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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43년(2013)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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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문예 : 내 삶의 키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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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의 키재기
 
박용수01
 

제가 살고 있는 이곳은
세상 가운데 있으면서도
세상과는 동떨어져 있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이곳은
희망은 가득한데도
꿈은 없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이곳은
기다리는 마음은 넘쳐나는데
기다려주는 사람은 없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이곳은
일 년을 살아내고 십 년을 살아내도
정이 스며들지 않는 곳입니다.
 
 
그래도 오늘을 견디며 살아야 하는 까닭은
어제가 아닌
내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오늘도 눈이 부신 햇살을 받으며 콘크리트 회색 담장 밑에 홀로 서서 키재기를 해보지만 내 키보다 서너 배는 족히 더 되는 담장이 세상을 절반으로 나누어 편을 갈라놓았습니다. 도대체 담장 너머 세상 저편을 볼 수 있으려면 얼마만큼이나 더 자라야 될까요?
  이미 다 자라버린 육신의 키로는 어림도 없는 일이지만, 행여 마음의 키라도 키운다면 볼 수 있지 않을까요? 가파른 고갯길을 오르는 모습처럼 힘겨운 세상살이에 잠시 비켜나와 뒷짐 진 채로 구경꾼이 되어버린지 여러 해인데도, 늘 이곳에 서면 낯선 외로움으로 힘들어합니다. 정해진 세월이 8년 그중에 반을 훨씬 넘겨 살아온 세월이 다섯 해, 그렇게 따지면 남아 있는 세월이 세 해 쯤인가요. 하루하루 헤아리기에는 너무도 아득해서 어느 때 부터인가 뭉텅 그려 헤아리는데도 아득하기는 매한가지입니다. 아무리 애를 써도 정들지 않는 이곳은 아무래도 내가 있을 자리는 아닌가 봅니다.
  분명 저 담장 너머 어딘가에는 날 기다려주는 빈 의자 하나쯤은 있을 것인데 남아있는 세월에 발목이 잡혀 허공을 향한 안타까운 손짓만 하고, 마음은 늘 제자리걸음만 걷고 있을 뿐입니다. “불가”에 “일체유심조”란 말이 있지요?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 따지고 보면 고작 마음 하나에 휘둘려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처지에, 무어라 대꾸할 수 없는 말인데도 자꾸만 마음이 꼬이는 것은 제 마음 하나도 다잡지 못한 것에 대한 원망이겠지요.
  인생은 늘 두 가지 중에서 한 가지를 선택하라 강요합니다. 그것이 옳든, 그르던 결과에 대한 책임은 나중이고 일단 선택부터 강요받습니다. 우연이든, 필연이든, 자의든, 타의든 간에 어차피 피해 갈 수 없는 길목에서 스스로를 속여가면서까지 선택한 길은 시작부터 잘못 끼워진 첫 단추처럼 어긋난 인생길이 되어버렸습니다. 결국은 길 잃은 아이처럼, 미로 속을 헤매다 세상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 원치 않은 홀로서기로 세월을 허비한 지 오래지만 달라진 것이라곤 하나도 없습니다. 오히려 두고 온 미련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만이 세월따라 긴 한숨으로 번져갑니다.
 
 

