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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55년(2025)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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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문예 공모전 : 나의 3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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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문예 : 산문 장려

 

나의 3순위

 

 

금릉5-8 방면 선무 김수현

 



  나는 군대를 전역하고 학교에 복학해서 도를 만났다. 인생에 있어서 단 한 번뿐인 치성, 시운치성을 모시고 수도에 대해 알아가기 시작했다. 갓 입도한 초짜 외수이다 보니 교화를 들을 때마다 굉장히 졸렸고, 좋은 말씀을 들었구나 정도로 인식하면서 지냈다.
  내 인생의 우선순위는 항상 가족이었고 다음은 대학 동아리 활동이었다. 우리 집은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농사를 지으셨고 아버지는 버스 운전을 하느라 시간을 내기 어려웠기에 어릴 적부터 내가 농사일을 거들었다. 그래서 농번기가 되면 자연스럽게 본가로 내려가서 일을 했다.
  나는 대학에 입학하면서 패러글라이딩이라는 익스트림 스포츠 동아리에 가입했는데 바람을 가르며 하늘을 나는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행복했다. 그때부터 동아리에 매료되어 모든 시간과 열정을 오로지 동아리에 쏟아부었다. 군 복무를 마치고 동아리 회장을 맡아 동아리 부원들과는 따로 패러글라이딩 스쿨에 다니면서 자격증도 따고 개인 장비도 맞추고 대회도 참여하면서 커리어를 쌓았다. 취업하게 되면 직장을 다니면서 선수 활동을 하려고 했다.
  그렇게 대학에 다니면서 농사일과 동아리 활동을 하니 수도는 나에게 있어서 항상 3순위였다. 그래도 시간이 날 때마다 교화를 듣고 꾸준히 포덕을 하면서 교무가 되었다. 시간이 흐르고 취업에 집중하느라 동아리를 찾아오는 부원들이 점점 줄어들었고 나도 취업을 위해서 잠시 휴학했다. 그런데 내가 휴학을 한 사이에 동아리 폐부 결정이 났다. 이 사실을 선각께 말씀드리니 큰 일꾼이 나오려고 지금까지 동아리가 유지되고 있었던 것 같다고 하셨다. 처음엔 이 말씀이 선뜻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지금까지 공들인 시간이 헛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몇 년째 이 감정에서 벗어나지 못해 힘들었는데 교법 1장 8절을 보게 되었다.

 

상제께서 김 형렬에게 말씀하시니라. “망하려는 세간살이를 아낌없이 버리고 새로운 배포를 차리라. 만일 애석히 여겨 붙들고 놓지 않으면 따라서 몸마저 망하게 되리니 잘 깨달아라.”

 

  이 구절이 눈에 들어오면서 지금까지 패러글라이딩을 하면서 위험했던 순간이 떠오르고, 척이 작용했을 때 크게 다쳐서 다시는 패러글라이딩을 못 탈 상황이 만들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주 보던 구절이었는데 이날은 특별하게 느껴지면서 패러글라이딩에 대한 미련을 떨쳐냈다. 그리고 선각의 도움으로 포덕을 하면서 대학 졸업 전에 선무가 될 수 있었다.
  대학에 입학하고 여름방학 때 장마철이라 비가 많이 내렸는데 아버지께서 운행하시던 버스가 고속도로에서 빗길에 미끄러져 크게 사고가 났다. 나는 너무 큰 슬픔과 아버지 없는 삶의 무게를 감당하기 어려워서 처음으로 펑펑 울었다. 갓 스물이 되었고 배운 것은 농사일밖에 없지만 아버지께서 돌아가시면 대학을 그만두고 돈을 벌어서 가족을 먹여 살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몇 시간 뒤에 아버지 휴대폰으로 연락이 왔다. 다행히도 찰과상 정도로 그쳤고 아버지 말로는 조상님께서 보호해 준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그 사고는 뉴스에도 나왔는데 버스가 종잇장처럼 구겨졌지만, 아버지도 승객들도 가벼운 찰과상으로 끝났었다. 이거는 하늘이 도왔다고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 수도를 하면서 느껴진 거지만 아버지께서 정정하셔야 내가 대학에 다니고 선각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이런 생각이 들 때쯤 가화를 해보자는 말이 나왔다. 선각분들이 많은 말씀을 해주셨지만 중요한 건 내 마음이 더 중요하다고 했다. 가화는 언젠가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서 점점 불안해졌다. 아버지와 나는 평소에도 연락을 잘하면서 지냈다. 아버지께 본가에 잠시 들릴 건데 오랜만에 따로 밖에서 만나자고 전화했다. 평소에는 집에서 바로 만나서 이야기했는데 밖에서 만나자고 하니 내가 중요한 말을 하려고 하는 것을 알아챈 느낌이었다.


