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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50년(2020)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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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문예 심사평 : 문득, 글로 물어보는 길道

문득, 글로 물어보는 길道



  12회 대순문예 공모전 최우수 수상작을 ‘장몽(長夢)’으로 결정하는 데에는 모든 심사위원이 쉽게 찬성했다. 코로나19 시대에 늪 같은 일상 속에서 ‘문득, 글로 물어보는 길’이라는 하나의 가능성으로 높이 평가받았기 때문이다.


신유식(문학박사, 대진고 수석교사)



[심사과정]
  대순문예 공모전의 예심 과정은 대순문예 공모전 심사 규정에 따라 이루어졌다. 교무부에서는 문학을 전공한 선생님들을 심사위원으로 위촉하여 심사를 진행했다. 본 심사는 2020년 9월 대진고 수석교사 연구실에 열렸다. 분당 대진고 김진화 교감 선생님, 대진고 신유식 수석 선생님, 대진고 김곤선 선생님이 심사위원으로 참석하였다.



[총   평]
  대순문예 심사는 코로나19 정점이라는 비대면 상황에서 도인들의 수도 방향을 새롭게 가늠해 볼 기회가 되었다. 지난 일 년 동안 대순문예에 공모된 작품 수는 작년에 비해 다소 감소했지만, 내용 면에서는 더욱 성숙한 80여 편이 공모되었다.
  본심에 오른 작품을 대상으로 심사위원들은 심도 있게 논의하였다. 코로나19로 인해 대면(對面) 일상에서 겪던 무거운 주제를 다룬 작품은 다소 줄었다. 대신에 비대면 일상의 수도 현실과 종교적 내면 의식을 삽화적으로 그려내는 작품들이 많다는 점, 작품 속에서 다양한 목소리를 살려내고자 하는 새로운 기법적 추구가 뚜렷하게 자리 잡고 있다는 점, 여성적 성향이 짙은 응모작이 더욱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 ‘2020년 대순문예’를 특징지을 수 있다. 또한, 주제와 소재의 측면에서 드러나는 대순문예 당선 작품들의 주된 경향은 비대면 일상 현실을 끌어들여 과거를 회상하는 작품이 많았다. 코로나19로 인해 국내외 개인의 삶을 곤고(困苦)하게 만드는 현실이 수도에 영향을 주고 있는 듯하다. 글을 통한 비대면 수도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보이고 있는 점은 기억할 만한 변화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방법상의 문제는 수도에서 비대면 현실을 작품 속에 어떻게 내면화할 것인가라는 물음에는 각자의 답을 마련하는 일일 것이다.



[운문 심사평]
  본심 과정의 첫 단계에서 예년과 같은 방식으로 모든 심사위원이 각각 10여 편의 후보작을 천거하였다. ‘장몽(長夢)’, ‘상사화’, ‘운동화’ 등의 작품이 먼저 거론되었다.



‘장몽(長夢)’은 시간과 공간의 거리를 뛰어넘는 상상력과 간결한 문체의 감응력이 주목된 작품이다. 시 속에서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과정 자체가 기법적이다. 이른바 인문학적 상상력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시(詩)는 처음부터 머리 길게 늘어진 수도인을 떠올리게 한다. ‘장(長)’이란 ‘머리 긴 나이 많은 노인’을 본뜬 자형(字形)이다. 그 노인이 꾸는 꿈은 말씀이다. 아니 제목 ‘장몽(長夢)’ 글자 자체가 말씀이다. 생각해 봐라. ‘꿈’이라고 하면 춘몽(春夢), 태몽(胎夢)이거나 현시몽(現視夢), 백일몽(白日夢) 정도로 생각한다. 아니면 조선 시대 강항(姜沆,1567~1618)의 ‘청몽(淸夢)’을 말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작가는 그냥 ‘긴 꿈’이라 해도 될 것을 굳이 ‘장몽(長夢)’이라 했다. 쓸모없어 보이는 ‘긴 꿈’의 말이 무엇일까? 시인의 귀에는 이미 긴 우주에 다가가 있다. ‘달그림자 나란히 베고서’ 사는 분이지만 때 묻고 병든 세상을 하늘로 끌어들여 빨아내고 싶은 분이 아닐까. 역병이 어리석고 음습한 속내를 타고 급격히 전파되고 병들고 그악스러운 말들의 굿판이 창궐하고 있는 ‘누릿하게 올 풀린 날들’이다. 쉽게 그칠 기미마저 없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은 욕망에 눈먼 인간의 말이 아니라 저 ‘고요히 익어가는 품속’, ‘은하수 빛살’, ‘긴 잠에서 깨어난 염원’의 언어일 것이다.
  시인은 단단한 ‘바느질’을 통해 ‘꿈’의 내용이 꽃피는 세상임을 말하고 있다. 한국인들은 꽃 피는 시절이 오면 ‘울긋불긋 꽃 대궐’이라는 노래부터 떠올린다. ‘꽃피는 산골’은 한국인들 모두에게 유토피아이며 무릉도원(武陵桃源)이다. ‘발그레 띄운 영산홍’ 피는 마을은 시인이 꿈꾸는 이상향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지금 코로나19 위기는 너무 심한 ‘밀착’에서 오는 문제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우리는 모두 서로 ‘긴 꿈’을 하나 두고 사회적 거리 두기가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



‘상사화’, 뒤척이는 상사화들! 바람은 잔잔한데 도장 앞은 온통 상사화로 분분한 날을 상상한다. 붓을 든 작가의 마음도 질긴 인연(因緣)으로 분분했으리라. 시를 읽고 나면, 내 몸에도 상사화가 핀 듯하다. 몸속에 상사화가 피고 나면 마음이 무장해제 된다. 야무지게 닫아 버린 마음이 스스로 열리게 하는 시이다. ‘햇살’을 사랑하고 살아온 ‘어미의 삶’을 사랑하고 남겨 준 ‘추억과 슬픔’을 사랑하는 마음, 그 마음 앞에 무엇이 그립고 무엇이 한(恨)일까? 어떤 마음에도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가볍다. 한없이 깊은 ‘추억’은 오히려 너그러운 마음의 영토를 가진 느낌을 준다.



