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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51년(2021)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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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사기 : 회문산 오선위기혈 답사기

회문산 오선위기혈 답사기



교무부 장선렬




  순창의 회문산(回文山)하면 오선위기혈(五仙圍碁穴)이 먼저 떠오른다. 여러 번의 답사 끝에 오선위기혈 추정지에 가게 되었다. 상제님께서 원의 시초인 단주(丹朱)의 해원도수를 회문산 오선위기혈에 붙여 조선 국운을 돌리는 공사를 보신 그 혈자리를 누가 정확히 알 수 있겠는가? 다만 상제님의 공사를 되새기는 마음에서 자료 조사와 전문가의 도움으로 지사들 사이에 회자되고 있는 오선위기혈 추정지를 찾아 나섰다.


 

공사 속의 오선위기혈

  상제님께서는 인류가 반목쟁투하는 원인을 지기가 통일되지 못한 데 있다고 하시며01 회문산과 관련하여 많은 공사를 보셨다. 그중 강산의 정기를 합치는 공사가 대표적이다. 먼저 부모산(父母山)인 순창 회문산과 전주 모악산의 정기를 합하시는 것이었다. 다음으로 사명당(四明堂)의 정기를 합하는 사명당 갱생 공사02를 보셨다. 그리고, 산군(山君)과 해왕(海王) 공사로 회문산과 변산의 정기를 합하는 공사를 행하셨다.
  회문산의 오선위기혈 관련 공사를 살펴보면, 단주를 해원하여 조선국운을 돌리는 공사, 천하의 시비신을 오선위기혈에 붙여 판가름하는 천하시비신 순창운회(天下是非神 淳昌運回) 공사, 바둑의 승부를 결정코자 최수운을 초혼하여 오선위기혈에 장사하는 공사, 홍성문의 27년 헛도수 공사 등이 있다. 그중에 오선위기혈에 대한 구체적인 공사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현하 대세가 오선위기(五仙圍碁)와 같으니 두 신선이 판을 대하고 있느니라. 두 신선은 각기 훈수하는데 한 신선은 주인이라 어느 편을 훈수할 수 없어 수수방관하고 다만 대접할 일만 맡았나니 연사에만 큰 흠이 없이 대접만 빠지지 아니하면 주인의 책임은 다한 것이로다. 바둑이 끝나면 판과 바둑돌은 주인에게 돌려지리니 옛날 한 고조는 말 위에서 천하를 얻었으되 우리나라는 좌상(座上)에서 득천하 하리라.(예시 28절)


  바둑의 시조 단주(丹朱)의 해원도수를 회문산 오선위기혈에 붙여 조선 국운을 돌리려 함이라. 다섯 신선 중 한 신선은 주인으로 수수방관할 뿐이오. 네 신선은 판을 놓고 서로 패를 지어 따먹으려 하므로 날짜가 늦어서 승부가 결정되지 못하여 지금 최 수운을 청하여서 증인으로 세우고 승부를 결정코자 함이니 이 식혜는 수운을 대접하는 것이니라.(공사 2장 3절)


  위 구절에서 회문산 오선위기혈은 상제님께서 우리나라 국운을 돌리는 공사를 보신 곳으로 서로 대립하고 있는 4대 강대국 사이에서 시련을 이겨내고 상등국이 된다는 공사를 보신 곳이다. 바둑이 끝난 후 바둑판과 바둑돌은 주인의 차지가 되는 것과 같이 조선은 천하의 중심국가가 된다는 내용이다. 오랜 시일을 기다린 끝에 뜻깊은 곳을 가게 되어 산행으로 몸은 힘들겠지만, 설레는 가슴을 안고 차에 올랐다.


