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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48년(2018)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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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화고 : 허영심을 경계하자

허영심을 경계하자
 
 
연구원 주현철
 
  미국의 워런 버핏(Warren Buffett)은 현재 자산 900억 달러(한화로 약 99조원)로 세계 3대 갑부의 반열에 올라 있으며, 그의 검소한 생활 또한 사람들 사이에 널리 회자(膾炙)되고 있다. 그는 아직도 2010년형 삼성전자 구형 핸드폰을 사용하고 있으며, 2006년형 차를 8년 동안 타고 다니다가 딸의 성화(成火)에 못 이겨 2014년에 차(약 5천만 원 상당)를 새로 구입했다고 한다.
  그가 세간에 더욱 관심을 끈 것은 1958년 시 외곽에 위치한 2층 집을 구입한 후 지금까지 60년째 살고 있는데, 현재 그 집값은 약 7억 원 정도로 믿기지 않을 만큼 너무나 소박하다는 것이다. 아마 이 돈으로는 서울 강남에서 아파트 전세도 구하기 힘들 것이다. 왜 고급저택으로 이사하지 않느냐는 사람들의 질문에 그는 “난 지금 집에서 행복하다. 만약 다른 곳으로 이사해서 더 행복해진다면, 벌써 이사했을 것이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마치 버핏은 사람들에게 검소하고 분수에 맞는 생활로 행복해질 것인지, 아니면 허영을 좇아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가식적인 생활로 불행해질 것인지, 양자택일하라고 종용하는 듯하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구를 가지고 있다. 그렇다고 허영에 물들어 외형적인 것에만 치중하면, 내면을 보살피지 못한다. 요즈음 자신을 과시하기 위해 명품에 매달리는 사람들이 적지 않지만, 지나친 보여주기식의 삶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인간에게는 명품보다 훨씬 더 고귀한 내면의 아름다움이 있기 때문이다. 진정한 가치를 발산하는 것은 그 값을 헤아릴 수 없지만, 마음먹기에 따라 누구나 구할 수 있다.
  허영에 가득 차 허세를 부리지 않고 진실하게 생활하는 자가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다. 상제님께서는 정미(丁未)년인 1907년 김형렬에게 “폐의다구승금갑(弊衣多垢勝金甲) 퇴옥무원사철성(頹屋無垣似鐵城)”01이라는 구절을 전해 주셨는데, 이 말은 ‘때 묻고 다 해어진 옷도 금갑옷보다 낫고, 담도 없고 허물어진 집이 철옹성과 같다’는 의미이다. 곧 비록 초라한 행색이나 보잘것없는 집에 살지만, 진리와 내실을 추구하는 것이 허영심으로 값비싼 옷을 입고 고급저택에 사는 것보다 훨씬 더 의미가 있고 행복하다는 말일 것이다. 외화내빈(外華內貧)이라는 말이 있다. 겉으로는 화려하나 속은 빈곤하고 부실하다는 뜻이다. 곧 겉모습이 보기에 화려할수록 속은 비어 있다는 뜻이다. 실로 남에게 자랑하고 보여주기를 좋아하는 사람일수록 내면을 들여다보면 속 빈 강정에 불과한 경우가 허다하다.
  소비행태뿐만 아니라, 말과 행동에서도 허영을 경계해야 한다. 상제님께서는 세상을 사는 처세에 대한 다음과 같은 한시(漢詩)를 소개해 주신 적이 있다.
 
