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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 속 역사 인물 : 소원을 이뤄주는 신선, 여동빈(呂洞賓)

소원을 이뤄주는 신선, 여동빈(呂洞賓)
 
 

연구원 신상미
 
 
이어 말씀하시기를 “나의 일은 여 동빈(呂洞賓)의 일과 같으니라. 그가 인간의 인연을 찾아서 장생술을 전하려고 빗장사로 변장하고 거리에서 이 빗으로 머리를 빗으면 흰 머리가 검어지고 굽은 허리가 곧아지고 노구가 청춘이 되나니 이 빗 값은 千냥이로다고 외치니 듣는 사람마다 허황하다 하여 따르는 사람이 없기에 그가 스스로 한 노구에게 시험하여 보이니 과연 말과 같은지라. 그제야 모든 사람이 서로 앞을 다투어 모여오니 승천하였느니라.” (예시 61절)
 
▲ 해상군선도 8폭 병풍, 전 김홍도, 조선시대 / 출처: 2014 한국의 도교문화전 / 덕수 3305
 
 
생애와 가계
  여동빈은 우리에게 팔선(八仙) 중 인기가 가장 많은 신선으로 알려져 있다. 민중들에게 신이(神異)한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자주 등장해서인지 그의 출생에 관해 의견이 분분하다. 원대(元代) 조도일(趙道一)의 『역세진선체도통감(歷世眞仙體道通鑑)』01에는 당(唐) 덕종(德宗) 정원(貞元) 12년 병자(丙子, 796)년 4월 14일에 출생한 하중부(河中府) 영락현(永樂縣) 사람이라 한다. 다음으로 명대(明代) 서도(徐道)의 『역대신선통감(歷代神仙通鑑)』02에는 당(唐) 태종(太宗) 정관(貞觀) 12년 병오(丙午, 638)년 4월 14일 사시(巳時)에 출생한 하중부(河中府) 영락현(永樂縣) 사람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명대(明代) 왕세정(王世貞)의 『(회도)열선전전[(繪圖)列仙全傳]』에서는 당(唐) 덕종(德宗) 정원(貞元) 14년 무인(戊寅, 798)년 4월 14일 사시(巳時)에 포주(浦州) 영락현(永樂縣)에서 출생했다고 전해온다.03
  중국 사천(四川)의 청양궁(靑羊宮)에서 전해 내려온 『동화정맥황극합벽증도선경(東華正脈皇極闔闢證道仙經)』에서는 여동빈이 본시 당나라 왕족으로 성은 이(李)이며, 이름은 경(瓊)이고 자는 백옥(伯玉)인데 측천무후의 화를 피하여 자기 부인인 김씨와 함께 숭산(嵩山)의 깊은 계곡에 숨어 살게 되면서 성을 여(呂)로 바꾸었다고 한다.04 명(明)나라 오원태(吳元泰)의 『동유기(東遊記)』05 23회 내용을 보면 그의 성은 여(呂)이고 이름은 암(岩), 자는 동빈이고 호는 순양자(純陽子), 회도인(回道人)으로 기록되어 있다. 송(宋)나라 섭몽득(葉夢得) 『암하방언(巖下放言)』에는 여동빈이 여위(如渭)의 후손이라 한다. 여위는 하동(河東) 하중부(河中府) 사람으로 당(唐) 덕종(德宗) 때에 태어나 예부시랑(禮府侍郞)의 관직에 있었으며 그의 아들 여온(呂溫)은 정원(貞元) 연간에 진사(進士)에 올랐다. 여온의 아들 가운데 여양(呂讓)이 바로 여동빈의 부친으로 그의 집안은 대대로 관직을 지냈으며 시(詩)와 예(禮)에 밝았다고 묘사하였다.06 이렇듯 여동빈에 대한 설은 출생뿐만 아니라 가계에 대해서도 여러 이설이 많다. 이러한 설 중에 그의 성이 여(呂)이며, 이름은 암(岩), 자는 동빈이고 호는 순양자(純陽子)로 당나라 포주 영락현 사람이라는 주장이 가장 보편적이다.
 