▲ 금강산토성수련도장 오선위기 벽화



회문산을 찾아서

  호남고속도로를 달려 전주 이서교차로에서 순창으로 가는 자동차 전용도로를 옮겨타고 임실군 덕치면사무소까지 가게 된다. 자동차 전용도로 중간에 옥정호를 지나게 되는데 옥정호 근방에는 홍성문이 어린 시절을 보낸 고향 금기리 텃골이 있다. 옥정호를 지나면 임실군 덕치면에 도착하게 된다. 덕치면사무소를 지나 회문산 자연휴양림 쪽 바위로 이루어진 계곡을 따라 오르막길을 올라가면 회문산 관리소가 나온다. 우리 일행은 새벽녘에 등산하기 위해 전날 오후에 도착하여 자연휴양림 숙박 시설에서 자기로 했다.
  숙소를 나와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왼편으로 회문산 역사관 건물이 자그맣게 있다. 회문산의 유래와 역사에 관한 내용을 알기 쉽게 그림으로 그려놓았다. 그중 눈에 띄는 그림은 우리 도장에 있는 오선위기 벽화가 오선위기혈에 대한 설명 자료로 활용되고 있었다.
  회문산의 역사를 더듬어 보면 아픔을 참 많이 간직한 산이다. 조선말 최익현과 임병찬, 양춘영이 이곳을 근거지로 의병 활동을 하였으나 순창객사에서 체포되고 오히려 많은 인명이 희생되었다. 그리고 8.15해방 후부터 6.25 한국전쟁 동안 빨치산 전북도당이 한때 회문산을 근거지로 활동하였다. 당시 회문산 주변의 주민들은 낮에는 군인, 밤에는 빨치산 사이에서 어느 편에도 들 수 없어 무고하게 인명 피해만 보게 되었다. 홍성문도 회문산에서 27년의 수도 끝에 지리에 통하여 24혈의 명당이 있음을 알았지만, 명당과 인연이 닿는 인물을 만나지 못해 전할 수가 없었다.
  회문산 명칭의 유래는 홍성문설과 조평설 두 가지가 전해지고 있다. 그 중 홍성문설에 따르면 회문산은 조선 중기 때 스님인 홍성문(洪成文) 대사가 지은 「회문산가(回文山歌)」에서 그 이름이 유래되었다. 홍성문의 법명이 성문(成文)으로 스님보다 전라도의 전설적인 풍수가로 속세의 이름은 전해지고 있다. 그의 생몰연대는 알 수 없으나 조선 중종(中宗) 때인 약 450년 전, 혹은 영조(英祖) 때인 250여 년 전 두 가지가 전해진다. 그다음 조평(趙平, 1569~1647)설은 임진왜란 후 덕치면 회문리에 살면서 많은 덕을 베풀었고 국가로부터 사패지(賜牌地)03로 회문산을 받으면서 그가 살았던 마을 이름을 따서 회문산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한다. 하지만 회문산이 세상에 널리 알려진 것은 이 중 홍성문설이 회문산 명칭의 유래에 가깝다고 본다. 




  홍성문은 회문산에서 멀지 않은 옥정호의 임실군 운암면 금기리 텃골 사람으로 남양 홍씨의 홍진사와 마을 주막집 주모 사이에서 서자로 태어나 형들로부터 많은 미움을 받았다. 홍진사가 죽은 후 그는 형으로부터 생명의 위협을 느껴 어린 나이에 회문산 만일사로 들어갔다. 그리고 27년 동안 도를 닦아 지리에 통한다. 팔도를 답산(踏山)한 후 회문산에 많은 명당이 있음을 알고 세상에 전하려 했지만, 사람들은 명당에 욕심만 있지 그것을 감당할 덕을 갖춘 사람이 없음을 개탄했다. 심지어 명당을 얻고자 협박과 살해 위협까지 받게 된다. 그는 양반들의 횡포에 분노하여 명당을 판다며 양반을 희롱하였을 뿐 그의 재능을 펴지 못하고 나이 들어 「회문산가」를 남기고 안타까운 삶을 마감하였다.04 상제님께서는 이러한 홍성문의 삶과 연관하여 27년 헛도수가 있으리라 하신 것이다.
  역사관을 나와 회문산 정상으로 가는 임도(林道)를 따라 약 1km쯤 가니 야영장과 주차장이 나오고 야영장을 지나 1km쯤 올라가면 헬기장이다. 헬기장은 등산로에서 사거리 교차로 역할을 하는 곳이다. 북쪽으로는 회문산 정상으로 가는 길이 있고 북서쪽으로는 장군봉, 남쪽으로 600m를 가면 오선위기혈 추정지인 문터바위가 나오고 동쪽은 야영장과 매표소 방향이다. 우리는 헬기장에서 회문산 정상인 ‘큰지붕’ 방향으로 발을 옮겼다. 정상까지 거리는 700m 정도이다. 좁은 등산로를 따라 400m를 올라가면 회문산 작은봉인 ‘작은지붕’이 나온다. 작은지붕에서 200m 올라가니 여근목(女根木)이 나왔다.



