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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55년(2025)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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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누고 싶은 이야기 : 일심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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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심의 힘

 

 

잠실35 방면 선무 임지원




  나는 어렸을 적 인정이 많고 마음이 약한 아이였다. 어린 나이에도 죽음에 관한 생각과 고민이 많았고, 뉴스에서 다른 나라 전쟁 소식이라도 접할 때면 마음껏 뛰어놀지도 못하고 마음이 무거워 잠을 이루지 못했던 시절도 있었다. 이렇듯 나의 일이 아니어도 다른 사람들의 아픔이 마음에 사무쳤던 것 같다. 그런 내가 힘들고 불편하고 버거웠다.
  나에게는 여동생이 하나 있는데 내 눈에 동생은 많이 철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동생은 어릴 때부터 본인의 생각과 입장을 잘 피력했고 원하는 것을 잘 얻었다. 그런 동생이 부러웠다. 나는 원하는 게 있어도 동생처럼 먼저 요구하지 못하고, 부모님을 배려하려 했다. 그러다 보니 학교 진학 문제부터 꼬이기 시작했다. 부모님 상황보다는 본인의 입장을 먼저 생각하고 결정했던 동생은 학교 진학부터 지금까지 계속 순조롭게 지냈다. 반면 나에게는 고난의 연속이었다. 부모님의 뜻을 따른다고 한 일들이 나에게는 불리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경우가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력은 누구보다 많이 한 것 같은데 결실이 크게 없었다.
  당시에는 이 모든 게 내 생각과 의견을 내세우지 못하고, 나의 편의를 먼저 생각하지 못한 결과라 생각해 행동을 바꿔나가기 시작했다. 나를 먼저 생각하면서 모든 것을 나를 중심으로 움직이도록 바꿔나갔다. 하지만 그렇게 살다 보니 주변 사람들이 나로부터 상처를 받았고,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내가 차갑고 무덤덤해 보인다고 말하곤 했다. 특히 가까운 사이였던 사람들이 더 큰 상처를 받았다. 그 결과 내 곁엔 친한 사람이 많이 남지 않게 되었다. 그 와중에도 그나마 가까웠던 사람들은 나를 알면 알수록 좋은 사람이라고 평가 해주곤 했는데, 그게 참 신기하기도 했다. 저 깊은 마음속에는 그래도 따뜻한 마음이 남아있던 것일까?
  그러면서 나는 어딘가 모르게 마음 한편이 텅 빈 것 같이 허전했다. 그래서 봉사활동도 해보고 마음의 깨달음을 얻기 위해 여기저기 다녀보기도 했다. 대학교에서 미술 심리치료도 공부해보고 전생을 본다는 곳도 다녀오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답을 얻지 못했고 마음 한편이 항상 공허하고 허전했다. 그 당시에는 도대체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그러던 중 첫 직장에서 아르바이트하러 왔던 동생을 알게 되었다. 그 동생은 항상 웃고 있었고 얼굴이 마치 햇살과도 같이 빛났다. 유난히 후광이 비추듯 밝게 빛나는 얼굴을 볼 때마다 나도 같이 밝아지고 싶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동생이 먼저 나에게 다가왔는데, 그때 속으로 얼마나 반갑고 기뻤는지 모른다. 그 이후 대화도 많이 하고 직장 업무도 공유하면서 많이 친해졌다. 내가 많이 의지하게 되었다는 생각이 들던 때, 그 동생은 나에게 도에 관한 교화를 하면서 같이 수도 하자고 권유했다. 나는 충분한 호감을 가지고 있었기에 흔쾌히 받아들이고 입도치성을 모시기로 했다.
