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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리소개 : 종통(宗統)에 대한 이해

종통(宗統)에 대한 이해



교무부




  대순진리회는 구천상제(九天上帝)님의 계시를 받으신 도주(道主)님께서 종통을 세우셨고, 도전(都典)님께서는 도주님의 유명(遺命)으로 종통을 계승하셨습니다. 종통은 상제님을 시원으로 하여 도주님과 도전님으로 연원(淵源)의 맥이 이어진 계통을 말합니다. 이와 같은 종통 계승은 상제님께서 정하신 천지도수에 따라 계승된 천부적 신성성과 연속성을 가지므로 인위적으로 바꿀 수도 고칠 수도 없는 것입니다.01 도전님께서는 “연원의 종통은 종교의 대동맥”02이라고 말씀하시며, “종통이란 도의 생명이며 진리입니다. 종통이 바르지 못하면 법이 있을 수 없고 경위가 바로 설 수 없으며, 그러므로 그 속에서는 생명이 움틀 수 없으며 만물만상을 이루어 낼 수 없는 것입니다.”03라고 강조하셨습니다. 이 글에서는 이러한 종통의 의미와 내용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1. 상제님의 종통 관련 공사

  대순진리회의 종통은 상제님에 의해 계획되고 예정되었다는 점에서 천부성(天賦性)을 지닙니다. 그래서 창시자가 후계자에게 전하거나 혹은 후대 사람들이 정통성을 규정한 기존 종교들의 계보와는 전혀 다른 성격을 가집니다. 일반적으로 천부(天賦)란 ‘하늘이 주었다’라는 뜻으로 종통의 천부성은 상제님께서 종통 계승과 관련하여 천지공사를 행하시면서 연원의 맥을 천지도수로 정하여 놓으신 데서 비롯한 것이니, 인위적으로 고칠 수 없으며 일반 사람들이 주고받는 상속과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종통의 천부성은 상제님의 말씀이나 공사에서 나타나는데, 삼천에 대한 말씀, 대두목 공사와 포교 오십년 공부 도수, 진인을 찾아보신 일화와 봉서(封書)를 남기신 데서 확인됩니다.



1) 삼천(三遷)이라야 일이 이루어지느니라
  먼저 상제님께서는 “속담에 ‘맥 떨어지면 죽는다’ 하나니 연원(淵源)을 바르게 잘하라.”04하시며, “너희들은 손에 살릴 생 자를 쥐고 다니니 득의지추(得意之秋)가 아니냐 마음을 게을리 말지어다. 삼천이라야 일이 이루어지느니라.”05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삼천(三遷)’이란 천지공사의 도수에 따라 연원의 맥이 이어지는 종통 계승의 과정을 말하는 것으로, 상제님 이후 두 분이 뒤를 이어 종통을 계승하여 연원의 맥이 이어짐을 암시한 말씀입니다. 또한 “내가 보는 일이 한 나라의 일에만 그치면 쉬울 것이로되 천하의 일이므로 시일이 많이 경과하노라.”06라고 하시며 공사를 완결짓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따라서 ‘삼천이라야 일이 이루어진다’는 말씀은 세 분의 연원에 의해 상제님의 일이 이루어짐을 의미합니다.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에서 옛날부터 삼천은 세 과정을 의미합니다. 즉, 상제님께서 일천(一遷), 도주님께서 이천(二遷), 도전님께서 삼천(三遷)을 맡으셨다는 의미이며, 이 세 분으로 종통이 완결되며 도가 완성됨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더 이상의 종통 계승이 없음을 뜻합니다.



