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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50년(2020)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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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책 : 『그리스 비극에 대한 편지』를 읽고

『그리스 비극에 대한 편지』를 읽고



출판팀 김영일




  사실 책의 제목을 보고 읽고 싶은 마음이 일어난 건 아니었다. 관심이 적은 그리스 비극(悲劇) 작품을 분석한 책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소포클레스의 작품 『오이디푸스 왕』이나 『안티고네』의 이름은 들어 보았지만, 제대로 읽은 작품은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저자 김상봉(전남대 철학과 교수)의 다른 책 『호모 에티쿠스 - 윤리적 인간의 탄생』을 읽고 그를 학자로서 크게 신뢰하게 되었기 때문에 이 책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다행히 비극 작품은 예시로 종종 인용될 뿐이고, 주된 내용은 그리스 비극의 근본 성격에 대한 철학적 해석이다. 책의 부제가 ‘김상봉의 철학이야기’인 이유이다. 곧 그리스 비극을 전혀 읽지 않았다 해도 책을 읽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럼, 그의 철학적 서술은 어떨까? 서양 윤리학을 다룬 『호모 에티쿠스』를 통해 이미 알려졌듯이, 그는 서양철학을 일반 대중이 이해하기 쉽게 기술한다. 서양철학에 대한 이해의 깊이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는데, 이 책에서도 유감없이 드러나고 있다. 그래서 그리스 비극에 대한 논의를 따라가다 보면 주체, 자유, 보편, 총체성 등의 서양철학의 주요 개념을 파악하는 보너스를 얻게 된다. 이 책이 편지 형식의 비교적 짧은 글로 이루어진 점이나 강의의 녹취록을 바탕으로 쓰인 점도 쉽게 읽히는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내용은 가볍지 않다. 저자에 따르면, 기원전 5세기 민주주의와 함께 탄생한 그리스 비극은 정치적 목적이 뚜렷한 예술이다. 군인이자 정치가였던 아테네(도시공동체)의 비극 작가들은 시민들이 자기의 주체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타인과 더불어 공공의 가치를 추구하는 공동체의 주인이 되도록 교육하기 위해 작품을 썼던 것이다. 이에 따라 그들은 시민들이 본받을 만한 고귀하고 탁월한 정신을 보여주고자 했는데, 이러한 정신은 고통과 수난의 조건에서 드러난다고 생각했다. 인간 정신의 위대함은 오직 정신적 고통을 견딤으로써 그 참됨이 증명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연유로 정치적 예술은 비극 예술이 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저자는 이러한 고통과 슬픔을 통해 참된 만남이 이루어진다고 본다. 예를 들면, 비극 『안티고네』에서 안티고네는 반역자인 오빠의 시신을 매장하지 말라는 왕의 명령을 어기면서 시신을 묻어준다. 이 장면을 보면서 관객은 그녀가 자신과 마찬가지로 고통받고 슬픔 속에 있다는 점을 깨닫고 그녀의 슬픔을 공감하게 되는데, 이로써 관객은 그녀를 온전히 이해하게 되어 참된 만남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데 가장 중요한 너와 나의 참된 만남이 이렇게 슬픔을 나눔으로써 가능해지는 것이다. 그리고 이와 함께 주체성의 변화가 일어난다고 한다. 타인의 크나큰 보편적 고통과 슬픔 앞에서 자기의 편협한 고통과 연민이 사라짐으로써, 자기 안의 고립에서 벗어나 보편적 주체로 탈바꿈하게 되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그리스 비극 작가들이 목적한 인간상은 자기의 주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다른 구성원과 더불어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시민이다. 저자는 이러한 시민들이 조화롭게 살아가는 세상을 각각의 음이 고유성을 실현하면서도 서로 어울려 선율과 화음을 이루는 음악에 비유하고 있다. 이를 마지막으로 인용하고자 한다.


음악 속에서는 모든 소리들이 각자의 고유성을 잃지 않아 팽팽한 긴장 속에 살아 있지만 그 소리들은 언제나 다른 소리와 어울림으로써만 비로소 음악적인 소리 즉 음이 되지요. 이처럼 하나의 음이 언제나 다른 음에 기대서만 자기가 되는 까닭에 아름다운 음악 속에서 음들은 타자를 보존함으로써 자기의 고유성을 생동적으로 실현해나갈 뿐만 아니라 자기를 통해 또한 타자를 가능하게 합니다. … 서로 어울려 하나의 선율과 화음을 이루듯이 모든 사람이 아니 더 나아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개별자들이 자기의 고유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자기를 통해 서로를 보존하고 아름다운 전체를 이룰 수 있다면, 그것이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최고의 완전성이 아니겠는지요.


- 『그리스 비극에 대한 편지』, p.182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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