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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48년(2018)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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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누고 싶은 이야기 : 인중수도(人中修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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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중수도(人中修道)
 
 
구의3 방면 교감 곽춘근
 
1.
“곽외수요! 우리 도의 특징이 뭐라고 생각해요?”
“잘 모르겠습니다.”
“인중수도예요. 사람들 사이에서 수도하는 것이지요. 산에 들어가서 혼자 수도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과 더불어 살면서 그 속에서 수도하는 것입니다. 포덕은 우리가 수도하는 방법입니다. 그래서 포덕 사업에 대한 열정이 내 수도에 대한 열정이지요.”
 
  가끔 등산할 때면, 수도를 산에 오르는 과정으로 비유했던 교화가 생각나곤 한다. 산 입구에 세워진 안내판에는 여러 갈래의 등산로가 보이고, 산에 오르면 각자 다른 모습의 등산객들이 산을 오른다. 선글라스를 낀 사람, 모자를 쓴 사람, 빈손으로 오르는 사람, 배낭을 멘 사람, 안 멘 사람 … 모두 정상으로 가는 길 위에 있지만 각자 다른 모습이다. 서로 다른 인생의 선물을 가지고 수도하는 우리처럼.
  입도식은 ‘인중수도’의 등산로에 발을 딛는 의례였다. 포덕을 열심히 하면 수도가 잘 된다는 ‘일석이조’의 방법을 들으면서, ‘상제님께서는 정말 쉽게 수도하도록 길을 열어놓으셨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빨리 포덕을 하고 싶었다. 포덕하고 교화하고 선무, 선사, 정무, 교감으로 임명을 모시며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그런데 이런 시간을 보내면서도 마음속에는 마치 상처 주변의 멍처럼 검푸른 의문이 항상 남아 있었다. ‘포덕하면서 내 마음은 얼마나 닦인 것일까? 내 마음은 얼마나 맑고 깨끗해진 것일까? 이것을 알 수 있는 어떤 기준이 있을까?’
  사실 이 멍에는 해결할 수 없는 질문이며 신명들만이 알 수 있는 영역이라 여겨졌다. 그런데 의문의 잔상이 남아있었던 것일까? 『대순지침』을 읽다가 새롭게 마음을 울리는 구절이 보였다.
 
수도는 인륜(人倫)을 바로 행하고 도덕을 밝혀 나가는 일인데…01
포덕은 인도(人道)를 선도하여 윤리도덕의 상도(常道)를 바로 이룩하는 것이다.02
 
  왜 이 구절이 눈에 들어왔을까? 이 구절을 곰곰이 생각하면서 한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다. ‘도덕이 무너진 세상을 바로 세우기 위해 상제님께서 오셨다고 교화를 수도 없이 했지만, 정작 나 자신은 이를 깨닫지 못했었구나!’ 그리고 ‘너무 폭을 좁게 포덕을 이해하고 있었구나!’ 상제님께서 윤리도덕을 바로잡으려고 강세하셨던 큰 뜻이 포덕을 통해서 이루어져야 함을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포덕을 단지 상제님의 진리를 전해주고 수도의 길에 참여하도록 이끌어주는 것으로만 이해했을 뿐, 스스로 인륜을 바로 행하고 도덕을 밝히는 것이 도인의 본분임을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포덕을 통해서 인도를 선도하는 것이 도인이며, 윤리도덕의 상도를 바로 세우는 것도 도인인데 …. 어리석음의 결과였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는 홀로 인도를 선도할 수도, 윤리도덕을 이룩할 수도 없다. 이 일을 세상 속에서 펼쳐나가는 것이 도인의 본분이며, 이것이 수도와 포덕인 것이다. 그래서 ‘인중수도’일 수밖에 없다. 혼자 산에서 도를 닦으며 인륜을 바로 세우는 방법이 있을 수 있을까? 사람들 사이에서 포덕을 하면서 자신의 천성을 회복해 나가는 수도 과정. 이것이 도인의 참모습이며 ‘인중수도’였던 것이다.
 
