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5반 금강산 연수를 다녀왔습니다
달성2 방면 정리 정영화
밤과 음악과 기다림을 유독 좋아했던 이 사람. 4월 어느 날 31세에 입문하여 올해로 61세 한 갑자를 맞이 해 30년째 아리랑고개 넘겼습니다. 9년 전 연수를 다녀오고, 지난여름 8월 9일 다시 금강산 연수를 다녀왔습니다. 유난히도 무더웠던 지난여름, 막상 연수 신청을 해놓고서도 맘이 오락가락 왔다갔다 취소할까, 하다가 그냥 마냥 용기를 줍사 발원 심고에 날씨 부조를 염원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간 2014년 959반에서 2023년 1,435반 연수까지 9년. 9년 만의 홍수가 아닌 9년 만의 금강산 연수에 날마다 밤마다 걱정도 설렘도 교차, 그 자체였다. 그런데 아니, 연수를 가자고 확정 짓고 난 후 돌발상황 발생, 차량 기어 고장처럼 갑자기 태풍 ‘카눈’ 소식이 매스컴에 난무했다. 아~ 제발, 오지 않기를 비껴가기를. 그 어느 해 보다 유난히도 무더운 여름. 한낮의 태양 열광은 마치 온갖 불순물이 엉키어 뒤섞여 뒤죽박죽 소죽 된 양 그 자체의 찜통 아래 연수를, 내심 마음 내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도 과실이 불덩이 열기로 익어가듯이 금강산 연수로 금강 기운 들이마시고 모셔 오자 기대 반 설렘 반 5박 6일의 무사 무탈 행을 심고 했다. 이 반은 많이도 서먹서먹했다. 대부분이 젊은 친구다. 어떻게 어찌 어떤 인연으로 이 ‘도즉아 아즉도’의 도를 찾아 들어왔는지. 드디어 첫날 역사적인 견학 한 페이지를 시작했다. 태풍 ‘카눈’으로 나무가 엎어지고 흙탕물이 진탕되게 한 세찬 비바람 탓에 첫 코스 견학 연수가 빗속의 드라이브 그 자체였다. 내 연수의 역사적인 한 페이지가 아. ‘카눈’이 뭐길래, 뭐야 모냐고~. 9년 전에도 먹었던 그 연수떡! 혹시나? 역시나! 9년 전과 맛이 똑같다. 변해 간 것은 어쩌면 지지리도 진저리도 혹독했던 수행 과정. 산전수전 고행 통증으로 변한 자신을, 다시금 재충전으로 금강 되길 빌어본다. 다음날 코스로 화진포 앞 거북바위를 태어나 61년 만에 처음 보고 각자 사진 촬영, 조별 단체 사진 촬영을 하고 진부령고개로 고고~. 간성현감 이식님. 진부령 그곳에 오래전 아주 큰 뛰어난 어르신 그대님! 이식님에 대한 강의를 어찌나 달콤하게 그리웁게 해 주시던지. 진심 훌륭한 그대, 지금은 오데서 환생 탁생(托生)해 계실까 하는 궁금증이 커진다. 나훈아의 ‘진부령 아가씨’ 가사에 ‘진부령 고갯길에 산새가 슬피 울면…’이라는 사연을 이해하는 연수 견학지가 되었다. 연수 강사의 교화 중에 이식님이 그곳 민중들과 이별할 때 타지로 갈까 말까 망설였다는, 그곳 진부령 고갯길에 산새도 슬피 울지 않을 수 없었던 그날의 이미지 메이킹을 나름대로 장식해 보았다. 이 노래가 유행했던 밤과 음악과 기다림을 좋아했던 시절, 곡절도 모르고 그냥 마냥 ‘진부령 고갯길에 산새도 슬피 울면 길을 가던 나그네는 걸음을 멈추는데 구비마다 돌아가는 사연을 두고 말없이 떠나가는 야속한 님아’ 하고 노래를 따라 불렀건만 연수에서 이 노래 사연을, 고래서 그래서 그 가사가 출연했었구나! 참으로 멋지고 멋진 어르신 이식님을 다시금 생각해 보며 연수 후기 사연을 나열해 본다. 9년 전 나의 연수는 그야말로 전성시대, 화려함 자체였다. 허나 코로나19 이후 변속, 변이, 변동, 변(變), 변(變), 변(變)이 난무했던 1,435반 연수를, 시작부터 태풍 ‘카눈’의 발생으로 첫날의 견학은 빗속의 드라이브. 태풍과 함께 뚜비뚜바한 첫날의 견학을 내 흑역사의 한 페이지로 장식했다. 그래도 세상은 현저 잘 돌아 굴러가고 있자녀! 이 몸 또한 누구보다 고통과 통증받이로 수십 년을 실제상황 실지 체험으로 너머 건너오다 보면 아고고~ 늘 아파 아프다고 푸념 속에서 연수로 재차 짓밟힌 짓눌린 염색체 염기서열의 금강 기운을 얻고자 함께한 동행, 1,435반! 그래도 지난 앞서 연수반은 무더위와 함께 힘겨운 연수를 마쳤다 하는데, 입추를 맞이하며 또한 돌발 태풍 ‘카눈’에 상제님의 덕화인지 첫날 빗속의 드라이브 견학을 제외하고는 죄다 시원한 첫 가을의 첫 정취를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오음산 왕곡마을 금강산 끝 봉우리에 태양이 걸터앉고 하늘도 땅도 푸른 파란 옥색을 뒤로하고 달달한 식혜 한 모금씩 입과 목을 적시며 도장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연수 견학 일정 속. 건물만 조성해 놓은 고성제생병원 부지 견학을 들러 돌아올 때 가슴, 마음 한쪽이 찡했다. 병원 옥상에서 교화를 듣고 버스로 오는데 담당 지킴이 외수께서 우리에게 박카스를 주었다. 내는 대뜸 “아이구예~ 우리가 드려야 하는데 박카스를 도리어 다아 주시네예.”하는 말에 겸연쩍게 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미소를 짓는 외수가 잘 되어 복되길…. 도장으로 돌아오는 길에 저 병원을 완공 완성하려면 지금 처한 나 자신의 환경과 육신과 기타…. 점점 저려 왔다. 이제 남은 복의 과제, 고성병원공사라 생각하니 『전경』 한 구절이 생각난다. “다른 사람이 잘 되는 것을 부러워 말라. 아직도 남아 있는 복이 많으니”, “복은 위로부터 내려오는 것이요 아래로부터 올라오는 것이 아니니”라는 이 구절이 가슴을 뇌리를 저며왔다. 이 사연과 몇 장의 연수 후기 글을 마무리 지으매 고성제생병원 공사를 생각하니 가슴이 울컥 눈시울이 뭉클 적셔진다. 참된 정성이 오디서 어떻게 시작이 될지. 아! 가을~ 이 가을에 포덕. 포덕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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