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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에 글을 쓰신 후 불사르셨도다
교무부 김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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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에는 상제님께서 종이에 글을 써서 불사르셨다는 내용이 50여 회 나올 정도로 자주 등장한다. 공사 1장 5절에는 상제님께서 명부공사를 말씀하신 후 날마다 종이에 글을 쓰시고 그것을 불사르셨다고 기록되어 있다.01 상제님과 도주님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 <화평의 길>에도 대장부(大丈婦) 공사를 보시는 상제님께서 종이를 불사르시는 장면이 등장한다. 종도들이 앉아 있는 앞에서 “대장부(大丈夫) 대장부(大丈婦)”라고 쓰시고, 그 종이를 불사르시는 모습은 상제님의 공사에 신비함을 더해주는 인상적인 장면이다. 종이에 글을 써서 불사르신 행위는 주로 천지공사와 관련되기에 각 공사에 해당하는 의미가 있을 것이다. 이 글에서는 전통적으로 종이를 태우는 행위가 지닌 종교 문화적 의미를 알아보고, 상제님께서 종이에 글을 쓰신 후 불사르신 행위가 지닌 의미에 관해서 간략하게 짚어보고자 한다.
종이를 태우는 소지(燒紙) 의례
종교적 목적으로 종이를 태우는 행위를 동아시아 전통에서는 ‘소지(燒紙)’라고 부른다. 소지는 단순한 물질의 소각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세계에 의사를 전달하려는 인간의 상징적 행위로 인식되어 왔다. 제도화된 종교 이전부터 있었던 보이지 않는 세계와 소통하려는 원초적 신앙이 종이를 태우는 행위로 표현된 것이다. 문헌상 기록된 소지의 시초는 민간신앙에서 장례와 관련되어 등장했다. 송(宋)나라 유문표(兪文豹)가 지은 『취검록(吹劍錄)』에는 “당나라 왕유(王璵)의 전(傳)에 이르길 ‘한(漢)나라 이래로 장례에는 모두 돈을 묻었다. 후세의 속된 풍습에서는 점차 종이로 돈을 대신하여 귀신을 위한 일에 썼다.’ … 이것이 종이를 태우고, 점을 치고, 시신을 불태우며, 곡을 부르는 것의 시초이다.”02라고 기록되어 있다. 사람들은 종이돈을 태움으로써 그 돈이 보이지 않는 저승에도 전해질 것이라고 믿었다. 이것은 소지가 처음에 어떻게 활용되었는지를 보여준다. 사후세계(영계)를 비롯하여 하늘의 세계, 신의 세계와 소통하는 수단으로서 소지의 종교적 의미는 유교, 불교, 도교와 민간신앙에서 다양하게 나타났다. 불교의 천도의례로 알려진 수륙재(水陸齋)에서는 망자의 몸을 향탕수(香湯水)로 씻고 종이로 만든 옷을 태우는 과정이 행해졌다.03 망자가 입을 옷을 저승으로 보내기 위한 방법으로 종이옷을 태운 것이다. 도교 전통에서는 육조시대(六朝時代, 220~589)에 경전을 태웠던 기록이 보인다. 천상계로 통하는 매개로서 제물을 이해하고, 피 흘리는 제물 대신에 신의 말씀을 종이에 기록한 경전으로 대체하고자 한 것이다.04 종이는 성스러운 재료였고, 그 안에 쓰인 문자도 주술적 힘을 지닌 것으로 믿어졌다. 후에는 인간의 염원을 종이에 적어 그것을 태우기도 하였다. 소문(疏文)이라고도 불리는 이러한 종이는 인간이 신에게 쓰는 청원서로 신계와 소통하는 수단이라고 믿었다.05 유교식의 제사의례에서 마지막에 신위를 불사르는 행위도 소지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유교식 제사에서 소지는 의례가 끝나고 신위를 정결하게 소멸시키려는 뜻이 강하다. 