處世柔爲貴 剛强是禍基
發言常欲訥 臨事當如癡
急地常思緩 安時不忘危
一生從此計 眞皆好男兒
02
 
  도전님께서는 이 시의 일부를 인용하시면서 그 의미를 해석해 주셨다. ‘처세유위귀(處世柔爲貴) 강강시화기(剛强是禍基)’라는 시구를 ‘처세함에 있어서 온유를 귀중히 하고, 억셈과 강함은 화(禍)의 바탕이 되니’라고 풀이하셨다.03 여기서 온유(溫柔)란 온순하고 인자하고 부드럽다는 뜻이다. 처세를 함에 있어 자신을 과시하기 위해 권위적이거나 고압적이면, 상대방으로 하여금 반발과 거부감을 일으켜 설득력을 잃기 쉽지만, 부드럽고 따뜻하면 상대방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다.
  또 ‘발언상욕눌(發言常欲訥) 임사당여치(臨事當如癡)’라는 시구를 ‘말함에 있어서 언제나 더듬거리기를 바라고, 일함에 있어서 의당히 어리석음과 같게 하라’고 풀이해 주셨다.04 일상생활에서 더듬거리는 식으로 말을 한다면 상대방은 답답함을 느끼게 될 것이고, 의사전달 또한 잘 되지 않을 것이다. 도전님께서 말을 할 때 더듬거리듯이 말하라고 하신 취지는 아마도 신중하게 천천히, 그리고 진실하게 덕(德)이 있는 말을 하라는 뜻으로 이해된다. 마찬가지로 일을 할 때 어리석음과 같게 하라고 하신 것도 일을 서툴게 처리하라는 것이 아니라, 가식이 없이 신중하고 지혜롭게 하라는 말씀인 것 같다.
  일상은 말로 시작해서 말로 끝난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말 한 마디로 천 냥 빚을 갚을 수도 있지만, 말실수로 그동안 쌓아온 신뢰를 한꺼번에 잃을 수도 있다. 신뢰란 쌓기도 어렵지만, 잃어버린 신뢰를 다시 회복하기란 더욱 더 어려우며 영원히 회복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만큼 말을 할 때는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말은 마음의 외침”05이라고 하였듯이, 말은 그 사람의 마음을 대변한다. 그런데도 말로 허세를 부림으로써 자신을 과시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을 빗대어 ‘빈 깡통이 소리만 요란하다’, ‘빈 수레가 요란하다’고 한다. 또 사자성어로 허장성세(虛張聲勢)06라고 표현하는데, ‘약하지만 강한 것처럼 가장하여 실속이나 실력은 없으면서 겉으로 큰소리치며 허세를 부린다.’, 곧 정작 아는 사람은 가만히 있으나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더 아는 체하고 떠든다는 말이다.
  허세는 허영심에서 발산하는 기세(氣勢)이기 때문에, 근원적으로 허영심을 경계해야 한다. 독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Schopenhauer)는 그의 처세술 잠언에서 허영심과 그 상대어라 할 수 있는 자긍심의 차이점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그에 의하면, 자긍심은 어떠한 점에서 자신이 압도적인 가치를 가진 것에 대해 이미 부동의 것이 되었다는 확신임에 반해서, 허영심은 이러한 확신을 타인의 마음속에 불러일으키려고 하는 소망이며, 대부분의 경우 타인의 마음속에 확신을 불러일으키면 그 결과 자기 스스로도 타인의 확신을 자신의 확신으로 삼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은밀한 기대가 수반된다는 점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자긍심은 자기 자신에 대해 내부에서 생겨나는 직접적인 평가인 데 반해서, 허영심은 이러한 평가를 외부에서, 간접적으로 얻으려고 하는 노력이다. 그렇기 때문에 허영심은 사람을 능변가로 만들지만, 자긍심은 과묵하게 만든다.
  이렇게 자긍심이 없는 사람이 자긍심이 있는 사람처럼 가장하기 위해 허영심이 발동하며, 허영심으로 인해 자신을 과시하기 위해 말을 많이 하는 달변가로 변신하는 경우도 있다. 소포클레스(Sophocles, 기원전 496~406)가 말을 많이 한다는 것과 잘한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고 했듯이, ‘말을 잘 한다’는 것과 ‘말을 많이 하는 것’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일반적으로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을 보면, 말에 두서가 없고 핵심이 없고 앞뒤 말에 모순을 드러내고 말을 포장하려 하며, 남의 말은 들으려 하지 않고 자기 말만 하는 성향이 두드러진다. 반면 말을 잘하는 사람을 보면, 말이 간단명료하면서도 논리적이고 진실함이 묻어나며, 남의 말을 주의 깊게 경청하려고 한다.
 
