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강오륜은 음양합덕ㆍ만유조화
차제 도덕의 근원이라’의 의미 이해
교무부 박병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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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대순진리회 도인으로서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마음가짐과 언행을 규정한 지침이 바로 ‘훈회(訓誨)’와 ‘수칙(守則)’이다. 그 제정 시기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훈회’는 1945년 해방 이후부터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나 문헌상으로는 태극도 당시인 1963년에 발간된 『수도요람(修道要覽)』에, ‘수칙’은 1956년에 발간된 『태극도통감(太極道通鑑)』에 처음 등장한다.01 『태극도통감』은 비록 종통 계승(1958년) 이전의 문헌이지만, 도전님께서 도인들의 대표로서 근초(謹抄)하여 도주님께 올린 것이므로 도주님의 명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역사를 지닌 ‘훈회’와 ‘수칙’은 상제님과 도주님의 가르침이 집약된 생활 지침이라고 할 수 있다. 이 ‘훈회’와 ‘수칙’에는 한자어가 많이 포함된 항목이 있어 이해에 다소 어려움이 있다. 다음의 ‘수칙’ 2항도 그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삼강오륜은 음양합덕(陰陽合德)ㆍ만유조화(萬有造化) 차제(次第) 도덕의 근원(根源)이라 부모에게 효도하고, 나라에 충성하며, 부부 화목하여 평화로운 가정을 이룰 것이며, 존장(尊丈)을 경례(敬禮)로써 섬기고 수하(手下)를 애휼(愛恤) 지도하고, 친우 간에 신의(信義)로써 할 것.
여기에서 특히 ‘삼강오륜은 음양합덕(陰陽合德)ㆍ만유조화(萬有造化) 차제(次第) 도덕의 근원(根源)이라’라는 구절은 한자어를 통해 매우 함축적으로 서술하였으므로 그 의미를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큰 것 같다. 이 글은 이 구절이 담고 있는 구체적인 의미가 무엇인가를 살펴보고자 하는 것이다.02 본론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앞으로 전개할 이 구절의 구체적 의미에 대한 논술을 필자 나름의 해석으로 이해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 구절의 명확한 문장 구조와 주요 어휘들의 정확한 의미를 확실하게 단정할 만한 근거를 찾기가 어려워 이 문제를 필자의 주관적인 추론으로 해결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먼저 문장의 구조를 분석해 보면, ‘삼강오륜은’이라는 주어와 이 주어의 성질을 나타내는 ‘음양합덕ㆍ만유조화 차제 도덕의 근원이라’라는 술어로 이루어져 있다. ‘음양합덕’과 ‘만유조화’ 사이에만 가운뎃점(ㆍ)이 있어 술어의 구조가 복잡해 보인다. 하지만, 이 문장의 처음 형태인 『태극도통감』의 “三綱五倫은 陰陽合德萬有造化次第道德의 根源이라”와 띄어쓰기가 이루어진 『수도요람』(1967년 재판본)의 “三綱 五倫은 陰陽合德 萬有造化 次第道德의 根源이라”라는 문장을 보면 술어의 구조가 좀 더 명확하게 드러난다. ‘음양합덕’, ‘만유조화’, ‘차제도덕’이라는 세 개의 어휘를 나란히 나열한 다음에 조사인 ‘의’를 붙여 ‘근원’을 수식하는 구조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구조에서 가장 일반적인 이해 방식은 이 세 어휘가 각각 ‘근원’을 수식하여 ‘삼강오륜은 음양합덕의 근원이고 만유조화의 근원이며 차제 도덕의 근원이라’라는 형태의 문장으로 보는 것이다. 이와는 다른 방식으로 볼 수도 있겠으나, 이렇게 보고자 하는 이유는 일반적인 이해 방식으로 문장의 구조를 파악하는 것이 그 문장에 담긴 의미를 정확하게 드러낼 수 있는 개연성을 무리 없이 최대화하는 방법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삼강오륜이 각각 ‘음양합덕의 근원’, ‘만유조화의 근원’, ‘차제 도덕의 근원’이라는 말은 어떠한 의미를 담고 있는가를 밝히는 일이 이 글의 핵심 과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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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강오륜은 유교 전통에서 규정한 기본 규범으로 사람이 살아가며 맺게 되는 인간관계에서 실천해야 할 윤리를 말한다.