2.
“곽외수요! 우리 도는 대나무와 같아요. 대나무는 한 마디가 자라고 다음 마디가 자랄 때 마디 사이에 단단한 이음새가 만들어지고 다시 쑥 자랍니다. 우리의 수도 과정도 대나무와 비슷해요.”
 
  조선 시대 선비들은 매화, 난초, 국화와 대나무를 군자의 상징으로 삼았다. 특히 대나무는 역경에 휘어질지언정 꺾이지 않는 군자의 상징이었다. 그 속이 비어있어 허심(虛心)하고, 마디는 굳건하여 절개가 있고, 사시사철 푸르러서 청렴하다 여겼다. 특히 대나무 마디의 굳건한 이음새는 역경을 이겨낸 징표이다. 애벌레가 탈각하여 나비가 되는 것도 그 의미가 비슷하다. 역경 속에서 경계를 무너뜨려 머물렀던 단계를 벗어난 증거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 수도를 대나무에 빗댄 표현은 참 좋은 비유 같다.
 
 

  대나무의 이음새처럼 우리도 수도 과정에서 각자 단단한 매듭을 만들며 정진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매듭은 도인들마다 모두 다르다. 어떤 사람은 성격과 기질을 바꾼 것을, 어떤 사람은 역경을 이겨내고 얻은 믿음을, 어떤 사람은 포덕 사업의 결과와 깨달음을, 어떤 사람은 어렵게 임명을 모신 것을, 또 어떤 사람은 가화가 되어 화목한 가정을 이룬 것을 자신의 매듭이라고 여길 수도 있다. 이렇게 우리는 수도 과정에서 매듭을 짓고 성장하며 나아간다.
  그런데 이 매듭이 ‘수도 과정에서 이루어진다’는 말을 좀 더 자세히 볼 필요가 있다. 앞에서 인용한 『대순지침』의 ‘인도를 선도하고 윤리도덕의 상도를 세운다’는 의미는 매우 실천적인 활동으로 도인들의 몫이다. 이 말은 도인들 각각은 도덕의 주체로 바로 서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도인은 스스로 도덕을 바로 세울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하며, 도덕으로 수도의 마디를 단단히 매듭지어야 한다는 뜻도 된다. 그리고 인도를 선도하고 도덕을 이룩하는 도인들의 활동이 포덕인 것이다. 이렇게 수도와 포덕을 하면서 우리들이 이어나가는 단단한 매듭은 도덕이 그 핵심이고 원동력이 된다. 마치 등산객들이 정상을 향해 올라가면서 등산을 즐기듯이, 도인들은 도덕을 세우고 포덕을 하면서 수도를 즐기는 것이다.
  도인들이 도덕을 갖춘다는 말은 어쩌면 좀 막연해 보인다. 또 도인들은 각자가 살아가는 인생과 타고난 기질, 환경이 달라서, 도덕을 쌓는 수도 과정을 함께 가는 것이 무리인 듯도 하다. 하지만 이런 걱정은 기우일 뿐이다. 신기하게도 도인들의 이 모든 다양함은 해원상생으로 수렴된다. 모든 사람을 존경하고 남을 잘되게 하며, 척을 풀어 상생을 이룬다는 해원상생의 진리는, 우리가 품고 생활화해야 할 도덕이다. 모든 도인들이 각자 다른 수도의 길을 가고 있지만, 해원상생의 진리를 실천하는 수도와 포덕의 길 위에서는 모두 하나가 된다. 그리고 이 길을 걸으며 스스로 도덕이 쌓이며 변해가는 자신의 모습을 하나씩 하나씩 볼 수 있다.
 
