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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47년(2017)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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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원종 : 삼초 끝에 대인이 나오리라

삼초 끝에 대인이 나오리라
 
 
연구원 강대성
 
“대인의 행차에 삼초가 있으니 갑오(甲午)에 일초가 되고 갑진에 이초가 되었으며 삼초를 손 병희(孫秉熙)가 맡았나니 삼초 끝에 대인이 나오리라.” 이렇게 상제께서 종도들에게 말씀하시고 그의 만사를 다음과 같이 지어서 불사르셨도다.
知忠知義君事君 一魔無藏四海民
孟平春信倍名聲 先生大羽振一新 (예시 59절)
 
 
 
 
 『전경』의 「예시」편은 말 그대로 미래에 전개될 일을 말씀하신 것이다. 위 성구의 문장을 살펴보면 갑오와 갑진은 과거형으로 ‘되었다’라고 하셨고 다음으로 삼초 끝에 대인(大人)이 나오리라는 미래형의 시간 순서로 되어 있다. 즉, 갑오의 일초와 갑진의 이초는 이미 지났고 앞으로 삼초의 일이 손병희에 의해서 진행된다는 말씀이다. 이 성구의 핵심은 삼초 끝에 나오는 대인이 누구인가이다. 그렇다면 대인이 나오기 위한 과정으로서 일초와 이초, 그리고 삼초가 각각 무엇을 뜻하는지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전경』에 일초와 이초는 연도가 구체적으로 제시되었지만 삼초가 어느 때인지는 불분명하다. 단, 삼초를 손병희가 맡았다는 말씀에 초점을 맞추면 대략 그 시기를 추정해 볼 수 있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일초, 이초, 삼초의 사전적 뜻을 알아보고 각각이 상징하는 바가 무엇이며 삼초 끝에 대인이 나오리라는 말씀이 어떤 의의를 나타내는가를 살펴보기로 하겠다.
  사전적 의미에서 삼초의 뜻을 살펴보면 첫째, 삼초(三焦)는 상초(上焦), 중초(中焦), 하초(下焦)를 아우르는 말로 상초는 심장과 폐(肺), 중초는 비장과 위장, 간(肝), 하초는 신장, 대장, 소장, 방광 등의 내장을 포괄하는 것이다. 둘째, 삼초(三招)는 부를 초(招)로서 민속농악 굿판에서 나발수가 부는 나발소리를 의미한다. 일례로 호남좌도농악의 대표적 풍물굿인 임실필봉농악에서 나발수가 1초를 울리면 여러 곳에 흩어져 있던 치배01들에게 준비하라는 뜻이고, 2초를 울리면 모두 모여 떠날 채비를 하라는 것이며, 3초를 울리면 떠남을 의미한다. 여기서 1초, 2초, 3초는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부는 것을 뜻한다.02 셋째, 삼초(三哨)는 망볼 초(哨)로서 군사편제 단위인 초(哨)를 말하는데, 대개 100인을 단위로 하여 구성하는 것이다. 또는 이러한 초를 이끈 종9품관인 초관(哨官)을 뜻하기도 한다.03
 『전경』의 삼초는 한자가 표기되지 않아서 사전적인 의미만으로 정확한 뜻을 알기 어렵지만 각 초에 나타난 역사적 사실들을 살펴봄으로써 그 의미를 유추해 볼 수 있다. 먼저 일초가 되는 갑오(1894)년은 전봉준(全琫準, 1855∼1895)에 의해 갑오동학농민운동(甲午東學農民運動)이 일어난 해이다. 동학농민운동은 그 당시 주변 강대국인 청국과 일본을 조선의 입장에서는 자기 집 안방으로 끌어들이는 결과를 낳았다. 이후 청국과 일본 사이에 청일전쟁이 일어나고 이 전쟁에서 이긴 일본은 동양 패권을 청국으로부터 넘겨 받게 된다.
  그다음 이초가 되는 해가 갑진(1904)년이다. 갑오동학농민운동 이후 조선은 일본과 러시아의 세력이 한반도 안에서 각축전을 벌이는 위기에 처해 있었다. 당시 일본에 체류 중이던 손병희는 러일전쟁이 일어날 것을 예감하고 동학의 조직을 동원하여 먼저 정부를 개혁하는 동시에 개화혁신운동을 일으켜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1904년 2월에 러일전쟁이 발발하자 손병희는 진보회(進步會)를 조직하여 황실을 존중하고 정부를 개선, 군정 및 재정을 정리하며 백성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한다는 내용의 강령을 발표하게 된다. 아울러 종래의 산발적인 모임을 지양하고 백만 도인이 8월 30일, 일시에 개회(開會) 궐기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진보회를 책임지던 이용구는 친일단체인 일진회(一進會)의 유혹에 넘어가 진보회를 일진회로 둔갑시켜버렸다. 결국 갑진년의 이 개화혁신운동은 이용구의 배신으로 좌절되었으나 우리나라의 근대사에 있어서 놀라운 민권의 신장과 문화 혁명의 개혁 의지를 보여준 사건이라 하겠다.04 상제님께서 조선지말에 이란(吏亂)이 있으리라 하신 그 ‘이란’은 손병희가 박절하게 성돌 밑에서 턱을 괴고 주도하다 실패한 갑진개화혁신운동을 말한다.05
 
