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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 속 이야기 : 『전경』 속 등장인물들의 인연 3

『전경』 속 등장인물들의 인연 3

 

 

교무부 정나연

 

▲ 전라북도 전주 서천교 (2025년 6월 26일 촬영)



  지난 글에서는 상제님께서 주유의 길에서 돌아오신 1900(경자)년부터 1902(임인)년까지 『전경』에 등장하는 인물들에 대해 알아보았다. 이번 글에서는 상제님의 천지공사 초기에서 중기로 넘어가는 1903(계묘)년부터 1904(갑진)년까지 살펴보려고 한다. 이 시기에 『전경』에 등장하기 시작하는 인물 중에서 상제님과의 인연이나 각 인물의 인연 관계를 정리해 보고자 한다.
  1903년이 되어 『전경』에 등장하는 인물로는 서원규, 김병욱, 백남신, 김윤근, 장흥해, 이도삼 등이 있다. 이도삼을 제외하고는 모두 전주에 살았던 인물들이다. 이들 중에 서원규(徐元奎)가 가장 먼저 상제님과 인연이 닿았던 것으로 보인다. 서원규는 전주부의 서천교 사거리에서 약국을 운영하고 있었다.01 당시 전주성의 사대문 밖에는 장이 섰는데 남문, 즉 풍남문 밖에는 남문장이 섰다. 남문장이 열렸던 곳에 위치한 서천교 사거리는 전주의 약령시가 섰던 곳으로 대구와 더불어 조선시대 2대 약령시 중 하나였다. 이곳은 김제와 정읍으로 통하는 길목이어서02 장날은 물론 평소에도 사람들이 많이 통행하는 곳이었기에 서원규는 이런 번화가에서 약국을 운영하고 있었다.
  상제님께서는 1903년 1월 하운동 김형렬의 집에서 전주부로 오신 후 서원규의 약국에 머무셨는데 이때 김병욱(金秉旭)과 장흥해(張興海)가 상제님을 찾아와 뵌 후 따르기 시작했다는 기록이 있다.03 이를 볼 때 서원규는 1903년 이전부터 상제님을 따랐던 것으로 보이며 두 사람과도 지인 관계였음을 알 수 있다. 『전경』에서 서원규가 등장하는 구절을 살펴보면 대부분 김병욱과 장흥해와 관련이 있다. 김병욱과 관련해서는 1903년 8월경 그가 박영효의 역모에 연루되어 체포령이 떨어졌을 때 상제님께서 김병욱을 서원규의 약국에 한동안 머물게 하셨던 일이 있다.04 장흥해와 관련해서는 ‘장효순의 난’으로 불리는 사건에 등장한다. 장흥해의 부친인 장효순을 중심으로 그의 가족이 상제님의 가족과 종도들을 폭행한 사건인데, 그들은 상제님이 계신 곳을 찾기 위해 서원규를 구타했다. 이후로 서원규는 매일 행패를 당하다가 약국을 폐쇄한 후 가족과 함께 익산으로 피신하였다.05
  김병욱은 전라도 지역을 방어하기 위해 전주에 세워졌던 근대식 지방군인 진위대의 장교였다. 당시 그의 상관은 백남신이었고 김윤근은 그의 부하였다. 김병욱이 『전경』에 처음 등장한 시기는 1903년 3월이다. 상제님께서 김형렬에게 “신명에게 요금을 줄 터이니 여산 윤공삼(礪山 尹公三)에게 가서 돈을 얻어오라”라고 하셨는데 김병욱이 전주 거부이자 자신의 상관인 백남신을 천거하였던 때이다.06 훗날 김병욱과 백남신이 사돈이 된 것을 볼 때07 두 사람의 관계가 꽤 돈독했던 것 같다.
  김병욱은 상제님의 도움으로 관액을 벗어난 적이 있는데 이 일은 상제님의 동남풍 관련 공사에서 찾아볼 수 있다. 1903년 8월경 김병욱이 박영효의 역모에 연루되어 체포될 위기였을 때 상제님께서는 남원에서 전주 서원규의 약국으로 그를 데리고 오셨다가 장흥해의 집으로 옮겨 석 달 동안 머물게 하셨다. 이 시기에 상제님께서는 서양 세력을 물리치기 위해 49일을 한 도수로 하여 동남풍을 불러일으키는 공사를 행하셨다.08 이 공사에서 김병욱에게 일본과 노국(러시아) 중 정부는 어디와 친선을 맺어야 하는지 그의 생각을 물으셨다. 