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5호 대원종 : 솥 정(鼎)의 의미 |
솥 정(鼎)의 의미
연구위원 박인규
『대순진리회요람』에는 대순진리회의 취지에 대해 “대순(大巡)하신 유지(遺志)를 계승(繼承)하여 五十년 공부(工夫) 종필(終畢)로써 전(傳)하신 조정산(趙鼎山) 도주(道主)의 유법(遺法)을 숭신(崇信)하여 귀의(歸依)할 바를 삼고자 대순진리회(大巡眞理會)를 창설(創設)한 것이다.”01라고 설명하고 있다. 즉 대순진리회는 신앙의 대상이신 구천상제님의 유지와 조정산 도주님의 유법을 숭신하여 귀의하고자 창설된 종단이다. 상제님께서는 성은 강(姜)씨이요 존휘는 일순(一淳)이며 자함은 사옥(士玉)이고 존호는 증산(甑山)이시다.02 도주님께서는 존휘는 철제(哲濟)이요 자함은 정보(定普)이고 존호는 정산(鼎山)이시다.03
여기서 두 분의 존호를 살펴보면 상제님은 증산(甑山)이시며 도주님의 정산(鼎山)이시다. 이와 관련하여 『대순지침』에는 “금산사도 진표율사가 용추(용소)를 숯으로 메우고 솥을 올려놓은 위에 미륵불을 봉안한 것은 증산(甑山)·정산(鼎山)의 양산의 진리를 암시하여 도의 근원을 밝혀 놓은 것이다.”04라고 되어있으며, 『전경』에는 “또 상제께서는 때로 금산사의 금불을 양산도(兩山道)라고 이름하시고 세속에 있는 말의 양산도와 비유하기도 하셨도다.”05라고 기록되어 있다. 즉 금산사 미륵불은 상제님을 상징하는 것이고 미륵불을 아래에서 받들고 있는 솥은 종통을 계승하신 도주님을 상징하는 것이다. 존호를 살펴보면 상제님의 존호에는 시루(甑)가 있고 도주님의 존호에는 솥(鼎)이 있으니 마치 숯 위에 솥과 시루가 있어 떡을 찧는 형상을 상징하고 있다. 이런 말씀들에서 시루와 함께 솥이 지닌 상징과 의미가 중요함을 알 수 있다. 이 글에서는 도주님의 존호에 들어있으며 종통과도 관련이 있는 솥 정(鼎)의 의미에 대해서 논의해보고자 한다. 솥의 종류는 크게 부(釜)·노구(鑪口)·정(鼎)의 세 가지로 나눈다.06 그중 일반적으로 솥을 지칭할 때는 가마솥 부(釜) 자를 쓴다. 『한한(漢韓)대사전』에서도 부(釜)에 대해서 ‘큰 솥의 뜻이었으나, 널리 솥의 뜻으로 쓰임’07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 부(釜)는 큰 가마로서 밑은 약간 둥글고 옆은 편평하고 나무로 만든 뚜껑을 덮어서 쓴다. 노구(鑪口)는 놋쇠나 구리쇠로 만든 솥으로 자유로이 걸었다 떼었다 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정(鼎)은 대·중·소의 세 가지 크기의 것이 있다. 옆이 가장 넓고 솥 밑과 뚜껑이 거의 같은 모양으로 둥글며 부와 노구와는 다르게 세 발이 달려있다는 점이 중요한 특징이다. 이 중에서 도주님께서 솥 정(鼎) 자를 존호에 쓰신 것은 그 글자에 어떤 의미가 있어서일까? 부(釜)나 노구(鑪口)가 솥이라는 의미 외에 특별한 의미가 없는 것과는 달리 솥 정은 여러 중요한 상징과 의미를 담고 있다. 먼저, 솥 정은 고대의 성인인 우(禹)임금과 관련이 있다. 우임금은 순(舜)임금의 뒤를 이어 천자가 된 후 천하를 아홉 주(九州)로 나누어 다스렸다. 우임금은 구주의 관리들에게 각각 금을 바치게 하여 그것으로 구주의 평화를 상징하는 아홉 개의 솥 즉 구정(九鼎)을 만들었다. 구정은 하늘에 제사를 지낼 때 제기로 사용했으며 이후 중국 왕실의 보물이 되어 천자의 상징물로 되었다.08 또한 왕위 전승의 보기(寶器)로 하였으므로 국가·왕위·제업의 뜻으로 쓰였다. 