 

  이처럼 일초와 이초에는 각각 국내외적으로 큰 사건들이 일어났음을 알 수 있다. 일초에는 국내적으로 동학운동과 국외적으로 청일전쟁, 이초에는 갑진개혁혁신운동과 러일전쟁이 발발하였다. 국내적으로는 천도교(동학)와 관련된 일이고 국외적으로는 전쟁이 일어났으며 그 전쟁은 판세가 커지는 경향이 있었다. 그렇다면 삼초도 국내외적으로 어떤 사건들과 관련되어 있음을 유추해 볼 수 있다. 갑진년 이후 국내외적으로 일어난 일들을 살펴보면 갑인년(甲寅年, 1914)을 들 수 있겠다. 왜냐하면 이해에 1차세계대전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갑인(1914)년에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천도교 교단에선 ‘천도구국단(天道救國團)’이란 비밀결사를 조직한다. 이 단체의 본부는 보성사(普成社)에 두었으며, 손병희((孫秉熙, 1861~1922)를 명예총재로 추대하였다. 
  손병희는 천도구국단의 첫 사업으로 세계대전에서 일본의 승패 여부를 알아보던 중 일본이 패전할 것이라는 보고를 받는다. 이에 손병희는 천도구국단이 독립국가 건설의 수임기구로서 준비할 것을 단장인 이종일(李鍾一, 1858~1925)에게 지시하였다. 천도구국단의 핵심인물이었던 이종일은 민중운동의 일환으로 1894년의 갑오동학농민운동과 1904년의 갑진신생활개혁운동의 재현을 목표로 하여 갑오(甲午), 갑진(甲辰), 갑인(甲寅, 1914)을 잇는 삼갑운동(三甲運動)을 추진하였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천도구국단이 천도교도를 중심으로 한 비밀결사로서 이들의 활동이 31운동의 시발점이 되었다는 것이다.06
  삼초를 맡은 손병희는 천도교 3대 교주로서 31운동 민족대표 33인 중의 한 사람이다. 그는 31운동을 이끈 중심인물로 천도교 교단 내부의 조직과 도의 사업에서 매우 큰 업적을 남겼을 뿐만 아니라 국가적으로는 정치적 재능과 행정적 능력을 지닌 지도자였으며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민족주의자의 선봉장이었다.07 1919년에 일어난 31운동의 상징인 「독립선언서」는 손병희 등이 수립한 지침, 즉 동양평화를 위하여 조선이 독립할 것과 감정에 흐르지 말고 온건한 표현을 하라는 취지에 따라 작성된 것이다.08 이 「독립선언서」에 그가 제일 먼저 서명한 사실은 31운동의 추진과정에서 그의 위상을 잘 보여주고 있다.09
  상제님께서는 손병희가 삼초를 맡았다고 하시면서 그의 만사(輓詞)를 지어주셨다. 그 만사에 “선생이 큰 날갯짓을 하여 새롭게 하였다(先生大羽振一新)”10라고 하셨듯이 31운동은 세계혁명운동사에 새로운 기원을 열었다. 민중들이 무력이 아닌 비폭력으로 독립운동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세계에 보여준 것이다. 이렇듯 31운동은 피지배에 놓인 약소국들에게 용기를 주어 이후 중국의 54운동, 인도와 이집트, 인도차이나, 필리핀의 독립운동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평화적인 민족사회운동의 전형으로서 31운동은 1919년 4월 5일부터 시작된 인도 간디의 대영 비폭력 무저항 독립운동과 1960년대 미국의 마틴 루터 킹 목사(1929~1968)의 민권운동 등에서도 그 영향력이 다시 한 번 확인되었다. 이 31운동은 인류평화의 새로운 세계상을 그리며 나아간 세계사적 사건으로 평가되고 있다.11 이처럼 삼초는 1914년 천도교의 비밀결사조직인 천도구국단의 활동부터 이것이 모태가 되어 일어난 1919년의 거국적 독립운동까지의 일을 손병희가 맡은 것이다.
  그렇다면 삼초와 대인의 행차가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우리나라의 대표적 마을굿인 ‘호남 좌도 필봉농악’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필봉농악은 1988년에 ‘중요무형문화재 제11-마호’로 지정되었다. 필봉농악의 전승 중심지가 전북 임실12로서 필봉 풍물굿이 성립한 시기는 약 300년 전으로 추정된다.13 필봉농악의 종류에 ‘걸궁굿’14이 있다. 걸궁굿은 다른 마을에 가서 굿을 치기 전에 걸궁패와 마을 상호 간에 삼초로 응답하며 마을에 들어가기 위해 행하는 일종의 의식과 같은 것이다. 걸궁굿에서 걸궁패의 나발수는 굿의 시작과 끝을 알리고, 걸궁굿을 나갔을 때는 걸궁패가 도착했음을 마을에 통고하는 역할을 한다. 나발수가 먼저 나발로 일초를 불면 마을에서 일초로 화답하고, 이쪽에서 이초하면 역시 마을에서도 이초로, 걸궁패가 삼초하면 마을에서 삼초로 응답한다. 만일 걸궁패가 삼초하였는데 마을에서 응답 소리가 들려오지 않으면 이는 걸궁패가 마을에 들어오기를 원치 않는다는 뜻이다.15
  이러한 내용에 비추어 보았을 때 상제님께서 말씀하신 삼초에서 ‘초’란 나발을 부는 ‘초(招)’의 의미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즉 삼초는 대인이 길을 나서서 행차하심을 알리는 소리이다. 그렇다면 삼초의 시기는 손병희가 맡은 1914년~1919년을 기준으로 상정해 볼 수 있다. 따라서 1914년, 혹은 1919년 이후에 대인이 나온다고 봐야 할 것이다. 행차(行次)란 ‘웃어른이 차리고 나서서 길을 감, 또는 그때 이루는 대열’이라는 뜻이다. 이러한 사전적 뜻에서 살펴본다면 대인의 행차는 정사(1917)년에 도주님께서 만주 봉천에서 9년 만에 본국으로 환어하심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 손병희가 삼초를 처음 맡은 1914년 이후인 1917년에 도주님께서 만주 봉천에서 본국으로 돌아오셨기 때문이다.
  삼초 끝에 나오는 대인은 종통과 관련이 있다. 그렇기에 상제님께서는 뒤를 이을 대인을 밝히고자 하셨다고 생각한다. 도주님께서 기유(1909)년 4월에 만주 봉천으로 망명하시어 구국운동에 활약하시다가 도력으로 구국제세할 뜻을 정하시고 입산공부를 하셨다. 입산공부를 하신 지 9년이 되는 정사(1917)년 2월 10일에 도주님께서는 상제님의 대순진리에 감오득도하시고 종통계승의 계시를 받으셨다. 그리고 이해 4월에 상제님의 계시에 따라 망명 9년 만에 귀국하시게 된다.16
  19세기 말 어느 외국인이 저술한 중국여행기에서 대인이 자신의 관아를 떠나거나 방문할 때 세 발의 대포가 터지는 의식이 반복된다고 하였다.17 일초가 되는 갑오(1894)년에 동학혁명과 청일전쟁, 이초가 되는 갑진(1904)년에 갑진개화혁신운동과 러일전쟁이 일어났다. 삼초가 되는 갑인(1914)년에는 손병희가 명예총재를 맡았고 31운동의 모태가 되었던 천도구국단의 삼갑운동과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다. 마치 걸궁패의 대포수와 마을 사이에 세 번의 나발 소리로 응답하는 형세와 비슷하다. 공교롭게도 각 초에 전쟁이 발발하였다. 무릇 전쟁 시에는 총소리, 대포소리가 나게 마련이다. 총소리, 대포소리가 곧  나발소리이다. 이처럼 삼초를 맡은 손병희가 나발을 불어 앞으로 대인이 행차하심을 천지에 알렸던 것이다. 그 나발 소리가 세 번 울렸으니 삼초가 되는 것이다. 세 번째 나발 소리가 갑인(1914)년에 울리고 3년 후인 정사(1917)년에 도주님께서 귀국하시게 되었던 것이다. 아울러 이해는 도주님으로부터 유명(遺命)으로 종통(宗統)을 계승하신 도전님께서 탄강하신 해이기도 하다.
 