삼강(三綱) 군위신강(君爲臣綱): 임금은 신하의 벼리가 된다. 부위자강(父爲子綱): 부모는 자식의 벼리가 된다. 부위부강(夫爲婦綱): 남편은 아내의 벼리가 된다.
오륜(五倫) 부자유친(父子有親): 부모와 자식 사이에는 친함이 있어야 한다. 군신유의(君臣有義): 임금과 신하 사이에는 의리가 있어야 한다. 부부유별(夫婦有別): 남편과 아내 사이에는 구별이 있어야 한다. 장유유서(長幼有序): 어른과 어린이 사이에는 차례(질서)가 있어야 한다. 붕우유신(朋友有信): 친구 사이에는 신의가 있어야 한다.
‘벼리’를 뜻하는 ‘강(綱)’은 ‘그물의 위쪽에 코를 꿰어 잡아당길 수 있게 한 줄’을 말한다. 이 벼리를 잡아당기게 되면 그물 전체가 딸려 오게 되어 있다. ‘임금과 신하’, ‘부모와 자식’, ‘남편과 아내’가 각기 어떠한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가를 벼리와 그물 사이의 이러한 관계에 비유하여 설명한 것이 삼강이다. 따라서 벼리와도 같은 임금ㆍ부모ㆍ남편이 이끄는 대로 신하ㆍ자식ㆍ아내는 잘 따라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고 무조건 따라야 한다고 강제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삼강은 사람이 마땅히 지키고 행해야 할 도의(道義)에 부합하는 경우를 전제로 하여 따라야 함을 규정하고 있다고 이해해야 할 것이다. 삼강오륜은 과거 군주제(君主制) 시대를 배경으로 만들어진 규범이므로 ‘임금과 신하’라는 관계 자체가 오늘날의 현실에서는 성립하지 않는다. 지금은 임금도 없고 신하도 없다. 따라서 ‘임금과 신하’라는 관계는 오늘날의 관점에서 재해석되어야 한다. 위의 ‘수칙’ 2항에서 ‘나라에 충성하고’라고 명시한 것처럼 ‘국가와 국민’으로 볼 수 있고, 이를 확대하여 해석한다면 ‘어떤 조직의 책임자인 장(長)과 구성원인 부하’, ‘상급자와 하급자’ 등의 관계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이후로는 ‘군신유의’를 ‘국가와 국민’의 관계로 서술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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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삼강오륜은 사실상 우리가 맺고 있는 모든 인간관계를 망라하여 그 관계에서 실천해야 할 윤리를 규정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은 누구나 가족과 사회, 국가 공동체에 소속되어 다양한 인간관계를 필연적으로 맺게 된다. 나를 중심으로 생각해 보면, 먼저 부모가 있고 국가가 있으며 결혼을 하게 되면 남편 내지는 아내가 있게 되고 자식이 있게 된다. 또한, 사회적으로는 나보다 상급자도 있고 하급자도 있으며 나이가 많은 존장도 있고 어린 수하도 있으며 친구도 있게 마련이다. 이는 모두 부모와 자식, 국가와 국민(상급자와 하급자), 남편과 아내, 어른과 어린이, 친구 등 이 다섯 부류로 정리된다. 그러므로 삼강오륜에 등장하는 이 다섯 부류의 관계는 우리가 살면서 맺는 모든 인간관계를 망라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03
음양합덕의 근원