▲ 회문산 여근목



  여근목 앞의 안내판에는 회문산은 아버지 산, 모악산은 어머니 산이라 적혀있었다. 양기(陽氣)가 강한 회문산은 음양의 조화를 맞추기 위해 곳곳에 음기(陰氣)가 서려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여근목이라 한다. 여근목은 소나무의 한 종류로 마치 여인이 하늘을 향해 두 다리를 뻗은 모양을 하고 있다. 과거 빨치산을 토벌할 때 온 산이 불바다가 되어 많은 나무가 타죽었다. 그때 불에 타지 않고 살아남은 영험한 나무로 알려지면서 등산객의 발길을 잡는 곳이다.
  좀 더 올라가면 좌측에 ‘天根月窟(천근월굴)’의 글자가 새겨진 큰 바위가 나온다. 일제 강점기 유학자 동초(東憔) 김석곤(金晳坤, 1874~1948)이 새겼다고 한다. 바위 중심부에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커다란 석굴(石窟)이 있는데 이것을 ‘월굴(月窟)’이라 한다. 안내판에는 천근(天根)은 양을 뜻하고 월굴은 음을 뜻하며, 이 글자는 소강절(邵康節, 1011~1077)의 역에 대한 시구 중에 동지와 하지의 왕래를 통해 ‘음양의 변화와 조화’를 이룬다는 내용을 말하고 있다.05 


▲ 회문산 천근월굴(天根月窟)



회문산 정상에서

  천근월굴 바위를 지나 가파른 길을 올라가면 인근에서 가장 높은 회문산 정상인 큰지붕이다. 정상에 올라 주위를 둘러보니 모든 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회문산은 전북 정읍시와 순창군과 임실군 세 개의 시·군이 서로 맞닿은 곳에 있다. 산이 크기도 하지만 산세가 깊고 수려하다. 주변으로는 옥정호와 섬진강댐이 보이고 섬진강 물줄기가 회문산을 휘감으며 남원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회문산은 수많은 산중에 우뚝 솟은 모습이 여러 자식을 둔 인자한 아버지 같기도 하고, 많은 신하를 둔 위엄있는 임금 같기도 했다. 멀리 김제 방향으로 어머니산인 모악산이 마주 보인다.
  정상에서 남쪽을 바라보니 회문산의 능선이 길게 내려가는 모양을 하고 있다. 능선을 따라 ‘작은지붕’이 보이고 그 너머에 오선위기혈 추정지가 있는 답사의 목적지인 문터바위가 보인다. 좌측(동쪽)에는 천마봉(깃대봉)이 있고, 남쪽 앞에는 성미산, 무직산, 옥녀봉이 차례로 보인다. 보통 신선을 상징하는 봉우리는 삼각형 모양으로 우뚝 솟아 있는데 다섯 개의 봉우리가 모두 그런 모양을 이루고 있다. 마치 다섯 신선을 보는 듯했다.




  회문산 정상인 큰지붕에서 오선위기혈 추정지인 문터바위가 있는 방향으로 내려갔다. 문터바위가 있는 곳까지는 1.3km 정도 거리다. 우리 일행은 목적지를 향해 걸어갔다. 내리막길 곳곳에 묘를 볼 수 있었다. 700m 내려와 헬기장을 지나 능선을 따라 계속 이동했다. 시루떡처럼 여러 겹의 돌이 쌓여 있는 모양을 한 시루바위를 지나 조금 더 걸어가니 바위로 된 봉우리가 나왔는데 바로 오선위기혈을 품고 있다는 문터바위 정상이었다. 문터바위 정상에서 주변을 보니 뒤편으로 많은 묘가 들어서 있었다. 남쪽을 바라보니 절벽 아래로 하나의 거대한 바위 능선이 첩첩이 늘어서서 산 아래까지 까마득히 늘어서 있다. 이 아래 어딘가에 오선위기혈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지난 몇 차례의 답사 때에는 안전 장비도 없었고 무엇보다 찾을 수 있다는 확신이 서지 않아 몇 번을 돌아서야 했다. 이번 답사에는 위치를 파악할 준비를 단단히 하고 왔다.