 

  말은 생각을 전달하는 수단으로써 상대방과 생각을 주고받는 것이다. 말을 잘하려면 먼저 상대방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아야 하기 때문에, 말은 듣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러기 위해서 상대방이 자신의 생각을 충분히 전달할 수 있도록 상대방에게 먼저 말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 상대방의 말을 잘 경청하는 자세, 이것이 말을 잘하는 선결조건이다. 곧 말을 잘 하려면, 먼저 침묵하는 법부터 배워야 한다.
  자긍심이란 자신이 매우 특별한 능력과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확신하는 것이다. 그런데 자긍심이나 이와 유사한 자부심은 자존감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지만, 겸손과 객관성이 결여되어 있으면 교만과 자만에 빠지게 하기 쉽다. 전자는 자신의 능력에 대한 믿음이 큰 것을, 후자는 자신과 관련된 것에 대한 가치를 높이 평가하는 것이다. 그래서 도전님께서는 수도를 할 때는 겸손이 결여된 일체의 마음, 즉 교만한 자긍심이나 자부심을 버려야 한다고 역설하신 것이다.07
  말과 행동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문장(文章)에 있어서도 허영을 경계해야 한다. 도주님께서는 「각도문(覺道文)」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夫聖人之經典不求文章之色彩而求其眞理 眞人之心求其實而不求外飾 求其物之事理則求其天然而不求造作也 故聖人明心達道而不求聞達書不求文章之色彩衣不求綾羅也 求於文章者聖人之心法難得 求乎外飾者聖人之眞實難得08
 
