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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43년(2013)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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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문예 : 봄의 눈꽃이 들려주는 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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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눈꽃이 들려주는 동화
 

완주5 방면 선사 김태인

 
 
 
 덕적섬.
  내 기억이 맞는다면 이곳일 것이다. 동화같은 어린 시절을 선물해준 이곳. 이 섬은 우리 가족과 연고가 없는 곳이다. 왜 그곳에 갔을까?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아버지 사업이 아주 제대로 망했기 때문이다. 나의 어린 시절 동화는 그 곳에서 시작되었다.
  때는 내 나이 여섯. 어머니와 동네 아줌마 몇 분이 살구 따러갔었다. 나는 그저 어머니 옆에서 열심히 주워 먹고만 있었다. 그런데 유독 내 눈에 보였던 초라한, 꼭 병든 것 같은 살구나무 한 그루.
  그 살구나무가 오래 되어서 그랬는지 아니면 가지가 부러져서 그랬는지 한 가지가 축 쳐져 땅에 닿을 듯 말 듯 했었다. 그 가지는 어린 내 손에도 닿을 것 같았고, 마침 그 가지에도 살구가 열려 있었다. 손을 뻗어 살구를 따려고 한 순간! 그 살구가 고개를 들었다. 갑자기 살구에서 혀가 낼름낼름 거렸다.
  그 순간 난 뱀과 교감이 있었다. 소리 없는 대화였다. 말을 건 쪽은 뱀이었다. “총명한 아이야, 네가 무서워.” 그 뱀 참 신기하다 내가 총명한건 어떻게 알았을까? 난 그 말을 듣고 나는 ‘무서운 아이가 아니야’ 하며 쓰다듬어 주려고 손을 뻗었다. 내 손보다 어머니의 날카로운 음성이 먼저 뱀에게 닿았다. 뱀은 내게 눈으로 마지막 말을 남긴채 홀연히 사라졌다. “아이야 네 엄마가 더 무서워.”
  어머니만 아니었으면 뱀과 나는 벗이 되었고 나의 ‘동화’는 완전했을 것이다. 지금도 어머니는 살구만 보셨다 하면 이 2% 부족한 동화를 말씀하신다. 아! 살구만큼 큰 말벌부부 침입사건도 있는데…. 팔뚝만한 속이 투명히 비치는 지네 아줌마 얘기도 있고….
  사진 앨범을 정리하다가 보들보들한 쑥 사진이 내 눈에 들어왔다. 이 맘때 피는 쑥을 보면 늘 ‘눈꽃’같다는 생각을 한다. 눈꽃…. 이 눈꽃을 보자 한 달 후에 피는 살구꽃이 생각났다. 어떤 시인은 살구꽃을 맑은 눈을 가진 가난한 아이들의 얼굴에 펴진 마른 버짐이라 표현했었는데…. 곱추할아버지 같은 살구나무, 벗이 없어 외로운 소심한 뱀, 주인공인 나, 그리고 주인공과 뱀의 우정을 방해하는 우리 어머니, 엑스트라 동네 아줌마들…. 오랜만에 마음 속 영상기로 동화를 봤다.
  시골에 자주 가다보면 가끔 뱀을 보게 된다. 그럴때면 신경이 곤두서고, 때론 눈살을 찌푸린다. 그리고 여름 밤에 방 안의 불빛 때문인지 몰라도 말벌이 방충망에 자꾸 몸을 들이대기도 한다. 위잉 위잉~ 참 거슬리는 소리다. 그때마다 열심히 모기약을 뿌려준다. 말벌은 더 이상 날지 못했다. 언제부터였을까? 어린시절 두 눈에 비친 세상은 신기하고 아름다웠다. 뱀은 뱀으로, 말벌은 말벌로 그 모습 그대로 볼 수 있었다.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 수 많은 경험을, 그리고 여러 지식을 쌓아가고 알아 가는게 많은만큼 욕심도 많아졌다. 분명 나는 때가 묻은 것이다.