이 세계를 살펴보면 하늘[天]과 땅[地], 남자와 여자, 낮과 밤, 봄ㆍ여름과 가을ㆍ겨울, 삶과 죽음 등등과 같이 대립적인(서로 반대되는) 성질을 가진 존재와 현상이 실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존재와 현상을 상징적으로 개념화한 것이 바로 음과 양이다. 그러므로 이 세계는 음과 양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할 수 있다. 음과 양의 관계적 성질을 잘 나타내는 용어가 대대성(對待性)이다. 이는 대립적인(對) 속성을 가지면서도 서로를 필요로 하는(待) 관계로서의 성질을 지닌다는 말이다. 음양은 어떠한 고정된 실체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대대성을 지닌 존재나 현상이 하나의 쌍으로 있어야만 성립하는 관계적 개념인 것이다. 전통적으로 하늘과 땅은 음양을 대표하는 존재로 인식되어 왔다. 하늘은 비와 햇빛을 내리고 땅은 그것을 받아 만물을 생성하므로 하늘은 남성성을, 자궁과도 같은 땅은 여성성을 지님으로써 서로 반대되는 성질을 띤다. 또한, 하늘은 땅이 없으면 만물을 생성케 하는 공적을 이룰 수 없고, 땅은 비와 햇빛을 내리는 하늘이 없으면 만물을 생성할 수 없다. 따라서 하늘과 땅은 대대성을 지닌 음양의 관계인 것이다. 한편, 이 세상에 오직 밝고 따뜻한 낮만 있다면 이를 ‘낮’이라고 부를 수 없다. 낮과 서로 반대되는 속성의 어둡고 추운 ‘밤’이라는 현상이 있기 때문에 밤과 상대하여 ‘낮’이라는 이름이 성립할 수 있는 것이다. 곧, 낮이 있음으로써 이와 상대하여 밤이라는 이름이 있게 되며, 밤이 있는 까닭에 상대적인 낮이라는 이름이 성립하게 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낮과 밤이라는 현상은 음양 관계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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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주본부도장 종고각 (2021년 4월 촬영)
‘음양합덕’이란 이러한 ‘음과 양이 (서로의) 덕을 합한다’라는 말이다. 여기에서 ‘덕’이란 음(적인 존재나 현상)과 양(적인 존재나 현상)이 갖추고 있는 선(善)한 재능이나 특성, 기능 등을 뜻한다. 예를 들면, 비와 햇빛을 내리는 것과 흙을 바탕으로 그것을 잘 받아들이고 넉넉한 영양분을 간직하고 있는 것은 각각 하늘과 땅의 덕이다. 밝고 따뜻함과 어둡고 추움은 각각 낮과 밤의 덕이라고 할 수 있다. 하늘과 땅이 서로 주고받으며 그 덕을 합하고, 낮과 밤이 교차하며 그 덕을 합하는 것이 음양합덕이다. 이러한 합덕을 통해 만물이 조화를 이루며 생장할 수 있고, 모든 생명이 휴식과 활동을 번갈아 하며 삶을 원활하게 영위하게 되는 것이다. 삼강오륜에 등장하는 부모와 자식, 국가와 국민, 남편과 아내, 어른과 어린이, 친구 사이도 모두 음양 관계다. 부모와 자식의 경우에 부모는 자식을 태어나게 하고 자식은 부모에게서 태어난 존재이므로 서로 반대되는 속성을 지닌다. 또한, 누구나 자식이 있어야 부모가 될 수 있고, 부모가 있어야 자식이 태어날 수 있다. 이렇게 부모와 자식은 서로가 있어야 부모와 자식이 될 수 있으므로 서로를 필요로 하는 관계인 것이다. 따라서 부모와 자식은 음양 관계다. 친구의 경우에도 상대가 되는 누군가가 있어야 하며, 그와 아주 친밀한 관계가 유지되어야 서로 친구가 될 수 있다. 한 개인만으로는 친구라는 말이 성립할 수 없다. 그러므로 친구 사이도 음양 관계라고 할 수 있다. 나머지 국가와 국민, 남편과 아내, 어른과 어린이 또한 서로 대대성을 지닌 관계이므로 모두 음양 관계다. 