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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52년(2022)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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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누고 싶은 이야기 : 아! 이래서 상제님이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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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래서 상제님이시구나!



중흥1-12 방면 선사 오현주


▲ 대원사 입구 골짜기 (2018년 11월 촬영)



  풋풋한 20살, 대학교에 입학한 지 얼마 안 되어 입도식을 했습니다. 그전에 여러 종교를 다녀 보았지만, 점점 의문만 생기고 회의적이었던 저는 상제님에 대해 알아갈수록 신기했습니다. ‘아! 이래서 상제님이시구나!’ 감탄했던 부분들이 믿음으로 쌓였습니다. 처음 마음에 와닿았던 것은 상제님께서는 모든 생명에 공평하시다는 점이었습니다.
  입도 전, 기독교를 다녀 보았고 불교에도 관심이 있었습니다. 종교는 사람을 위하는데 상제님께서는 식물, 동물, 척, 마 등 다 동등하게 대해 주신다는 것이 신선했습니다. 저는 평상시 사람이야 스스로 만물의 영장이라고 교만하게 치켜세우겠지만 하늘이 보셨을 때는 구분 없이 다 자식 같은 존재일 거로 생각했습니다.
  저는 입도 당시 법학과 학생이었고 세상의 불공평에 분노가 꽉 차 있어서 학생운동에 종종 참여했습니다. 그런데 『전경』을 접하고 “한 떼의 새가 배를 채우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니 어찌 천하 사람의 배를 채워 주기를 뜻하리오”(교법 1장 15절)라는 말씀과 “새짐승이 한 알씩 쪼아 먹는 것을 그렇게 못마땅히 여기니 사람을 먹일 수 있겠나이까”(행록 2장 22절)라는 구절에서 상제님의 공평무사하심이 느껴졌습니다. 상제님 재세 시는 곡식 한 톨이 귀하던 시절이라 사람이 새를 쫓는 게 당연한 건데, 상제님께서는 새들의 배고픔도 알아주셨습니다.
  대원사에서 49일 공부를 마치고 나오실 때도 대원사 골짜기에 각색의 새와 각종의 짐승이 갑자기 모여들어 반기면서 무엇을 애원하는 듯한 모습을 보시고 상제님께서 “너희 무리들도 후천 해원을 구하려 함인가”(행록 2장 15절)라고 알아주셨습니다. 또, 어리실 때부터 나무심기를 즐기고 초목 하나 꺾지 아니하시고 지극히 작은 곤충도 해치지 않으실 만큼 호생의 덕이 두터우셨다(행록 1장 11절)는 구절은 초목, 작은 곤충의 생명까지 귀하게 생각하신다는 것입니다. 개미를 꾹꾹 눌러 죽이기도 하고 풀을 짓이겨 소꿉놀이했던 저의 어린 시절이 생각나면서 부끄러워졌습니다.
  게다가 “나는 해마를 위주하므로 나를 따르는 자는 먼저 복마의 발동이 있으리니 복마의 발동을 잘 견디어야 해원하리라”(교법 2장 15절)고 타이르시는 구절에서는 구마(驅魔)를 하는 종교들과 달리, 상제님께서는 해마(解魔)를 위주로 한다고 하심이 부모의 마음을 나타내는 것 같습니다. 부모님은 하나같이 자식을 아낍니다. 특히 잘나고 든든한 자식보다, 늘 말썽을 부리면서 고집스럽고 아직 자리를 못 잡은 자식을 염려하십니다. 마는 자기의 맺힌 것밖에 모르는 존재인데, 그런 아픈 손가락 같은 자식을 풀어주고 살피시겠다는 마음은 부모가 아니고서야 품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상제께서 벽을 향하여 누우시더니 갑자기 종도들에게 가라사대 “이제 온 누리가 멸망하게 되었는데 모두 구출하기 어려우니 어찌 원통하지 않으리오” 하시고 크게 슬퍼하셨도다.(​행록 5장 24절)는 구절을 처음 보면서, 어머니가 생각났습니다. 어머니께서 누워있는 순간에도 늘 자식 걱정, 집안 걱정하시며 안타까워하는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상제님께서도 온 누리의 멸망에서 구하지 못하는 생명을 걱정하며 슬퍼하셨습니다.





  입도 전, 다른 종교에서 가졌던 의문을 깨끗이 씻어준 구절이 있습니다. 공우가 상제님을 찾아뵙고 도통을 베풀어 주시기를 청했는데 상제님께서 꾸짖으시길 “각 성(姓)의 선령신이 한 명씩 천상 공정에 참여하여 기다리고 있는 중이니 이제 만일 한 사람에게 도통을 베풀면 모든 선령신들이 모여 편벽됨을 힐난하리라. 그러므로 나는 사정을 볼 수 없도다. 도통은 이후 각기 닦은 바에 따라 열리리라”(교운 1장 33절)는 구절입니다.
  예전에는 ‘왜 이 종교만 믿어야 천국에 가고 안 믿으면 지옥에 가는 걸까? 너무 이기적이고 불공평하다’ 생각했습니다. 훌륭한 위인 중에는 그 종교를 믿지 않았던 분들도 많은데 말입니다. 위 구절에서는 종도라도 사사로운 정으로 봐줄 수 없고 도통을 각기 닦은 바에 따라 열린다는 말씀에 박하사탕을 먹은 듯이 가슴이 뻥 뚫렸습니다.
  “이러니 상제님이시지!”
  사사로움이 없으신 상제님께서 내어놓으신 법이라면 평등 세상이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학생운동을 통해 세상을 바꾸는 것보다 수도를 통해 우주가 바뀌는 데 동참하는 게 더 빨라 보였습니다. 인간적인 차원에서는 박공우가 도통을 청탁 드렸던 마음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아마 그때 당시 저도 종도였다면 그랬을 것 같습니다. 그 청을 꾸짖으셨지만, 상제님께서는 도통과 개벽을 하루빨리 열어주시길 바라는 종도들의 힘든 마음을 다 아셨을 것이고 또 안타까우셨을 것 같습니다. 부모님께서는 자식 교육을 위해 꾸중도 하시지만 마음은 늘 자식을 향한 따뜻한 마음을 지니신 것처럼 말입니다.
  어느덧 훌쩍 도 안에 있는 세월이 많이 지나갔습니다. 입도했던 초심을 회상하니 마음이 새로워집니다. 모든 생명을 위하시고, 모든 일에 공평무사하신 천지의 부모이신 상제님의 마음을 본받아 앞으로도 수도를 열심히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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