그는 “인종의 차별과 동서의 구별로 인하여 일본과 친함이 옳을까 하나이다”라고 대답하였다. 이에 상제님께서는 “그대의 말이 과연 옳도다”라고 하시며 공사를 행하셨다.09 또 상제님께서는 김병욱의 곤란한 상황을 해결해 주기도 하셨다. 1904년 11월에는 전주에 민요가 일어나 인심이 흉흉해졌는데 당시 김병욱은 이 민요를 진정시킬 책임을 맡고 있었다. 상제님께서는 김병욱이 이에 대한 방책이 있는지 김보경을 통해 물으셨다. 이에 김병욱이 어찌할 바를 몰라 상제님의 처분을 구하니 그날 밤부터 사흘 동안 눈비가 내리고 추위가 이어져 민요는 저절로 가라앉았다.10
  장흥해는 김병욱과 함께 상제님을 따르기 시작했던 인물로 1903년 3월 백남신이 상제님께 10만 냥의 증서를 올릴 때 그 모습을 지켜본 사람이기도 하다. 그는 당시 상제님께서 백남신에게 받았던 증서를 김병욱에게 맡기시는 것을 보고 세상에서 드문 도량에 탄복하였다. 이 외에도 장흥해는 『전경』에 몇 차례 등장하는데 주로 그의 아버지인 장효순과 가족들이 1904년 1월 15일부터 상제님과 가족, 그리고 종도들을 폭행한 ‘장효순의 난’과 관련되어 있다.11 장흥해의 가족들이 이러한 난동을 부린 이유는 상제님께서 백남신으로부터 받은 10만 냥의 증서를 빼앗기 위해서였다. 그들은 돈에 대한 욕심 때문에 이러한 일을 벌였다. 장흥해는 ‘장효순의 난’ 이후로 『전경』에 등장하지 않는다.
  백남신(白南信)은 1903년 3월부터 『전경』에 등장하기 시작한다. 당시 상황을 잠시 살펴보면, 상제님께서는 김병욱이 거부인 백남신을 추천하자 술을 많이 드신 후에 신발을 벗고 대삿갓을 쓰신 채 김병욱의 집에 가셔서 처음 만나는 예를 베풀지 않으며 백남신을 만나셨다. 이는 “부자는 자신이 가진 재산만큼 그자에게 살기가 붙어있느니라. 만일 그런 자를 문하에 둔다면 먼저 그 살기를 제거하여 그 앞길을 맑게 해 주어야 할 터이니 그러자면 많은 시간이 낭비되고 공사에 막대한 지장이 오느니라. 그런 자 중에도 나를 알아보고 굳이 따르겠다는 지혜로운 자에게는 할 수 없이 허락할 뿐이니라”12라는 상제님의 말씀에 비추어 보면 백남신의 지혜를 시험하신 것으로 보인다. 상제님의 비범하심을 알아본 백남신은 서울의 집까지 팔아서 10만 냥을 만들어 드리기로 약조하며 증서를 써서 올렸다. 이로부터 백남신도 상제님을 좇기 시작했다.13
  1904년 5월에 백남신은 상제님의 덕화로 화난을 면하기도 하였다. 백남신은 자신의 체포 공문이 전주부에 도달하자 당황하였다. 이를 본 김병욱은 자신 또한 지난해 상제님의 도움으로 관액에서 벗어났던 일을 말해주었다. 그러자 백남신은 김병욱을 통해 상제님께 도움을 청하였다. 상제님께서는 “부자는 돈을 써야 하나니 돈 十만 냥의 증서를 가져오라”라고 말씀하셨다. 김병욱은 곧 백남신에게 10만 냥의 증서를 받아서 상제님께 올렸다. 그 후 백남신은 화난에서 풀렸을 뿐만 아니라 남(南) 삼도(三道)의 세무관이 되어서 몇만 냥의 돈을 모을 수 있었다.14 1908(무신)년 4월 상제님께서는 백남신으로부터 천 냥을 가지고 오셔서 김갑칠의 형인 김준상의 집에 동곡약방을 차리셨다.15 그리고 1908(무신)년 6월에 백남신의 친묘 도굴사건이 발생했을 때는 상제님께 부탁을 드려서 그 일을 해결하기도 하였다. 당시 상제님께서는 백남신에게 처서절에 도적이 두골을 가져올 것이니 다른 사람과의 왕래를 끊고 한적한 곳에서 기다리게 하셨다. 처서절이 되자 상제님 말씀대로 동리 한 사람이 두골을 가지고 찾아왔다. 종도들이 처서날에 두골을 찾게 된 연유를 궁금해하자 상제님께서는 “모든 사사로운 일이라도 천지공사의 도수에 붙여 두면 도수에 따라서 공사가 다 풀리니라”라는 말씀을 남기셨다.16


