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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신앙 : 천신신앙 속의 의례, 제천의식(祭天儀式)(2)
천신신앙 속의 의례, 제천의식(祭天儀式)(2)
글 교무부
하늘[天]에 대한 인식은 고금을 막론하고 인간 사유의 원형으로서 숭배되어 왔다. 우리 민족 또한 고대 신화에 나타나는 공통적인 요소 중 하나가 하늘을 지고신(至高神)의 존재로 의식했다는 점이다. ‘단군신화(檀君神話)’의 환인(桓因)은 ‘하늘’ 또는 ‘하느님’이라는 우리말의 음역(音譯)이며, 환인의 아들로서 태백산에 강림한 환웅(桓雄)도 ‘하늘’이라는 발음에서 그러한 일면을 볼 수 있다. 게다가 건국 시조, 다시 말해 새로운 공동체의 수장이 된 인물들은 거의 예외 없이 자신이 하늘에서 내려왔거나 아니면 하늘의 자손이라는 신화를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천신의 현현(顯現) 내지 하강은 고대인의 신앙 속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며, 그 같은 믿음에서 나온 숭배는 제의를 통하여 가장 뚜렷하게 나타났다. 곧 부여(夫餘)의 ‘영고(迎鼓)’나 고구려의 ‘동맹(東盟)’, 예(濊)의 ‘무천(舞天)’, 삼한(三韓)의 기풍제(祈豊祭)와 추수감사제 등이 거기에 해당한다.
“여러 국읍에 한 사람을 세워 천신에 대한 제사를 주제하게 하였는데 이를 천군이라 한다. 위지에 이르기를 여러 국읍에는 별읍이 있으니 소도라 한다. 나라가 망하여 도망가 모두 소도에 이르면 이를 잡지 못하였다. 소도에는 큰 나무를 세우고 방울과 북을 걸어 귀신을 섬긴다.(諸國邑各以一人主祭天神 號爲天君 又立蘇塗, 魏志曰 諸國各有別邑 爲蘇塗 諸亡逃至其中 皆不還之 建大木以縣鈴鼓 事鬼神)” (『후한서(後漢書)』 「동이전(東夷傳)」)
위의 사료를 통해 볼 때 천군은 소도를 주관했던 제사장이자, 공동체의 번영과 안녕을 위하여 규칙적인 제천의식을 집행하는 종교적인 지도자였다. 천군의 주도 하에 의식이 거행되는 날은 그야말로 국가적인 차원에서 행해지는 제사이자 동시에 큰 축제였다.02 마치 화합과 안녕을 다지는 우리네 마을 굿판을 연상시키는 것처럼 말이다. 또한 소도는 고대 그리스 제우스의 거주처인 올림퍼스나 오늘날의 바티칸에 비견할 수 있는데, 일종의 신성불가침의 지역으로 여겨져 죄인이 도망가서 숨더라도 그들을 잡아가지 못하였다고 한다. 이와 관련해 ‘큰 나무’라는 구절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03 곧 오늘날까지 전해져 내려오는 솟대가 마을의 성(聖)과 속(俗)의 공간을 구분짓는 경계표인 것처럼, 소도의 큰 나무는 솟대가 갖는 그런 속성의 모체(母體)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독자적인 천군이란 존재와 큰 나무의 표시는 제정일치에서 벗어난 제정분리를 말해준다고 하겠다. 다시 말해서 고조선의 단군왕검은 제정일치의 사회를 반영하고 있음에 비해, 삼한 사회의 천군이란 존재는 제사장으로서의 기능만을 가진 제정분리의 사회를 대표하는 것이었다.
“고구려는 귀신(鬼神) · 사직(社稷: 토지의 신과 곡식의 신)· 영성(靈星: 하늘을 주관하는 별)에게 제사지내기를 좋아한다. 10월에 하늘에다 제사 드리면서 크게 모이는데 이름이 ‘동맹(東盟)’이라고 한다.(高句麗 好祠鬼神社稷靈星 以十月祭天大會, 名曰東盟)” (『삼국사기(三國史記)』 「제사지(祭祀志)」)
여기서 제의의 명칭을 동맹(東盟)이라 한 것은 고구려의 건국자 동명(東明)과 관련이 깊다고 한다. 동맹은 고구려 천신과 더불어 국조신(國祖神)에 대한 제의로서의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특히 삼한과 달리 왕실에서 왕이 제의를 주관한 것은 제의의 공개적인 전시를 통해 자신이 천손의 후예라는 위용을 드러냄으로써 통치자의 권위를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이러한 측면은 백제04와 신라05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렇다 보니 천군의 위상은 자연히 정치 사회적 중심권에서 벗어나 음성적인 사제자 · 치병자 · 예언자인 무당으로 격하되었고, 하위신인 잡신이나 인물신 등을 모셨다.
다음 호에는 우리 민족 고유의 제천의식이 조선시대에 들어와 음사(淫祀)로 치부된 경위를 찾아보고, 조선 말엽에 등장하는 신종교가 지고신에 대한 신앙전통과 제천의식을 그대로 반영하였던 것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나아가 우리 종단이 민족종교라고 표방하는 명확성을 천신신앙과 제천의식을 통해 찾아보기로 하겠다.
01 천신(天神)이 정사(政事)를 보는 도읍이자 천신에게 기도하고 제사를 드리는 제단이기도 하다. 02 “5월에 모종을 끝마치고 나서 귀신에게 제사를 지냈다. 많은 사람이 떼를 지어 노래 부르고 춤추며 술을 마셔 밤낮을 쉬지 않았다. 그 춤추는 모양은 수십 인이 함께 일어나서 서로 따르며, 땅을 낮게 혹은 높게 밟되 손과 발이 서로 응하여 그 절주는 마치 탁무(鐸舞)와 같았다. 10월에 농사일이 다 끝나고 나면 또 같은 놀이를 했다.(五月下種訖 祭鬼神群聚歌舞飮酒 晝夜無休 其舞數十人 俱起相隨踏地低昻 手足相應 節奏有以鐸舞 十月農功畢 亦復如上)”(『삼국지(三國志)』 「위지(魏志)」) 03 고대에는 방울과 북이 솟대 위에 앉은 새의 대체물이기도 했다. 특히 두 사물은 무당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었다. 북을 치면서 무당은 망아경 속으로 들어가 영계(靈界)로 여행을 하였다. 방울 역시 신령을 호출할 때나 상교(相交)할 때 사용되었고, 지금도 무당들이 점괘를 뽑을 때 방울을 이용하는 경우를 쉽게 접할 수 있다. 04 “백제는 매년 사시의 중월(仲月)에 왕이 하늘 및 오제(五帝)의 신을 제사지낸다. 그 시조 구태(仇台)의 사당을 나라 도성에 세우고 해마다 네 차례 제사지낸다.(百濟 每以四仲之月 王祭天及五帝之神 立其始祖仇台廟於國城 歲四祠之)”(『삼국사기(三國史記)』 「제사지(祭祀志)」) 05 『수서(隋書)』 「열전(列傳)」에 신라는 “매년 정월 원단(元旦)에 서로 하례(賀禮)하는데, 왕은 이날 연회를 베풀어 뭇 관원의 노고를 치하한다. 또 이날에는 일신(日神)과 월신(月神)에게 제를 올린다(每正月元旦相賀 王設宴會 班賚羣官 其日拜日月神).”는 기록이 있다. 이를 볼 때 신라는 제천의식이 없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정월 초하루에 일월신(日月神)에게 절하였다는 것에서 신라 역시 하늘을 숭상하는 습속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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