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너별 보기
   daesoon.org  
대순151년(2021) 12월

이전호 다음호

 

도전님 훈시 종단소식 전경 성구 정심원 기자 수첩 대순 광장 내가 본 대순진리회 생각이 있는 풍경 지방 회관 소개 문화 산책 대순문예 도서관 소식 영화 속으로 알립니다

대순문예 : 운명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제13회 대순문예공모전 산문부문 우수


운명



중화 방면 평도인 김석겸




#운명


  어머님은 심심산골에서 나물을 캐시기도 전에 소나무 가지 끝 저 멀리 푸르고 높은 하늘을 훨훨 날아가는 눈부시도록 하얀 학을 품에 안고자 했다. 그 바람은 현실이 되었고, 갑자기 한 마리의 학이 어머님 앞으로 떨어졌다.




#출산


  20세를 간신히 넘기고 시집오신 어머님께서는 딸 아들의 가족 계획을 완벽히 완수하고도 할아버지의 불호령과 바지게 작대기가 세 동강이가 날 정도의 강압과 구타에 못 이겨 어쩔 수 없이 원치 않는 아들 하나를 더 낳아야만 했다. 그렇게 운명의 다섯 형제 끝에 나는 원치 않는 탄생을 하고야 말았다.
  그래서일까 원치 않던 그 아들은 출생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의 실수로 한쪽 눈이 영원히 실명이 되고 말았다.



#백내장


  초등학교 저학년 때 단체검진을 온 의사는 마치 위대한 발견을 한 듯 집요하게 물었다.
  “너 백내장이지?”
  몇 번을 물어도 대답이 없자 급기야 담임 선생님을 불러 꼬치꼬치 캐물었다.
  “너 백내장이 맞지? 왜 대답을 안 해?”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강압적으로 물어보는 그 표정과 반 급우들의 웅성거리는 소리에 아무 저항조차 할 수 없었던 난 결국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되풀이되는 운명


  칠판 글씨는 잘 보이지 않았지만, 수업을 마친 후에 도서관에서 만날 수 있는 고생대 생물(공룡) 그림과 식물도감 그리고 동화책과 어린이를 위한 세계 명작 소설과 과학자들의 연구 업적의 책들은 어린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는 부족하지 않았다. 적어도 실명된 눈을 두 번째 다치기 전까지는 그랬다.



#안경


  불길한 예감이었을까? 두 번째 사고가 있기 얼마 전 어머니는 눈 보호 차원에서 난생처음 안경 가게에 나를 데리고 가셨다. 하지만 시커먼 뿔테 안경조차도 선뜻 구매하기 힘들 정도로 집안 사정이 좋지 못함을 알아차리기란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중학교 입학과 동시에 두 번째 안경을 사주셨다. 물론 첫 번째 안경은 두 번째 사고 이후에 사주셨지만, 부주의로 파손되고는 안경 없이 초등학교 2년을 더 다녀야만 했다. 한창 놀기 좋아하고 운동을 좋아했던 터라 운동 중에 부서진 안경을 끝으로 또 3년간 안경 없이 버텨야 했다. 한번 파손된 안경은 몇 년이 지나도록 어째서 다시 사주지 않으셨는지 지금으로서도 참 억울한 마음이 남는다. 물론 칠판 글씨가 보이지 않아 아예 영어책 한 권을 통째로 다 외우고 다녔을 정도로 그렇게 학업에 소홀하지는 않았다.



#70년대


  70년대 시골 어촌 마을의 삶이란 대체로 비슷했다. 적어도 내가 사는 동네와 그 일대에는 그랬다. 어른들은 고된 노동과 가난에 시달렸고, 저녁이면 이집 저집 아버지의 술주정에 시달려야 했다. 자녀들은 학업으로부터 내팽개쳐진 채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일찍 사회에 던져져 냉엄한 현실에 적응해야만 했다.



#부러진 날개


  날고 싶었다.
  밤의 창문을 열고 무한한 자유의 어둠 속으로 몸을 날려 뛰어들고 싶었다.
  그래서 영원한 자유 위에 서고 싶었다.
  여러 번에 걸친 극단적인 자살 시도는 더더욱 삶을 피폐하게 만들었다.




#악연


  그랬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철저히 두 번이나 타인에 의해 꺾이고 뽑힌 날개로는 날 수 없었다.



