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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52년(2022)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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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문예 공모전 : 강낭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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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낭 콩



산문 최우수

금릉5-8 방면 교무 곽지영




  2022년 7월. 오랜만에 토성도장 수호를 서게 되었다. 수호가 아닌 시간대에는 꼬박꼬박 작업을 나갔다. 주로 영농작업에 많이 참여하였다. 이맘때엔 싱싱하게 열린 오이나 가지 같은 농작물을 수확하고, 무성하게 올라온 농사 방해꾼 잡초를 뽑아주기도 한다. 일주일이란 시간 중, 작업을 하며 싱그럽게 열린 강낭콩 따기를 많이 했다. 강낭콩은 녹색의 싱싱한 꼬투리로 태어나 붉은빛 무늬를 뽐내며 어여쁘게 무르익다 갈색의 꼬투리로 말라간다. 꼬투리가 갈색으로 조금씩 변하고, 콩잎이 낙엽이 지는 시기가 수확의 적기다.
  강낭콩밭은 꽤 길고 넓었다. 각자 한 고랑씩 맡아 붉게 물든 강낭콩 열매를 땄다. 어찌나 많던지, 밭 자체도 넓은데다 줄기마다 꼬투리가 주렁주렁 열려있었다. 뿌리가 뽑혀 이미 시들어버린 콩도 있고, 꼬투리 전체가 갈색을 띠며 말라 있었지만 까보면 껍질과 달리 아직 상태가 좋은 콩들도 있었다. 잘 익은 콩부터, 푸르름 가득 머금은 채 붉게 물들길 기다리는 연둣빛의 덜 익은 콩까지, 다양한 콩을 볼 수 있었다.
  처음에는 붉게 익은 열매들을 열심히 땄다. 밭이 길어서 한 줄을 채 마무리하지 못하고 작업을 마칠 때가 많았다. 아직 한 고랑도 못 끝냈는데 이미 지나온 고랑의 덜 익었던 콩들은 뜨거운 햇빛을 받으며 다시 붉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식당에서 밥과 함께 푹 익어나온 콩은 참 맛이 좋았다. 탐스럽게 열려 보기도 좋고 맛도 좋은 콩들을 열심히 수확하여 많은 사람이 먹을 수 있었으면 했다. 이런 마음 가득 품고 작업하니 어느새 콩 바구니는 가득 찼고, 가득 찬 바구니만큼 수확의 기쁨과 뿌듯함이 자리했다.
  뜨겁다 못해 따가운 태양 빛 아래, 얼굴은 강낭콩처럼 발갛게 물들어가고 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콩을 따기만 하면 되는 간단한 작업이지만 더운 날을 힘들어하는 나에겐 작업이 고되게 느껴지기도 하고, 지치는 순간도 있어 쉽지만은 않았다. 그러나 더위에 지쳐 힘이 들어 더 부지런히 수확하지 못했다는 아쉬움과 귀하게 맺어진 작물을 ‘놓칠 수 없지!’ 하는 마음이 생겨 하루하루 콩을 딸수록 애정이 생겼다.
  봄부터 부단히 사람의 노력과 정성이 들어가고, 적절한 하늘의 덕화로 열린 작물이기에 귀하게 느껴졌다. 계속 따도 줄지 않는 양에 그저 아쉽고 안타까운 마음이 많이 들었다. 국에 들어가는 파나, 양념하며 첨가된 깨는 깔끔하게 먹지 않을 때가 많았는데, 이런 과정을 경험하며 쉽지 않은 노력으로 태어난 것을 생각하니 모든 작물이 소중한 것이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작은 것이지만 성장 과정이 절대 가볍지는 않았다.
  이런 작물들이 잘 자라려면 여름철 농사에 방해가 되는 잡초를 잘 뽑아줘야 한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 제초 매트를 깔아준다. 그래도 잡초는 작은 틈을 비집고 강인한 생명력으로 풀씨를 내려 자라난다. 잡초를 제때 제거하지 않으면 키가 훌쩍 자라 작물들이 안보일 만큼 무성해진다. 따라서 주기적으로 자라난 풀들은 호미나 예초기를 사용해 적절하게 없애줘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원하는 작물에 영양분이 더욱 잘 전달된다. 가지치기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다양한 작업을 통해 여러 가지를 배우며, 도우들과 즐겁게 작업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잡초를 뽑는 일은 재밌게 느껴지지 않았다. 뙤약볕에서 풀을 뽑으면 너무 힘들고, 가끔 개구리나 이상한 벌레들이 튀어나오면 깜짝 놀라서 불편할 때가 많았다. 가만히 앉아서 하는 작업은 인내심이 부족한 나에게 때때로 따분함을 안겨준다. 이에 비해 수확이나 몸을 쓰는 다른 작업은 협동하거나 활동적일수록 상쾌하고, 뿌듯함과 재밌게 느껴지는 순간들이 많았다. 폼생폼사라는 말이 있듯, 나는 ‘잼생잼사’다. 재미에 의해 살고 재미에 의해 죽는다. 재미가 있으면 없던 힘도 나고, 체력적으로 지치는 것도 덜하다. 하지만 재미가 없으면 의욕도 떨어지고 마지못해 하는 순간들도 생긴다. 인생이란 게 항상 재미있는 일이 대기하는 것은 아니라서 재미와 노잼 사이에서 늘 갈팡질팡하며 헤매었다.