 
3.
  “너무 오랜만이다! 잘 지냈어? 도 닦으러 들어가서 마음은 많이 닦았냐?” 오랜만에 친구가 이렇게 물었을 때, “응, 많이 닦고 있어”라고 말했지만 대답에 힘이 없었다. 포덕을 많이 하고 교화를 많이 했느냐를 묻는 게 아니라, 마음을 얼마만큼 깨끗이 닦았느냐고 묻는 말로 들렸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솔직히 마음이 얼마나 닦였는지 알 수가 없어서 자신 있는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도인이라는 자부심이 부족한 것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아마도 이런 질문에 자신 있게 답하는 도인들이 있다면, 그 도인들은 나름의 기준과 확신이 있을 것이다. 처음에는 그 원인이 ‘도인으로서의 자부심이 부족해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경우는 모르겠지만 내게는 그것이 원인이 아닌 것 같았다.
  돌아가신 어머니의 모습을 회상하면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어머니는 타종교를 믿기 전과 후의 모습이 전혀 다르셨다. 급하신 성격도 차분해지고, 다른 사람 험담하는 것도 사라지고, 욱해서 화를 내는 것도 없어지셨다. 그리고 한문체가 가득한 월보(우리의 회보 같은 책)를 읽기 어려워 내게 읽어 달라고 했지만, 포교는 잘하셨다. 그 종교의 교리를 사람들에게 설명은 못하시지만, ‘하면 좋다’고 친구분들께 권하며 전도하셨다. 어머니의 변화된 모습이 포교를 이끌어낸 힘이었던 것이다.
  ‘나는 얼마나 인도(人道)를 선도하며 윤리도덕을 세우려고 노력하였던가? 그리고 수도를 한 이후 얼마나 변화했을까?’ 도인들마다 생각이 다르겠지만, ‘마음이 얼마나 닦였는지 알 수 있는 기준’은 아마도 ‘스스로의 변화된 모습’에서 찾아야 할 듯하다. 마음이 닦인 정도는 신명만이 정확히 알고 계실 것이다. 하지만 우리 인간은 스스로도 얼마나 닦였는지 측정할 수가 없다. 다만 그 방법을 간접적으로나마 찾는다면, 진실한 마음이 드러나는 행동을 통해서일 것이다. 스스로가 얼마나 닦였는지 궁금하다면, ‘해원상생을 실천하고 있는 자신의 변화된 모습’을 보고 어느 정도 알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이렇게 변화된 자신의 모습은, 내 주변의 환경을 변화시키고 나아가 ‘포덕을 향한 자신감’으로 드러나게 될 것이다.
 
 
  ‘인중수도’는 도의 체계 질서를 비롯하여 우리의 생활 전체에 걸쳐있다. 나와 남으로 이어져 있는 모든 곳은 ‘인중수도’의 공간이 된다. 그래서 ‘훈회와 수칙’을 지키며 생활하는 우리의 해원상생의 실천은, 곧 ‘인중수도’를 통해 이루어진다.
  “나는 지금까지 수도를 하면서 몇 개의 마디를 지었을까? 세 마디? 네 마디? 그리고 해원상생의 실천을 향해 앞으로 정진해 나가고 있는가?” 아마도 이에 대한 답은 도인들마다 모두 다를 것이다. 마디가 적은 사람, 많은 사람. 하지만 이 마디는 스스로 도덕을 굳건히 하고 해원상생의 대도를 실천할수록 대나무처럼 점점 늘어날 것 같다. 그리고 이 마디만큼 해원상생으로 굳게 뭉쳐진 도인들이 모이고 모여, 세상 속에서 상제님의 진리를 펼치고 도덕의 기둥을 세워나가게 될 것이다.
 
“해원상생 대도의 참뜻을 전하는 것이 포덕이며, 포덕천하(布德天下)가 되어야 광제창생이 되는 것이다.”03

 
 
 
 

01 『대순지침』, p.37.
02 『대순지침』, p.19.
03 『대순지침』, p.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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