2) 대두목 공사
  상제님께서는 삼천에 대한 말씀을 통해 상제님의 뒤를 이어 대업을 완성할 두 분에 대한 암시를 하셨는데, 단지 암시에 그친 것이 아니라 이와 관련하여 종통을 이을 대두목을 정하시는 공사를 1909년 봄에 행하셨습니다.
  상제님께서 동곡에 머무실 때 종도 아홉 사람을 앉히고 김갑칠에게 푸른 대(竹)나무를 마음대로 잘라오도록 하셨습니다. 그때 갑칠이 잘라 온 대가 모두 열 마디인지라. 그중 한 마디를 끊고 “이 한 마디는 두목이니 두목은 마음먹은 대로 왕래하고 유력할 것이며 남은 아홉 마디는 수교자의 수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07 상제님께서는 당시 참석하고 있던 종도들을 수교자(受敎者)로 칭하시고 그들과 다른 두목의 존재를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두목과 수교자를 구분하신 것은 상제님의 가르침을 받았던 종도들이 종통을 계승하는 것이 아니라, 종통을 계승할 분이 달리 존재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또한, 이러한 대두목과 관련하여 상제님께서는 “대범 판 안에 있는 법을 써서 일하면 세상 사람의 이목의 저해가 있을 터이니 판 밖에서 일하는 것이 완전하리라”08라고 하셨고09 “내가 도통줄을 대두목에게 보내리라. 도통하는 방법만 일러 주면 되려니와 도통될 때에는 유 불 선의 도통신들이 모두 모여 각자가 심신으로 닦은 바에 따라 도에 통하게 하느니라. 그러므로 어찌 내가 홀로 도통을 맡아 행하리오”10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대두목은 상제님으로부터 도통줄을 이어받아 도통하는 방법인 진법을 세우고 펼쳐서 상제님의 천지공사를 완성하시는 분을 뜻합니다. 따라서 이 대두목 공사는 도통줄을 받아 진법을 완성하신 도주님과 이 진법을 실현하신 도전님으로 이어지는 도의 연원을 확정하신 공사라 할 것입니다.
 


3) 포교 50년 공부의 도수를 정하심
  상제님께서는 “내가 평천하 할 터이니 너희는 치천하 하라. 치천하는 五十년 공부이니라.”11고 하시며 치천하(治天下)가 50년 공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공부를 ‘포교 50년 공부(布敎五十年工夫)’12라 하시며 대두목의 공부임을 암시해 놓으셨습니다. 천지공사를 마치신 1909년 6월 어느 날, 상제님께서는 ‘布敎五十年工夫終畢(포교 오십년 공부 종필)’이라 쓰신 종이를 불사르시고, 모여 있는 종도들에게 “이윤(伊尹)이 오십이지사십구년지비(五十而知四十九年之非)를 깨닫고 성탕(成湯)을 도와 대업을 이루었나니, 이제 그 도수를 써서 물샐틈없이 굳게 짜 놓았으니 제 도수에 돌아 닿는 대로 새 기틀이 열리리라.”13라고 하셨습니다. ‘포교 오십년 공부종필’에 대한 이 공사는 대두목의 공부가 50년 공부로 짜여져 있음을 도수로 정하신 것입니다.
  1909년 4월 28일 대전 들판에 나가신 상제님께서는 만주 봉천으로 망명하시는 도주님을 향해 15세 진주(眞主)로서 천명(天命)을 받들라는 공사를 행하셨습니다. 이를 시작으로 도주님의 50년 공부가 시작되었으니, 이는 상제님의 천지공사를 풀어가시는 도주님의 공부가 ‘50년 공부’임을 공사로써 확정하신 것입니다.



