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7호 다시보는 우리문화 : 전통혼례(傳統婚禮)

전통혼례(傳統婚禮)

 

 

글 교무부

 

 

 

  예로부터 우리선조들은 혼례(婚禮)를 음양(陰陽)의 만남이라 하여 그 의식시간을 양[낮]과 음[밤]이 만나는 해질녘에 거행하였다. 혼례(婚禮) ‘혼(婚)’자에 ‘날 저물 혼(昏)’의 의미가 부여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우리나라 전통 결혼식인 혼례는 혼인(婚姻)이라는 명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의식절차를 거쳐 남녀가 부부가 되는 혼인은 남자가 여자에게 장가간다는 뜻의 ‘혼(婚)’과 여자가 의지할 곳을 찾아 시집간다는 뜻의 ‘인(姻)’이 합쳐져 장가들고, 시집간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혼인(婚姻)의 의의

  혼인은 일생일대의 경사를 넘어 인륜의 시작이라 하여 대례(大禮) 또는 인륜지대사(人倫之大事)라고 불려왔다. 이처럼 관혼상제 인륜지대사의 한부분에 포함되는 혼인에는 몇 가지 숭고한 의의가 있다.

  그 첫 번째는 하나의 관습화된 제도를 통해 남녀 두 사람이 서로 하나 되어 육체적, 정신적 사랑을 갖는다는 점. 둘째, 혼인을 통해 가정이라는 하나의 공동생활을 하게 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처럼 혼인은 음과 양이 합하여 삼라만상이 창조되는 대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는 숭고한 일이다. 이 때문에 『고례』에는 혼인의 의의를 “천지의 이치에 순응하고 인정의 마땅함에 합하는 것(順天地之理 合人情之宜)이라고 정의내리기도 했다. 이처럼 대자연의 섭리에 따라 순수한 인정을 합하는 혼인은 그 의의도 중요하지만 혼인을 통해 하나가 된 부부에게는 그 의의만큼이나 중요한 책임도 따른다. 그 책임이란 혼인을 통해 하나가 된 부부가 지켜나가야 할 의무를 뜻하는 것으로, 혼인을 통해 하나가 된 부부는 서로 화목하여 평화로운 가정을 이루고, 서로 공경하고 사랑하며 인내하는 도리를 지켜 평생 동안 고락을 같이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통혼례의 유래와 변천

  『대대례(大戴禮)』라는 책에 보면 관혼은 사람의 시작이라 했다. 혼인은 곧 인륜의 시초라는 뜻이다. 또 『공자가어』는 얼음이 녹으면 농상이 시작되고 혼례를 치르면 사람의 일이 시작된다고 했다. 이로 미루어 혼인제도는 기원전부터 시작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의 경우, 주자의 『문공가례』를 준용하여 혼례를 치러 오다가 조선 선조 때에 이르러 우리의 예절과 풍습을 첨가하여 『가례집람』을 펴냄으로써 우리의 주체적 혼례의식을 정립하였다. 그리고 숙종 때에 다시 실천하기 편리하도록 『사례편람』을 간행하여 대중화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는데 우리 전통혼례는 바로 이 『사례편람』에 바탕을 둔 것이다.

  한편 혼인 제도는 지역별 특성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변형되어 왔다. 부여에서는 일부일처제였고, 옥저에서는 돈을 받고 혼인하는 매매결혼이 행해졌다는 기록이 있다. 고구려에서는 신부의 집 뒤뜰에 서옥이라는 조그만 집을 짓고 사위가 거처하다가 자식을 낳아 성장한 다음에 비로소 아내를 데리고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이는 모계씨족시대의 유풍으로 보인다. 그러나 고려를 거쳐 조선조로 들어와서는 유교의 가르침에 의한 혼례가 유가의 예문에 따라 행해졌었다. 그 후 서구의 문화가 들어오면서부터 거의 모두가 신식에 의한 혼례를 행하게 되었고, 혹 전통적인 옛날의 의식을 답습하는 혼례라 하더라도 많이 간소화되었다.

 

 

전통혼례의 절차

  혼례는 부부가 되는데 따르는 모든 의식절차를 일컫는 말로, 예로부터 인간의 대사(大事)라 하여 엄중한 의식을 치러 왔다. 전통혼례의 의식절차는 시행초기에는 6례(六禮)를 갖추어 거행하였다.

 

 

 

  6례란 『사혼례(士婚禮)』에서 나온 말로 납채(納采), 문명(問名), 납길(納吉), 납징(納徵), 청기(請期), 친영(新迎)을 갖추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이것은 너무 번거로워 점차적으로 의혼(議婚), 납채(納采), 납폐(納弊), 친영(親迎)의 4례(四禮)로 간소화되었다.

