟁이야. 어설픈 감정으로 괴로워하지 마라.”

  중대장이 아이들 주머니를 뒤졌다. 마리화나였다. 어디서 들은 이야기가 있다. 탈레반은 아이들을 환각 상태에 빠지게 하여 그들을 이용한다는 말. 이 성전을 이기면 너희들 뿐 아니라 가족까지 천국으로 갈 수 있다고 세뇌시켜 그들을 총알받이로 쓴다는 말을 어디서 들었다. 저들이 말하는 성전이라는 것이 이런 것인가?

  소년들의 주검 앞에서 자신의 생명이 온전함을 기도하는지 성호를 긋는 미군병사들도 보였다. 혹 불쌍한 어린 영혼들을 위한 기도인가 생각했지만 그 정도 아량 있는 모습들은 보이지 않았다. 어른의 총이든 아이들의 총이든 어느 총이든지 총을 맞으면 죽겠지만 어린 소년들의 죽음 앞에서 생명의 무사함을 기도하는 병사들의 모습이 불편했다.

  막내 동생뻘 밖에 되지 않은 그 소년 병사들의 주검은 부대 복귀 후에도 계속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그런 소년들의 죽음 앞에서 조차 과연 나는 나의 생명을 신에게 감사해야 하는가? 때로는 죄책감이 때로는 허무함이, 전쟁이라는 이 현실이 나를 몹시 괴롭혔다.

  그렇게 군인답지 않은 방황이 있은 지 얼마 후 다시 작전 명령이 떨어졌다. 탈레반 세력권에 있는 어느 부족의 수색 정찰이었다. 부족과의 좋은 유대 관계를 통한 민심의 획득과 탈레반의 근거지를 제거하는 것이 이날 작전의 핵심이었다. 탈레반의 저항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우선은 부족민들과의 선린관계를 최우선으로 하라는 상부의 지시도 있었다. 부족민들과의 좋은 유대관계는 앞으로 두고두고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떠난 그날의 작전에서 그러나, 나는 잊혀져가던 소년들의 죽음이 나를 다시 괴롭히고 인간의 참혹함과 사람에 대한 절망을 뼈저리게 느끼리라곤 상상하지도 못했다.

  “저 사람들이 지금 뭐하는 겁니까?”

  “공개 처형한다고 한다.”

  “왜요?”

  “부족 안에 탈레반과 내통하는 자가 있었던 모양이다.”

  “그러면 우리가 조사하면 되잖아요.”

  “그게 그렇게 간단치가 않아.”

  부족 안에서 탈레반과의 내통자가 있었고 그 사람을 처형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처형당하는 사람은 두 사람이었고 한 사람은 여자였다.

  “어떻게 된 겁니까? 부르카를 입은 것을 보니 여자 같은데요.”

  나의 질문에 중대장은 대꾸를 하지 않고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

  “저 남자와 연인 관계라고 한다. 둘이 결혼을 약속한 모양이다.”

  “그런데요?”

  중대장 대신 대답하는 소대장에게 거의 덤비듯이 물었다.

  “아버지가 반대하는 결혼이고, 더구나 탈레반과 연결되어 있는 사람이라서 부족을 팔았다고 여기고 있다. 그래서 같이 처형한다고 한다.”

  “아버지가 반대하면 저렇게 합니까? 그리고 내통한 사람은 저 남자잖아요.”

  “여기서는 우리 같은 상식이 통하지 않는다. 단지 아버지를 거역하고 부족의 질서를 해쳤다는, 그래서 신성한 신의 가르침을 모독했다는 종교적 판단이 모든 것에 우선한다. 부족장이 우리들에게 공개 처형하는 것을 일부러 보여 주는 것도 그들 나름대로의 종교적 율법을 보이기 위함이지. 함부로 간섭하지 말라는 뜻도 있을 것이고.”