음양합덕이란 이렇게 음양 관계를 이루는 부모와 자식, 국가와 국민, 남편과 아내, 어른과 어린이, 친구가 서로 그 덕을 합하는 것이다. 본래 음양합덕은 대순진리(大巡眞理)이자 우리 종단의 종지(宗旨) 가운데 하나로서 인간관계만이 아니라 하늘과 땅, 수컷과 암컷, 낮과 밤 등등의 자연 세계를 포함한 이 세계 전체의 음양 관계에 있는 존재와 현상에 적용되는 진리다. 그렇지만 여기에서는 인간관계에서의 음양합덕만으로 범위를 한정하여 이해해야만 한다. 이것은 ‘삼강오륜은 음양합덕의 근원’이라는 문장에서 술어(‘음양합덕의 근원’)는 주어(‘삼강오륜은’)의 성질을 나타내므로 ‘음양합덕의 근원’은 ‘삼강오륜은’이라는 말과의 관계 속에서 그 의미를 해석해야 하기 때문이다.04 곧, 삼강오륜은 인간관계에서의 윤리를 규정하는 것이므로 음양합덕도 이 세계 전체가 아니라 인간관계만으로 한정하여 이해해야 한다는 뜻이다. 도전님께서는 “음양합덕은 대립된 것이 화합되어 상부상조하고 도와주는 것”05이라고 훈시하셨다. 이는 우리 도인들이 생활 속에서 음양합덕을 실천하는 방안에 대한 말씀이므로06 여기에서의 음양합덕 또한 인간관계만으로 한정하여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이 훈시는 대립된(서로 반대되는) 성질을 가진 부모와 자식이, 국가와 국민이, 남편과 아내가, 어른과 어린이가, 친구가 화합되어 상부상조하고 도와주는 것이 음양합덕이라는 의미인 것이다.(‘화합되어 상부상조하고 도와주는 것’은 ‘합덕’에 대한 설명으로 볼 수 있다.) ‘근원’이란 ‘사물이나 현상이 비롯되는 본바탕’을 뜻한다.07 그러므로 ‘삼강오륜은 음양합덕의 근원’이라는 말은 ‘삼강오륜이 음양합덕을 이루는(또는, 실천하는) 바탕이라는 의미’인 것이다. 곧, 삼강오륜이 바탕이 되어야 이러한 인간관계에서 상대와 합덕할 수 있다는 뜻이다. 부자유친의 예로 본다면, 부모와 자식 사이에 친함이 바탕이 되어야 부모와 자식이 화합하여 상부상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만유조화의 근원
‘만유조화’라는 말은 기존 문헌에서 용례를 찾기 어려운 한자어다. ‘만유(萬有)’는 ‘모든(萬) 있는 것(有)’, 곧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라는 말로 이 세상에 있는 유형ㆍ무형의 모든 존재와 현상을 의미한다. ‘조화(造化)’는 명사적 용법에서는 ‘그 원인이나 이치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신묘한 일’이나 ‘만물을 창조(創造)하고 기르는 대자연의 이치’를 뜻하는 말로 쓰인다. 하지만, ‘만유조화’는 ‘만유가 조화한다’라는 말의 축약형으로 보아야 하므로 여기에서 ‘조화’는 술어적 용법으로 사용되었다. 그런 까닭에 글자 그대로 ‘(무언가가) 새롭게 만들어지고(造) 변화한다(化)’라는 뜻으로 이해해야 한다. ‘화(化)’는 어떤 상태가 다른 상태로 바뀐 ‘변화’를 뜻하는 글자로서 ‘자란다’, ‘성장한다’라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만유조화’는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새롭게 만들어지고 자란다’라는 의미 정도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삼강오륜은 만유조화의 근원’이라는 말도 ‘삼강오륜은 음양합덕의 근원’과 같은 문장 구조이므로 ‘만유조화의 근원’ 또한―‘삼강오륜은’이라는 주어와의 관계를 고려하여―인간관계만으로 한정하여 이해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만유조화’는 