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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36년(2006)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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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산책 : 유교(儒敎)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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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儒敎)란?

 

글 교무부

  한자문화권에서 수천 년 동안 사상적 주류를 이루어 온 것이 바로 유교이다. 유교와 관계된 문화 현상들은 아직도 우리들의 생활 속에 많이 남아있다. 조상에 대해 제사를 지낸다거나 효(孝)를 중요한 덕목으로 여기는 것 등은 그 단적인 모습일 것이다.

  유교에 대해 우리가 흔히 접근하기 쉬운 태도는 유교를 하나의 종교라기보다 정치철학이나 윤리규범으로 취급하는 것이다. 유교는 현실주의적이고 인간 중심적인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으며 현실정치와도 밀접한 관련을 맺으며 전개되어 왔다. 또한 특정한 교조(敎祖)를 중심으로 조직된 교단이나 사제계급 등이 갖추어져 있지 않고 신(神) 개념이나 내세관 등이 미약한 편이다.    

  그러나 유교는 수천 년 동안 한자문화권에서 살아왔던 수많은 사람들에게 세계를 바라보는 하나의 틀을 제공해 왔고 삶의 나침반 역할을 하였다. 그리고 유교를 공부한 사람들은 인간의 삶을 하늘의 작용과 밀접한 연관 아래 파악하였고, 인간의 본성(本性)에 입각한 생활을 통해 도(道)를 구현함으로써 하늘의 의지에 부합하고자 하였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유교를 윤리규범이나 정치철학으로만 국한시켜 이해하기보다 종교적인 관점에서 파악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면 유교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익히 알려진 대로 유교는 춘추시대(春秋時代) 공자(孔子 : 이름은 구[丘], 기원전 551~479)가 은주시대(殷周時代) 이래의 문화적 전통을 집대성하여 정비한 사상체계이다. 그렇다고 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그리스도교’라고 하듯이 공자의 가르침을 ‘공자교(孔子敎)’라고 하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유가(儒家)·유학(儒學)·유교(儒敎)·유도(儒道) 등으로 지칭되는데, 모두 ‘儒’자를 공통으로 사용하고 있다. 따라서 이 ‘儒’란 글자가 지니는 원래의 의미를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선 그 문자의 구성이  (사람 인)+需(구할 수)로 되어 있음을 보면 ‘사람으로서 마땅히 구하여 갖추어야 한다’는 뜻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설문해자(說文解字)』를 비롯한 여러 자전에는 유(柔, 부드럽다)·윤(潤, 젖다) 등의 뜻이 있어 ‘어진 이가 바른 도리를 가르쳐 상대방의 마음속에 무리 없이 들어가게 한다’는 의미로 풀이될 수 있다.

  이러한 사전적인 의미뿐만 아니라 실제에 있어서도, 주나라 전통 문화인 예(禮)를 익히고 연구하여 교육을 통해 전수해나가는 전문 지식인들을 유(儒) 혹은 유자(儒者)라 했다. 이처럼 원래 ‘유’란 용어는 넓은 의미의 교육자를 뜻하는 말이었다. 그러다가 공자의 학술을 연구하고 존숭(尊崇)하는 사람들을 ‘유’라고 통칭하면서 좁은 의미의 한 학파인 유가(儒家)를 지칭하게 되었다.

  공자 이후 유교는 전국시대(戰國時代) 말기의 맹자(孟子)와 순자(荀子)를 거치면서 사상적 내용을 풍부히 하고 사회적인 영향력을 확대시켜 나갔으며, 한(漢)나라 때에는 여타의 사상들을 누르고 국교(國敎)의 지위를 획득하게 된다. 이때부터 유교는 인간의 핵심적 교양으로 전 중국과 주변국가에 확산되었다. 그리고 개인과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는 것이 천(天)의 의지라고 믿는 재이사상(災異思想)이 발달함에 따라, 천에 대한 제사로서 제천의례(祭天儀禮)가 유교의례의 중심을 이루었다.  

  그 후 당대(唐代)까지 계속되던 경학(經學) 중심의 유학이 송대(宋代)에 이르면 전혀 다른 성격으로 변모한다. 신유학(新儒學)으로 불리는 송대의 유교는, 수기(修己)·치인(治人)이란 유교의 이념에 입각하여 개인의 엄격한 수양과 강력한 사회적 실천을 중시하였다. 이러한 풍조는 윤리도덕을 실천하여 성품을 올바르게 구현함으로써 천명(天命)을 다한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의례의 측면에서도 송대에는 관혼상제의 개인의례가 일반화되어 한대 이래의 국가의례(제천의례)와 함께 유교의 양대 의례로 정착되었다.

  인간의 내면적 성찰과 사회적 실천을 통해 도(道)를 구현하고자 하는 송대 유교의 태도는 명(明)·청(淸)대를 거쳐 근세에 이르기까지 계승되어 중세 및 근대 유교의 한 특징을 이루고 있다. 명대 이래 성행한 양명학(陽明學)도 구체적 방법론에 있어서는 다르지만 송대 유교의 전통과 큰 차이가 없다고 하겠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공자에 의해 체계화된 유교는 그의 사후 하나의 학파를 형성하였고 시대에 따라 두 가지의 커다란 흐름이 있었다. 하나는 경전의 해석을 통해 고대 문화의 전통을 계승하며 하늘을 직접적인 신앙의 대상으로 숭배하는 태도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의 내면적 성찰과 수양 및 사회적 윤리규범의 실천을 통해 성인이나 군자가 되고자 하는 태도였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들을 유교의 형성과 발전, 그리고 변천과정 등을 통해 살펴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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