  내가 머물고 있는 작은 방에는 전신거울이 있다. 가끔씩 거울을 보며 대화를 한다. 나랑 똑같이 생긴 녀석이 말을 한다. 그 거울 안에는 덕적섬의 총명한 아이는 없고 초췌한 아저씨만 덩그러니 서있다.
  지금은 본의 아니게 아저씨가 됐지만 한때 나도 어디가면 “학생”, “젊은총각” 소리를 곧 잘 들었다. 딱 그때! 난 지금의 선각을 우연히 만나 입도를 했다. 그리고 ‘우연히’가 아닌 ‘필연’임을 알게 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때의 그 충만한 도심. 지금은 이 도심을 ‘초발심’이라 부른다. 그땐 정말 뭐든지 모시고 싶었다. 그러다가 내 ‘청춘’을 모셨다. 그때는 수도가 너무나 즐겁고, 감사하고, 열정이 넘쳤는데 지금의 나 자신을 보면 그때의 순수한 도심과 모습은 잡힐 듯 말듯 한 신기루 같은 기억이 되어버렸다.
  유년시절부터 성인이 되기까지, 입도해서 한 해 두 해…. 세월을 먹으면 마음도 나이를 먹어 늙는건가? 언젠가 TV에서 어떤 교수가 모든 일에는 열정기, 권태기, 성숙기를 거친다는 내용을 강의 한 적이 있다.  그중에서 나는 권태기에 빠졌었나 보다.
  하늘이 내려주신 어마어마한 도(道)를, 난 권태를 느꼈나보다. 간이 부어 겁을 상실했나보다. 수도를 잘 하고자 했던 그 마음에 미운 감정, 서운한 감정, 여러 욕심, 수도 이외의 여러 마음들이 뽀그락 뽀그락 올라온다. 이게 그렇게 말로만 들어왔던 겁액의 일부일 것이다. 이런 나 자신을 반성하면서도 한편으론 내가 ‘수도하고 있구나’ 하며 스스로에게 힘도 실어본다. 그래도 내가 이름도 기억하지 못하는 노교수의 강의를 들으며 위안을 삼고, 또 집중하는 이유는 권태기를 거치고 난 후에 성숙기로 갈 수 있다는 것을 믿기 때문이다. 어쩌면 권태기는 성숙하고 완성으로 가는 걸림돌이 아닌 디딤돌일 수도 있을 것이다. 더 정성을 쏟는다면….
  작가 이문열씨의 『하늘길』이란 소설이 있다. 옛날에 어느 마을에 한 남자가 지독한 가난에 시달리다 결국 죽게 된다. 그 남자가 죽기전 그의 아들이 아버지께서는 평생 열심히 일하며 착하게 사셨는데 왜 항상 가난했는지 이유를 물었다. 아버지는 복이 없어서 그렇고, 그 복은 하늘에 계신 옥황상제께서 주시는 거라는 유언을 한다. 
  그 후 아이는 건장한 젊은이가 될 때까지 오랜 세월 하늘나라에 계신 옥황상제께 가난의 이유를 따져 묻기 위해 일심으로 하늘길을 찾아나서게 된다. 그러는 와중에 머리 두 개 달린 요괴도 만나고, 도를 닦아 하늘길을 볼 수 있는 도사도 만난다. 우여곡절 끝에 용이 되지 못해 한이 서린 이무기의 도움으로 어렵사리 하늘에 올라 옥황상제를 뵙는다는 내용이다. 비록 소설이지만 이야기 속 주인공과 나를 비교해보았다. 소설 속 젊은이는 궁금한 답 하나 구하기 위해 목숨걸고 오랜 세월 하늘길을 찾고 있는데, 난 너무도 쉽게 하늘길을, ‘하늘’을 뵙고 그 은혜와 덕화를 받고 있었다. 순간 내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오늘은 추석. 어제는 수반과 같이 여주본부도장에 가서 치성을 모시고 아침에 감사히 음복하고 지금은 고향에 와서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고 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치성을 모시기 위해 고속도로와 국도를 번갈아 도장으로 가고 왔던 그 길. 바로 하늘길이다! 치성 모시고, 기도 모시고, 식고를 올리고, 심고를 드리면 반드시 기운 주시며 응답해 주시리라는 믿음. ‘하늘’과 내가 연결될 수 있는 하늘길이다.
 