  봄이 시작될 무렵, 농작물 씨를 싹틔워 밭에 옮겨 심을 때는 파릇파릇한 생명력과 함께 활기가 느껴진다. 작업하기 딱 좋은 온화한 온도, 밭으로 옮겨져 쑥쑥 커가는 모습은 늘 새롭고 신선하다. 하지만 풀매기는 ‘대체 이렇게 많은 걸 언제, 어느새 하지?’라는 마음의 중압감으로 찾아온다. 더군다나 같이 작업해도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 게 아니라 각자 맡은 부분을 해나간다. 긴 고랑, 넓은 밭은 망망대해처럼 끝없게 느껴진다.
  토성도장 수호를 마치고 돌아와 여주에서 수호를 서며 조밭 풀매기를 한 적이 있었다. 한여름이 시작되면서 구름 한 점 없는 날 바람도 없이, 태양을 내 머리 위에 지고서 풀을 맸다. 조 사이마다 자라난 잡초는 예초기가 지나갈 수 없기에 사람의 손을 거쳐 뽑아야 했다. 질기고 억세며 뿌리 또한 깊었다. 사정없이 내리쬐는 더위에 땀은 홍수처럼 쏟아지고, 옷 아래로 가려진 피부에 햇빛의 따가움이 느껴졌다. 무더위와 함께 작업이 마무리되지 않아 계속해서 풀매기 작업 신청이 나왔다. 힘들고 부담스러운 마음에 지원하기를 망설였다. 그래도 도장에서 드릴 수 있는 정성이기에 선각분의 교화를 들으며 주어진 일을 해보기로 다시 마음을 바꿔 먹었다.
  이후 3번의 작업을 거쳐 조밭 풀매기가 마무리되었다. 옆에서 묵묵히 하는 도우를 보며, 내 맞은편에서 함께 해주는 도우가 있어 힘을 내며 작업을 이어 나갔다. 그 시간이 쌓여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풀매기가 끝이 났다.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작업을, 덥고 습하고 축축했던 날씨 속에서 계속해가면서 하기 싫은 마음이 조금씩 비워져 갔다. 지나온 자리는 깨끗하게 풀이 매 져 있었다.




  잡초를 뽑으며 그다지 반갑게 느껴지지 않던 작업 ‘풀매기’에 대해 생각했다. 그동안 늘 하고 싶은 작업에 목말라 애타고, 선호하지 않는 작업은 고민하고 망설이는 나를 돌아보았다. 세상의 모든 일은 저마다 쓰임이 있는 것이다. 그동안 나는 내 입맛에 따라 선호를 붙였고, 경중을 두었고, 쓰임을 따지고 구분 지었다. “좋아하고 재미있는 일은 누구든지 잘할 수 있어요. 그보다는 하기 싫은 일도 심드렁하게 해낼 줄 아는 사람이 오래가고 생산적인 일을 하더라고요”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 말이 다시금 떠올랐다. 좀 느리더라도, 부족하더라도 참여하며 함께 화합해서 해나가면 되겠구나 싶었다. 그게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더운 날 강낭콩을 수확하며 조밭에서 풀을 매며, 나의 좋고 싫음이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하기 싫다는 마음이 들면 선뜻 나서기 망설여지고, 어렵고 부담스러운 일은 피하고 싶었던 지난 시간을 통해 그 마음을 바꾸어 해나가다 보면 배우고 깨닫는 게 생기는 것 같다. 이제는 어떤 일이 주어져도 마음을 쓰며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지. 어느 것 하나 소홀히 여기지 말고, 소중하고 정성스럽게 주어진 일을 해나간다면 좋겠다.
  그런 노력이 쌓여, 햇살 가득 머금고 붉게 물들어가는 강낭콩 꼬투리처럼 어느샌가, 조금씩, 나도 모르는 사이 내 모습들이 바뀌어있지 않을까? 언제 끝나나 싶었던 풀 가득한 고랑을 뒤돌아보니 깨끗하게 다듬어져 있듯.




심사평


‘강낭콩’은 내게는 매력적인 수수께끼로 다가왔다. 생각나는 대로, 보는 대로, 조금씩 흘려놓은 것 같은 단상들이 모여 어떻게 이야기가 되는가를 보여준다. 소소한 ‘그 일’에 대해서는 더 설명하지 않고 장막을 내린 채 진행되는 이야기 방식이 좋다. 전체적으로 평범한 이야기다. 낡은 이야기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중심적 의미망(semantic network)인 소소한 에피소드를 통해, 삶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한다는 데 매력적인 작품이다. 추상적, 개념적 서술로 빨리 넘어가려고 서둘지 말고 ‘강낭콩’처럼 먼저 주변 사물을 관찰할 수 있어야 한다. ‘녹색의 싱싱한 꼬투리로 태어나 붉은빛 무늬를 뽐내며 어여쁘게 무르익다 갈색의 꼬투리로 말라간다. 꼬투리가 갈색으로 조금씩 변하고, 콩잎이 낙엽이 지는 시기가 수확의 적기다!’ 이런 표현은 직접 체험하지 않으면 나오지 못한다. 자신의 체험을 이렇게 관찰하면서 쓰면 독자들은 밭매기의 재미와 노동의 재미를 글쓴이와 함께 공유한다. 읽다 보면 어느 순간, 마치 밭 한가운데서 땀을 흘리고 있는 아름다운 내 모습을 보는 듯한 경이로움을 맛볼 수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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