솥의 발을 세 개로 하였는데 이는 삼공(三公)에 비유되어 대신을 상징하는 것으로 여겼다.09 이와 관련된 용례를 보면, ‘정업(鼎業)’은 ‘천자의 사업’, ‘정려(鼎呂)’는 ‘구정과 대려(大呂) 곧 지극히 중대한 보물’, ‘정신(鼎臣)’은 ‘대신 또는 재상’, ‘정조(鼎祚)’는 ‘제왕의 자리에 이름’을 뜻한다.10 그리고 솥 정은 『주역』의 64괘 가운데 50번째 괘인 정괘(鼎卦)의 정(鼎)이기도 하다. 정괘는 위에는 이허중(離虛中) 불괘이고 아래는 손하절(巽下絶) 바람괘로 화풍정(火風鼎)이라고 한다. 이 정괘의 형상을 보고 고대의 성인이 솥을 만들었다. 정괘는 곧 솥이 되고 또 괘가 가지고 있는 의미는 솥에 음식물을 넣고 나무로 불을 지펴 그 음식물이 익는 것이다. 『주역』 「서괘전」에서는 사물을 변혁하는 것은 솥만한 것이 없다고 한다.11 즉 물건을 혁신할 때 쌀을 익혀 밥이 되게 하는 솥보다 더 새롭게 할 수 없기에 고친다는 혁괘(革卦) 다음에 새롭게 한다는 정괘를 놓은 것이다. 솥 속에 쌀을 일고 물을 붓고 그것이 익어 밥이 되니 솥 속에서 새롭게 되어 나오는 것이다. 밥이 되어서 나오면 그 밥을 먹고 사는 것이므로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12 『주역』 「잡괘전」에서는 혁(革)은 옛 것을 버림이요 정(鼎)은 새로운 것을 취함이라고 한다.13 관련 단어로는 혁명을 의미하는 ‘정혁(鼎革)’, 혁신을 의미하는 ‘정신(鼎新)’이 있다.14 이 정괘의 괘사(卦辭)는 ‘鼎, 元吉, 亨.’으로 ‘크게 길하여 형통한다.’는 의미다. 이는 혁에서 고치는 과정이 다 지나고 정에서 새롭게 되는 것이므로 묵은 밥이 아닌 잘 익은 새 밥을 먹게 되어 크게 형통하다고 한다.15 이 논의를 정리해보면 정(鼎)은 국가·천자와 변혁·혁신의 의미를 지녔었음을 알 수 있다. 상제님으로부터 종통을 계승하시어 50년 공부종필하신 도주님께서 하신 일을 잘 살펴보면 이 정(鼎) 자의 의미와 연결된다고 할 수 있다. 먼저, 도주님께서는 마하사에서의 도수를 마치시고 “상제께서 짜 놓으신 도수를 내가 풀어나가노라.”16고 말씀하셨다. 상제님께서는 “선천에서는 인간 사물이 모두 상극에 지배되어 세상이 원한이 쌓이고 맺혀 삼계를 채웠으니 천지가 상도(常道)를 잃어 갖가지의 재화가 일어나고 세상은 참혹하게 되었도다. 그러므로 내가 천지의 도수를 정리하고 신명을 조화하여 만고의 원한을 풀고 상생(相生)의 도로 후천의 선경을 세워서 세계의 민생을 건지려 하노라. 무릇 크고 작은 일을 가리지 않고 신도로부터 원을 풀어야 하느니라. 먼저 도수를 굳건히 하여 조화하면 그것이 기틀이 되어 인사가 저절로 이룩될 것이니라. 이것이 곧 삼계공사(三界公事)이니라.”17고 말씀하셨듯이 진멸에 빠진 창생을 건지고 선경을 여시기 위해서 천지공사를 하셨다. 상제님께서 짜놓으신 천지공사의 도수를 도주님께서 풀어 나가신 것이다. 기존의 정(鼎)이 한 국가와 천자의 일이라면 정산(鼎山)이신 도주님께서 하신 일은 천지와 우주의 일이므로 정(鼎)은 그 의미가 더 확대되었다고 할 수 있다. 우임금 당시에는 하늘이 천자를 내었고 하늘의 아들인 천자(天子)는 천명을 받들어 만백성을 다스렸다. 곧 천자의 일은 하늘의 일이었으므로 정(鼎)은 근원적으로는 하늘의 일을 상징한다. 이렇게 볼 때 정(鼎)의 의미는 천지공사의 도수를 풀어 나가신 도주님과 맥락이 통한다고 할 수 있다. 정(鼎)이 지닌 변혁과 혁신 그리고 형통의 상징도 도주님께서 하신 일과 맥락을 함께 한다. 