#절망, 절대고독


  물론 “그러한 사고를 겪고 절망과 우울함에 분노하는 이가 어디 너 하나뿐인가? 그러한 사고에 의한 장애를 극복하고 위대한 업적을 남긴 이가 한둘이 아님을 어찌 모르는가?” 이렇게 말하며 나를 꾸짖으며 진창이(낳고 싶지 않았고 원치 않게 생겨서 애먹이는 자식)라며 폭언을 일삼는 사람들은 다름 아닌 가족이었다.
  더욱이 “너 때문에 우리가 하고픈 공부를 포기해야만 했다.”라며 원망과 분노의 말을 쏟아 낼 때면 어디에다 하소연조차 할 수 없었다. 가족들, 특히 어머니는 모든 잘못을 고스란히 나에게 돌렸다.
  “니가 유독 그렇게 울지만 않았어도….”
  늘 어머니께서 나를 원망하며 외치는 말이었다. 두 살배기 아기가 무슨 잘못이 있었을까?
  난 철저히 죄인이어야만 했고, 그들의 인생을 망친 원흉이자 적이었다. 무서운 것은 지금도 그들의 생각과 말들은 변함이 없다는 것이다.




#불가항력


  어쩔 수 없었다.
  시간을 되돌리지 않고서는
  현재의 결과를 뒤바꿀 수 없다.
  그것이 너의 잘못이든 아니든!



#발원


  별빛은 분노에 지친 나를 차분하게 가라앉혀 주었고, 언제인가부터 하늘에 발원하기 시작했다.
  “부디 세상에 쓰임이 되는 삶을 살게 하소서!”
  “전쟁, 기아, 공포, 천재지변, 노, 병, 사도 없는 세상이 되게 하소서!”



#입도


  학교를 졸업하고 전공과는 다르게 디자인 교육을 일 년간 더 받고 직장 생활을 시작했지만, 마음은 늘 산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주위에서 그토록 원했고 자신도 그렇게 원했던, 하지만 부모님이 그토록 반대했던, 미대 진학을 할 수 있는 형편이었다면 아마 지금쯤 그림쟁이의 삶으로 행복하게 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때마침 어느 날 아침 기침과 함께 검붉은 피가 토해져 나왔다.
  “그래 이제 떠날 때가 되었구나! 산으로 가자.”
  담배를 끊고 사회생활을 정리하고 입산 마음을 먹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입도하게 되었다.



#불고가사


  수도를 제대로 하고 운수를 받으려면 불고가사를 해야만 된다고 했다. 난 도무지 올바른 것 같지 않아 여러 번에 걸쳐 따져 물었다. 아마 그렇게 선각들의 눈 밖에 난 것도 이상치 않았을 것이다.
  “정상적으로 사회생활도 하고 결혼도 하면서 수도를 하는 것이 맞지, 모든 것 다 버리고 불고가사가 웬 말입니까? 그게 올바른 도라면 사기지요?” 나의 이 당돌한 발언은 그 당시에는 참으로 하극상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나도 그래야만 수도가 된다니, 까짓것 그렇게 대단하게 생각하는 불고가사 못할 게 뭐 있냐? 나도 불고가사 할 것을 선감께 말씀드렸으나, 일언지하에 거절하셨다. 그래도 회실에서 생활하며 포덕하는 것은 허락하시며 일꾼 아닌 준일꾼으로 누구보다도 열심히 했다.
  한번은 선감께서 나를 보고 “김외수 두려워서 제대로 기도 안 모시고는 안 되겠다.” 하시면서 여러 사람 앞에서 무안을 주셨다. 한편으론 감사하기도 했다. 우리 선감처럼 그렇게 진솔하시고 따사롭고 아름답고 사리 분별이 정확한 분이 또 계실까 싶다.
  가끔 30년 전 처음 입도했을 때를 되돌아보면 괜히 겸연쩍고 죄송한 맘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한편으론 아쉬운 마음도 없지는 않다. 다 아름다운 추억이었고 되돌릴 수 없는 소중하고 그리운 시간이라 마음속 깊이 간직하고 싶다.



#수도


  솔직히 30년이 다 된 지금도 수도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마음? 내 마음을 밝히는 것이 어디 쉬우랴? 내 마음이니까 내 마음대로 하고 싶은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고 내가 사회도덕을 어기고 폭언을 일삼는 그런 일은 하지 않는 그래도 도덕군자 축에는 못 들어도 나름 도덕을 숭상하고 지키고 생활하려는 그런대로 봐줄 만한 인간은 아닌가? 이렇게 생각하면서 그래도 조금 더 스스로 들여다보고 고쳐서 가보자 이렇게 스스로 위하는 것도 이제는 그렇게 낯설지는 않다.