4) 진인(眞人)을 찾아보시고 봉서(封書)를 남기심
  상제님께서는 신명을 시켜 종통을 계승할 분으로 도주님을 찾아보신 일화가 전해집니다. 1903년 김보경(金甫京, 1860~1934) 등 몇몇 종도들이 상제님을 시좌하고 있을 때, 상제님께서 “내가 하는 일이 어찌 이렇게 더딜까”라고 말씀하신 일이 있습니다. 김보경이 상제님께 그 연고를 여쭈어 물었더니, 상제님께서 “내가 신명을 시켜 진인(眞人)을 찾아보았더니, 이제 겨우 아홉 살밖에 되지 않은지라, 내 일이 이렇게 더디구나.”라고 하셨습니다. 이때가 도주님께서 9세 되시던 해였습니다. 그리고 상제님께서는 종도들에게 “時有其時 人有其人(때에도 그때가 있고, 사람 중에도 그 사람이 있노라)”이라 말씀하시며 도주님의 종통 계승을 암시하셨습니다.14
  화천하시던 해인 1909년 어느 날 상제님께서는 정읍 마동에 집을 마련하신 후 누이동생인 선돌부인에게 기거하도록 하셨습니다. 상제님께서는 선돌부인에게 ‘훗날 을미생이 정월 보름날에 찾아올 것이로다’라고 하시며 봉서를 맡기시고 이를 전하라고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이 봉서는 10년 후인 1919년 정월 보름에 을미(乙未, 1895년)생이신 도주님께 전해집니다.
  이러한 내용들을 통해 종통 계승이 상제님의 공사와 관련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즉 ‘삼천이라야 일이 이루어지리라’라는 말씀, 대두목 공사, 포교 오십년 공부종필에 대한 공사, 선돌부인에게 봉서를 남기신 것과 같은 사실에서 종통 계승이 상제님의 공사에 의해 천부적으로 예정된 것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2. 도주님의 종통 계승

  도주님의 종통 계승은 상제님의 삼계 대순(三界大巡)의 진리를 감오득도(感悟得道)하시고 종통 계승의 계시를 받으신 것과 상제님의 봉서를 선돌부인으로부터 전해 받음으로써 확증되었습니다. 종통을 계승하신 도주님께서는 상제님의 ‘포교 오십년 공부종필’의 도수를 풀어가시며 50년 공부로써 해원상생 대도(大道)의 참뜻을 밝히고 진법(眞法)의 수도 법방을 세우셨습니다.



1) 봉천명과 감오득도
  도주님께서는 한일병합이 결정단계에 이르자 15세가 되시던 해인 1909년 4월 28일, 창원역에서 신의주로 가는 기차를 타고 전 가족과 함께 만주 봉천(奉天)으로 망명길에 오르셨습니다. 바로 이날 상제님께서 김보경을 비롯한 몇몇 종도를 앞세우고 대전 들판에 나가셨습니다. 때마침 도주님께서 타신 기차가 오는 것을 보시고 “남아 15세면 호패를 찬다 하느니 무슨 일을 못 하리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15 상제님의 이 공사는 당시 15세이셨던 도주님에게 15진주(眞主)로서 천명(天命)을 받들라는 것이었습니다. 만주 봉천(奉天)으로 망명하신 도주님의 이 역사적 행적을 ‘봉천명(奉天命)’이라 하며 이로부터 도주님의 ‘포교 오십년 공부’가 시작되었습니다.
  만주 봉천으로 가신 도주님께서는 동양 천지가 소용돌이치는 혼란 속에서 구세 제민의 큰 뜻을 가슴에 품고 입산 공부에 진력하셨습니다. 그리고 망명 9년 후인 1917년 2월, 상제님의 삼계 대순의 진리에 감오득도하시고 종통 계승의 계시(啓示)를 받으셨습니다. 이러한 도주님의 감오득도에 관하여 도전님께서는 “도주님께서 진주(眞主: 15세)로 봉천명(奉天命)하시고 23세시에 득도하심은 태을주(太乙呪)로 본령합리(本領合理)를 이룬 것”16이라고 밝혀주셨습니다.



