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밥심
대연 방면 선사 박부덕
아들이 직장을 지방으로 옮기게 되어 며칠 전 숙소를 찾아갔다. 아직 미혼이라서 혼자 있다 보니 밥을 사 먹고 있었다. 먹을 것과 필요한 물품을 사러 가까운 마트에 갔다. 마트에는 봉지만 뜯으면 먹을 수 있는 식품, 반조리 식품 등 인스턴트 식품이 차고 넘쳤다. 사람들이 쉽고 편한 것을 찾으니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 너무나 편리한 먹을거리들이 진열된 마트에서 잠시 어린 시절을 추억해 보았다. 내가 어렸을 적에는 가마솥에 불을 때서 밥을 해 먹었던 기억이 있다. 밥도 맛있었고 가마솥에서 나오는 누룽지를 서로 먹으려고 하던 생각이 스친다. 구수한 숭늉의 기억도 떠오른다. 한 끼 밥을 위해 많은 수고를 하시던 어머니, 할머니를 떠올려 보았다. 지금은 불을 때지 않고서도 밥을 짓는 세상이 왔다. 또 상제님께서는 궤합을 열면 옷과 밥이 나온다(예시 80절)고 하셨는데 진열대에 즉석밥을 보면서 ‘궤합을 열면 밥이 나오는 시대가 된 건가?’ 생각하면서 입가에 미소를 지어 보았다. 나는 그 편리함의 혜택을 받는 사람으로 지금 세상을 살고 있다. 전기밥솥에 태을주를 하면서 밥을 지어서 아들에게 밥과 반찬을 챙겨 주었다. 그리고는 매일 아무 생각 없이 먹는 밥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어머니께서는 “밥 잘 챙겨 먹어라. 뭐니 뭐니 해도 밥심이다.”라고 늘 말씀하셨다. 그때는 그저 잔소리로 들었었다. 밥 한 끼 안 먹는 게 뭐 그리 대수라고 하면서. 그런데 지금 그 말을 내가 아들에게 하고 있다. “밥 챙겨 먹었나?” 한 끼라도 먹지 않으면 큰일이 나기라도 할 것처럼. 나는 “양위 상제님, 도전님 감사합니다. 이 음식을 먹을 수 있게 해준 모든 인연에 감사합니다.” 하는 식고를 드리고 밥을 먹는다. 문득 쌀로 지은 이 밥은 언제부터 사람들이 먹게 되었으며, 우리에게 밥은 무엇일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밥이 너무 흔해서 소중한 걸 모르고 사는 것이다. 흔히들 하는 ‘내가 먹은 것이 나를 만든다’라는 말처럼 먹는 것의 소중함은 여러 번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건강할 때는 건강의 소중함을 모르듯이, 굶주림을 경험했거나 또 아파서 먹을 수 없는 처지가 아니면 밥의 고마움을 생각하지 못한다. 먹을 것이 넘치는 요즘, 사람들은 ‘밥이 없으면 라면을 먹든지 빵을 먹든지 하면 될걸’ 할 것이다. 심지어는 밥이 탄수화물 덩어리라고 비만의 원흉으로까지 여긴다. 음식물 쓰레기통에는 버려진 밥들이 너무 많다. 보릿고개를 경험하셨던 어른들은 이런 광경을 보면 기겁을 하신다. 요즘 사람들은 밥의 소중함을 너무 모른다는 것이다. 우리는 어릴 때 다 먹은 밥그릇에 붙어 있는 밥 한 톨도 남김없이 먹어야 한다고 배웠다. 밥을 먹는 데서 복이 온다고 하시면서 깨작거리며 먹지 말라고 하였다. 1925년 4월 12일의 동아일보에 전라북도 김제에서 “쌀밥 한 사발과 고깃국 한 그릇만 먹으면 죽어도 눈을 감겠다는 말을 남겨놓고 한 여자가 죽었다.”라는 기사가 있다. 