오선위기혈 추정지에서

  문터바위 정상에서 드론을 띄워 추정되는 위치 주변을 조사하여 내려가는 방향을 확실히 점검하였다. 계곡을 따라 내려가다가 다시 바위능선 위로 올라가는 계획을 세웠다. 안전 장비를 갖추고 내려가 보기로 했다. 절벽 옆 계곡을 따라 내려가니 온통 돌무더기투성이였다. 명당에는 뱀이 많다는 옛사람들의 말처럼 길도 없는 돌무더기 위를 딛고 절벽 아래로 한참을 내려가던 중에 독사 3마리를 만났다. 지형을 대략 짐작하여 방향을 다시 잡고, 절벽에 오를 수 있는 길을 찾아 간신히 바위 능선 위로 올라갈 수 있었다. 능선 위에는 온통 바위로 되어있었고 능선이 협소하여 한 사람이 겨우 다닐 수 있을 정도였다. 좀 더 아래로 내려가니 마침내 답사의 목적지인 절벽 끝에 도착했다.
  여기서 홍성문이 말한 회문산의 오선위기혈에 대해 알아보자. 그는 회문산에 24명당이 있고 그중에서 오선위기혈이 으뜸임을 말하였다. 깃대봉 아래 집을 짓고 수도하면서 한평생을 회문산을 중심으로 활동하였다. 「회문산가」의 내용 중 오선위기혈에 대한 부분을 보면 다음과 같다.


석상(石上)에 오선위기(五仙圍碁) 알아볼 이 뉘 있으며
인간문천무만(人間文千武萬)을 차지할 이 뉘 있으리
삼산이 멀지만 방장이 안산이요
천지가 넓다하되 관(棺)하나 묻기 어렵구나
연화도사 3번와서 못찾고 돌아가니
사자암 범벅중이 생심인들 안다하랴
구첨(毬簷)은 장석(丈石)이요 합금(合襟)은 반석(盤石)이라
객지에서 머문 10년간에 흠탄불이(欽歎不已) 하건만은
적선가인(積善家人) 아니면 천신(天神)이 재앙을 내리리
만일 이 혈 얻거든 흙을 쌓아 관을 덮음을 꺼리지 마소
5년 내 청상과부는 황소의 털 하나(黃牛一毛) 격이라
당대에 속발하여 59대 갈 것이라
06


  회문산 오선위기혈의 용혈도(龍穴圖)07를 보면 호남정맥이 회문산으로 이어지는데 주봉(胄峯)은 장군봉이다. 장군봉의 맥이 회문산 큰지붕으로 이어지고 큰지붕에서 작은지붕으로 맥이 흘러 바둑판 자리인 문터바위로 이어져 있다. 바둑판을 가운데 두고 다섯 신선이 둘러있는 형국으로 1신선(一仙)이 옥녀봉, 2신선(二仙)이 무직산, 3신선(三仙)이 성미산, 4신선(四仙)이 깃대봉, 5신선(五仙)이 큰지붕이다. 문터바위를 중심으로 다섯 개의 봉우리가 둘러있는 모습이다. 오선위기혈 용혈도의 내용에는 묘를 쓸 때 반드시 바위에 관(棺)을 놓고 보토(補土)하여 묘를 쓰면, 당대부터 발복하여 59대(약 1,800년)까지 갈 것이라 말한다. 대신 황소 한 마리의 터럭 하나에 해당하는 손해가 있다고 한다.
  상제님께서는 오선위기혈에 최수운을 초혼하여 장사하는 공사를 보셨다. 하지만 세상 사람 중에 그것을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풍수학자인 어느 교수도 오선위기혈을 찾아 이곳을 다녀갔는데, 오선위기혈 자리 부근에 가면 문터바위 절벽 끝에 묘 하나가 있고 그 위에 소나무가 있으며 묘 옆의 바위는 가로세로 금이 가 있어 바둑판을 연상케 한다고 말했다. 절벽 끝은 경사진 2평 남짓한 정도의 평평한 바위 위에 흙으로 덮은 묘 하나가 있고 위쪽에는 소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소나무는 우리 도장 숭도문의 오선위기 벽화에 나오는 한그루의 소나무를 연상케 한다. 하지만 어디가 정확한 오선위기혈 자리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이 근방이 오선위기의 혈자리로 추정되는 곳일 뿐이다. 바위 위의 묘를 바라보니 맨몸으로도 오르기 힘든 바위 절벽 위에 어떻게 운구하고, 흙 하나 없는 바위 위에 어떻게 그 많은 흙을 가져와서 묘를 썼는지 그 정성은 놀라우나 인존시대에는 다 부질없는 일이다.