▲ 전주 학인당 본채 (백남신 형제의 대 저택 중 남아있는 일부) , 《대순회보》154호,pp.45~46



▲ 동곡약방이 있었던 김준상 종도의 본채 (2003년 촬영), 《대순회보》 210호, p.85



  김윤근(金允根)은 김병욱의 부하로 전령 역할을 하는 등 여러 업무를 처리하던 인물이었다. 그는 수십 년 동안 치질로 고생해 왔는데 1903년 3월이 되면서부터는 자리에 누울 정도로 병세가 심해졌다. 이것을 안 김병욱이 상제님께 그의 치료를 부탁한 것으로 보인다. 김윤근을 불쌍히 여긴 상제님께서는 아침마다 시천주를 일곱 번씩 외우게 하셔서 병을 고쳐주셨다.17 이후로 『전경』에 그의 모습이 종종 등장한다. 1908년 6월 계속된 가뭄 때문에 곡식이 타죽어 가고 있었다. 김병욱은 김윤근에게 이러한 사정을 상제님께 전하게 하였다. 상제님께서는 김덕찬에게 그가 기르는 돼지 한 마리를 잡아 오게 하신 후에 종도들과 함께 드셨다. 그러자 갑자기 뇌성이 일고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것을 본 김윤근은 “선생이 곧 만인을 살리는 상제시니라”라고 고백하였다.18 이렇게 그는 상제님의 신이하신 능력에 감복하여 상제님에 대한 믿음이 더욱 굳건해졌던 것으로 보인다.
  이도삼(李道三)은 고부(古阜)에 살았던 인물로 간질병을 앓고 있었다. 그는 상제님께 자신의 병을 고쳐주시기를 청했는데 이때(1903년 봄) 『전경』에 처음으로 등장한다. 『전경』에 따르면 이도삼은 상제님의 성예를 듣고 직접 찾아온 것으로 보인다. 상제님께서는 “나를 따르라”라고 이르시고는 그를 눕혀놓고 자지 못하게 하셨다. 이후로 이도삼의 변에 담이 섞여 나오니 14일 만에 간질 기운이 사라졌다.19 이러한 치유를 통해 그는 상제님을 따르게 된 것으로 짐작된다. 그가 참여한 공사로는 후천에 관련된 공사가 있다. 상제님께서 “사람을 해치는 물건을 낱낱이 세어보라”라고 말씀하시자 이도삼은 범ㆍ표범ㆍ이리ㆍ늑대로부터 시작하여 모기ㆍ이ㆍ벼룩ㆍ빈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아뢰었다. 그러자 상제님께서는 “사람을 해치는 물건을 후천에는 다 없애리라”라고 말씀하시며 공사를 보셨다.20 다른 공사로는 금강산 일만이천 봉의 겁기를 제거한 공사가 있다. 본래 이 공사는 10일 동안 계속 행해야 했는데 김형렬, 김광찬은 상제님의 명을 따랐으나 신원일은 공사를 즐거이 행하지 않았다. 이에 상제님께서는 신원일 대신 이도삼을 불러 공사를 마치게 하셨다.21