#천지공사


  그렇다. 상제님께서 인세에 내려오셔서 천, 지, 인 삼계를 뜯어고쳐 모든 만물이 화평하게 살아갈 새로운 법을 짜 놓으셨단다. 더 말하고 설명해서 뭣하랴! 이런 분이 계셨다니! 이것 하나에 모든 것에 수긍이 갔다. 설령 그것이 거짓말 일지라도 감히 누가 천, 지, 인 삼계를 뜯어고쳐 모든 만물의 화평을 이야기했을까?
  지금도 마음 깊은 곳을 커다랗게 소리쳐 메아리쳐 울리는 그 한마디 “천지공사”!



#만인함열(萬人咸悅)


  상제님께서 대원사에서 공부를 마치시고 산길을 내려오실 때 상제님을 기다리고 있는 많은 짐승에게 “너희들도 후천 해원을 바라느냐? 알았으니 그만 물러가거라” 이 말씀에 폭풍 감동한 이가 어디 한둘이었으랴? 드라마 허준을 보면서 폭풍 오열했던 그것과는 확연히 달랐다.
  또한, 어느 날 함열에 이르셔서 ‘만인함열’이라며 기뻐하신 그 구절은 영원히 가슴속에 남아 가끔은 나도 모르게 감동의 눈물을 흘리는 것은 너무나도 감사하고 감사한 일이다. 단 하루라도 모든 사람이 웃고, 모든 만물이 화평할 수 있는 그런 세상을 볼 수 있다면…. 글을 쓰면서도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른다.



#운수

  ‘수도의 목적은 도통’이라 했다. 스스로 속이지 않는 무자기가 되어야 수도의 기본을 헤쳐 나간다 하지 않는가? 그런 면에서 보면 나는 무자기는커녕 스스로 맘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는 소인배 중의 소인배 아닌가?
  ‘운수’, ‘도통’ 이런 것은 솔직히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다. 오직 모든 만물이 화평하고 상생하며 사는 그런 날이 온다면 더 바랄 것이 무엇이랴!!



#공부


  그랬다.
  선감께서 몇 번을 시학 공부를 가라고 말씀하셨다. 그럴 때마다 “아직 준비가 덜 되었습니다”라고 말씀드리면서 거절을 하곤 했다. 도장에서 통영까지의 거리는 그렇게 가깝지는 않다. 더구나 잘 보이지 않고 가끔은 비문증으로 먼지 같은 것이 시야를 가릴 때면 한 눈으로 화물차들이 질주하는 야간 고속도로를 운행하기란 그렇게 쉽지는 않다.
  어느 날 도착 40여 분을 남기고 정말 1m 앞도 전혀 보이지 않는 안개가 자욱한 밤 고속도로를 내달리면서도 감동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대의를 이루는 일에 쓰임이 된다면, 그래서 모든 만물이 화평하고 상생의 세상이 온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는 마음이 있어 나를 지켜 주셨나 싶기도 해서 늘 죄송스럽고 감사한 마음을 지울 수 없다. 부족하고 부족하지만, 조금이라도 쓰임이 될 수 있다면 너무나 감사하고 감사할 뿐이다.



#삶과 수도의 연속

  멀리 보이는 도시의 건물들 사이로 청록과 코발트 빛 한려수도의 바다가 보인다. 바다 위로는 잡힐 듯 아기자기한 섬들이 떠 있고, 파란 하늘 속에는 하얀 구름이 갖가지 모양을 만들어 가며 부드러운 바람과 함께 흘러간다. 나는 이 감동을 주체할 수 없어 오늘도 사각의 새하얀 캔버스를 들고 나선다. 교통사고 후 불편한 몸으로 입으로 붓을 물고 그림을 그리면서 구족화가로 활동하시는 선각 생각이 가끔씩 나서 더더욱 열심히 그림을 그리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 2021년 4월 통영시 동피랑에서 풍경 사생 중



  늘 감사하고 감사한 상제님이 계시고 또 앞서 고생하신 선각들이 있고, 대의를 모시는 귀하고 귀한 대순진리회의 도우들이 있으니 더 뭘 바라겠는가? 새하얀 사각의 캔버스에는 전쟁도, 기아도, 공포도, 상극도 억울함도 없는 상생의 세상! 단 하루라도 그런 상생의 세상을 맞이할 수 있다면!
  상제님 부족하고 부족하지만 모든 만물이 화평한 세상이 되도록 자그마한 쓰임이라도 되게 하소서!
  나는 아직 살아 있고, 숨이 멈추는 그 날까지 이 감동과 대의를 실천함을 절대 멈출 수 없다.




관련글 더보기 인쇄 다음페이지

Copyright (C) 2009 DAESOONJINRIHOE All Rights Reserved.
경기도 여주시 강천면 강천로 882 대순진리회 교무부 tel : 031-887-9301 mail : gyomubu@daesoon.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