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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46년(2016)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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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책 : 호모 코레아니쿠스

“호모 코레아니쿠스”
 
 

연구원 송하명

 
  평론가인 진중권의 책인 『호모 코레아니쿠스』는 한국인의 몸의 특성을 근대화, 전근대성, 미래주의로 분류하여 ‘하비투스’(habitus: 습속)01관점에서 파헤치는 한국인의 자화상이다. 인간의 신체는 특정 사안에 대한 생각, 특정 사건에 대한 느낌, 특정 자극에 대한 반응이 민족에 따라, 시대에 따라 상당히 다르게 나타나는 특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는 글의 서두에 우리의 습속을 비하할 생각도 없고, 자화자찬을 늘어놓고 싶지도 않다고 말한다. 그리고 미성숙한 인격에게는 칭찬과 꾸중이 필요할지 몰라도, 성숙한 사회에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 냉철한 자기 인식, 마치 의사가 신체를 해부하듯 한국인의 습속을 냉정하게 헤쳐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먼저 일제강점기의 조선과 박정희 정권 시대의 한국이 국가권력의 힘을 통해서 농경사회의 신체가 산업사회의 기계적 신체로 인간개조되었다고 한다. 그러한 산업화 과정에서 형성된 기질이 아직 한국인의 문화에 뿌리 깊게 잔재해 있음을 지적한다.
  이 두 시대의 공통점은 한국의 근대화를 이루기 위해서 군대식 규율을 강요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런 군대식 규율에 의해 달성된 국가권력에 의한 인간개조의 타성이 현재 우리사회의 전근대성을 형성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군대식 산업화 시대를 거치면서 한국인은 저절로 ‘전사적 기질’을 갖게 되었다고  분석한다. 그 전사적 기질이 한국인을 묘사하는 단어로 자주 쓰이는 “냄비 근성을 포함, 강인함, 활력, 승부 근성, 도전 정신, 자신감, 대담함, 빨리빨리 문화, 신바람, 악바리 근성, 잡초 근성, 거침, 격정, 난폭함, 떼거리 근성 등”이다. 혹자는 이러한 기질이 21세기를 리드하는 한국의 경쟁력이 아니냐고 긍정한다. 그러나 작자는 이것이 한국 전쟁의 참혹한 경험과  산업화 시대 군사주의 문화의 잔재라고 비판한다.
  어쨌든, 한국은 이러한 국가 권력에 의한 산업화 과정을 통해서 자본주의 시장경제로의 전환에 성공하였다. 그러나 권력이 국가에서 시장으로 넘어가면서 과거에 국가에 바치던 공적 충성의 의무가 고스란히 거대기업에 대한 사적 충성으로 옮겨졌다고 그는 날카롭게 지적한다. 최근 실업자가 급증하는 가운데 취직을 위한 ‘면접’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인터넷에 떠도는 ‘면접시험 프로그램’을 보면 인성은 물론이고 화법과 복장까지 기업이 선호하는 인간상을 제시해 놓고 있다. ‘맞춤형 인재’라는 말은 대학에서 기업의 요구에 맞는 인간을 생산해주는 시스템을 가리킨다. 이는 경쟁을 매개로 시장이 행사하는 자발적 성격의 강제라고 작자는 비판한다.

 
 