  그런데 하필 약속한 날 회사에서 미룰 수 없는 중요한 일이 생겼는데, 그 순간 엄마가 나에게 늘 잔소리처럼 하던 말이 생각났다. “얼굴에 빛이 나는 사람이 되어라. 얼굴에 빛이 나는 사람을 곁에 두어라. 사소한 약속이라도 꼭 지키고 뒤에 아무리 큰 중요한 약속이 생길지라도 선약을 깨지 말아라.” 당시 나의 상황과 너무나 잘 맞아떨어지는 말이었다. 얼굴에 빛이 나는 사람을 만났고 나는 그를 닮고 싶었다. 그래서 입도치성을 하려 하는데 하필 일이 겹쳐버린 것이다. 당시 나는 미술관에서 근무하는 큐레이터(전시기획자)였는데 경기도 내에 있는 큰 미술관 관장님과의 미팅이 갑작스럽게 잡힌 것이었다. 하지만 당시 아무리 작은 약속이라도 선약을 먼저 깨지 말라는 엄마의 조언에 그 친구와의 약속을 미루고 싶지 않아 예정대로 입도치성을 모셨다.
  걱정했던 것과 달리 미팅도 잘 끝났다. 나는 성공적으로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갔다. 그 후에 알게 되었는데 바로 그날이 할머니 기일이었다. 여러 가지로 참 신기한 하루였다.
  이후 선각을 따라 포덕소를 꾸준히 가게 되었고, 기도를 모시고 교화를 듣고 회관과 도장에 따라다니며 수도인으로 성장했다. 그동안의 이기적인 생각과 마음 때문에 수도하는 일이 쉽지는 않았지만, 선각들의 애정 어린 관심과 도움으로 조금씩 성격과 체질을 뜯어고치면서 본성을 회복해 나갔다. 스스로는 잘 인지하지 못했지만 나를 오랜만에 보는 사람들은 얼굴이 많이 달라졌다면서 못 알아보겠다고 하곤 했는데, 시간이 흐르니 내가 보기에도 실제로 인상이 많이 부드러워진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선각의 적극적인 권유에도 나는 오랜 시간 동안 포덕을 시도 해보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도가 좋다는 것을 알지만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두려움에 5년 동안 혼자서만 포덕소에 왕래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남의 시선 따위 전혀 의식하지 못할 만큼 절실한 상황을 맞이했다. 내 인생에서 손에 꼽힐 정도로 많은 후회와 상실감이 밀려오던 시기였는데, 이 상황을 벗어나고 싶어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포덕을 시작하게 되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지인들을 만나가며 만나는 사람마다 교화를 하기 시작했다. 정말 도에서 말하는 ‘일심’이었다. 그때는 다른 사람의 눈에 내가 정신 나간 사람처럼 보여도 상관없다는 마음이었다.
  포덕을 하면서 도에서 일을 이루기 위해 다들 기간을 정해서 정성을 꾸준히 들여 나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나도 21일 정성부터 시작해서 49일, 100일까지도 정성을 들였다. 처음에 21일 정성을 하면서 그사이에 많은 시험이 들이닥친지라 포덕소에 가서 기도 모시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느끼게 되었다. 보통 21일 동안 무언가를 매일 반복적으로 한다는 것이 아주 어려운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도에서는 내가 신명과의 약속을 지켜나간다는 것이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었다. 정성을 들이는 동안 계속해서 힘든 일이 생겼고, 지인들과의 관계 속에서 나의 감정이 소용돌이치며 견디기가 어려워졌다. 내 인생에서 무언가를 위해 이렇게 간절히 빌면서 정성 들이는 것이 처음이라 그런지 더 쉽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선각에게 처음 정성을 들여보겠다고 말했을 때 선각이 쉽지 않을 거라면서 마음의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한다고 했던 것 같았다.
  이후에도 후각을 찾기 위해서 혹은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바라는 일이 생겨 꼭 이루고 싶어서 49일 정성, 100일 정성을 들이게 되었다. 정성을 들이면서 시험의 강도도 전보다 거세짐을 느꼈고, 가족을 통해서 나 자신을 통해서 큰 시험이 들어오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나의 흔들림 없는 마음을 확인해 보시는 것처럼 느껴졌다.