▲ 신선 여동빈 , 조선시대 / 출처: 2014 한국의 도교문화전 /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여동빈의 모습에 대해서는 대부분 유사하게 묘사하였다. 그는 태어나면서부터 신체가 건실하고 뛰어난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학의 정수리에 원숭이 등, 호랑이 같은 튼튼하고 날렵한 몸, 용의 뺨, 봉황의 눈은 하늘을 바라보는 듯하고 두 눈썹은 구레나룻에 닿을 정도였다. 또 콧등은 우뚝 솟았고 얼굴색은 창백한 황색이었으며, 왼쪽 눈썹 끝쪽에 검은 점이 있었고 발바닥에는 거북 무늬가 있었다. 목은 길고 광대뼈가 튀어나왔으며 전체적으로 도골선풍(道骨仙風)의 고귀한 모습이었다고 전한다.07
  『역세진선체도통감(歷世眞仙體道通鑑)』에 의하면 그는 천성적으로 타고난 자질이 영민하고 빼어나 3~4세에 이르러 능히 독경하고 낭송하였으며, 효도와 형제간의 우애를 알아 친척들이 모두 그를 아꼈다고 한다. 또한 5세에는 3~4년간 모든 삼분오전(三墳五典)08과 백가어(百家語)09를 남김없이 다 보았다고 한다.10
  여동빈의 경력에 대해서도 여러 이설이 있는데 금(金, 1115∼1234)나라 원호문(元好問)이 엮은 『당시고취(唐詩鼓吹)』11에서는 그가 당 말기 의종(懿宗) 함통(咸通) 연간(859~873)에 급제하여 두어 곳의 현령을 역임했으나 황소의 난(黃巢의 亂, 874~884)을 피해 전 가족을 데리고 종남산(終南山)12으로 피신하여 수행 득도하고 난 이후의 행적은 모른다고 하였다. 그러나 보편적으로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어려서부터 신동으로 유가 경전을 비롯한 제자백가서에 능통했지만 20여 세에 과거에 응시하여 불합격하였다는 내용이다. 그 뒤에도 서너 차례 응시하였으나 합격하지 못했다. 그러다 46세(일설에는 64세) 때에 또다시 응시하러 장안에 갔다가 그곳 주점에서 운방(雲房)선생 종리권(鍾籬權)을 만나 점화(點化)13 득도하였다고 한다.  
  종리권으로부터 꿈(황량몽: 기장밥을 짓는 동안 꾼 꿈)을 통해 인생의 온갖 영화와 풍파를 겪은 후, 인생의 진리를 깨닫게 된 여동빈은 신선이 되기 위해서 몇 가지 시험을 거쳐야만 했다. 『동유기』에서는 10차례, 『비검기(飛劍記)』14에서는 7차례의 시험을 거쳤다. 『동유기』의 내용을 보면 ①속세인연의 단절, ②작은 이익에 초연할 것, ③넓은 마음으로 인내심을 가질 것, ④중생을 위해 자신을 돌보지 말 것, ⑤욕정에 미혹되지 말 것, ⑥재물에 욕심내지 말 것, ⑦물질에 대해 초연하여 타인의 손실을 생각할 것, ⑧진실과 신념을 지닐 것, ⑨생사에 초연할 것, ⑩박해와 위협에 항거할 것의 시험이 있었다. 여동빈은 이 모든 시험에 통과하여 종남산에서 수행하게 된다. 시험을 통해서도 알 수 있지만 여동빈은 욕심 없는 청정한 마음으로 세상을 구제하여 공덕을 쌓고자 하였다.