 
  이 책의 중반부터는 이제 디지털 시대를 맞이한 현재의 한국의 인터넷 문화 현상을 아주 흥미롭게 파헤친다. 작자는 한국의 선진적인 인터넷 인프라에는 구술문화적 습속이 강하게 내포되어 있다고 말한다. 한국의 경우 해방 직후 문맹률이 90%에 달했고 문자문화로 진입한 지 60년이 채 안 되어 디지털 시대를 접하게 되었기 때문이란다. 당연히 얼굴과 얼굴을 맞대는 구술문화의 습속이 강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문자문화의 인간들은 정보가 필요할 때에만 인터넷에 접속해 정보를 찾은 후 곧바로 나온다. 반면 구술문화가 강한 한국의 네티즌들은 찾을 정보가 없어도 인터넷에 접속하여, 여기저기 남의 블로그나 홈페이지로 마실을 다니면서 촌수 맺기 등 다양한 관계를 이어간다. 참으로 흥미로운 분석이다.
  한국이 이 구술문화의 특성을 영상문화의 차원으로 구현시켰기에 디지털 강국, 게임 강국으로 성장했다고 그는 분석한다. 더욱더 흥미로운 부분은 디지털 시대의 복제문화에 관한 것이다. 원본을 대신하는 복제, 원본 없는 복제, 원본보다 더 원본 같은 복제를 뜻하는 ‘시뮬라크르’02로 설명할 수 있는 디지털 복제 시대에서 짝퉁은 진품을 만들어내고, 아우라03의 전면적인 파괴가 발생한다는 저자의 설명은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그는 또 그러한 영상문화의 무분별한 발산이 ‘가상(사실이 아닌 연출된 거짓)과 현실’의 구분을 사라지게 만들었다고 말한다. ‘왕따 동영상’, ‘지하철 결혼식 사건’과 같은 동영상이 그 예이다. ‘왕따 동영상’은 교실 안의 폭력을 담은 것으로, 이 영상이 인터넷에 오르자 여론의 질타를 못 이긴 교장이 자살하고 말았다. 나중에 법원에서는 그 문제의 동영상이 연출된 상황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또 ‘지하철 결혼식 사건’은 가난한 두 남녀가 돈이 없어서 지하철에서 승객들을 대상으로 눈물의 결혼식을 올린 것이다. 이를 본 네티즌들은 감동의 눈물을 흘렸는데, 알고 보니 이 역시 실제 상황이 아니라 연극학과 학생들이 연출한 사건이었다. 가상이 현실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이렇듯 이제는 미디어 영상도 특정인 또는 권력과 자본에 의해서 얼마든지 인위적으로 조작될 수 있는 위험성을 안고 있다.
  디지털 시대 한국 IT인프라의 대중화는 한국인의 신체, 특히 젊은 세대의 신체를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진화시켰다. 그러나 진중권이 우려하는 것은 현실의 영상문화가 근대적 문자문화에 기반한 ‘텍스트’의 부재를 안고 있다는 것이다. 문자가 없던 선사시대의 영상과 달리 21세기의 영상은 텍스트를 그린 것이다. 프로그래밍을 하는 이들은 영상의 바탕에 깔린 문자-숫자 코드로 그림을 그리고, 이로써 가상의 ‘창조자’가 된다. 반면 프로그래밍을 당하는 사람들은 그림을 세계로 받아들임으로써 가상의 ‘소비자’에 머문다. 그는 현재의 한국이 ‘창조자’보다는 ‘소비자’에 가까운 것을 우려한다.
  진중권은 이러한 우려를 극복하는 자세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빠뜨리지 않는다. 기존의 ‘양적 기준’을 만족시키는 ‘동일성’의 경쟁이 새로운 ‘질적 표준’을 세우는 ‘차이’의 경쟁으로 바뀌면,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신체의 유형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이제는 과거의 타력에 의한 신체의 변화가 아닌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 신체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산업사회의 인간이 주어진 목표를 초과 달성하는 충실한 ‘타율적 신민(臣民)’에 머물렀다면, 정보사회의 인간은 자신의 꿈을 앞으로 던져 실현하는 ‘자율적 주체인 기획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기술로 상상을 실현하는 능력, ‘기술적 상상력’을 갖춘 미학적 신체를 말한다. 그는 막 열린 디지털 시대는 과거의 전사형 인간에게 예술가형 인간들로 다시 태어날 것을 요구한다.
  작자는 한국의 근대화 과정을 철저하게 객관적으로 바라보면서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성찰하게 하며, 현실의 한국적 사회상황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미래의 인간상을 제시해주었다. 그의 이러한 통찰은 우리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사회를 인식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도전님께서는 임원들에게 “사회를 보면 도의 흐름을 알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우리 종단도 100년이 조금 넘는 짧은 역사 속에서 ‘근대화’, ‘산업화’, ‘정보화’ 시대를 거치면서 현재의 디지털 시대의 문화와 함께하고 있다. 진중권의 분석은 근대화시대를 살아왔던 우리의 생활 습속이 아직 타력적 잔재로 남아 있는지를 성찰해보게 한다. 그리고 디지털 시대의 자율적 주체로서 대순진리를 실현할 수 있는 보다 성숙한 도인의 상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보게 한다.
 
 
 

01  ‘하비투스’라는 용어는 라틴어의 ‘가지다(habere)’에서 파생하였다. 그것은 “사람이 태어나면서부터 가정과 사회에서 몸에 배게 된 특정의 총체(總體)”이다. 보통 ‘습속’이라 하고 일상의 몸치장과 언어 표현 및 생각하는 방법까지 모두 ‘하비투스’이다
02 시뮬라크르(simulacre): 가상, 거짓 그림 등의 뜻을 가진 라틴어 시뮬라크룸(simulacrum)에서 유래한 말이다. 이 라틴어 단어는 영어 안에도 그대로 흡수되어서 모조품, 가짜 물건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요컨대 시뮬라크르는 원본의 성격을 부여받지 못한 복제물을 뜻하는 개념이다.
03 아우라(Aura): 예술 작품에서, 흉내 낼 수 없는 고고한 분위기. 독일의 철학가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의 예술 이론에서 나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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