부모와 자식, 국가와 국민, 남편과 아내, 어른과 어린이, 친구에 의해 있게 되는 모든 것이 새롭게 만들어지고 성장한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농부인 남편과 아내, 그리고 그 슬하에 여러 명의 자식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이 부부에 의해 여러 명의 자식이 태어나 성장하고 부모와 자식들의 힘이 어우러져 여러 가지 농작물이 매년 생산되고 있다면, 이는 남편과 아내에 의한 만유조화이고 부모와 자식에 의한 만유조화라고 할 수 있다. 국가와 국민이―사실상은 국가를 운영하는 정부와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가―협의하여 여러 제도나 정책을 새로 만들어 시행함으로써 국민의 삶이 안정되고 풍요로워지며 국가가 번영하고 있다면 이는 국가와 국민에 의한 만유조화일 것이다. 우리가 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새로 만들거나 어떠한 일(사업)을 시작하여 이를 성장시켜 나가는 데는 대부분 누군가와 힘을 합하여야만 한다. 그 누군가와의 관계는 삼강오륜에 등장하는 다섯 부류 가운데 하나일 수밖에 없다. 이 다섯 부류의 관계는 사람이 살며 맺는 모든 인간관계를 망라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이 자식을 낳아 길러 후대를 이어가는 것이나 농ㆍ공ㆍ수산업을 비롯한 각종 산업에 종사하며 여러 가지 생산 활동을 해 나가는 것, 다양한 사업을 전개하여 생활의 편의와 풍요로움을 제공하는 일련의 일들이 모두 만유조화라고 할 수 있다. ‘삼강오륜은 만유조화의 근원’이라는 말은 바로 삼강오륜이 이러한 일들을 이루어 내는 근원(바탕)이라는 뜻이다. 곧, 삼강오륜이 바탕이 되어야 우리 생활 속의 이러한 일련의 일들이 원활하게 이루어진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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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제 도덕의 근원
‘차제(次第)’는 본래 ‘차서(次序: 순서 있게 구분하여 벌여 나가는 관계)’의 뜻을 가진 말인데, 오늘날은 거의 사용하지 않으며 ‘차례(次例)’는 이 차제가 변한 것이다.08 ‘차제 도덕’이라는 말은 ‘차제’와 ‘도덕’이라는 두 명사의 합성어가 아니라 여기에서는 ‘차제’가 관형어로서 ‘도덕’을 수식하는 구조로 보아야 한다. 이는 『포덕교화기본원리』에서 “전 인류가 화평하려면 음양합덕 만유조화 차제(次第)의 도덕인 삼강오륜을 근본으로”(p.7)라고 하여 이러한 구조로 서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삼강오륜은 차제 도덕의 근원’이라는 말에서 ‘차제 도덕의 근원’이라는 술어는 ‘삼강오륜은’이라는 주어의 성질을 나타내므로 ‘차제 도덕’의 의미는 삼강오륜과의 관계 속에서 이해해야만 한다. 삼강오륜은 부모와 자식, 국가와 국민, 남편과 아내, 어른과 어린이, 친구 등의 관계에서 실천해야 할 윤리를 규정한 것이다. 그러므로 ‘차제 도덕’의 ‘차제’는 이러한 다섯 부류의 관계와 연관하여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다섯 부류의 관계에서 부모와 자식, 국가와 국민, 어른과 어린이 등의 사이에는 통상적으로 위아래라는 차례(질서)가 형성된다. ‘차제 도덕’이란 바로 이러한 차례에 따라 행해야 할 도덕을 의미하는 것 같다. 