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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 사자평에서
사자평에서
잠실 20방면 교감 마재왕 여기 와서야 비로소 적멸에 이르는 길을 보았습니다.
하늘여인들이 당신의 은빛 머리칼을 밟으며 허공을 지날 때 마다 벌판 여기저기 서려 있던 사연들이 풀려나 춤사위로 파도소리로 출렁이는 것을 덜 여문 둥근달은 휘영청 비추고 있었습니다. 제가 사랑하는 것이 당신인지 바람인지 또 다른 그 무엇인지도 모른 채 별유천지 지켜보다 새벽녘 문득 이번 생은 당신의 허락이 있었음을 알았습니다. 흔들리는 생의 아름다움은 쉼 없이 부는 저 세상 바람과 어우러지려는 고된 몸부림에서 비롯합니다. 흔들림 없는 생이 몇이나 되며 어느 생이나 절절하겠지만, 허름하고 야윈 삶일수록 쉽게 흔들리므로 더욱 절절하지 않은가요.
지남 밤 당신의 읊조림에 귀 기울이던 고사리학교는 더 이상 오지 않을 아이들을 기다리며 세월에 곰삭아 가고 있었습니다. 알 수 없는 먼 생으로 부터 몰려와 다음 어느 생으로 몰려가는 풀벌레들. 그러나 당신은 여기 사자평에서만 생을 거듭하나 봅니다. 연(緣)이란 끊어질 듯 이어짐을 믿지만 또 몇 번의 생을 지나야 당신께 올 수 있을까요. 몇 생의 업을 지워야 저 무리 지은 흔들림이 일구는 바람 앞에 다시 서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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