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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48년(2018)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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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 대순문예 심사평 - 글로 새긴 마음

대순문예 심사평
 
글로 새긴 마음
 
 

대진고 수석교사 신유식(문학박사)

 
 
 
Ⅰ. 심사과정
  올해의 <대순문예> 심사는 공모로 들어온 작품을 대상으로 2018년 9월 1일부터 10월 2일까지 실시했다. <대순문예> 담당자가 보내온 작품은 운문과 산문을 합쳐 80여 편에 이르렀다. 이들 작품은 세 명의 심사위원이 각각 열세 작품 내외를 추려 서면으로 제출하고, 예심 장소에서 논의를 통해 최종 후보 작품을 선별했다. 문예 활동이 전반적으로 침체된 사회 분위기속에도 불구하고 이토록 성황을 이룬 것은 흥미로운 현상이다. 심사는 일 년간 축적된 <대순문예>의 결실을 일일이 확인하는 힘겹지만 보람 있는 작업이었다.
  <대순문예>는 날로 두텁고 넓게 확산되고 있음을 이번 심사에서 느꼈다. 매년 꾸준하게 공모하는 문예를 사랑하는 이들이 많아 점점 전문화되어가는 경향도 보인다. 무엇보다 다양한 문예 장르는 <대순문예>의 활성화를 입증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친숙하고 정통적인 시 형식부터 새로운 소설 형식이나 논리 정연한 중수필 등 낯설고 실험적인 장르까지 다양한 문예들로 넓은 스펙트럼을 형성하고 있다. 작품의 양적 확산이 질적 비약으로 연결되고, 나아가 종단 밖으로 문예적 관심을 촉발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아마 <대순문예>가 가지는 문예상 시상의 의의가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번 심사를 통해 대순진리회 종단 문예 수준을 대표할 만한 작품을 선별하여 널리 알리고, 함께 즐기고 나누는 기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예심 위원 세 사람이 추천한 작품들은 공교롭게 9편이 같았다. 본 심사는 추천한 작품들을 다시 한 번 꼼꼼하게 읽으면서 대상 작품을 좁혀나갔다. 자신이 선정했던 작품들을 스스로 재평가하고 문제가 되는 경우는 함께 논의했다. 다음은 각 장르에 대한 심사평이다.
 
 
Ⅱ. 운문
  ‘등짐’은 놀랍도록 새롭고 흥미롭다는 점에서 이론의 여지가 없었다. ‘등짐’에 일관되게 훑고 나가는 시어는 이중성이었다. 유쾌하고 가볍게 ‘등을 지는’ 상상과 목직한 ‘등에 지는’ 감각적 시어는 매혹으로 충만했다. 시어에서 오는 이중적 의미는 새로운 해석과 함께 성찰도 동시에 준다. 시에서 언어는 인간이 소유하는 가장 위대한 정신적 지문이다. 이 작품의 시어는 고도의 이중성에 그 의미를 둔다. 시를 읽으면서 정신을 돌아보게 한다. 정신을 다루는 인문 분야에는 문학 외에도 철학, 역사, 심리학 등이 있지만 시 만큼 구체적으로 그리고 광범위하게 개인과 사회에 작용하는 것은 없다. 이런 점에서 ‘등짐’은 흥미로운 문예성을 가진다. 이런 시어를 통한 예술성은 인류가 유지해온 여러 정신 활동 영역 중에서 가장 오랜 연원과 역사를 지니고 있다. 결국, 시를 쓰는 행위는 자기 돌아보기, 자기 깨닫기, 삶에 대한 반성적 의미화 등을 목적하는 일이다. 이런 점에서 ‘등짐’은 자기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알고 쓴 시이다. 알고 쓰는 그 자체가 이미 아름다운 시인 것이다.
  ‘숭도문을 들어서서’ 드물게 감각의 참신성과 수도에 대한 깊은 성찰을 조화시킨 작품이다. 화려한 숭도문 아래 조심스러운 마음을 끌고 서서히 걸어가는 모습이 시 속에 들어 있다. 긴 연에서는 삶의 눅눅함을 벗어나려고 하는 의지가 보이고, 행을 갈라 우뚝우뚝한 의지를 끌고 가는 기쁨 속에서 도를 실천하는 수도자의 경건한 모습을 한 줄로 담아낸 수작이다. 또한, 파격적일 수 있으나 독특하고 분명한 자기 세계를 형성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했다. 시는 이렇게 형식을 파괴해도 신선하게 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작품이다. 정형성이 아닌 파격적인 시행이 읽는 이들을 하여금 자신의 삶을 다시 돌아보게 한다.
  ‘기도’ 작품은 시 형식이 바르고 정형화 되어서 진정한 개성은 가늠하기 어렵다. 대신에 전형적인 서정시의 소재들로 차분하면서도 생동감 있는 언어와 구성진 어법으로 다루고 있다. 시를 따라 읽다보면 한편의 교화처럼 기도의 여정이 보이기도 한다. 결국 ‘숭도문을 들어서서’와 ‘기도’의 두 작품은 환상을 구상화하는 능력이 뛰어났다. 삶에 육박하는 투시적 상상과 선명하고 활달한 언어가 인상적이다. 활력과 개성이 넘치는 두 작품을 만난 것은 적지 않은 소득이다.
  ‘까치밥’이나 ‘혼불’에서는 닿을 수 없는 저 먼 곳의 이상향을 은유적으로 제시하는 고차원적인 해석까지는 요구되지 않았다. 다만 사람이 매양 ‘홍시’처럼 예쁘지는 않아서 ‘홍시’와의 비교는 억지일 수 있다. 사람이 아름다워 보일 때는 꿈을 품고 있을 때고 더 아름다워 보일 때는 꿈을 키우기 위해 땀을 흘릴 때라는 점을 시에서 분명하게 노래하고 있다. ‘별, 그 이름 선각’에서는 차분한 어조로 감사와 의지를 드러냈고, 아직도 남아 있는 ‘그리움’을 노래한 시도 참신하다. ‘벚꽃’은, 당신과의 재회의 소망을 곡진하게 드러내고 있다. ‘스르륵’이라는 제목에서 보이는 가벼움을 자위적인 시어를 통해 당신의 의지로 읽어가려는 작가의 마음도 보인다.
 이외 많은 작품이 자신의 마음으로 노래하고 있다. 모두 특색 있는 작품들이지만 상세히 논의할 여유가 없어 뒷날의 과제로 남겨둔다.
 