‘운동화’는 아주 단순한 모티프를 이용하여 시 속에서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과정 자체를 하나의 이야기로 형상화하는 데에 성공하고 있다. 이 작품이 지닌 로망스적인 사랑 이야기는 낡은 주제이지만 새로운 감동을 던져 준다. 그것은 바로 각자의 ‘운동화’라는 모티프가 갖는 시공을 넘나들며 이루어지는 상상력의 정치(精緻)함에 의해 가능했다.



[산문평]
  6.25 와중인 1.4 후퇴 때 내려온 89살 드신 할머니가 계신다. 글보다 먹고 사는 것이 먼저이던 시절에 그 할머니는 먹고 살기 위해 글을 배우는 것은 생각도 못 했다. 그러다가 세월이 흘러 나이 89살이 되어 한글을 깨우친다. 제일 먼저 한 것이 생사를 알 수 없는 부모님 성함과 동생들 이름부터 한글로 적었다. 그리고 그 메모한 종이를 지갑에 모시고 다닌다. 그게 글이다. 글은 소중한 것을 기록한다. 마음을 기록한다. 2020 대순문예 산문편은 모두 소중한 마음을 기록한 글들이다. 사유가 깊고 관찰도 대단하다. 과거부터 현재, 미래까지 관찰과 소중한 마음으로 가득한 글이다. 우열을 가리기가 힘든 작품이 많았다. 몇 편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나의 할머니’ 85세 할머니는 단순한 옛 인물의 주석이라기보다는 스스로 재창조된 문학의 향기를 지닌 글이다. 주기성과 균질성을 특징으로 하는 양화(量化)된 시간(과거·현재 ·미래로 대변되는 불가역적인 시간) 이전에 시중(時中)이 이미 언제나 있다는 것을 느낀다. 과거· 현재 ·미래를 차별적으로 구성하면서 동시에 통합되는 시간의 형식이다. 글을 읽으면서 ‘운동하고 변화하는 모든 것은 시간 속에 있지만, 시간 자체는 변하지도 운동하지도 않는다. 시간 자체는 변화하고 운동하는 모든 것의 형식이다’라는 들뢰즈의 말을 끊임없이 떠올렸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소재를 간단하게 삽화로 처리해버리고 말았다.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주제가 약한 것은 아니다. 수도에 관한 이야기는 꽤 진행되고 있다. 주제로서의 응집력도 단단하다. ‘1시간도 못 돼서 다리가 마비되는’과 같은 체험된 문장이며 남성적인 큰 틀의 글이면서 여성적인 섬세함이 깃들인, 미학적인 안목을 가졌다.



‘행복한 영농작업 중에’는 가시적인 행위나 상황의 묘사에 역점을 두고 있다. 그러나 묘사의 대상인 행위나 상황은 까다롭다고 할 정도로 엄격하다. 묘사가 아무리 치밀하다고 하더라도 긴요하지 않은 대상을 잡으면 자연 플롯이 무너지고 애초의 창작 의도와는 다르게 된다. 대상을 엄밀하게 추려내는 태도도 태도려니와 대상에 얽힌 기본지식의 확보도 작가의 특유한 묘사 정신을 잘 뒷받침해 주고 있다. 영농에 필요한 물건인 삽질과 굴렁쇠, 주전자 등에 대한 남다른 경험들은 글 속에 그냥 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 필수적인 요인으로 작용하고 기능하고 있다. 글의 중심사건의 성격에 대한 독자들의 이해를 여러 방면의 전문지식이 증진해 주고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아무도 보지 않을 때의 나’는 분명 현란하게 구사되는 언어의 끝에서 만나게 된 작품이다. 역병이라는 격리 때문인가. 정체성을 찾아가는 모습이 이채롭다. 자신을 끄집어낸 슬픈 수도 현실 속에서 최선의 도에 대한 제일 나은 방법일지도 모른다. 마음을 다잡으려는 치기와 현란한 문장의 몸짓 아래 숨어 있는 작가의 정체성 찾기가 치열함이 보인다. 글로 판단하건대 주석과 문장과 마음이, 풍요롭고 깊은 성찰과 자유롭고 날렵한 언어가 함께 어우러져 있는 글에서 그 통속을 가르는 힘으로 마침내 정체성은 확연하게 드러났을 것이다. 글을 읽어 보면 문장 한 줄 한 줄이 촘촘하게 교직되면서 빈틈없는 플롯을 만들어 내고 있다. 글 속의 문장들은 정확성과 정밀성 그리고 간결성을 지켜내고 있다. 글을 쓰면서 작은 것이 탄탄하면 큰 것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형식이 잘 갖추어지면 의식이 알맞게 형성되는 것임을 인식하고 있다.



  얼핏 바람 소리에 잠이 깼다. 새벽 4시!!
  여주 남한강의 새벽은 열렸으련만 영대로 가는 길은 칠흑 그 자체일 것이다. 도문에 이르게 된 인연을 이야기하고, 그동안 억눌러 왔던 속내를 털어놓기도 할 것이다. 어쩌면 모두가 스스로 이미 답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다만 이겨내지 못할 뿐, 삶이 이미 수도의 길이거늘 그 길 위에서 또 어떤 길(道)을 물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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