예컨대, 부모와 자식의 경우라면 행위의 주체가 윗사람인 부모인가 아니면 아랫사람인 자식인가 하는 차례에 따라 각자가 행해야 할 도덕이 바로 ‘차제 도덕’인 것이다. 한편, 남편과 아내, 친구 등의 사이에는 위아래라는 차례는 없더라도 대등한 관계에서 나름의 어떠한 차례가 있다고 보아야 할 듯하다. 경우에 따라 남편이 먼저일 수도 있고 혹은 아내가 먼저일 수도 있다. 친구 사이에도 누군가가 먼저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차제 도덕’의 의미를 정리하자면, ‘우리가 맺고 있는 모든 인간관계에서 형성된 차례에 따른 도덕’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면 ‘삼강오륜은 차제 도덕의 근원’이란 말은 삼강오륜이 우리가 맺고 있는 모든 인간관계에서 형성된 차례에 따른 도덕의 근원(바탕)이라는 의미가 된다. 부자유친의 경우에, 부모와 자식 사이에 친함은 부모라면 부모로서 자식이라면 자식으로서 그 차례에 따라 행해야 할 도덕의 바탕이 된다는 것이다. 부모라면 자식을 자애(慈愛)로써 대하고 자식이라면 부모를 공경하고 순종하며 효도를 다 해야 한다. 여기에서 ‘자애’ㆍ‘공경’ㆍ‘순종’ㆍ‘효도’ 등이 모두 부모와 자식이라는 차례에 따른 도덕이며, 이러한 도덕은 부모와 자식 사이에 친함이 바탕이 됨으로써 이루어진다는 뜻이 된다.09
지금까지 살펴본 것을 종합하면, ‘삼강오륜은 음양합덕ㆍ만유조화 차제 도덕의 근원이라’라는 구절은 삼강오륜이 우리가 생활의 모든 인간관계에서 타인과 화합하여 상부상조할 수 있는 근원(바탕)이고, 생활 속의 온갖 것을 새롭게 만들고 성장시킬 수 있는 근원이며, 우리가 맺고 있는 모든 인간관계에서 형성된 차례에 따라 행해야 할 도덕의 근원이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구절에는 우리가 타인과 화합하여 상부상조하고 생활의 온갖 것을 새롭게 만들고 성장시켜 나가는 일도 삼강오륜의 실천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삼강오륜은 우리가 일상의 모든 인간관계에서 행해야 할 도덕의 바탕이 되므로 삼강오륜의 실천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인간관계 자체가 위아래 내지는 어떠한 차례가 있는 관계이므로 ‘인간관계에서 형성된 차례에 따라 행해야 할 도덕’이라는 말은 쉽게 ‘인간관계에서 행해야 할 도덕’이라고 보아도 무리가 없을 듯하다.) 음양합덕은 대순진리이자 우리 종단의 종지 가운데 하나로서 정음정양(正陰正陽)을 전제로 한 합덕을 말하는 것이다. ‘정음정양’이란 음과 양이 각각 올바름을 갖추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음양합덕은 음과 양이 각각 자신의 도리와 역할을 온전하게 행하며 서로 덕을 합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앞에서 음양합덕에 대해 몇 가지 실례를 들어 말한 것도 이러한 개념을 바탕으로 하였다는 점을 밝힌다. 지금까지 ‘수칙’ 2항의 ‘삼강오륜은 음양합덕ㆍ만유조화 차제 도덕의 근원이라’라는 구절의 의미를 나름대로 해석하였으나, 지금까지 살펴본 것보다 더 깊거나 다른 의미가 담겨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 원고가 이 구절의 의미를 온전하게 이해하는 하나의 밑거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01 이광주, 「대원종: 훈회ㆍ수칙의 역사적 이해」, 《대순회보》 255호 (2022), p.25, 26, 29 참고. 02 이 구절을 주제로 한 ‘주현철, 「교리소개: 삼강오륜은 음양합덕 만유조화 차제도덕의 근원이라 …」, 《대순회보》 90호 (2008)라는 원고가 있었으나, 이 구절의 구체적 의미를 다루지는 않았다. 