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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47년(2017)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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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탑 : 말과 행동

말과 행동
 
 
교무부
 
 “말은 공명정대(公明正大)하게 하여야 한다.
일거일동을 도리(道理)에 합당케 하여야 한다.”
( 『대순지침』, pp.46~47.)
 
 
  오늘 하루 우리의 삶은 ‘어떻게 말하고 행동했는가’의 문제로 환원할 수 있다. 눈길을 종일 걷다가 뒤돌아보면 새하얀 눈 위로 자신이 걸어온 길을 따라 이어진 발자국을 보게 된다. 이처럼 인간의 일상이란 형체가 없는 시간과 공간 위에 말과 행동이란 발자국을 남기는 것과 같다. 하루하루가 이어진 우리 인생이란 결국 자신의 말과 행동의 축적인 것이다. 이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가! 이 말과 행동에 대해 상제님께서는 “말은 마음의 외침이고 행실은 마음의 자취로다”01라고 말씀하셨다. 말과 행동은 우리 마음이 표출된 것이며, 인간의 삶은 결국 우리의 마음으로 환원됨을 알 수 있다. 내 마음이 말과 행동을 통해 나의 인생을 만드는 것이다.
  언어는 인류의 가장 위대한 창작물로서 인간은 언어를 통해 지식을 습득하고 타인과 소통하며 문명을 일구어 나간다. 사실 우리 삶의 원천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개인적인 차원에서 언어생활은 한 사람의 도덕적 인격성을 가늠하는 잣대로서 역할을 한다. 다시 말해, 그 사람의 말에 대해 구체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어떤 증거나 경험, 곧 신험성(信驗性)이 있느냐의 여부는 그 인격을 성립시키는 근본이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말은 항상 믿음성 있고 진실하게 해야 한다. 이것을 ‘신실(信實)하다’라고 말한다. 사람이 자신의 말을 신실하게 한다는 것은 반드시 실천될 수 있는 사실만을 말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자신의 신험성을 확보할 수 있다.
  이 신험성이 없는 사람을 우리는 믿을 수 없는 인간이라 평가한다. 곧, 그 말의 실천 여부를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다. 비록 그 사람의 재능이 출중하다 할지라도 인격성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게 되며 사회적 존재로서 좋은 대우를 받지 못하게 된다. 그러므로 『중용』에서 교훈한 것처럼 “말은 행동을 돌아보아야 하며, 행동은 또한 말을 돌아보아야 한다.”02 말은 반드시 그 실천 가능성을 생각하며 해야 하고, 행동은 자신이 한 말을 생각하여 그 말이 실현되도록 하여야 한다는 의미다. 이와 같이 말과 행동은 서로를 규제하기 때문에 삼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 삼감을 통한 “언(言)과 행(行)의 균형이야말로 인간의 행복을 보장하는 동시에 영원한 윤리의 법칙이라고 말할 수 있다.”03
  공자는 일찍이 “군자는 말은 어눌하게 하고, 행동은 민첩하게 하고자 노력한다”04라고 하였다. ‘어눌하다(訥)’는 것은 ‘느리고 둔하다’는 뜻이다. 말은 삼가야 할 대상이기 때문에 느릴 수밖에 없다. 또한, 있는 사실을 그대로 신실하게 말해야 하기 때문에 일체의 가식이 없어 둔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행동은 반드시 민첩하게 해야만 한다. 자신이 한 말을 신속하게 행동으로 옮겨 스스로 책임을 다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신험성 있는 인간이 되는 것이다. 공자가 생각하는 군자는 이것을 구현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이다.
  대순진리회 도인인 우리는 도통군자를 목적으로 수도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말하고 행동해야 하는가? 『대순진리회요람』에서는 수도의 삼요체(三要諦) 중 하나인 ‘성(誠)’에 대한 설명에서 “도가 곧 나요, 내가 곧 도라는 경지에서 심령(心靈)을 통일하여 만화도제(萬化度濟)에 이바지할지니…”05라고 하여 ‘도가 곧 나요, 내가 곧 도라는 경지(道卽我 我卽道)’를 성의 진정한 전제조건으로 명시하고 있다. 이 경지는 내가 진리와 일체가 되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내 마음이 진리와 하나가 되어 말과 행동 하나하나가 진리에서 벗어남이 없이 그 진리를 완전하게 구현하고 있다는 의미다.
  우리에게 진리는 상제님께서 펼치신 대순진리이며, 이것은 상제님·도주님·도전님의 가르침을 통해 드러난다. 그러므로 도가 곧 나요, 내가 곧 도라는 경지는 나의 언행이 비록 부지불식간에 이루어지더라도 그것이 대순진리에 한 치도 어긋남이 없이 여합부절함을 말하는 것이다. 여기에 답이 있다. 곧, 대순진리에 부합하게 말하고 행동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상제님·도주님·도전님의 말씀을 항상 마음에 새겨 말과 행동이 일치하도록 생활화하며, 마음이 무욕청정(無慾淸淨)이 되도록 부단한 수도의 과정을 통해 이룰 수 있는 결과다. 이러한 경지에서 하는 말은 공명정대할 수밖에 없으며, 행하는 일거일동은 도리에 합당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결국 도인으로서 일생을 산다는 것은 자신의 말과 행동이 대순진리에서 벗어남이 없도록 각고의 노력을 다함이 아니겠는가?
 
 
 

01 교법 1장 11절.
02 『중용』, 13장. “言顧行, 行顧言.”
03 김용옥, 『중용한글역주』 (서울: 통나무, 2011), p.375.
04 『논어』, 4장. “君子欲訥於言, 而敏於行.”
05 『대순진리회요람』, p.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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