그때는 그만큼 보릿고개를 넘기 힘든 시기였다. 1936년 9월 1일 자 매일신보에는 “보리밥이 먹기 싫어 가난이 낳은 살인극”이라는 제목으로 쌀밥을 해주지 않는다고 아내를 부엌칼로 살해했다는 기사가 있다. 얼마나 보리밥이 먹기 싫었으면 그런 짓까지 했을까? 요즘 사람들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먹지 못한 한이 이렇게 맺혀 있었다고 한다면 밥을 먹게 해서 치유해주셨던 상제님의 공사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다고 조심스럽게 짐작해 본다. 상제님께서 “오늘 저녁부터 병자는 보리밥을 먹이라”고 하시므로 이 사실을 병자에게 전하니 그날 저녁부터 보리밥을 먹기 시작하여 병에 차도를 보고 후에 폐병의 괴로움으로부터 재생되었도다.(교운 1장 24절) 또 고부(古阜) 사람 이 도삼이란 자가 간질병이 있었느니라. 그자의 청을 받으시고 상제께서 “나를 따르라” 이르시고 눕혀놓고 자지 못하게 하시니라. 그자가 밥을 먹고 난 후에 배가 아프고 변에 담이 섞여 나오다가 열나흘 만에 간질 기운이 사라졌도다.(제생 8절) 문공신이 고부옥에서 얻은 신병으로 몸을 가눌 수가 없어 드러누워있다는 소식을 응종이 상제께 아뢰니 상제께서 “그를 죽게 하여서야 되겠느냐. 찹쌀 아홉 되로 밥을 지어 먹이라(제생 35절)”고 하셔서 그대로 실행하니 병이 낫게 되었다. 이렇듯 상제님께서 명하신 보리밥, 밥, 찹쌀밥을 먹음으로써 치유가 되었다. 신화를 모아 놓은 『산해경』에는 벼가 신들의 땅에서 자라는 작물로 묘사되어 있다. 벼의 기원을 사람이 살지 않는 땅이며 신들의 거처인 곤륜산에서 자라는 쌀나무라고 하면서 동시에 벼는 곡식이라고 했으니 처음에는 신들이 먹는 곡물이지 사람들이 먹는 음식은 아니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인간에게 농사짓는 법을 알려준 농업의 신 신농씨가 모든 식물의 맛을 본 후에 벼가 인간들이 먹어도 되는 작물이라는 사실을 알려주니 사람이 쌀을 먹게 되기까지에는 언제나 신의 도움이 있었다01고 한다. 신화에서는 밥 역시 하늘에서 조리하는 법을 알려주어 그때부터 밥을 해 먹었다고 한다. 황제가 처음으로 불을 지펴서 밥을 지었다고 나온다. 옛날 사람들은 쌀을 신이 전해준 선물이라고 믿었던 것처럼 인간이 불을 지펴 밥을 지어 먹을 수 있게 된 것도 하늘의 도움이라고 여겼다. 밥 역시 이렇게 하늘이 도움으로 우리 인간들 곁으로 다가왔다.02 가히 ‘신의 선물’인 밥이다. “상제께서는 항상 밥알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면 그것을 주우셨으며 “장차 밥을 찾는 소리가 구천에 사무칠 때가 오리니 어찌 경홀하게 여기리오. 한 낟 곡식이라도 하늘이 아나니라”(교법 1장 13절)하신 말씀에서 보더라도 곡식은 하늘이 아는 신의 선물이라 하겠다. 신의 선물인 밥을 먹는다는 것은 신과 인간의 합일일 것이다. 내가 먹은 것이 곧 나를 만드는 것이다. 오늘도 식고를 드리면서 태을주와 함께 밥 잘 챙겨 먹고 밥심으로 상제님의 일을 잘할 것을 다짐해본다.
01 윤덕노, 『신의 선물 밥』, (성남: 청보리, 2011) P.37. 02 위의 책. P.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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