 
Ⅲ. 산문
  이번 산문 심사에서 가장 흥미로운 발견은 도인들의 평소 신념이다. 평소 보아온 도인의 모습과 달리 과격한 전신 스포츠 분위기와 매치 같은 열정적 이미지를 봤다. 글을 읽는 사람들은 제멋대로 만든 이미지로, 글 쓰고 있는 사람을 단정하기 쉽다. 글이 주는 환상 같은 것 때문인데 글을 쓰는 사람은 뭔가 다르다는 선입견을 강하게 갖는다. 뭐가 다를까? 일상의 활화산 같은 도에 대한 생각이다. 그래서 일상에서 길어 올린 작품들은 힘이 있다.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읽고’ 라는 작품은 일상의 한 순간, 한 장면에서도 근본적인 비판과 성찰을 끌어낸다. 말 그대로 ‘작품’으로써 독자와 소통하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심사위원들이 살핀 대부분의 작품들은 편견에 의해 왜곡되거나 피상적이고 지엽적인 논의에 마음을 빼앗긴 작품들도 있었다. 그런 면에서 산문이 가지는 충실한 전달의 기능을 잘 보여준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근육력 강화, 수도력 강화’는 자잘한 일상의 순간을 문득, 새롭게 바라보게 하고, 자동화 된 의식을 각성하게 한다. 섬세한 시선은 일상의 어떤 순간도 독특한 색채와 분위기로 채색하고 있다. 문학은 인간 문제를 다루고 탐구하고, 인생이 무엇인가를 밝혀주는 일이다. 인간의 존재를 해명하고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글 쓰는 이들은 읽는 이들에게 제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은 하나의 명백한 기능만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수많은 가능한 기능을 소유하고 있다. 그러므로 문학의 기능은 정서적 공감이나, 미적 즐거움을 줄 뿐만 아니라 도덕적, 종교적, 철학적 교훈과 어울러 인생과 인간에 대한 탐구도 병행되어야 하는 상보적 관계를 잘 보여주는 작품인 셈이다.
  ‘업장 소멸의 과학적 이해’는 추상적인 도의 기운을 과학적으로 설명하여 재미있고 유익할 뿐만 아니라 수도를 하면 나타나는 결과들을 가시적으로 전달하여 도인들이 수도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대순진리의 황금률’은 ‘남을 잘 되게 하라’를 학문적으로 접근하여, 남을 잘되게 하는 것이 나를 잘되게 한다는 상투적 내용이 아니라 논리적이고 과학적으로 증명하여 독자들의 이해도를 높였다. 이 두 작품은 논리 정연한 중수필의 성격이 강하다.
  두 작품은 기존의 문예들과 형식적 차이를 보일 뿐만 아니라, 진정한 교리의 핵심을 파악하고 그 교리의 원리를 찾아서 논리 문예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글이다. 종교적 삶과 문학을 완전히 이질적인 별개의 것으로 처리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종교적으로 해명하고 논리적으로 빠지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기존의 다른 작품에서 보이는 문학적 표현으로 곧바로 교리의 전통을 덧 씌워짐으로 해서 교리의 객관적 조건을 충실하게 바라볼 수 없다는 단점을 극복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사상으로서의 대순진리회 순결이 무엇을 의미하느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로 논의할 여지가 있을 것이다. 
  ‘영웅본색’은 분출하는 젊음의 언어로 충만한 정신세계를 노래한다. 의미를 이루기 전에 넘쳐흐르는 언어의 향연이다. 바로 ‘꿈’ 때문이다. 작품에서 ‘꿈’은 몽환적인 풍경 속에 배치되어 작위적인 출구를 마련하고 있다. 대개 그 배경에는 방향을 잃어버리거나 외로움에 침잠하는 정신의 불면이 함께 공존한다. 꿈꾸는 과정 속에서 현실의 질곡을 다시 음미하며 현실의 문제를 들추어내는 데서 ‘꿈’에 대한 지향을 놓치지 아니하려는 세계가 바로 문학의 세계로 잘 표현된 작품이다.
  ‘친절한 몽쉘수호조’는 구수한 말솜씨가 왕성하다. 날것이 주는 솔직함과 익숙함, 짧고도 풍부한 내용이 좋았다. 때로는 송곳처럼 뾰족하다가 밋밋한 부드러움으로 리듬을 타는 언어, 유연함과 날카로움의 이중주가 있는 작품이다. 사실 이 작품이 주는 매력은 소소한 현실을 놓치지 않는 시선에 있다.
 
 
Ⅳ. 맺음말
  이 글이 나오기까지 종단 교무부 연구원 선생님들, 심사에 같이 참여해 주신 대진여고 김진화 선생님, 대진고 김곤선 선생님의 협조와 조언이 있었다.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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