 

  어릴적 기억속에 보았던 동화에는 옥황상제님이 계시고, 선녀도 있고, 하늘세계가 있었다. 효심 지극한 사람은 하늘에 올라가 복을 받는다. 그리고 흰눈 내리는 추운 겨울에 딸기도 있다. 지금 뉴스나 신문을 보면 이 세상은 무도함의 끝을 달리고 있다. 아니 날아가고 있다. 하지만 한편으론 이런 생각을 해본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야 말로 정말 동화보다 더 동화같은 세상이 아닐까 하고…. ‘하늘’이 우리가 있는 낮은 곳으로 내려와 주셨기 때문에….
  도장에 참배나 공부하러 가게 되면 꼭 유심히 보는 벽화가 하나 있다. 유심히 보는 이유는 유심히 들여다 보아야만 보이는 벽화이기 때문이다.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있어서다. 오늘도 치성 모시고 음복을 마치고 읍배 모시기 전에 수반과 같이 그 벽화를 봤다. 그 벽화엔 나비가 날고 있다. 사계절 내내 태풍불고 비오고 눈이 와도 날고 있는 나비. 어렸을 때부터 나비를 많이 좋아했는데 수도하면서 더 좋아하게 된 사건이 하나 있다.
  몇 년 전 어느 봄날이다. 시골버스 타러 콧노래 부르며 걷고 있는데 나비가 팔랑거리며 한참이나 내 머리 위를 날아다니며 쫓아오는게 아닌가? 그런데 여기서 내 심장을 두근두근 더욱더 펌프질한 사건은 내가 시골버스 타려고 오를 때 나비도 나의 몸에 붙어서 같이 버스를 탄 것이다. 아! 나비의 무임승차 사건. 어찌 이 날을 잊을 수 있을까…. 꼬불꼬불 시골길에, 텅빈 시골버스가 마치 청룡열차 같았던 버스 안 작은 공간을 나비는 불안히 날고, 더 불안한 난 그 나비를 창밖으로 보내주려고 노심초사 애쓰고, 못마땅한 기사 아저씨 소리 높여 내게 면박 주었던 그날을.
  내가 나비를 좋아하게 된 계기는 그들이 가진 예쁜 이름 때문이다. 봄처녀나비, 시골처녀 나비, 도시처녀나비, 부처나비, 부처사촌나비, 신선나비, 선녀나비, 앗싸호랑나비, 그리고 태어날 때부터 입이 없어 먹지도 마시지도 못해 사랑만 하다가 죽게 된다는 상상 속의 실크나비. 그리고 또 하나, 수도하면서 알게 된 것은 사람과 나비가 닮았다는 것이다. 우리는 아직 애벌레고 언젠가는 환골탈태를 거쳐 ‘사람나비’가 되어 완성해야 한다는 점이다. 한번 상상해 본다. 이 봄날, 버스 안에서 나비와 한바탕 소란을 피운 나를 하늘이 내려다 보셨다면 어떠셨을까 하고…. 혹시 이러지 않으셨을까. “사람인 너와 나비 사이에서 느껴지는 온기가 오늘 봄날처럼 따뜻하구나. 기억하렴. 나비는 ‘꽃들에게 희망’이고, 사람은 ‘우주에게 희망’이란 것을…. 사람들이 나를 보며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는데 진정 감사하다면 꼭 환골탈태해서 완성하거라. 환골탈태해서 ‘사람나비’인 신선이 될 때까지 지금껏 그래왔듯…  늘 지켜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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