  『비검기』에 따르면 종리권이 여동빈에게 수은을 백금으로 만드는 황백지술(黃白之術)이란 연단술(煉丹術)을 가르쳐 주면서 3,000년의 공덕을 쌓고 800년 동안 수행하면 자기와 같은 경지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 이에 스승과는 달리 여동빈은 속세에 남아 있는 사람들을 모두 도탈(度脫: 생사의 고뇌에서 벗어나는 것)시킨 후에 승선(昇仙: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올라가는 것)한다고 하여 속세에 남아 공덕을 쌓기 시작한다. 그러나 진사도(陳師道)의 『후산담총(後山談叢)』에 따르면 여동빈이 종리권으로부터 황백지술을 전수받기를 거절하였다는 설도 있다. 500년 후 약의 효과가 다하면 다시 옛날로 돌아간다는 것을 안 여동빈이 종리권에게 장생의 약을 받는 것을 거부했다는 것이다.
  그 이후 여동빈은 화룡진인(火龍眞人)에게 악령퇴치법인 천둔검법(天遁劍法)과 불로장생의 묘약인 용호금단(龍虎金丹)의 비법을 전수받아 여러 시대에 걸쳐 다양한 장소에 나타나 사람들에게 약을 주거나 붓글씨를 팔아 번 돈으로 궁핍한 사람들을 돕는 수호신으로 유명해진다. 원대(元代) 묘선시(苗善時)가 저술한 『순양제군신화묘통기(純陽帝君神化妙通記)』에는 108번을 변신하여 중생을 제도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는 첫째로 탐욕과 성냄을 단절하고, 둘째로는 애욕을 끊고, 셋째로 일체의 번뇌를 물리치기 위하여 심검(心劒)을 가지고 다닌다고 설파하였다.15 그가 도교의 신선 중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이유는 기적과 효험을 중시하는 기층민들에게 가깝게 느껴지는 신격(神格)으로 빈민을 구제하였고, 문인들에게는 자신들의 신분과 같다는 것과 여동빈이 과거에 급제하지 못한 부분에서 공감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라 보고 있다.
  금대에 성립한 전진교(全眞敎)에서는 북오조(北五祖)의 한 분으로 받들기도 했다. 그의 인기는 원(元, 1271~1368)대에 더욱 높아졌으며 1310년에 원나라의 무종(武宗, 1281~1311)으로부터 순양연정경화부우제군(純陽演正警化孚佑帝君)으로 봉해졌다.16 그는 훗날 여동빈보다는 여조(呂祖)로 더 많이 불렸다. 청(淸, 1636∼1912) 때는 여동빈의 탄생일인 음력 4월 14일이 되면 신선고(神仙糕)라는 오색떡을 먹고, 화병에 꽃을 꽂아 축하했다. 정부에서는 복제관(福濟觀: 소주에 있는 도관)에서 궁중 음악을 연주하는 등 성대한 행사를 벌였다. 여동빈은 당시 사람들에게 ‘유구필응(有求必應)’이라 하여 반드시 소원을 이루어주는 신선으로 인정받았다. 특히 그의 탄생일에 복제관을 참배한 사람들은 병마를 퇴치할 수 있다고 믿으며 간절하게 빌었다.17
 
