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선의 미학, 지붕
출판팀 한상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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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주본부도장 포정문 팔작지붕 (2023년 5월 촬영)
도장에 들어서면 숭도문 담장 너머로 지붕과 단청이 서로 어우러진 풍경을 마주하게 된다. 숭도문을 지나 청계탑이 마주 보이는 정각원과 임원실의 사잇길에 서면 임원실, 정각원, 봉강전의 지붕이 차츰 높아지면서 서로 중첩해 있는 광경을 볼 수 있다. 부드럽게 휘어진 처마는 자연스럽고 여러 선이 어울린 지붕은 우아하다. 지붕은 건물의 상부를 덮어 비와 눈, 이슬을 막아 내부 공간과 벽체를 보호하는 기능과 더불어 건물의 외관을 특징짓는 중요한 미적 요소를 담당한다. 주변의 자연과 어우러진 기와지붕은 도장의 품격을 한층 더해준다. 한옥은 지붕의 재료에 따라 기와집, 초가집, 너와집, 굴피집, 청석집 등으로 나뉜다. 그중 기와집과 초가집이 한옥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한옥의 지붕은 초가집이나 기와집과 관계없이 곡선이 많다. 둥그스름한 초가지붕은 완만한 뒷산의 능선 자락과 서로 조화롭고, 기와지붕은 현수선(懸垂線: 실 따위의 양쪽 끝을 고정하고 중간 부분을 자연스럽게 늘어뜨렸을 때, 실이 이루는 곡선)을 따라 학이 날갯짓하듯 동적인 아름다움을 준다.
한옥은 지붕면이 서로 만나는 부분에 지붕마루를 만들어 마감한다. 지붕마루는 위치에 따라 지붕의 가장 높은 곳에 만들어지는 용마루, 지붕의 합각을 타고 내려오는 내림마루, 추녀 위로 이어지는 추녀마루로 나뉜다. 일반적으로 추녀마루의 곡선이 버선코의 모양을 닮았다는 것은 알려졌지만, 용마루와 내림마루가 곡선인 것은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처마는 왜 곡선을 띄게 되었을까? 그 이유는 한옥의 특성상 나무기둥이 눈비에 의해 손상되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일반적으로 한옥의 외벽 밖으로 서까래를 돌출시켜 처마를 깊게 빼면 눈비로부터 기둥을 보호하고 햇빛을 차단하여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준다. 하지만 사선으로 깊게 빠진 추녀 아래의 기둥에는 햇빛이 덜 들어오니 마를 새가 없다. 그래서 선조들은 젖은 기둥을 건조하기 위해 추녀를 들어 올려 지붕을 마감했다. 이처럼 처마에 서린 곡선의 미는 자연에 적응하는 선조들의 지혜와 맞닿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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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전통건축의 미학은 자연에 적응하고자 하는 선조들의 노력에서 시작되었다. 추녀마루의 추녀를 살짝 들어 올린 것은 한국 건축만의 멋스러움이다. 처마의 곡선미는 앙곡(昂曲)과 안허리곡의 곡률을 어떻게 잡아주느냐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에 그 제작 기법은 매우 까다롭다. 이를 통해 지붕이 처져 보이지 않게 하고 지붕의 곡선을 아름답게 마무리해준다. 지붕의 형태는 집의 외관을 결정하는 중요한 부분이다. 기와지붕은 형태에 따라 맞배지붕, 우진각지붕, 팔작지붕, 모임지붕 등으로 구분된다. 한옥 지붕의 가장 단순한 형태는 맞배지붕이다. 건물 앞뒤에만 지붕면이 보이고 추녀가 없으며 용마루와 내림마루만으로 구성된 지붕으로 간결한 느낌을 준다. 우진각지붕은 사면에 모두 지붕면이 있고 용마루와 추녀마루로 구성된 지붕이다. 주로 문루(門樓)나 주택 등에 많이 쓰인다. 팔작지붕은 지붕 위까지 박공이 달려 용마루 부분이 삼각형의 벽이 있어 합각(合閣)지붕이라고도 불린다. 가장 화려하고 완결된 형태를 보이기 때문에 격식이 높은 궁궐의 정전과 같은 중심 건물에서 사용된다. 모임지붕은 지붕의 추녀마루가 한 점으로 모이는 형식으로 정자나 탑 등에 많이 사용된다. 평면에 따라 사각, 육각, 팔각 등으로 세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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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복궁 근정전 팔작지붕
한옥의 전형적인 품격과 멋은 기와집에서 찾을 수 있다. 특히 왕이 기거하는 정전의 팔작지붕에서 명확하게 드러난다. 이는 팔작지붕이 규모가 크며 겹처마가 있고, 지붕마루도 용마루, 내림마루, 추녀마루가 모두 갖추어져 있는 가장 화려한 양식이기 때문이다. 또한 팔작지붕은 추녀, 선자연(扇子椽: 추녀 옆에 나란히 부챗살 모양으로 배치한 서까래) 등의 사용으로 맞배지붕에 비해 제작이 어렵고 많은 목재가 필요하다. 여러 채로 구성된 궁궐의 경우 지붕의 형식으로 건물의 위계가 결정된다. 일반적으로 팔작지붕이 위계가 가장 높고 우진각, 맞배지붕 순으로 위계가 낮아진다. 따라서 궁궐의 정전에는 팔작지붕이, 부속채에는 맞배지붕이 쓰인다. 자연스레 중심채가 높아지고 행랑채는 낮아져 건물의 위계를 따르는 형태가 되고 전체적으로는 높낮이가 생겨 균형과 조화가 충실한 경관을 만들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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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주본부도장 봉강전 팔작지붕(2021년 9월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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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도장에도 건물마다 지붕의 형태는 다양하지만, 건물의 격에 따라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도장에서 가장 엄숙하고 경건한 정내의 본전, 봉강전, 정심원, 정각원 건물은 팔작지붕이 올려져 있다. 더욱이 본전은 중층구조로 되어있어 궁궐의 중심 건물인 정전(正殿)의 모습과 닮아있다. 이는 도장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본전에 최상의 격식이 갖추어져 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연원의 성업을 그림으로 모셔놓은 대순성전은 우진각지붕이지만, 숭도문과 안내문 등의 부속채는 단출한 맞배지붕이다. 그밖에 종고각은 용마루 없이 하나의 꼭짓점에서 지붕골이 만나는 모임지붕의 형식을 띠고 있다. 이러한 도장 지붕의 다양한 형태는 도장 건물의 종교적 신성성과 기능적 위계에 따른 차별성에 기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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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의 아름다움은 건물이 서로 어울리고, 나아가 그 건물들이 자연과 어우러지는 특유의 조화로움에 있다. 독립적인 집 한 채만 생각하는 것이 아닌 건물과 건물 그리고 건물과 자연과의 조화에 많은 정성이 들어간다. 서로 다름을 배척하지 않고, 서로 품어 안는 화합과 조화의 건축물이다. 도장의 지붕에는 이러한 한옥의 조화로움이 그대로 담겨있다. 그 조화로움은 상생의 진리와도 결을 같이 한다. 주위의 대자연과 조화된 도장에서 수도하고 있는 우리 도인들은 어쩌면 상생의 진리를 자연스레 체화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참고문헌】 · 김왕직, 『알기쉬운 한국건축용어사전』, 파주: 도서출판동녘, 2008. · 이심, 『한옥의 재발견』, 서울: (주)주택문화사, 2003. · 한국건축역사학회, 『한국건축답사수첩』, 파주: 도서출판동녘,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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