  1904년이 되어 『전경』에 등장한 인물로는 김덕찬(金德贊)과 정춘심(鄭春心)이 있다. 김덕찬은 동곡 마을에서 전주 부중(전주성 사대문 안쪽)으로 갈 때 거치게 되는 전주 용머리 고개 부근에 살았던 인물이다. 김덕찬이 『전경』에 처음 등장하는 일화를 보면, 그가 모친상을 지내려고 전주에 갔다가 돌아오는 중에 용머리 고개(용두치) 주막에서 상제님을 뵈었던 때이다. 상제님께서는 그에게 “오늘 장사를 못 지낼 것이니 파의하라(그만두라).”라고 하셨으나 듣지 않고 장례를 치르려고 하였다. 그런데 땅을 파는 곳마다 개미굴이 나와 묘를 쓸 수 없게 되자 임시로 흙을 쌓아 무덤(토롱)을 만들 수밖에 없었다.22 김덕찬은 상제님께서 공사하실 때 칠성경을 쓰라고 시키실 만큼23 학식을 갖춘 인물이었고 집에서 돼지를 길렀던24 것으로 보아 살림 또한 부족하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평소에 거만한 성격으로 상제님 앞에서도 그러한 태도를 보였는데, 모친의 장례에서 상제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자기 뜻대로 일을 진행하는 모습은 이런 그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 그러나 상제님께서는 그것을 개의치 않으시고 도리어 그를 우대하셨다고 한다. 상제님에 대한 김덕찬의 태도가 바뀐 시기는 1908년 여름이었다. 상제님께서 공사를 보실 때 크게 우레와 번개를 발하자, 김덕찬이 두려워하여 그 자리를 피하려고 하였다. 이에 상제님께서 꾸짖으시기를 “네가 죄 없거늘 어찌 두려워하느뇨.”라고 하시니 그가 더욱 황겁하여 벌벌 떨고 땀을 흘리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는 이후부터 상제님을 천신과 같이 공경하고 받들었다고 한다.25 그해 겨울에 김덕찬은 아들의 혼사를 치러야 했는데 날씨가 몹시 춥고 고르지 못해 크게 염려하고 있었다. 하지만 혼삿날이 되자 봄처럼 따뜻해서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이는 상제님께서 날씨를 부조하신 것으로 사람들은 “상제의 부조를 받은 혼삿날이라”라고 칭송하였다.26
  정춘심은 익산군 만중리에 살았던 인물로 김형렬과는 사돈지간이다. 그의 아들인 정성백(鄭成伯)이 김형렬의 첫째 딸과 혼인하였기 때문이다.27 이렇게 정춘심과 정성백 부자가 김형렬과 친족으로 맺어진 관계인 만큼 김형렬의 인도로 상제님과 인연이 닿았을 것으로 보인다. 정춘심이 처음으로 『전경』에 등장한 것은 1904년 8월경이고 아들 정성백은 부친보다 1년 정도 늦은 1905(을사)년에 등장한다. 정춘심의 경우를 보면, 상제님께서 김형렬과 함께 익산 만중리 황사성의 집에 머물고 계셨을 때 빚을 받으러 온 황참봉의 아들이 노기를 띠고 문을 홱 닫는 바람에 벽이 무너지는 일이 일어났다. 이를 보시고 상제님께서 같은 동리에 사는 정춘심의 집으로 가셨는데28 이때가 바로 정춘심이 처음으로 등장한 때이다. 이후 상제님께서는 종종 그의 집에 가셨다.