  세상에! 그래서 두 사람을 같이 죽인다? 거의 제 정신이 아니었다. 총을 잡은 손에 저절로 힘이 들어가고 있었다.

  “우리는 재건팀의 역할로 왔다. 괜히 우리들 시각으로 저들을 볼 필요 없다. 안타깝지만 앞으로 임무를 수행하려면 어쩔 수 없다.”

  “그래서 그냥 보고 있자는 겁니까?”

  “상부의 명령이다. 우리도 어쩔 수 없다. 그냥 지켜 볼 밖에”

  부르카를 입은 여인은 울부짖고 있었다.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살려 달라는, 아니 어쩌면 우리 모두를 저주하는 말인지도 몰랐다. 예닐곱 명의 검은 복면을 한 사람들이 그 여인 앞으로 왔다. 그 중에 나이 들어 보이는 한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복면을 하지 않았다.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저 사람은 누굽니까?”

  “…… 저 여자의 아버지다.”

  “예…?”

  맙소사! 아버지라니! 아비가 자식에게, 딸에게 돌을 던진다고? 하느님 예수님 부처님 세상의 신이란 신은 모두 불러 보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달나라에 우주선이 가는 이 시절에 지난 세월의 종교적 율법이 인간의 심성과 삶의 선택을 구속하는 것이 가당키나 한 것인가? 부모가 정해준 배필을 맞이해야 하는, 오직 무조건적인 순종만을 강요당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그리고 절대 일어나서도 안 되는 일이 지금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보고만 있을 겁니까? 구해야 됩니다. 저러면 죽습니다.”

  “상부의 명령이다. 우리는 군인이다. 그리고… 여기 있는 우리 모두가 너만큼의 생각이 없다고 생각하지 마라.”

  소대장의 그 한 마디에 온 몸의 맥이 다 풀리는 느낌이었다.

  아비란 사람이 돌을 들었다. 그 여인 아니 자신의 딸을 향해 먼저 돌을 던졌다. 복면한 자들이 뒤이어 돌을 던졌다. 비명소리 울부짖는 소리…. 아마 여기가 지옥이려니…, 눈을 감았다. 꽉 다문 입이 저절로 벌어지고 아래턱이 덜덜 떨렸다. 힘주어 감은 두 눈 사이로 눈물이 비집고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30여 분의 미친 짓이 끝나자 그 여인은 숨을 거두었다. 조금 후에 그 남자 역시 그렇게 죽었다. 사람이, 인간이 어떻게 이럴 수 있는가? 어떻게 아비란 사람이 그런 일에 앞장설 수 있는가? 사람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 그들에 대한 신의 가르침이라는 것이 어쩌면 인간이기를 포기하게 하는 것이리라.

 

 

  그날의 기억은 화인(火印)처럼 남아서 지금까지 기억 속에 맴돌고 있다. 문득 문득 떠오르는 그때의 일은 사람에 대해서 삶에 대해서 지독한 좌절과 회의를 느끼게 하곤 했던 것이다. 인존사상. 사람이 존귀한 세상. 신과 인간이 조화로운 그래서 사람이 높아지는 그러한 세상. 내가 그나마 포덕소에 가게 된 것도 그 날의 기억을 떨쳐버리고 믿음에 대한, 그리고 하늘이, 신이 사람을 대하는 새로움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저 멀리 슈퍼에 홍대상 할아버지가 보였다. 오늘은 술을 한 잔 하는 모양이다.

  “어데 갔다 오노?”

  “예, 볼일 좀 보고 옵니다.”

  대구에서 살다가 6.25가 끝나고 서울에 정착했다고 한다. 조부가 큰 상인이 되라고 이름을 대상으로 지었다는데 큰 상인은 되지 못하고 우리 동네 모든 사람과 모든 일에 간섭하는 깐깐한 할아버지로 늙어가고 있다.

  “상욱아, 니 거 앉아 봐라.”

  “왜요?

  “어른이 앉으라면 앉는 것이지 왠 말이 많노.”