 

01 농악대의 모든 구성원.
02 임실필봉농악회 홈페이지(http://pilbong.co.kr/pilbong/fixup.php) 참조.
03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22』,
04 천도교 홈페이지(http://www.chondogyo.or.kr/) 교리교사 참조.
05 《대순회보》 74호, 「조선지말(朝鮮之末)에 손병희가 꾸민 난리」, pp.52-55 참조.
06 박걸순, 「옥파(沃坡) 이종일(李鍾一)의 사상(思想)과 민족운동(民族運動)」,『한국독립운동사연구 9(1995.12)』,  pp.57-59.
07 《대순회보》 58호, 「義菴(의암) 손병희」, pp.14-15 참조.
08 같은 논문, p.61.
09 「충북 독립운동가 열전 - 손병희」,《충북일보》(2015. 3. 1.)
10 예시 59절 참조.
11 국사편찬위원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한국사 47)』 (서울: 탐구당문화사, 2001), p.411.
12 필봉농악의 중심지가 전북 임실이라는 사실에서 호남으로 오신 상제님께서 임실지역의 전통농악을 아셨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대순회보》 71호, 「“전북 칠읍”을 찾아서」, pp.28-29 참조.
13 양진성, 『임실의 민속문화(1.풍물굿편)』 (서울: 신아출판사, 2005), pp.14-23 참조.
14 ‘걸군굿’이라고도 한다. 공사 2장 3절 참조.
15 같은 책, p.39.
16 『대순진리회요람』, pp.11-12 참조.
17 이사벨라 버드 비숍, 『양자강을 가로질러 중국을 보다』, 김태성, 박종숙 옮김 (경기: 효형출판, 2005), p.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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