 
  한 번은 49일 정성을 들이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엄마가 나를 부르며 심각한 표정을 지으시면서 말씀하셨다. “방금 아빠랑 병원에 다녀왔는데, 아빠가 위암일 수도 있대.” 그 말을 들었을 때 선각이 항상 해주던 조언이 생각났는데 “정성 기간에 어떤 어려움이 와도 믿음이 약해지면 안 돼요. 무조건 믿어요. 잘될 거라고.” 이렇게 신신당부를 해주곤 했었다. 그래서 속으로 ‘정성을 시작하니까 별소리를 다 듣네’라고 생각하면서 엄마께 “엄마, 아빠 암 아니야. 괜히 겁주는 거야. 오진이겠지”라고 말하며 더 이상의 걱정은 사치라면서 말을 끊어냈다. 그런데 며칠 후, 엄마에게 놀라운 소식을 들었다. “지원아, 오늘 병원에서 다시 검사 결과 받았는데 아빠 위암 아니래. 위염이래”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아무리 내가 며칠 전 대범하게 아빠는 별일 없을 거라고 단호하게 말하긴 했었지만, 아주 신경을 안 쓴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당연히 신경이 쓰이는 일이었다. 하지만 정성 들이고 있어서 최악의 상황은 면해 주실 거라고 굳게 믿고 있었기에 마음이 크게 흔들리지는 않았는데, 그럼에도 반가운 소식을 듣고는 크게 안도했다.
  또 한 번은 100일 정성을 들이고 있을 때였다. 열심히 어떠한 난관과 시험이 들어와도 잘 넘기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평생 단 한 번도 없었던 피부병이 생겨버렸다. 병원을 여기저기 다녀보고 약을 먹고 바르고 주사를 맞아도 차도가 전혀 없었다. 오히려 의사들은 이유를 모르는 듯했다. 너무 가려워서 한 달 동안은 잠도 못 잤었다. 그렇게 고통스럽게 견디고 있을 때 병을 살피던 의사가 심각한 다른 이유가 있는 것 같다며 큰 병원에서 진료를 보라고 권유했다. 큰 병원을 방문했는데 의사가 나의 피부 상태를 보더니 깜짝 놀라며 이건 분명 전염병임이 틀림없다고 하며, 나를 격리 병동에 가뒀다. 진짜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나만 홀로 병실에 갇혀있고, 보호자인 엄마를 유리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만나지 못하게 했으며 의사들은 혹시 나에게 전염될까 봐 방역복을 입고 진료했다.
  그런 상황 속에서 걱정되는 건 단 하나였다. ‘정성 기간인데 기도 모시러 포덕소에 못 가면 어쩌지? 어쩔 수 없이 내가 이런 상황이니 정성을 끊기보다는 선각께 말씀드려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서라도 같이 정성을 들이게 이곳으로라도 와달라고 부탁해야 할까?’라고까지 생각했다. 굳게 마음을 먹고 선각께 전화를 하니 갑자기 의사가 와서 “퇴원하셔도 돼요. 전염병 아닌 것 같아요”라면서 나를 집으로 돌려보냈다. 『전경』에 상제님께서 “나는 해마를 위주하므로 나를 따르는 자는 먼저 복마의 발동이 있으리니 복마의 발동을 잘 견디어야 해원하리라”라고 하셨는데 내가 가진 겁액이 풀리기 위해 병으로 드러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고, ‘나의 간절한 심고를 들어주시려나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참 짧은 기간 동안 별일이 다 생겼던 것 같다. 정성 기간 중 이러한 에피소드를 겪으면서 느낀 것은 어떠한 어려운 시험이 와도 처음 그대로의 마음으로 흔들림이 없이 해낸다면 내가 못 이겨낼 일을 겪게 하시진 않는다는 점이었다. 어쩌면 흔들림 없이 한 가지에만 집중하는 것 또한 ‘일심’인 것 같다. 일심이란 것이 위기 속에서 정말 큰 힘을 발휘하는 것 같다.
  『전경』에 상제님께서 “인간의 복록은 내가 맡았으나 맡겨 줄 곳이 없어 한이로다. 이는 일심을 가진 자가 없는 까닭이라. 일심을 가진 자에게는 지체 없이 베풀어 주리라.”라고 말씀하셨는데 포덕을 하고 정성을 들이며 한 가지 마음에만 집중해서 일을 해나갔을 때 반드시 보답이 있다는 것을 알았고, 나의 한계를 뛰어넘어 더 큰 결과를 얻게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무엇보다 선무 임명을 모실 때 후각 중 한 명이 함께 교무 임명을 모시게 되어 정말 기뻤다. 이 후각은 직장을 다니면서 만난 사람 중 한 명인데 내가 지나가는 말로 마음공부를 하고 있다고 하니 계속 먼저 자신도 알려달라고 적극적으로 다가와서 입도하게 된 후각이었다. 내가 온 마음을 집중해서 포덕 단 하나만을 생각하니까 상제님께서 함께 도를 닦을 수 있는 후각을 보내주신 것 같아 신기할 따름이었다. 어느덧 입도한 지 13년이 되었다. 선각분들은 항상 나에게 “임선무는 조상님 공덕이 많은 것 같아요”라고 말씀하시는데, 입도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나는 이런 말을 들으면 “공덕이 뭐가 많아요. 별로 없는 것 같은데…”라고 입을 삐죽거리며 말하곤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정말 ‘우리 집안 공덕이 많구나’하는 생각에 참 감사하다.
  지금껏 나와 내 가족, 친척, 지인들 모두 아무 일 없고 크게 아픈 사람 하나 없이 무탈하게 지내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이렇게 수도인으로서 많은 보호를 받으면서 하루하루 기적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음에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상제님의 덕화와 조상님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앞으로 더욱 수도를 열심히 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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