2) 봉서(封書)를 받으심
  이후 도주님께서 주문을 송독하시던 어느 날 “왜 조선으로 돌아가지 않느냐. 태인에 가서 나를 찾으라”는 상제님의 계시에 따라 1917년 4월 귀국하시어 안면도에 도착하셨습니다. 이듬해(1918년), 안면도에서 공부하시던 도주님께서는 “김제 원평에 가라”는 상제님의 명에 따라 상제님께서 9년 동안 이룩하신 공사를 밟으신 후 대원사에 몇 달 동안 머무셨습니다. 그 후 도주님께서는 1919년 정월 보름에 이치복과 함께 정읍 마동(馬洞) 김기부의 집에 이르러 그곳에서 대사모님과 상제님의 누이동생 선돌부인과 따님 순임(舜任)을 만나셨습니다. 이때 선돌부인은 “상제께서 재세 시에 늘 을미생이 정월 보름에 찾을 것이로다”라고 말씀을 전하며 도주님께 봉서를 내어드렸습니다.17
  이렇게 상제님께서 선돌부인에게 남기신 봉서는 10년 후 을미생이신 도주님께 전해졌습니다. 상제님의 친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봉서를 전해 받으신 것은 세상 사람들에게 종통을 계승하실 분이 도주님이라는 사실을 알리는 또 하나의 징표입니다. 이후 도주님께서는 창도의 기반을 닦아나가기 위해 도수에 따른 쉼 없는 공부를 이어나가셨습니다.



3) 포교 오십년 공부종필
  포교 오십년 공부는 상제님께서 정하신 “포교 오십년 공부종필(布敎五十年工夫終畢)”의 도수에 따라 도주님께서 50년간 행하신 공부를 말합니다. 도주님께서는 1909년부터 1958년 화천에 이르는 50년간 공부를 행하시며 도통의 법방인 진법을 완성하시고 도전님께 종통을 전수하셨습니다. 이를 포교 오십년 공부종필이라 합니다.
  1909년 봉천명으로부터 공부를 시작하신 도주님께서는 1917년 상제님의 삼계 대순의 진리를 감오득도하시고 종통 계승의 계시를 받으셨습니다. 이후 상제님께서 짜놓으신 천지공사의 도수를 풀어가시는 공부를 행하시며 창도의 기반을 닦아나가셨습니다. 1925년, 도주님께서는 전북 구태인에서 종단 무극도(无極道)를 창도하시고, 상제님을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상제(九天應元雷聲普化天尊上帝)로 봉안하시며 인간의 모습으로 강세하신 강증산 성사(聖師)께서 삼계대권을 주재하는 구천상제(九天上帝)이심을 처음으로 밝히셨습니다. 상제님 화천 후 여러 종도들은 교단을 만들어 활동하면서 상제님을 천사(天師)나 선생, 옥황상제로 불렀던 것과 달리, 도주님께서는 상제님의 신격이 구천상제이심을 명확하게 밝혀주신 것입니다.
  또한, 상제님께서 대순하신 진리를 ‘종지’로 선포하시고, 이러한 진리를 실천하고 수행하기 위한 조목을 ‘신조’로, 수도로써 도달하는 궁극적인 이상을 ‘목적’으로 정하셨습니다. 이렇게 상제님을 신봉(信奉)하며 대순진리를 수행할 수 있는 교리와 수도체계를 확립하고 대순진리를 온 세상에 펼치셨습니다.
  무극도를 통해 포교 활동을 지속하시던 도주님께서는 일제의 종교단체 해산령으로 잠복도수의 시기를 맞이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1945년 해방이 되자 종교활동을 부활하셨고, 1948년에는 부산에 도본부를 설치하셨습니다. 이와 함께 도수에 의한 공부를 이어가시던 도주님께서는 1957년 4월 감천동 도장 영대에 15신위를 봉안하셨으며, 그해 11월에는 시학·시법 공부의 실시를 명하셨습니다. 이 공부는 인간과 신명이 함께 천지도수를 돌리는 진법의 수도법방으로, 도주님께서 행하신 50년 공부의 정수(精髓)입니다. 그리고 이 법방은 1958년 3월 6일(양력 4월 24일) 도주님께서 유명으로 도전님께 종통을 전하시며 계승되었습니다. 도주님께서는 “오십년 공부종필(五十年工夫終畢)이며 지기금지사월래(至氣今至四月來)가 금년이다.”라고 말씀하시고 화천하심으로써 상제님께서 짜놓으신 ‘50년 공부종필’의 천명을 다하셨습니다.



3. 도전님의 종통 계승

  도전님께서는 도주님의 유명으로 종통을 계승하셨습니다. 이는 도주님의 오십년 공부로 완성된 진법을 계승하신 것이며, 상제님으로부터 시원한 연원의 맥을 이으신 것입니다.