먼저 상제님께서 “낡은 집에 그대로 살려면 엎어질 염려가 있으므로 불안하여 살기란 매우 괴로운 것이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개벽하여야 하나니…”18라는 말씀과 “망하려는 세간살이를 아낌없이 버리고 새로운 배포를 차리라.”19라는 말씀처럼 낡고 묵었으며 망하는 기운이 있는 선천의 틀을 버리고 개벽해야 한다고 하셨다. 이 상제님의 말씀에 변혁과 혁신의 의미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도주님께서는 이러한 상제님의 유지(遺志)대로 진법(眞法)인 도법을 짜셨다. 도주님께서 “오도자 금불문 고불문지도야(吾道者今不聞古不聞之道也)”20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도주님의 도[吾道]는 ‘지금도 옛날에도 듣지 못한’ 새로운 법이다. 새로운 법은 곧 변혁과 혁신의 법이며 새로운 희망을 열어주는 참된 법이다. 「포유문」의 말씀처럼 형적이 없는 곳에 골몰한 가운데 일생을 헛되이 보낼 수밖에 없는 우리에게 다행히 세상에 한량없는 대도를 열어주신 것이니 크게 형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마지막으로 정(鼎)이 부(釜)나 노구(鑪口)와 다르게 세 개의 다리가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관련 어휘로 정립(鼎立)은 ‘솥발과 같이 세 곳에 나누어 섬’을 뜻하고 정족(鼎足)은 ‘솥이 세 발이 있는 것처럼 서로서로 의지하고 보좌함’을 의미한다. 정(鼎)이 지닌 3이라는 수는 상제님 도주님 도전님으로 이어지는 세 분의 연원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상제님께서도 “삼천(三遷)이라야 일이 이루어지느니라.”21라고 말씀하신 바가 있다. 정(鼎)의 세 다리는 이 삼천의 의미를 잘 나타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솥은 인간생활의 필수조건인 의식주 가운데 식에 해당하는 밥을 짓는 중요한 기구다. 여러 솥 가운데 솥 정(鼎)은 예부터 하늘의 일을 상징하고 변혁과 혁신을 통해 크게 길함과 형통함을 상징하였다. 상제님의 유지를 계승하시어 후천의 새로운 법을 짜신 도주님께서 정산(鼎山)이라는 존호를 쓰심도 이 정(鼎)이 지닌 의미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하루 세 끼 솥으로 짓는 밥을 먹듯이 정산(鼎山)이신 도주님께서 짜신 진법을 일상에서 실천 수행하여 참된 수도인이 되어야 할 것이다.22 01 『대순진리회요람』, p.9. 02 행록 1장 5절. 03 교운 2장 1절. 04 『대순지침』, pp.14~15. 05 텅 비어 있으나 신령하며 어둡지 않음. 06 『두산백과』. 07 민중서림 편집국, 『한한대사전』, 민중서림, 2008, p.2118. 08 증선지, 소준섭 옮김, 『십팔사략』, 미래사, 2004, p.30. 09 『설문해자』에도 ‘세 개의 다리와 두 개의 귀(三足兩耳)’라고 되어있다. 10 민중서림 편집국, 위의 책, pp.2378~2379. 11 ‘革物者莫若鼎’, 『주역』「서괘전」. 12 김석진, 『대산주역강의2』, 한길사, 1999, p.362. 13 ‘革去故也, 鼎取新也’, 『주역』「잡괘전」. 14 민중서림 편집국, 위의 책, pp.2378~2379. 15 김석진, 위의 책, p.363. 16 교운 2장 48절. 17 공사 1장 3절. 18 공사 1장 2절. 19 교운 1장 8절. 20 교운 2장 18절. 21 예시 87절. 22 『대순회보』, 144호, 참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