반면 일반적으로 소지는 종이를 태우면서 생기는 변화를 통해 다른 세계와 소통하는 종교적 의미를 부여한다.06 한국의 민간신앙에서는 소지가 더욱 적극적으로 행해졌다. 무당은 의례에 사용하는 장비인 다양한 무구(巫具)를 종이로 제작하였고, 의례가 끝난 후에 종이 무구는 태워졌다고 한다.07 의례 전에 행하는 일부 소지는 정화의 기능도 하지만, 의례의 과정이나 후에 행해지는 소지는 소원을 비는 의례와 결합하면서 신과의 의사소통 수단으로 기능했다.08 우리 민족이 정월 대보름에 달집 태우는 의식을 행하면서 소원을 적은 글을 태우는 것도 이와 관련된 신앙적 행위로 이해할 수 있다. 종이로 특정한 모양을 만들어 태우는 것은 실물이 종이로 대체됐거나 종이 자체에 신성성을 부여했기 때문이다. 이와 더불어 소지 문화에서 글을 쓴 종이를 태우는 행위는 글자에 인간의 염원을 담아 사후세계나 신계에 전하려는 종교적 의례로 이해된다. 불에 타면 대상물은 화학적으로 변해 소각되어 버린다. 마치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소지는 불에 태운다는 것이 지닌 상징성과 종이라는 신성한 소재를 통해 종교적 의미를 만들어 내고자 하는 종교 문화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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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공사에 사용하신 소지
『전경』에서 상제님께서 행하신 소지는 주로 천지공사와 관련되어 나타난다. 천지공사는 상제님께서 천ㆍ지ㆍ인 삼계를 고쳐서 바로잡는 일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직접 천지에 이적을 행하시는 초월적이고 강력한 상제님의 모습을 상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전경』에서는 상제님께서 상징적이고 비유적인 행위로 천지공사를 행하신 모습을 기록하고 있다. 그러한 행위의 대표적인 예가 바로 종이에 글을 써서 불사르신 것이다. 상제님께서 소지하신 의미는 주로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일까? 이에 대해서 상제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해 주셨다.
상제께서 계묘년 정월에 날마다 백지 두서너 장에 글을 쓰거나 또는 그림(符)을 그려 손이나 무우에 먹물을 묻혀 그것들에 찍고 불사르셨도다. 그 뜻을 종도들이 여쭈어 물으니 “그것은 천지공사에 신명을 부르는 부호이노라”고 알려 주셨도다. (공사 1장 10절)
이 내용을 보면 상제님께서 종이에 글을 쓰시거나 그림을 그려서 불사르신 행위가 신명을 부르는 일종의 신호처럼 쓰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소지를 통해서 천지공사에 쓰일 신명계의 신들을 부르셨다는 것이다. 상제님께서 천지공사의 다양한 방법 중 하나로 사용하신 소지는 신명을 움직이고, 신명계의 질서를 변화시켜서 현실 세계를 바꾸는 명령으로 이해될 수 있다. 종이와 글자 자체가 지닌 상징적 의미와 함께, 다른 세계와 통하게 한다는 소화(燒火)의 의미를 사용하여 신명 세계와 현실 세계의 변화를 만드신 작업인 것이다. 역사적으로 종이를 태웠던 종교적 의미가 사후세계나 신의 세계에 전달하려는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것을 보면 분명 태우는 행위는 보이지 않는 세계로 통하는 매개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게다가 문자를 기록하고 의사를 전달하는 수단으로서 종이 자체가 지닌 상징적 의미는 태움이 지닌 의미와 더해져 종교적 소지를 한층 더 신비하게 만든다. 