 

 
  아버지를 만났지만, 별다른 말이 떠오르지 않아서 있는 그대로 말했다. “제가 수도를 하고 있는데 도를 알아갈수록 아버지에 대해 감사하게 느껴지고 신명들이 챙겨주는 느낌을 많이 받고 있어요. 저는 수도를 주로 하면서 내 업보랑 집안의 업보를 풀어서 우리 가족이 잘 살았으면 좋겠어요.” 그러자 아버지는 “취업해서 번듯한 직장을 가지는 게 잘 사는 거야” 하시면서 자리를 일어나려고 했다. 

  무슨 생각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정말 아버지가 바라는 게 내가 직장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번듯한 직장에 다니는 것도 좋아요. 하지만 제가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수도를 통해서 업보를 풀지 않고는 결코 행복할 수 없을 거예요. 그러니까 아버지도 시운치성을 모시고 같이 수도해서 풀어요.” 한참을 담배를 피우시고 고민하시더니 언제 치성을 모시면 되냐기에 내일 당장 모시자고 했다. 그 길로 집에 가서 할머니 할아버지를 설득하고 같이 모시자 해서 가족들이 다 입도를 하게 되었다.
  이후로는 집에 갈 때마다 교화를 한 구절씩 준비해서 읽어드리고 선각분들을 모시고 찾아가기도 하면서 조금씩 알아가는 중이다. 그리고 항상 명절이면 도장에서 치성 모시고 집에 갔는데 나중에 할머니께서는 이 사실을 아시고 정성 잘 들이라고 연락하신다.
  가화가 되면서 집 분위기도 조금씩 바뀌었다. 우리집엔 여자가 할머니밖에 없었는데 시골에서 농사를 짓겠다고 삼촌 부부가 본가로 돌아온 것이다. 예전엔 할머니께서 장보고 밥하고 제사 준비도 혼자 하셨는데 치성을 모신 후로는 숙모도 함께 일을 도우면서 집안일이 많이 수월해졌다. 경운기나 트랙터를 삼촌이 다 운전하게 되면서 할아버지께서도 아버지나 내가 오기를 기다리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아버지도 삼촌이 일을 다 맡아 하니 평일엔 일을 하고 주말에는 휴식을 취하면서 할머니 할아버지를 잘 모실 수 있게 되었다.
  가족의 생활이 편안해지면서 나도 수도에 몰입했다. 목숨보다 중요하다는 시학ㆍ시법공부도 들어가고 포덕을 하고 수반이 생기면서 더욱 성장하게 되었다. 이전에는 수도를 잘 몰랐고 그저 좋은 말씀을 듣는 것으로만 생각했던 내가 동아리와 가족의 문제가 자연스럽게 해결되고 수도가 지금의 1순위로 자리 잡게 되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상제님께서 내가 도에 쓰임이 될 수 있게 자리를 만들어 주신 느낌이 들었다. 만약에 상제님의 덕화가 없었다면 나는 아직도 동아리의 감정과 가족의 정에 얽매이고 그것이 옳은 삶이라 생각하면서 살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에 꾸준히 『전경』을 읽는데 예시 한 구절이 눈에 들어왔다.

 

어느 날 상제께서 종도들에게 “너희들은 손에 살릴 생자를 쥐고 다니니 득의지추(得意之秋)가 아니냐 마음을 게을리 말지어다. 삼천(三遷)이라야 일이 이루어지느니라” 고 이르셨도다.

 

  지금이 내 수도의 황금기라 믿고 맡은 본분에 솔선수범하는 도인이 될 수 있게 노력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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