▲ 신선 종리권 , 조선시대 / 출처: 2014 한국의 도교문화전 / 덕수 6025
 
 
도맥과 사상
  여동빈의 사상 속에는 유·불·도 삼교가 모두 들어 있다. 그는 유문(儒門) 출신으로 유가의 도덕관념을 표준으로 삼았으며, 오래도록 이 세상에 머물며 장생하여 자신의 참된 본성을 잘 닦아 신선이 될 것을 주장하였다. 그리고 세상의 사대[四大: 불교용어로 물질계를 구성하는 네 가지 원소. 지(地)·수(水)·화(火)·풍(風)을 의미함]를 초탈하여 세상과 관계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으며 윤회를 인정하였다. 즉, 여동빈의 인생관은 도교를 중심으로 하면서 유가와 불가의 요소를 함께 지닌다고 할 수 있다.18
  그는 전진교 용문파(龍門派)의 북오조 중에 한 사람으로 내단(內丹)19을 중심으로 수행하였다. 도맥을 보면 북오조의 수장인 왕현보(王玄甫)에서 종리권(鍾離權), 종리권에서 여동빈으로 도가 전해졌다. 종리권과 그 제자인 여동빈을 ‘종려(鍾呂)’라 부르기도 하였다. 종려는 『영보필법(靈宝畢法)』이란 책을 지어 도를 전하였고, 여동빈은 왕중양(王重陽: 1112~1170)과 유해섬(劉海蟾)에게 법을 전하였다.
  그의 저서는 꽤 많으나 고증에 의하면 대부분 명청시기 도가들의 위찬(僞撰)이라 전해진다. 비교적 믿을 만한 것으로 『파미정도가(破迷正道歌)』, 『영보편(靈寶篇)』, 『비전정양진인영보필법(秘傳正陽眞人靈寶畢法)』, 『백문편(百問篇)』, 『구진옥서편(九眞玉書篇)』, 『지현편(指玄篇)』, 『주후삼성편(肘後三成篇)』, 『전도(傳道)-상중하편(上中下篇)』 등이며, 『종려전도집(鍾呂傳道集)』 또한 종려가 썼다고 전해지기도 하지만 여동빈의 제자 시견오(施肩吾)가 편찬했다고도 한다.20
  그리고 여동빈이 직접 쓴 것은 아니지만 금나라 1171년에 진덕수(眞德秀, 1178~1235)가 꿈에서 여동빈에게 받았다고 전하여져 『여조공과격(呂祖功過格)』이라고도 부르는 『태미선군공과격(太微仙君功過格)』은 도덕적 실천을 중요시한 선서신앙(善書信仰)21에서 빠질 수 없는 책이다.22 그 내용을 보면 크게 공격(功格)과 과격(過格)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공격은 선한 행위의 기록으로서 선한 행위에 대한 응보체계로 36조 4문(門)이 있다. 네 가지 범주는 구제문(救濟門), 교전문(敎典門), 분수문(焚修門), 용사문(用事門)이며, 과격은 악한 행위의 기록으로서 악한 행위에 대한 응보체계로 39조 4문(門)이 있다. 불인문(不仁門), 불선문(不善門), 불의문(不義門), 불궤문(不軌門)이 그것이다.
  구제문은 병을 치료하고 굶주리고 추위에 떠는 자들을 구제하는 것이며, 교전문은 자기 스스로 계를 닦거나 사람들을 경과 교로 가르쳐서 세상 사람들에게 전해지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분수문은 근본적인 종교의 가르침을 밝히고 세워서 백성들에게 글을 짓고, 경을 암송하는 것을 가리키며, 용사문은 선한 행위를 흥하게 하고, 경전의 가르침을 잘 전달하며 화(和)를 권장하고, 검소함을 실천하는 것을 말한다. 이와 반대로 병자를 보고도 고치지 않고, 혐오하는 것을 배우거나 저주받을 일을 기도하고, 살생하는 것은 불인문에 속한다. 불선문은 절을 훼손하거나 제삿날이나 절기에 맞추어 정성스레 제사지내지 않고 경전 등을 잘못 외움으로써 생기는 과를 말한다. 불의문은 훌륭한 스승을 섬기지 않고 좋은 친구를 사귀지 않는 것을 가리키며, 불궤문은 제자들에게 그른 법을 전하거나, 음주 등을 즐기는 것 등이 해당한다.23
  특히 여동빈은 속세의 사람들을 구제하고자 노력하였던 인물이었으며, 마음씨 바르고 착한 사람을 골라 선계로 인도하고 싶었다. 『동유기』에 이와 관련된 그의 설화가 있다. 악양(岳陽)에 신(辛) 씨 성을 가진 사람이 술집을 시작하였는데, 여동빈이 갈때 마다 외상을 하여도 술값을 요구하지 않고, 갚지 못한다고 하여도 괜찮다고 하니 여동빈이 술값 대신 귤껍질로 술집 벽에 학 한 마리를 그려 주고 떠났다. 그 학은 손뼉을 치면 벽에서 살아 나와 노랫가락에 맞춰 춤을 추었다. 이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이들로 술집 주인은 큰 부자가 되었다고 한다. 이 설화에는 물욕에 빠지지 않고 착한 마음으로 행하면 복이 온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렇듯 민중을 돕기 위해 승선하지 않고 공덕을 쌓는 여동빈은 명·청 시기의 민중들에게 중심인물로 등장하였다. 그 영향과 함께 권선서(勸善書)를 중심으로 중국 민간도교 윤리가 우리나라 조선 후기까지 영향을 미쳤다. 한국에서 개정판으로 출판되어 널리 보급된 한문본으로 1742년(옹정 2) 『공과격』과 그것을 번역한 한글본 『태미선군순양여조사공과격(太微仙君純陽呂祖師功過格)』이 있다.24
 