▲ 문터바위의 오선위기혈 추정지 항공촬영



  바위 정상에 올라서서 앞을 바라보니 탁 트인 절경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힘들었던 피로감이 한 번에 날아가고 가슴이 후련해졌다. 산 아래를 바라보니 옥녀봉과 무직산, 성미산 세 개의 산봉우리가 우뚝 솟아 한눈에 들어왔다. 우측 뒤로는 큰지붕과 좌측 뒤에 깃대봉이 있는 모습을 그려보니 다섯 개의 산봉우리가 이곳을 중심으로 둘러있는 형국이었다. 이렇게 오선위기혈을 중심으로 다섯 개의 봉우리가 둘러있는 모습은 마치 바둑판을 가운데 두고 다섯 신선이 바둑을 두는 듯한 형국이다. 또한, 바닥의 바위는 정말 바둑판 모양처럼 가로세로 직사각형 형태로 불규칙하게 금이 가 있었다. 회문산의 바위들은 이렇게 직사각형의 형태로 갈라지고 깨어지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 오선위기혈 추정지 부근 기석 (좌), 회문산의 기석 (우)



  오선위기혈 추정지에서 나와 다시 바위 능선을 따라 산 위로 올라갔다. 다행히 돌아올 때는 한결 가볍게 올라올 수 있었다. 답사를 마무리하고 회문산을 내려오면서 주위의 묘를 바라보니 많은 생각이 들었다. 명당은 자리만 차지한다고 해서 기운이 응하는 것이 아니라고 본다. 홍성문은 명당의 혈처(穴處)를 찾기 위한 노력보다 인간의 바른 도리를 깨달아 적선(積善)과 적덕(積德)을 실천하면 하늘이 혈처를 점지해 준다고 「회문산가」를 통해 말하고 있다.08 상제님께서 단주의 해원도수를 회문산 오선위기혈에 붙여 조선 국운을 돌리시고 우리나라가 좌상에서 득천하(得天下) 하는 공사를 보신 곳이다. 지금은 상제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인존시대이므로 사람이 명당인 때다. 그러므로 신명은 사람을 통해 용사하니, 도인들은 땅의 명당을 찾기보다 덕을 닦고 사람을 올바르게 대우할 때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01 공사 3장 5절 참조.
02 사명당(四明堂)의 정기를 합하는 공사로 순창 회문산의 오선위기형과 무안 승달산(僧達山)의 호승예불형(胡僧禮佛形)과 장성 손룡의 선녀직금형(仙女織錦形)과 태인 배례밭의 군신봉조형(群臣奉詔形)의 4명당을 갱생하는 공사이다(행록 5장 15절 참조).
03 사패지(賜牌地): 고려ㆍ조선 시대에 임금이 내려 준 논밭. 주로 외교와 국방 따위의 분야에서 나라에 큰 공을 세운 왕족이나 벼슬아치에게 내려 주는 토지.
04 《대순회보》 188호, 「전경 속 역사인물: 홍성문(洪成文)」, 참조.
05 소강절의 주역에 대한 시.
須探月窟方知物(수탐월굴방지물) 월굴을 살펴본 후에야 만물이 드러나는 이치를 알 것이요
未躡天根豈識人(미섭천근기식인) 천근을 밟지 못한다면 어찌 사람의 근원을 안다하랴
乾遇巽時觀月窟(건우손시관월굴) 건괘와 손괘가 만날 때 월굴을 보고
地逢雷處見天根(지봉뇌처견천근) 지괘와 뇌괘가 만나는 곳에서 천근을 보네
天根月窟閒往來(천근월굴한왕래) 천근과 월굴이 한가로이 왕래하니
三十六宮都是春(삼십육궁도시춘) 삼십육궁이 모두 봄이라네
06 홍성문, 「회문산가」 중 오선위기혈에 관한 내용.
07 민병삼, 「증산의 풍수물형과 해원사상」, 『신종교연구』 제33집 (2015), p.162.
08 김보근, 「<回文山歌>에 나타난 風水理論과 그 文學的 變容의 樣相」, 『한민족문화연구』15, 2004. p.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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