  해석하자면, 무릇 성인의 경전은 문장의 화려함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구하는 것이며, 진인(眞人)의 마음은 진실을 구하는 것이지 겉꾸밈을 구하는 것이 아니다. 사물의 사리를 구하는 것은 곧 자연 그대로의 이치를 구하는 것이지 인간이 인위적으로 조작한 것을 구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성인은 마음을 밝혀 도(道)에 통하면 되지 능숙한 글이나 문장의 색채에 집착하지 않고 의복도 비단과 같은 화려한 것을 구하지 않는다. 문장에 집착하는 자는 성인의 심법, 즉 경전의 바른 이해를 체득하기 어렵고, 겉꾸밈에 애착하는 자는 성인의 진실을 얻기가 어렵다.
  진리를 추구하고 각성하는 데 있어 가장 큰 장애물은 허영이다. 화려한 옷을 입는다고 내면까지 아름다워지는 것이 아니듯, 화려한 문장으로 채색된 서적을 읽는다고 진리를 올바로 깨달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화려함의 이면(裏面)에는 진실보다는 가식과 거짓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도전님께서 “『전경』에 ‘박람박식(博覽博識)이 두렵다’ 하셨으니 도인들은 솔선수범하여 전인교육에 힘쓰고 자녀 교육에도 충실하라”09고 하셨다. 이 말씀 속의 박람박식이란 ‘책이나 사물을 널리 보고 들어 아는 것이 많음’을 이르는 말이다. 그러므로 책을 폭넓게 많이 읽고 널리 보고 들어서 다양한 지식을 섭렵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렇다고 내용이 선정적(煽情的)이거나 부도덕하고 폭력적이어서 개인적·사회적으로 해로운 불량도서를 읽으라는 것이 아니라, 도덕적으로 바른 판단력이나 식견을 갖추는 데 도움이 되는 책을 읽으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신체적·지적·정서적 발달과 사회성의 발달 등을 균형 있게 갖추어 교양과 원만한 인격을 갖춘 전인(全人)이 되는데 필요한 책을 선택해 읽으라는 것이다.
  특히 『전경』에는 천·지·인(天地人) 삼계의 모든 진리가 담겨 있다. 그래서 도전님께서는 “대순진리는 『전경』을 근본으로 하여 참다운 도인이 되도록 교화하여야 한다”10, 그리고 “모든 도인들은 믿음이 근본이니 믿음을 바르게 하도록 항상 배우고 『전경』의 말씀을 많이 읽도록 하라”11고 적극 권장하셨던 것이다. 『전경』은 원만한 사회생활과 전인적 인격형성에 도움이 되고, 올바른 신앙인이 될 수 있는 방법과 지혜가 가득 찬 보고(寶庫)이다.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고 하였듯이, 글을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글을 쓰는 것 또한 중요하다. 글은 가식적이든 진실하든 인간에게 지대한 영향을 준다. 글이 진실하면 마음의 양식이 되지만, 가식적이면 심신을 피폐하게 만든다. 용기를 북돋워 주고 희망을 주고 행복감을 느끼게 하는 글도 있고, 타인을 현혹하여 절망에 빠뜨리고 심하면 사지(死地)로 내모는 선동적(煽動的)인 글도 있다. 일제강점기 때 친일작가들은 선동적인 글로써 우리 젊은이들이 일본군에 가담하여 전쟁터로 나가는 것을 영웅시하였다. 특히 가미카제 특공대에 지원하도록 유인함으로써 수많은 청춘을 허무하게 죽게 했고, 그 죽음을 위대하고 장렬하다고까지 미화했던 역사적 사실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이렇게 글은 사람의 운명을 좌우하는 무서운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필자와 독자는 글을 쓰고 글을 선택할 때 신중해야 한다.
  허영이란 자신의 지식이나 경제적 능력, 분수 등에 어울리지 않게 겉만 화려하게 꾸미는 것으로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타인의 호평을 얻도록 유도한다. 따라서 소비행태뿐만 아니라 언행과 문장에서도 허영은 경계해야 할 대상이다. 그렇다고 화려한 옷차림과 말과 문장을 모두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아름답고 단정하게 가꾸고 청산유수처럼 말을 하고 능수능란하게 글을 쓰면서도 분수에 맞고 가식이 없다면, 보기에 좋고 듣기에 좋고 읽기에도 좋을 것이다. 오히려 이것은 금상첨화(錦上添花)로서 마땅히 권해야 할 일일 것이다. 그러나 대개 화려함을 좇다 보면 부지불식간(不知不識間)에 가식이 내면 깊숙이 스며들어 진실을 놓치기 쉽기 때문에 허영을 경계하자는 것이다.
  내면을 갈고 닦아 인품이 출중하고 도심(道心)이 깊으면, 남에게 돋보이려 허세를 부리지 않아도 저절로 빛을 발한다. 도전님께서 “무자기(無自欺)를 근본으로 하여 허세를 버리는 것이 만복의 근원이 된다”12고 하셨듯이, 명품으로 외관을 화려하게 치장하고 진실성이 없는 화려한 말재주와 글재주로 자신을 과시하려는 것보다, 자신의 인격과 능력을 명품처럼 다듬는 것이 더욱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다.
 
 
 

01 행록 3장 48절.
02 행록 3장 49절. 그 해석은 다음과 같다: “처세함에 있어서 온유를 귀중히 하고, 억셈과 강함은 화의 바탕이 되니, 말함에 있어서 언제나 더듬거리기를 바라고, 일함에 있어서 의당히 어리석음과 같게 하라. 급한 지경을 당하면 항상 천천히 생각해 보고, 평안할 때도 위태롭던 때를 잊지 말아라. 한평생 이러한 인생의 계략을 잘 실행해 나간다면 진실로 호남아라 하리라.”
03 『대순지침』, p.28.
04 『대순지침』, p.28.
05 교법 1장 11절.
06 허장성세(虛張聲勢)를 직역하면 ‘빈 것을 넓히고 소리만 요란하다’는 의미이다.
07 “일체의 자부자찬(自負自讚)의 마음을 버리고 수도의 완성을 기하여야 한다.” (『대순지침』, p.50 참조)
08 교운 2장 33절, 「覺道文」
09 『대순지침』, p.104(“가장 두려운 것은 박람 박식(博覽博識)이니라.” 교법 2장 24절 참조).
10 『대순지침』, p.17.
11 『대순지침』, p.77.
12 『대순지침』, p.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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