1) 유명(遺命)으로 종통을 계승하심
  도주님께서는 1958년 2월 하순경에 최고 간부 전원이 모인 자리에서 “박 한경을 도전으로 임명하니 그는 총도전이니라. 종전의 시봉 도전과는 전혀 다르니라”18라고 하시며 도전님을 총도전(總都典)으로 임명하셨습니다. 이후 도주님께서는 도무(道務)에 일체 관여하지 않으셨고, 도전님께서 직접 도의 운영을 맡아 행해 나가도록 하셨습니다. 도전님께서 새로 받으신 ‘총도전’은 도 운영 전반을 맡아 이끌어나가는 분을 말하는 것입니다.
  1958년 3월 6일, 도주님께서는 간부 전원을 문밖에 시립케 한 후 도전님을 가까이하여 머리에 손을 얹고 ‘도의 운영 전반을 맡도록 분부’를 내리시고 “오십년 공부 종필(五十年工夫終畢)이며 지기 금지 사월래(至氣今至四月來)가 금년이다. 나는 간다. 내가 없다고 조금도 낙심하지 말고 행하여 오던 대로 잘 행해 나가라”19고 말씀하시며 종통을 도전님께 전하셨습니다. 이를 ‘유명에 의한 종통 계승’이라 하며, 여기서 ‘행하여 오던 대로 잘 행해 나가라’는 말씀은 총도전의 명에 따라 잘 행하라는 의미입니다. 이로써 연원의 맥이 도전님께 이어졌습니다.



2) 대순진리회 창설과 진법의 실현
  도전님께서는 10년간 진법의 수도법방을 시행하시며 태극도를 영도하셨습니다. 이후 도전님께서는 ‘수륙병진 도수’20에 따라 서울에서 진법을 새롭게 펼치기 위해 전반적인 기구를 개편하시고 1969년 대순진리회를 창설하셨습니다. 도전님께서는 도장을 중심으로 진법의 수도법방을 시행해 나가셨습니다. 중곡도장을 시작으로 여주본부도장·제주수련도장·포천수도장·금강산 토성수련도장을 건립하시며 도장을 진법 수행의 터전으로 삼으셨습니다. 특히 1991년 여주본부도장에서 시학·시법 공부의 시행을 명하시고, 특수수련반을 선발하여 큰공부를 실시하셨습니다. 포천수도장에서는 특수수련 기도공부(1992)를 시행하셨으며, 여주본부도장과 포천수도장에서는 수강을, 제주수련도장과 금강산 토성수련도장에서는 연수를 각각 시행케 하셨습니다.
  이처럼 도전님께서는 5개 도장을 근간으로 진법을 시행하심으로써 뜻 있고 연운 있는 사람이 대순진리회에 입문하여 수도를 통해 도통에 이를 수 있도록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또한 도전님께서는 포덕, 교화, 수도의 기본사업과 함께 종단의 사회적 역할에도 충실하여 구호자선사업, 사회복지사업, 교육사업의 3대 중요사업을 확정하시고 상제님의 덕화를 선양하는데 힘을 기울이셨습니다.



  지금까지 상제님, 도주님, 도전님으로 이어지는 대순진리회의 종통을 살펴보았습니다. 상제님께서는 “속담에 ‘맥 떨어지면 죽는다’ 하나니 연원(淵源)을 바르게 잘하라.” 하셨으며, 도전님께서는 “종통이란 도의 생명이며 진리입니다.”라고 하셨습니다. 상제님의 계시로 대순진리를 감오득도하신 도주님께서 종통을 세우셨고, 도전님께서는 도주님의 유명에 의해 종통을 계승하셨습니다. “삼천이라야 일이 이루어지느니라”라는 상제님의 말씀처럼 종통은 천부적 신성성과 연속성에 따라 상제님, 도주님, 도전님으로 완결되는 것입니다. 상제님께서 삼계 개벽공사를 천지공사로써 설계하시고, 도주님께서는 50년 공부종필로써 진법인 수도법방을 짜놓으셨으며, 도전님께서는 이 진법을 천하에 펼치셨습니다. 특히, 도전님께서 여주본부도장에서 시행토록 하신 시학·시법 공부는 후천선경을 여는 진법의 정수로 대순진리회를 중심으로 진법을 온 세상에 펴는 일입니다. 따라서 수도인들은 종통에 대한 분명한 이해를 바탕으로 성지인 도장과 진법을 수호하는 데 만전을 기해야 하겠습니다.




