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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49년(2019)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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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누고 싶은 이야기 : 도를 닦으며 달라진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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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를 닦으며 달라진 마음
 
 

잠실33 방면 선무 허민경

 
 
 
  누구나 살아오면서 자신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가족 또는 선생님, 친구 등 다양할 수 있겠습니다. 저의 경우는 어머니가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치셨습니다. 제 어머니는 외할아버지를 일찍 여의시고 가정 형편 때문에 고졸로 학력을 마치셨습니다. 그로 인해 열등감도 많고 자식의 교육에 대해 관심이 많으셨습니다. 하지만, 자식들에게 관심을 둘 시간이 부족했습니다. 증조할아버지를 모시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어르신을 보살피면서 남매를 돌보며 공부방까지 운영하는 것이 힘들기에 저희 둘을 학원에 보내기 시작하셨습니다. 첫째인 오빠에게 다양한 학원에 다니게 했습니다. 초등학교 때 논술, 바둑, 속독, 바이올린 등 학원을 정말 많이 다녔습니다. 그에 비해 저는 어머니가 운영하는 공부방, 그리고 태권도만 다녔습니다. 그래서 어렸을 때 저는 어머니에게 불만이 조금 있었습니다. ‘오빠는 신기한 학원 다 보내주고, 나는 안 보내주고… 날 미워하는 게 분명해’라고 말이죠.
  제가 초등학교 1학년 때에 오빠가 교통사고를 크게 당해서, 머리뼈에 금이 갔습니다. 그 후로 어머니는 오빠에 대한 기대감을 모두 버리셨고, 저에게 모든 관심이 쏠리게 되었습니다. 저는 어머니에게 칭찬받고 싶었기에 영어학원, 학습지, 공부방 모두 악착같이 다니며, 최상위권이 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반에서 1등을 하거나 전교에서 1등을 하면, 당당하게 어머니께 자랑하며 칭찬받는 제가 너무 좋았습니다.
  하지만, 1등이 되기 위해 혈안이 되었던 저는 공부에 방해되는 것들에 대해 무관심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친구를 사귀는 것을 사치로 생각했고, 같이 놀기에 적합한 최소한의 친구를 사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진실한 친구를 둔 적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같은 동급생들은 모두 내가 제치고 올라가야 하는 존재로 인식했기에 사람을 믿지 않았습니다. 나보다 1점이라도 높은 친구들과 나를 항상 비교했고, 열등감도 많이 느꼈고, 어떻게든 이기겠다는 승부욕이 활활 타올랐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도 누구에게 흠 잡히고 싶지 않아 항상 웃고 다녔기에 선생님이나 주변 사람들에게는 좋은 인상을 주는 사람이 되었지만, 마음을 들여다보면 구겨진 휴짓조각만도 못했습니다.
  어머니의 노력 덕분에 좋은 고등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집과는 거리가 있기에 기숙사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으로 전국에서 공부 잘한다는 친구들과 경쟁을 하려니 지방에서 받은 교육으로는 턱도 없었습니다. 이미 유치원에서부터 영어학원을 다녔고 해외 유학을 몇 년이나 한데다 상당한 수준의 과외를 들어온 친구들이 수두룩했으니, 언어를 배우는 속도가 저랑 너무나도 달랐습니다. 항상 잘났던 저는 패배감에 찌들어서 수치심마저 들었습니다.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이기가 너무나도 힘들었습니다. 저는 이 한계를 마주쳐야만 했고, 핑계를 대기 위해 노력해도 안 되는 것이 있다고 생각했고, 신세를 한탄하기에 급급했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동안 패배감에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했고, 2학년이 되자 무뎌졌습니다. 그리고 처음으로 친구를 사귀었습니다. 1학년 때부터 친구였기는 했지만, 진짜 친구라고는 생각을 못 했습니다. 그저 나를 스쳐 갈 사람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이 친구는 평생 친구로 지내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친구를 대하는 것에 있어서 저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친구에게 잘해 주고 싶은 것이 너무나도 많은데 이 친구가 왜 지금 슬퍼하는지, 왜 지금 기뻐하는지 무엇을 좋아하고 무슨 행동을 싫어하는지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겠는 것입니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자, 많은 주변 친구들이 저에게 고민을 털어놔도, 저는 ‘내 상황은 아니니 모두 용납하겠다’는 심각하게 개인주의적인 태도를 보였습니다. 이 친구가 왜 나에게 이런 고민을 털어놓는 것인지 알지 못했고, 이 친구와 나는 다른데 이런 고민을 왜 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이런 과정들로 저는 더욱더 암울해졌습니다. 잘 해주고 싶은 사람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제가 한심했고, 성적도 잘 나오지 않는 저 자신이 너무나도 무능력하다고 느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번의 수능을 더 치고 나자, 저는 그 누구보다도 감정이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습니다. 좋아하는 사람을 만들려 하지도 않았고, 감정 또한 좋음, 또는 나쁨 두 가지로 최소화했습니다. 공부에 모든 것이 방해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수능 결과는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많은 실패 속에서 마음이 힘들었기에 어느 학교에 가더라도 상관이 없는 상태였고, ‘내가 이 공부를 다시 하면 사람이 아니다!’ 라고 결심을 한 상황이었습니다.
  대학교에 입학해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자 더욱더 자신에 대한 고민에 빠졌습니다. ‘나는 왜 태어났지? 무엇을 위해 태어났을까? 이렇게 무능력한 나인데 어디 쓰일 데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수시로 들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떠오르지 않아 현실 상황에 맞춰 살기로 마음먹었을 때, 고등학교 때 친했던 친구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미국에서 한국으로 왔다는 소식을 접했고, 저는 여름방학 때 같이 생활하자는 제안을 했습니다. 친구와 같이 3주 정도 지낸 어느 날 친구가
 “내가 가서 공부하는 곳이 있어. 거기서 진리에 관한 것을 공부해. 그냥 다양한 사람들이랑 모여서 공부하는 자리야.”
 이러기에
  “응, 그렇구나.”
  라고 무심하게 대답했습니다. 하지만 마음속으로 질투가 났던 것 같습니다. ‘진리를 공부한다고? 나도 배우고 싶어!’라는 감정이 솟아났습니다. 그러더니 이 친구는 저에게 하느님이 우리나라에 왔었다면 믿겠냐고 물었고 자기는 정성을 들였다고 했습니다. 친구가 그렇게 믿는 건 상관없지만 제가 나서서 무언가 행동을 하는 건 망설여졌습니다. 하지만, 진리에 관한 공부를 한다는데, 나만 모르고 있는 거면 왠지 억울했고, 저도 알고 싶었습니다.
  친구의 말을 듣고 계속 궁금증을 갖고 있던 저는 며칠 뒤 다른 분께 교화를 듣고 입도했습니다. 교화를 들으면서 제가 사는 이 세상의 진리와 우린 지금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배웠습니다. 하지만, 불신과 분노로 가득 찬 저는 교화를 들어도 겉으로는 이해하는 척했지만 받아들이기가 불가능했습니다. 그래도 앞에서 열심히 설명해 주시는 선각들의 모습을 보며, 일단 외워야겠다는 생각에 머리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선각들에게는 “믿어지지 않아요. 전 안되나 봐요.”라면서 자책하기 일쑤였습니다.
  이런 상태로 포덕사업을 하게 되었는데, 예상만큼 어렵고 힘들었습니다. 욕심만큼 뜻대로 안 되니 마음속에서 분노, 화 그리고 여러 감정이 올라왔습니다. 이런 마음들이 꽉 차고 참을 수 없게 되니까 저도 모르게 서러움에 북받쳐 펑펑 우는 날들이 많아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선각들이 감정에 휩싸여 있는 저를 달래주려 하면 ‘왜 나를 동정하는 거지? 더 기분 나빠!’ 하면서 더 있는 힘껏 울었습니다. 그리고 선각이 저에게 “인연 따라 사람을 만나는 거라 허 내수가 앞으로 변하면 돼.”라고 말씀해 주시면, ‘난 한참 멀었다는 거구나. 더 속상해…’라는 마음에 더 펑펑 울었습니다. 이 시기에 선각이 어떤 말로 달래주든지 더 울었습니다. 제가 자존감은 낮고 자존심이 강하다 보니 선각이 저를 무시하고 이해해주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감정에 더 북받쳤습니다.
  이렇게 포덕이 안되는 상황에서도 저는 나름의 욕심을 두고 있었습니다. 제일 좋아하던 『전경』의 구절은 “진심견수 복선래(眞心堅守福先來)”였습니다. 그래서 항상 포덕을 하려고 사람을 만날 때마다 ‘꼭! 포덕해야지! 진심견수 복선래라 그랬어! 꼭 포덕 한다는 마음을 잃지 않으면 포덕할 수 있을 거야!”라고 하며 희망차게 시작하지만, 시간이 지나갈수록 풀이 죽고 마음은 점점 피폐해져 가는 것 같습니다. 그 당시에는 이런 상태가 욕심임을 몰랐습니다. 심지어, 방면의 누군가가 입도식을 한다고 하면 너무 괴로웠습니다. 질투심에 휩싸여 겉으로는 아닌 척하지만, 아닌 것이 아니었습니다.
 