▲ 해상군선도 중 신선 여동빈 부분, 전 김홍도, 조선시대 / 출처: 2014 한국의 도교문화전 / 덕수 3305

 
장생술을 전하려 했던 여동빈
  여동빈은 속세에 남아 있는 사람들을 모두 도탈(度脫)시킨 후에 승선한다고 하여 속세에 남아 108번 변신하여 중생을 제도하며 공덕을 쌓았다. 그러한 그의 설화 중에 여동빈이 빗장사로 변신하여 장생술을 전하려 하였던 내용에서는 장생술을 얻기 위해 의심 없는 믿음이 필요하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전경』의 여동빈 고사와 유사한 내용인 『여동빈 이야기』25에서는 늙은 할머니가 빗을 빗고 젊은 여인이 되는 것을 보고 무심하던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으나 여조가 “보아도 모르고, 알아도 못 본다.” 하고는 승천해 버린다. 보아도 모르고 알아도 못 본다는 이 말은 “내가 일 하고자 들어앉으면 너희들은 아무리 나를 보려고 하여도 못 볼 것이요 내가 찾아야 보게 되리라.”26라고 하신 상제님의 말씀을 떠올리게 한다.
  『전경』에 인용된 여동빈의 이 설화에서 우리가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은 믿음인 것 같다. 믿기지 않는 허황된 것에서 진실을 알아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과 믿음에 때가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제께서 “너희들이 믿음을 나에게 주어야 나의 믿음을 받으리라.”27고 하신 것처럼 늘 변함없는 믿음을 지니고 있어야 함을 의미한다 하겠다. 그리고 여동빈이 승선할 수 있었지만 이를 미루고 속세에 남아 사람들을 모두 도탈시키고자 한 것은 우리의 책무가 “남을 잘 되게 하라”는 데에 있음을 상기할 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참고문헌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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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동, 『도교사상사전』, 부산: 부산대학교,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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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헌원황제 때로부터 시작하여 약 9백 명의 남녀 신선들에 대해 전기를 기록한 책이다. 진선통감(眞仙通鑑) 또는 선감(仙鑑)이라고도 한다.
02 도(道)ㆍ불(佛)ㆍ유(儒) 3교의 신선(神仙)의 전기(傳記)와 민간의 전설을 종합하여 장회체(章回体)의 소설로 만든 책이다.
03 김도영, 「呂洞賓劇의 純陽指向 이미지」, 『중국어문논총』 제21집(2001, 12), p.306 참조.
04 민일득, 『동화정맥』, 금선학회 옮김(서울: 여강, 1997), p.177.
05 『동유기상동팔선전(東遊記上洞八仙傳)』 또는 『팔선출처동유기(八仙出處東遊記)』라고도 하며, 팔선에 관한 장편소설로 신선들의 수련과 득도 내용을 다룬 책이다.
06 이원국, 『내단』1, 김낙필외 2명 옮김(서울: 성균관대학교 출판부, 2006), p.574.
07 오원태, 『동유기』, 진기환 역(서울: 지영사, 2000), pp.124-125 참조.
08 삼분(三墳)은 복희(伏羲)ㆍ신농(神農)ㆍ황제(黃帝)의 글이요, 오전(五典)은 오제는 소호(少昊)ㆍ전욱(顓頊)ㆍ제곡(帝嚳)ㆍ요(堯)ㆍ순(舜)의 글이다.
09 중국(中國) 전국시대(戰國時代)의 제자백가(諸子百家)의 말이다.
10 최창록, 『여동빈 이야기』(서울: 살림, 1994), p.33 참조.
11 당(唐)나라 때의 시인들이 지은 한시(漢詩)들 가운데 일부를 뽑아 편집한 책이다.
12 중국 섬서성 서안에서 남쪽으로 약 20km정도 떨어져 있으며, 진령산맥의 남쪽 끝자락이라 하여, 종남산(终南山)이라 한다. 산의 높이는 2600m 넘는다.
13 도교 연단(煉丹)에 관한 명사(名詞). 또는 신선이나 진인(眞人)이 세인(世人)의 미혹함을 깨뜨리고, 도를 깨닫게 하는 것을 말한다.
14 『여순양비검기(呂純陽飛劍記)』라고도 하며, 명(明)나라 등지모(鄧志謨)가 쓴 백화소설로 여동빈의 탄생부터 지선(地仙)이 되어 세상을 구원하고 인간을 도탈시키는 내용을 다루었다.
15 가내모리 요시오(金盛良夫),『동양의 신선사상』, 한정섭 역(경기: 불교통신교육원, 1993), p.263.
16 구보 노리타다(窪德忠), 『도교의 신과 신선이야기』, 이정환 옮김(서울: 뿌리와 이파리, 2004), p.172.
17 마노 다카야(眞野隆也), 『도교의 신들』, 이만옥 옮김(서울: 들녘, 2001), pp.152-153 참조.
18 이원국, 『내단』1, 김낙필외 2명 옮김(서울: 성균관대학교 출판부, 2006), p.576 참조.
19 도교의 수련술로써 인체의 어떤 한 부위를 수련의 화로[爐鼎]로 삼고 이로써 체내의 정(精)과 기(氣)를 약물로 삼으며 ‘신(神)’을 사용하여 소진케 하는데 이들 정(精)ㆍ기(氣)ㆍ신(神)을 모아 굳게하여 성태[곧 내단]를 만드는 것을 말한다.  김승동, 『도교사상사전』(부산: 부산대학교출판부, 2004), p.179.
20 이원국, 『내단』1, 김낙필외 2명 옮김(서울: 성균관대학교 출판부, 2006), p.579 참조.
21 선의 권장과 악의 징계를 주장하는 도덕서를 읽고 실천하는 행위. 선서신앙은 본질적으로 적선(積善)에 의한 성선(成仙)을 구하기 때문에 권선징악을 통한 공덕을 본성으로 함으로 각종 격과 율(律)은 도덕적 삶을 요구한다.
22 양은용, 「韓國道敎의 近代的 變貌」, 『한국종교사연구』 제5집(1996), p.358 참조.
23 윤찬원, 「명청시대 공과격들에 나타난 도교윤리」, 『도교문화연구』40집(2014), pp.90-91 참조.
24 양은용, 『한국근대사상사 탐구』(서울: 논형, 2012), p.109 참조.
25 최창록, 『앞의 책』, p.118 참조.
26 교법 3장 45절.
27 교법 1장 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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