<참고문헌>
•교무부, 「도전님 훈시: 종통은 도의 생명」, 《대순회보》 5, 1986.
•교무부, 「도전님 훈시: 연원과 연운 체계의 확립」, 《대순회보》 10, 1988.
•교무부, 「Q&A게시판: 교운 1장 38절의 두목과 수교자의 수에 대해 알려 주세요」, 《대순회보》 120, 2011.
•교무부, 「Q&A게시판: 연원과 종통은 다른 것인가요?」, 《대순회보》 116, 2011.
•김성호, 「상생의 길: 문왕(文王)과 이윤(伊尹)의 마음가짐」, 《대순회보》 104, 2010.
•대순종교문화연구소, 「특별기획: 문답으로 알아보는 ‘종통’」, 《대순회보》 111, 2010.
•대순종교문화연구소, 「특별기획: 대순진리회의 종통」, 《대순회보》 200~202, 2017-2018.
•대순종교문화연구소, 『증산의 생애와 사상』, 서울: 대순진리회출판부, 1994.
•대순종교문화연구소, 「상제님의 발자취를 찾아서: 포교 오십년 공부 종필」, 《대순회보》 148, 2013.
•류병무, 「지남거: 삼천이라야 일이 이루어지느니라」, 《대순회보》 198, 2017.
•박인규, 「대순진리회 종통론의 특성 연구: 한국불교 법맥론과의 비교를 통해」, 『대순사상논총』 24-2, 2015.
•이광주, 「전경 속 역사인물: 이윤의 도움으로 대업을 이룬 성탕(成湯)」, 《대순회보》 177, 2016.
•진정애, 「대순논단: 조정산(趙鼎山) 도주님의 생애와 종교활동」, 《대순회보》 115, 2010.





01 교무부, 「도전님 훈시: 연원과 연운 체계의 확립」, 《대순회보》 10, 1986, 참조.
02 「도전님 훈시」(1986. 4. 25).
03 교무부, 「도전님 훈시: 종통(宗統)은 도(道)의 생명」, 《대순회보》 5, 1986.
04 교법 2장 43절.
05 예시 87절.
06 교법 3장 7절.
07 교운 1장 38절 참조.
08 행록 2장 14절.
09 「도전님 훈시」(1991. 2. 12) 참조.
10 교운 1장 41절.
11 행록 3장 31절.
12 예시 88절.
13 공사 3장 37절 참조.
14 대순종교문화연구소, 『증산의 생애와 사상』 (1994), pp.103-104, 참조.
15 대순종교문화연구소, 『증산의 생애와 사상』 (1994). p.265 참조.
16 『대순지침』 13쪽.
17 교운 2장 13절.
18 교운 2장 64절.
19 교운 2장 66절.
20 1906년 3월 2일 상제님께서는 몇몇 종도들에게 대전역에서 기차를 타고 서울로 가라고 명하시고 다른 종도들과 함께 군산항에서 배를 타고 서울로 가셨는데, 이를 ‘수륙병진’이라고 하셨다.(공사 1장 17절 참조) 이에 대하여 도전님께서는 “『전경』에 ‘천자부해상(天子浮海上)’은 수륙병진 도수를 보신 것이다. 그것은 내가 부산에서 나와 서울로 가는 것을 의미한다. 배가 꼭 바다의 배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법은 서울에서 만방으로 나간다고 하셨다.”라고 말씀하셨다.(『도전님 훈시』, 1991년 2월 12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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