모든 종교 경전이 종이로 만들어지면서 종이는 신의 말씀을 담아낼 수 있는 신성한 재료로 여겨졌고, 소지를 행했던 민간신앙에서는 신이 종이를 안내장 삼아 인간 세상에 내려온다고도 믿었다. 무구를 종이로 만들어 신을 초청했던 것은 그러한 이유이다. 그래서인지 상제님께서는 천지공사에서 종이를 많이 사용하셨고, 글을 쓴 종이를 태우는 소지를 자주 행하셨다. 중요한 것은 상제님께서 행하신 소지는 단순히 신을 요청하는 의식으로서가 아니라 신명계와 소통하며 현실을 변화시키는 구체적인 방법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한 가지 사례로 상제님께서는 출타하시기 전에 신명에게 치도령(治道令: 도로를 다스리는 명령)을 내려 길 상태를 좋게 만드셨는데, 그 치도령의 방법이 바로 종이에 글을 써서 태우는 행위였다.09 나아가 천지공사에서 행하신 소지는 신명계의 착란을 직접 바로 잡는 일과도 관련되어 있다. 천지공사의 일환으로 시행된 명부공사는 명부의 착란을 해결하기 위한 작업이었다. 날마다 종이에 글을 쓰시고 그것을 불사르시는 행위를 통해 명부의 착란을 바로 잡으셨고, 그에 따라 조선 명부, 청국 명부, 일본 명부는 바뀌게 된다.10 그만큼 상제님께서 행하신 소지는 그 의미와 범위가 깊고 넓다고 할 것이다. 대순진리회에서도 종이에 글을 써서 태우는 소지는 중요한 의례 절차에서 쓰이고 있다. 입도치성을 드리게 되면 입도자의 성명과 입도일을 적은 녹명지(錄名紙)를 태우기도 하고, 매일 정해진 시간에 기도를 모시며 주문이 쓰인 납폐지(納幣紙)를 태우기도 한다. 신명계에 입도자의 신상을 알리고, 신명의 응감을 바라며, 때로는 일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절차이기도 한 것이다. 이처럼 신명과 소통하는 방식으로 행해지고 있는 소지 의례는 신명과 인간의 조화를 추구하는 교리적 이상과도 맞닿아 있다. 소지는 단순한 제의 행위가 아니라, 인간의 간절한 마음을 담아내는 상징적 실천이기도 하다. 대순진리회의 소지가 지닌 의미를 종교적으로 행해오던 보편적 믿음과 관련하여 생각해 보고, 상제님께서 행하신 소지의 의미를 생각해 보는 것은 우리의 의례를 한층 더 경건한 자세로 맞게 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01 공사 1장 5절, “상제께서 가라사대 ‘명부의 착란에 따라 온 세상이 착란하였으니 명부공사가 종결되면 온 세상 일이 해결되느니라.’ 이 말씀을 하신 뒤부터 상제께서 날마다 종이에 글을 쓰시고는 그것을 불사르셨도다.” 02 『吹劍錄』, “唐 王璵 傳 ‘漢 以來, 喪葬皆瘞錢. 後世俚俗稍以紙代錢為鬼事.’ … 此燒紙, 拋珓, 焚尸, 挽歌之始也.” 03 『天地冥陽水陸齋儀梵音刪補集』 「三卷仔蘷文 五晝夜作法規卷之下」, “身心洗滌令淸淨, 證入眞空常樂卿. 以此香湯水, 灌沐亡者身, 願承法加持, 普獲於淸淨. 唵. 尾摩羅. 秫帝. 娑嚩賀. 燒紙衣.” 04 이연승 엮음, 『동아시아의 희생제의』 (서울: 모시는사람들, 2019), pp.164-165 참고. 05 중국불교네트워크(https://www.hrxfw.com) ‘도가의 소문(疏文)은 어떻게 쓰는가?’ 참고. 06 「소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참고. 07 임승범, 「충청지역의 종이무구(巫具) - 충남 태안지역을 중심으로」, 『한국무속학』 13(2006), p.46 참고. 08 「소지」, 『한국민속대백과사전』 참고. 09 권지 1장 9절 참고. 10 공사 1장 5, 7절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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