이 원고는 삼강과 오륜 개념 그리고 그 개념이 성립하게 된 역사를 간략하게 소개하며 유교 중심의 조선 사회에서 삼강오륜이 지배층의 통치 이데올로기로 기능하며 빚어진 병폐에 대해 논술하였다. 03 삼강오륜에 대해 더욱 깊이 이해하고자 한다면 ‘교무부, 「Q&A 게시판: 삼강오륜」, 《대순회보》 80호 (2008)’와 ‘이재호, 「상생의 길: 상생의 이념으로 바라본 삼강오륜 ⅠㆍⅡ」, 《대순회보》 182ㆍ183호 (2016)’를 참고하기 바란다. 앞의 글에서는 삼강ㆍ오륜 개념과 그 개념이 성립하게 된 역사를 다루었고, 뒤의 글에서는 동아시아 사회의 전통 윤리로서 삼강오륜이 어떻게 성립하고 변용되었는가와 더불어 대순사상의 관점에서는 삼강오륜을 어떻게 재해석하여 수용할 수 있는가를 고찰하였다. 04 ‘새가 간다’와 ‘개가 간다’라는 문장의 술어는 모두 ‘간다’이다. 하지만, 이 두 문장은 주어가 다르므로 주어의 동작을 나타낸 ‘간다’라는 술어는 서로 다른 의미를 지닌다. ‘새’의 경우는―‘걸어간다’라는 의미로 볼 수도 있겠으나, 일반적으로는―‘날아간다’라는 의미이며, ‘개’는 날 수 없는 동물이므로 ‘걸어간다’라는 의미로 이해하게 된다. 주어의 동작ㆍ성질ㆍ상태 등을 서술하는 말인 술어는 이렇게 주어와의 관계 속에서 그 의미가 한정되거나 규정되는 것이다. 05 “남을 원망하지 않고 서로 없으면 못 산다는 것이 해원상생의 원리이다. 이것을 말로만 하면 안 되고 실천해야 된다. 어려운 것이다. 우리가 자신하는 것은 음양합덕, 신인조화, 해원상생, 도통진경이다. 도통진경은 도를 통하는 것이고, 음양합덕은 대립된 것이 화합되어 상부상조하고 도와주는 것이고,” 「도전님 훈시」(1991. 9. 28.) 06 위의 훈시에서 ‘이것(해원상생의 원리)을 … 실천해야 된다.’라고 하신 말씀을 통해 맥락상 ‘음양합덕은 … 도와주는 것’이라는 말씀은 우리가 음양합덕을 실천하는 방안에 대한 것임을 알 수 있다. 07 ‘근원’은 ‘물줄기가 나오기 시작하는 곳’이라는 뜻도 있으나, 여기서는 문맥상 이러한 뜻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08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국어사전편찬실 편, 『고려대한국어대사전』 (서울: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2009), p.5997. 09 ‘윤리’와 ‘도덕’을 우리는 거의 같은 의미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엄밀하게 말하면 의미상 차이가 있다. ‘윤리’는 사회적으로 당연하게 지켜야 한다고 규정한 규범을 의미하는 말이고, ‘도덕’은 윤리를 존중하는 사람들의 개인적인 심성(心性)이나 덕행(德行)을 가리키는 말이다.[김태길, 『윤리학』 (서울: 박영사), p.433 참고] 그러므로 삼강오륜에서 말하는 벼리(綱)나 친함(親)ㆍ의리(義)ㆍ구별(別)ㆍ차례(序)ㆍ신의(信) 등은 사회적으로 서로 간에 지켜야 할 규범이므로 ‘윤리’라고 할 수 있고, 자애ㆍ공경ㆍ효도ㆍ사랑 등은 개인적인 심성 내지는 덕행이므로 ‘도덕’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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