  “아… 예”

  “사람이 사는 곳이 어느 곳이라고 다를 것이 없다. 내 니라서 하는 말이지만 항상 진심으로 살아야 된데이. 속이거나 가식으로 살면 반드시 업보가 돼서 내한테로 다시 돌아오는 기라.”

  “………”

  “젊어서 호기심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겠지만 진심으로 사는 이것 하나만 있으면 절대 실패 하지 않는다. 우선은 손해 볼 것 같지만 세월 지나면 그렇게 살았던 것을 절대 후회 하지 않을끼다.”

  그러는 할아버지는 진심으로 살아서 이 모양이유? 큰 상인이 못 되었으면 작은 상인이라도 되어야지 이게 뭡니까 라는 말이 목구멍으로 슬쩍 지나갔다.

  “내가 관상을 좀 볼 줄 아는데…… 니 방금 내 욕했제?”

  “아… 아닙니다. 좋은 말씀이라고 새겨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와! 완전 귀신이네 어떻게 알았지?

  “어른이 하는 말이라고 고깝게 듣지 말고 젊은 니가 좋아서 하는 말이니까 좋게 들어라 어른 말 잘 들어서 나쁠 것 없다.”

  “예 알겠습니다.”

  “…… 니 뭐 생각나는 것은 없나?”

  “예… 없습니다.”

  “원래 어른이 이런 좋은 말을 하면 ‘고맙습니다’ 하고 인사를 하는 기라, 가만있으면 예의가 아니제. 그리고 인사를 해도 맨입으로 하는 것은 더욱 예의가 아니지.”

  “어떻게 해야 되는 데요?”

  “내가 마시는 이 막걸리를 사는 것도 젊은 사람으로서 가질 수 있는 좋은 예의지. 암 좋고말고.”

  ‘환장하겠네’ ‘돌겠네’ ‘미치겠네’라는 종류의 말들이 머릿속을 막 헤집고 다녔다.

  “와 대답이 없노? 사주기 싫나?”

  “아닙니다. 당연히 사드려야지요”

  “암 그래야지 내가 봐도 니는 참 예의가 바른 젊은인기라. 아줌마! 사장님! 여기 막걸리 한 병 시원한 걸로. 새우깡 한 봉지도 추가.”

  오늘 아침부터 영 일진이 안 좋았던 모양이다.

  “욱아”

  할아버지의 은근한 부름이었다.

  “예”

  “계산은 카운터에서… 가봐라.”

  “……”

  슈퍼 안으로 들어갔다. 하숙집 아주머니보다는 조금 젊은 사장이 나를 반긴다.

  “총각 어디 갔다 옵니까?”

  “예, 도 닦으러 갔다 옵니다.”

  “도라고요?”

  “예, 마음잡고 한번 살아보려고 합니다.”

  “요즈음 세상이 시끄러운데 조심해야 됩니다. 뭐하는 곳인지는 모르겠지만 잘못되는 것은 순간입니다.”

  “예.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걱정하시는 것처럼 잘못되는 곳도 아닙니다.”

  “거기 젊은 사람들이 많이 간다던데 총각같이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들이 발 한번 잘못 디디면 큰 일 납니다.”

  슬쩍 비윗장이 상했다.

  “제가 알아서 합니다. 한두 살 먹은 애도 아니고. 왜요, 아주머니 나한테 관심 있어요?”

  “뭐라고요?”

  “그런데 어쩌지요 나는 아줌마한테 관심 없는데요.”

  “나도 비린내 나는 총각한테는 관심 없거든요.”

  “그런데 왜 자꾸 그러세요, 내가 알아서 한다는데…”

  “하도 세상이 어수선 하니 총각이 걱정돼서 하는 말 아닙니까.”

  아주머니 얼굴로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눈에 힘을 주고 또박또박 천천히 분명히 말했다.

  “아주머니! 내가… 장외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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