   외줄을 타는 광대를 생각해 봅니다. 이쪽에서 저쪽으로 이어진 외줄 하나에 모든 것을 맡기고 한발 한발 내딛습니다. 조심조심해서 겨우 한발 내딛는가 싶으면 어느 순간 달음박질하듯 몇 걸음을 순식간에 내딛습니다. 그러다 한순간 헛디딘 발에 기우뚱 거리면 구경하는 사람들 입에서는 절로 안타까운 한숨이 터져 나옵니다. 광대는 그때를 기다려 아무렇지도 않은 듯 다시 두발로 줄을 딛고 일어섭니다. 그리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오던 방향으로 되돌아서서 처음 자리로 돌아가 버리려 하지요. 하지만 돌아가기에는 이미 너무 많이 지나와 버려 만만치 않아 보입니다. 잠시 망설이던 광대는 결국 다시 돌아서 새로운 걸음을 내딛습니다. 어찌 보면 새가 살아가는 세상살이도 외줄 타는 광대와 별반 다를 것이 없는 것 같습니다. 때론 발을 헛디뎌 떨어질 뻔하고, 그 외줄에 걸터앉아 잠시 쉬어도 보고, 두려운 마음에 돌아가 보려 하지만 지나온 길이 너무 멀어 그러지도 못합니다. 결국, 한 번 줄에 올라선 이상 죽을 힘을 다해 건널 수밖에 없습니다.
  나는 다짐합니다. 이번만 이번 한 번만 건너고 나면 두 번 다시는 이 줄에 올라서지 않겠다고…. 하지만 나는 알고 있습니다. 먼 미래에 다른 무언가가 분명히 있을 것 같아 죽을 힘을 다해 나아가지만, 막상 다다르고 나서는 또 다른 곳을 향해 새로운 줄에 오르게 될 것을…. 
  지난 다섯 해는 정말 악몽과도 같은 세월이었습니다. 나의 의지대로 되는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이곳에서 자고 또 자고 일어나도 끝이 보이지 않는 징역살이가 정말 지긋지긋 합니다. 어떤 날은 밤새 징역살이에 시달리는 꿈을 꾸기도 합니다. 그럴 때면 온종일 우울한 기분이 가시질 않습니다. 기나긴 옥살이 동안 겨우 이어가던 소중한 인연들도 하나, 둘씩 떠나버리고, 지금은 어머니만이 남아 있습니다. 천륜으로 맺어진 인연을 차마 끊어내지 못한 채 자식의 죄가 당신의 죄라고 말씀하시며 저를 대신하여 죄인으로 살아오신 어머니에 대한 기억은 세월의 깊이만큼 아픈 상처가 되었습니다. 지금도 어머니를 생각하면 가슴 한쪽이 무너지는 것 같습니다.
  지난 세월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철창만 없을 뿐 못난 자식과 똑같이, 마음고생, 몸 고생하시며 지내셨을 어머니는 지워도 지워도 지워지지 않을 화인처럼 내 가슴속에 남아있습니다.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불혹의 나이를 징역살이 중에 맞이하고 한 해 두 해 쌓여가는 세월만큼 어머니에 대한 죄의 높이도 높아만 갑니다.
  이제는 그리움이 지칠 때도 되었음에도,
  이제는 그리움이 마를 때가 되었음에도,
  그리움의 무게는 항상 그대로입니다. 어쩌면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하나에 매달려 그렇게 모진 세월을 견뎌냈는지도 모릅니다. 한순간 욕심을 이겨내지 못한 대가치고는 너무도 잔인하고 잔인한 세월이었습니다. 잃어버린 것이 너무도 많은 세월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애꿎은 세월을 탓할 순 없습니다. 결국, 인생이란 처음부터 끝까지 저의 몫이니까요. 바쁜 인생길에 잠시 쉬었다 가는 쉼터치고는 너무 각박하지만, 이곳의 삶이 헛되지 않음은 인생이 기다림이라는 사실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용서와 사랑을 배웠습니다. 두 어깨에 짊어진 삶의 보따리 한 번 추스르고 풀어진 신발 끈도 동여매고 아픈 다리도 쉬었으니 이젠 가슴 가득 사랑을 채워 세상 밖으로 나가고 싶습니다. 여기 있었던 세월의 공백만큼 조금은 두렵기도 하고 낯설기도 하겠지만 스스로를 가두어버린 굴레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지고 싶습니다. 눈에 보이는 잿빛 담장보다는 오히려 마음속에 쌓인 마음의 담장 높이가 더 높은 까닭은 자신에 대한 원망과 회한이 더 크기 때문입니다.
  이제 그만 용서를 빌고 싶습니다.
  이제 그만 용서를 받고 싶습니다.
  세상 누구도 아닌 자신에게 용서를 받을 수 있다면 나는 이제라도 새줄에 올라설 수 있습니다. 저는 제가 가진 키에 비해 세속의 욕심이 너무 많았습니다. 늘 노력하려 하기보다는 허황된 욕망이 먼저였고 정직하기보다는 거짓이 앞섰습니다. 이제 충분히 쉬었으니 다시 새로운 줄에 오를 준비를 해야겠습니다.
  할 수 있는 것보단 할 수 없는 것이 더 많아서 늘 목마른 세월이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견디어 낸 이유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사람답게 살지 못했기에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 사람 본래의 마음을 가지고 한 번이라도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 인고의 세월을 견디어 낼 수 있었습니다. 이번만큼은 정직한 마음으로 첫발을 내딛겠습니다. 비록 남들보다 더딘 걸음이 되더라도 한 걸음 한 걸음 욕심내지 않고 내 빈자리를 찾아가기 위해서….
  나는 오늘도 햇살에 눈이 부신 담장 밑에 서서 내 삶의 키재기를 해봅니다.
 
 
 
 

01 현재 수감 생활을 하고 있는 비수도인입니다. 하지만 매달 회보를 통하여 대순진리회를 알아 가고 있으며 2012년 대순문예에 참여하여 입선을 하였습니다. 수도인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글이라 생각되어 회보에 싣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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