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를 부정하던 내가
합천3 방면 교감 정현정
첫째도 사람, 둘째도 사람, 셋째도 사람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사람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사람과 짐승의 차이 중 하나는 사람은 성장하면 부모를 섬길 줄 알지만, 짐승은 크면 부모를 떠나 자기 길을 간다고 합니다. 그러나 저는 어릴 때 마음의 상처 때문인지 사람을 소중히 여기기보다는 부모와 조상을 부정하고 저 자신을 학대하면서 살았습니다. ‘조상이 있다면 어떻게 이렇게까지 되도록 모른 체 할 수 있을까?’라는 원망도 했습니다. 저는 8살 나이에 부모님이 이혼하셔서 저보다 두 살 어린 여동생과 외할머니 댁에서 생활했습니다. 외할머니도 형편이 좋지 않아 제가 초등학교 2학년 때 동생과 함께 큰아버지 댁으로 가서 살게 되었습니다. 큰아버지 댁도 워낙 가난해서 4자녀와 함께 8명이 방 한 칸에서 살아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생활마저도 오래 할 수 없어 동생을 그곳에 두고, 5학년 초에 저 혼자 부산의 낯선 집으로 입양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땐 입 하나 줄이는 것이 도움이 될 정도였습니다.
양부모님도 부유한 형편은 아니었습니다. 특히 양어머니께서는 몸이 좋지 않아 청소며 빨래를 제가 했습니다. 어린 나이에 견디기엔 힘이 들었고 더욱 저를 힘들게 한 것은 어린 동생을 향한 그리움과 함께 밀려드는 외로움이었습니다. 자꾸 ‘이곳에서 이렇게 살아야만 할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군다나 호적 문제로 더 이상 학교조차 다닐 수 없었고 집에만 있다가 보니 같이 놀 친구도 없었습니다. 그나마 유일한 낙은 TV뿐이었습니다. 어린 나이에도 TV를 통해 세상 돌아가는 흐름을 조금 알 것 같았습니다. TV 속에 비친 세상은 여자도 남자처럼 혼자서도 당당하게 자기 뜻을 펼치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이것을 보고, 저 자신도 세상 속으로 뛰어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십 대 때 양부모님 댁에서 몰래 나오게 되었습니다. 집을 나온 세상은 생각만큼 녹녹지 않았습니다. 시련과 고통의 연속이었고 부모님과 조상님을 원망하며 하루하루 지쳐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선각을 만나 입도하게 되었습니다.
입도 후 처음 들었던 교화가 “모든 사람의 선령신들은 60년 동안 공에 공을 쌓아 쓸만한 자손 하나를 타 내되….”라는 『전경』구절이었습니다. 이 교화를 듣고 조상 복이 지지리도 없는 줄만 알며 조상을 원망만 하고 심지어는 부정하던 제가, 가장 복이 많은 후손인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또 선각과 도우들은 저를 누구보다 귀하고 소중하게 대우해 주었습니다. 부모에게 버림받아 비참하고 쓸모없다고 생각했던 저 자신이 너무 귀하고 소중한 사람인 것을 또 한 번 깨달았습니다. 또한 상제님께서 “약하고 병들고 가난하고 천하고 어리석은 자를 쓰리니”라고 하신 말씀에 저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 더욱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누가 저처럼 힘든 삶을 살아왔는지 모르기에 모든 사람을 소중히 여겨야겠다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이런 마음으로 사람들을 대하려고 하니 닦여지지 않는 제 성격 때문에 수도가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수반을 교화하다 보면 표현도 서툴고 대하는 방법도 몰라 갈등이 생기면 사람들을 귀하게 여기겠다는 처음의 마음은 온데간데없고 원망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선각은 “사람 기르기가 누에 기르기와 같으니 잘 되고 못 되는 것은 다 인공에 있느니라”라는 『전경』구절을 전하며 포기하지 말고 정성을 들여보라며 백일기도를 권유했습니다. 기도를 모시며 직선조 하감지위, 외선조 응감지위라고 주문을 할 때마다 조상님께서 오시는 것 같았고, 조상님을 부정하던 제 마음이 조금씩 조금씩 풀리며 감사한 마음이 드는 걸 느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부모님이 이혼으로 저를 버리지 않았다면 상제님과 인연이 없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드니 부모님에 대한 원망도 없어졌습니다. 그 후로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화복이라 하나니 이것은 복보다 화를 먼저 겪는다는 말이니 당하는 화를 견디어 잘 받아 넘겨야 복이 이르느니라”라는 상제님의 말씀을 새기며 궂은일 후에는 반드시 좋은 일이 올 줄을 알기에 상제님의 덕화와 조상 선령의 보살핌을 마음에 새기며 수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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