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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48년(2018)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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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칼럼 : 뜸의 미학

뜸의 미학
 
 

연구위원 류병무

 
  여주도장에 들어오기 위해 고속터미널에서 첫 버스를 타는 경우가 종종 있다. 새벽 5시 30분 서울, 첫 지하철을 타지만 자리를 구경하기조차 쉽지 않을 만큼 사람들이 붐빈다. 지하철을 내릴 때면 사람들은 경주하듯 달리기 시작한다. 몸을 가누기 힘든 어르신조차 예외는 아니다. 이제 우리의 일상에서 이러한 풍습은 당연하게 여겨지는 문화인지도 모른다. 우리의 ‘빨리빨리’는 이미 대표적인 한국문화로 자리 잡았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늘 무엇엔가 쫓기듯 산다. 나중의 여유를 위해 열심히 달려왔지만, 여전히 그리고 아직도 우리는 바쁘다.
  독일의 사회학자인 하르트무트 로지(Hartmut Rosa)는 ‘시간의 사회학’을 주창하였다. 그는 가속화가 근대성의 주된 특징이라고 보아, 기술적 가속화, 사회변화의 가속화, 생활 속도의 가속화를 말하고 있다. 이론적으로 보면 기술적 가속화는 우리에게 더 많은 자유 시간을 보장할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기술의 가속화가 오히려 자유 시간을 빼앗아 가는 ‘세탁기의 패러독스’를 불러온다고 한다. 즉 세탁기의 등장으로 빨래를 위해 투자하는 시간은 줄었지만, 옛날보다 더 자주 빨래를 함으로써 그것에 투자되는 시간의 총량은 증가하였다는 것이다. 근대화가 진행될수록 기술의 가속화는 더 빠르게 진행되며, 생활 속도도 점점 가속화된다고 한다. 어쩌면 빨리빨리는 우리나라가 산업화 과정에서 갖게 된 치열한 근대화의 산물인지도 모른다.
  치열하게 달려온 나의 수도 모습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도의 사업을 위해 한 달 한 달을 숨 가쁘게 달려온 여정이었다. 이러한 수도 과정에서 잠시 뒤를 돌아보게 한 계기는 필자가 도장에서 치성떡을 만들 때의 경험이다. 떡을 만들 때 중요한 것은 증기의 양을 조절하는 일이다. 증기를 통해 떡을 찌다 보니, 그 증기의 양에 따라 떡이 설익기도 하고, 잘 익기도 한다. 그렇다고 증기를 너무 강하게 하면 오히려 떡이 깨지고 한쪽으로 치우쳐 익게 되므로 적절한 세기의 증기 조절이 요구된다. 일정한 시간이 지나 떡이 익게 되면 마지막 중요 과정이 남게 되는데 이것은 바로 뜸을 들이는 일이다. ‘뜸’이란 음식을 찌거나 삶아 익힐 때, 흠씬 열을 가한 뒤 한동안 뚜껑을 열지 않고 그대로 두는 것을 말한다.
  흔히 ‘뜸을 들인다’는 말은 일이나 말을 할 때, 쉬거나 여유를 갖기 위해 서둘지 않고 한동안 가만히 있는 경우를 말한다. 요즘은 일을 신속하게 처리하지 않고 있는 답답한 경우를 지칭하기도 한다. 어쩌면 빨리빨리 문화에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다. 하지만 뜸의 과정이 생략되면 떡은 속까지 완전히 익지 않아 맛이 덜하게 된다. 따라서 뜸은 떡을 더욱 맛있게 만드는 내면화의 과정이다. 떡을 만들 때만이 아니다. 밥을 지을 때도 마지막의 과정은 뜸이 차지한다. 바쁨 뒤에 잠시 멈추는 과정, 이것이 선조들이 남긴 뜸의 문화이다. 물론 아직도 우리 문화에 남아 있는 뜸 문화의 자취는 다양하다. 발효되는 된장, 세월로 숙성되는 간장, 그 밖에 많은 발효 음식들은 이러한 뜸 문화의 산물이다. 바쁨을 역행하는 여유로 오히려 자신을 내면화하며 완성되는 것이다.
  득음(得音)하는 소리의 과정도 내면화로 보면 비슷하다. 소리꾼은 득음을 위해 세찬 폭포가 내리찧어 바위를 울리는 곳으로 가서 노래한다. 이는 목소리가 소리의 발산을 통하여 폭포 소리를 뚫고 나올 때까지 계속된다. 이것이 끝나면 다음은 산꼭대기에 올라 아득한 허공을 향하여 노래하기 시작한다. 폭포를 뚫는 발산만으로는 소리가 갈라지므로 소리를 모으는 과정이 요구되는 것이다. 전자가 소리를 외부로 발산하는 과정이라면 후자는 소리를 내면으로 모으는 과정이다.
  하루의 뒤에는 반드시 밤이 온다. 밤이 되면 낮에 활동하던 만물이 쉼을 통하여 자신을 돌아보고 재충전하게 된다. 수도에서도 일상 자신을 반성하는 시간, 이것이 하루의 끝에 오는 뜸이다. ‘빨리빨리’가 양적 성장이라면 ‘뜸’은 음적 성장이다. 바쁘게 달려온 일상 뒤에 잠시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의 여유를 가져보자. “미네르바의 부엉이(지혜의 상징)는 황혼이 되어서야 날아오른다”는 헤겔의 말은 세상사의 복잡한 변화가 가라앉은 시점에서야 그 세계를 냉정히 바라볼 수 있다는 비유이다. 쉼이 없이 달리는 현대인에게 우리 선조들의 뜸 문화는 중요한 지혜를 준다. 잠시 멈추어 자신의 여정을 돌아보는 것도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노력이다. 한국인이 가진 뜸 문화가 마지막 과정을 갈무리하듯, 뜸을 들이는 과정은 자신의 내면화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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