 

  어느 날 방면 선각들께서 저에게 “마음이 닦이면 좋은 사람과 인연이 닿는다.”와 “포덕은 입도식이 아니라, 같이 도를 닦고 도통 받을 사람은 찾는 것이다.”라고 말씀을 해 주실 때 강력하게 뒤통수를 후려 맞은 기분이었습니다. 여태껏 1호, 1호 채워나갈 욕심만 있었지, 정작 입도자의 입장은 하나도 헤아리지 않았던 무지했던 저의 모습이 너무 한심스럽게 여겨졌고, 사리사욕만을 추구했던 저의 모습에 너무 후회되고 수도생활을 해 오면서 정작 마음 닦는 공부라는 것을 듣기만 하고 실천하지 못함에 반성이 많이 되었습니다.
  도 안에서 선각을 따라 생활하다 보니, 도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 것인지 어느 정도 알게 되었고, 왜 마음 닦는 공부라고 하는 것인지, 남을 위한 공부라고 하는 것인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선각께 받은 고마움을 누군가에게 전해 주고 싶은 마음이 생겨 포덕을 더더욱 하고 싶어졌습니다. 이 감정을 느낄 때쯤 저는 처음 입도 했을 때보다 더 다양한 감정을 느끼고 있음에 놀랐습니다. 도를 닦기 전에 꽃을 보고 예쁘다는 생각을 할 줄 몰랐고, 하늘을 보고 상쾌한 느낌이 드는 것도 몰랐습니다. 하지만 이젠 구름을 보며 용 구름과 봉황 구름에 신기해하는 저 자신을 발견하게 되고, 선각분께 감사함과 고마움 그리고 내가 이 방면에 힘이 되고 싶다는 생각 등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더 큰 발전은 심고를 드릴 때, 오직 나의 이익을 위한 심고 보다는 선각과 방면, 그리고 내 주변 사람들을 위해 정성껏 심고를 드릴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아직도 막혀 있는 감정이나 생각들이 많이 남아 있지만, 선각 따라 열심히 도를 닦아 나가 세상 모든 사람을 이해하고 포용할 수 있는 넓은 마음을 가진 도인이 될 수 있을 것 같은 희망과 감사함이 많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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