▲ 익산 만중리(2010년), “좌측 끝 푸른색 큰 건물 자리가 정춘심의 집터였을 가능성이 높다” 《대순회보》 108호 p.14



  상제님께서 1906(병오)년 윤4월 만경에 계실 때 최익현이 의병을 일으켰는데 가뭄으로 모를 심지 못한 농민들이 의병에 참여하면서 세력이 커졌다. 이 사실을 아신 상제님께서 비를 흡족하게 내리시니 농민들은 모를 심으러 집으로 돌아가고 최익현은 체포되었다. 이 소식을 들으시고 상제님께서는 만경에서 정춘심의 집으로 떠나시며 “최 익현의 거사로써 천지신명이 크게 움직인 것은 오로지 그 혈성의 감동에 인함이나 … 때는 실로 흥망의 기로이라 의병을 거두고 민족의 활로를 열었느니라”라고 하셨다.29
  정춘심의 아들인 정성백이 『전경』에 처음으로 등장한 때는 ‘진묵의 초혼’이라는 말이 있는 공사에서이다. 이 공사는 1905년 10월경 정춘심의 집에서 행해졌는데 공사에 참여한 이들 중에는 정춘심과 정성백 그리고 그의 가족들도 있었다. 본래 이 글에서는 1904년까지 『전경』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소개하고 있으나 정춘심과 정성백이 부자 관계이기 때문에 함께 소개한다. ‘진묵의 초혼’이라는 말이 있는 공사에서 상제님께서는 정성백에게 젖은 나무 한 짐을 부엌에서 지펴 증기선 연통처럼 연기를 일으키게 하시고 “닻줄을 풀었으니 이제 다시 닻을 거두리라”라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방에 있던 종도들이 갑자기 현기증을 일으키니 어지럽고 구토하며 정신을 잃은 이도 있었다.30 정성백은 이후에도 여러 공사에 모습을 보인다. 1906년 1월 5일에 있었던 호소신 관련 공사에 참여했을 때 웃지 말라는 상제님의 주의에도 불구하고 가장 먼저 크게 웃음을 터트리는 바람에 3일 동안 자리보전하고 앓아누웠다가 상제님의 치유를 받은 일이 있었다.31 또한 1907년 3월 초 상제님께서 49일 동안 말점도(末店島)에 들어가 계셨던 공사에서는 상제님의 명에 따라 자신의 집에서 김형렬, 김갑칠과 함께 매일 짚신 한 켤레와 종이등 한 개씩을 만들기도 하였다.32
  지금까지 1903년부터 1904년까지 『전경』에 등장한 인물들의 인연 관계에 대해 간략히 정리해 보았다. 다음 글에서는 1905(을사)년부터 1906(병오)년까지 『전경』에 등장하는 인물들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01 교운 1장 13절 참고.
02 조규제, 「전경지명답사기: 전주성의 사문, 서천교, 용머리고개(용두치)」, 《대순회보》 163호 (2014), pp.31-32 참고.
03 『증산천사공사기』, p.17 참고, “癸卯正月에 全州府에이르사 徐元奎藥局에머무시니 金秉旭張興海金允贊이와치니라”
04 교운 1장 12절 참고.
05 행록 3장 6절 참고.
06 행록 2장 20절 참고.
07 강대성, 「전경 속 이야기 : 김병욱의 영귀(榮貴)」, 《대순회보》 277호, p.43 참고, “『수원 백씨파보』에 의하면 김병욱의 동생 김희병(金熙炳)의 막내딸이 백남신의 형인 백낙중(白樂中)의 아들 백남혁(白南爀)과 혼인한 것으로 나타난다.”
08 예시 24절 참고.
09 공사 1장 12절 참고.
10 행록 3장 25절 참고.
11 행록 3장 1절~8절 참고.
12 행록 4장 48절.
13 행록 2장 20절 참고.
14 행록 3장 12절 참고.
15 『증산의 생애와 사상』, p.202 참고.
16 행록 4장 28~29절 참고.
17 제생 7절 참고.
18 행록 4장 27절 참고.
19 제생 8절 참고.
20 공사 3장 8절 참고.
21 공사 2장 13절 참고.
22 권지 1장 30절 참고.
23 행록 4장 12절 참고.
24 행록 4장 27절 참고.
25 교운 1장 23절 참고.
26 권지 2장 32절 참고.
27 신상미, 「상생의 길: 김형렬 종도의 행적」, 《대순회보》 108호 (2010), p.106 참고.
28 행록 3장 23절 참고.
29 공사 1장 24절 참고.
30 공사 1장 15절 참고.
31 공사 1장 16절 참고.
32 공사 2장 1절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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