  그러나 4례 또한 이른바 선비의 집안에서나 갖추는 것이었고, 일반 서민층에서는 행해지지 못했다. 그렇다고 해서 서민층이 4례를 갖추어 혼례를 치르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서민층에게 있어 4례는 일종의 의례표준으로만 여겨질 뿐이었다. 이 때문에 서민층은 혼례 시 실제로 4례를 모두 갖추지는 못하고 혼담이 이루어지면 보통 신랑 측에서 신부 측에 사주를 보내고 신부 측에서 이를 토대로 혼례의 날짜를 정해 신랑 측에 연길(涓吉: 길일을 잡는 것)을 보내어 혼례식을 치렀다. 다시 말해 서민층에서는 의혼, 납채, 납패의 과정을 간소화하여 혼인을 치른 것이다. 하지만 서민층에서도 4례의 의식절차 중 간소화하지 않고 치른 것이 있었다. 그 절차는 친영이라는 것으로, 혼례의 의식절차 중 가장 마지막에 해당하는 단계이다. 이처럼 전통혼례의 4례 중 의혼, 납채, 납패의 과정을 마치면 가족 친지들의 축복을 받으며 치러지는 실질적인 혼례식인 친영이 거행된다.

  친영은 전안례ㆍ합근례ㆍ교배례의 순서로 이루어져 있으며, 합쳐서 초례라 한다. 먼저 친영의 첫 번째 순서에 속하는 전안례는 신랑이 안부(雁夫: 기럭아비)와 함께 신부집에 도착하여 신부 어머니에게 기러기를 드리는 예이다. 전안례를 마치면 곧 바로 신랑과 신부가 초례청에서 처음으로 만나 서로 맞절[신랑은 1배, 신부는 2배]하는 절차인 교배례가 거행된다. 교배례를 통해 신랑, 신부는 서로 상대방에게 백년해로를 서약하는 것이다.

  교배례를 마치면 다음으로 술잔과 표주박에 신랑과 신부가 서로에게 술을 부어 마시는 의례인 합근례가 거행된다. 합근례시 처음 마시는 술은 부부로서의 인연을 맺는 것을 의미하며, 표주박으로 마시는 술은 화합을 의미한다. 그리고 반으로 쪼개진 표주박은 제짝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으므로 둘이 합쳐짐으로써 온전한 하나를 이룬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처럼 초례[전안례, 교배례, 합근례]를 모두 마치면 신랑과 신부는 합궁례를 치른다. 합궁례란 신랑과 신부가 한방에서 몸을 합치는 절차로 합궁례를 치러야 비로소 부부가 되는 것이다. 이 모든 절차를 마치고 하룻밤을 지내고 나면 결혼한 신부가 처음으로 시집에 들어가는 의식절차인 우귀[于歸: 신행(新行)이라고도 함]를 치른다. 우귀를 마치고나면 현구고례(見舅姑禮) 즉, 며느리가 처음으로 시부모님께 폐백을 올린다. 이 모든 절차를 마치면 신부는 한 동안 시집에서 생활하다가 사흘, 혹은 한 달에서 일 년이 지난 후 신랑과 함께 처음으로 친정에 가는 절차인 근친(覲親)이 치러진다. 엄밀히 말해 신부가 근친을 다녀와야 비로소 혼례가 완전히 끝나는 것이다.

 

 

전통혼례에서 배우는 아름다운 혼인(婚姻)정신

  혼인에는 두 가지의 구현될 정신이 있다. 하나는 삼서정신(三誓精神)이며, 또 하나는 평등정신(平等精神)이다. 삼서정신이란 첫째, 인륜지대사(人倫之大事)인 혼인을 하게 되어 이를 있게 하기까지 보살핌과 자기를 존재하게 하신 조상과 부모에게 서약하고[誓父母], 둘째, 음양의 이치와 대자연의 섭리에 순응한다는 의미로 천지와 천지신명 전에 서약하며[誓天地], 셋째, 서로가 배우자에게 공경하고 사랑하며 행복하게 살고, 가문을 빛내며 훌륭한 가정을 이룰 것을 서약[誓配偶]하는 것을 뜻한다.

  혼인의 평등정신은 혼인하기 전에는 신분이나 나이에 차별이 있더라도 부부가 되면 평등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찌 보면 혼인은 상생을 실천하는 하나의 장일지도 모른다. 서로 다른 환경 속에서 있었던 각자가 조화를 이루어 화목한 가정을 만드는 것이 혼인이기 때문이다.

  전통혼례에 깃들어 있는 이러한 정신들을 우리들이 실천할 때 조상 대대로 이어져 내려온 혼인이 더욱 더 아름답게 느껴질 것이다.

 

 

 

 

◈ 참고문헌

ㆍ정종수, 『사람의 한평생』, 학고재, 2008.

ㆍ송재용, 『한국의례의 연구』, 제이엔씨, 2007.

ㆍ홍순석 외, 『우리 전통문화와의 만남』, 한국문화사, 2000.

ㆍ이무영, 『한국가정의례』, 한국예절대학, 2002.

ㆍ김득중, 『지향 가정의례』, 중화서원, 2007.

 

 

 


01 사주와 함께 보내는 혼인 날짜를 청하는 편지.

02 택일과 함께 보내는 편지.

03 예물과 함께 보내는 편지.

04 납폐의 예물로 비단을 썼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

05 신랑 신부가 조상과 부모의 은덕을 기리며 부모님께 서약하는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