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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 있는 풍경 : 식견과 박람박식

식견과 박람박식

 

 

교무부 강대성

 



  어느 날 태인 사람 동부승지 임낙구가 방 하나와 툇마루 한 칸 규모의 소한정(小閑亭)을 지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그 정자(亭子)와 관련한 글을 허목(許穆, 1596~1682)과 송시열(宋時烈, 1607~1689)에게 청했다. 임낙구는 먼저 허목에게 글을 받았으나, 마음에 들지 않아 다시 송시열을 찾아갔고, 송시열은 그를 위해 다음과 같은 글을 써주었다. “소한정은 태인군 산내 용두봉 기슭에 있다. 주인은 춘관(春官) 나주 임익중의 후예인 동부승지 임낙구다. 낙구가 실로 내게 기문(記文)을 청해 말하기를 … 이에 경치가 빼어난 곳에 정자를 지었다. … 돌아가 처마 사이에 이를 새겨두기를 청하노라. 임술년 10월 우암 송시열”.01
  이러한 글을 지은 송시열은 임낙구가 자신보다 먼저 허목의 글을 받은 사실을 알게 되어 그 글을 보자고 했다. 허목의 글은 이러했다. “방 한 칸에 퇴 한 칸. 여름에도 좋고 겨울에도 좋다. 임술 10월 미수(房一間 退一間 宜夏宜冬 壬戌孟冬 眉叟)”. 허목의 글을 본 송시열은 임낙구에게 자신이 써 준 글을 다시 돌려달라고 하며 그 자리에서 찢어버렸다. 왜냐하면 허목의 단 10자밖에 안 되는 간결한 글에 비하면 거의 200여 자에 달한 자신의 의례적 격식만을 갖춘 글을 내놓기가 부끄러웠기 때문이다.02
  이 이야기는 1958년에 간행된 조준경의 『야화선집(野話選集)』에 실려 있는 「소한정기(小閑亭記)」라는 글이다. 비록 야사에 나오는 이야기이지만, 허목과 송시열의 일화는 두 사람의 안목과 통찰, 즉 식견(識見)의 차이를 잘 보여준다. 허목은 정자의 규모에 맞게 군더더기 없는 열 글자로 그 가치를 드러냈다. 이는 단순히 간결한 문장이 아니라, 사물의 핵심을 곧바로 짚어내는 깊은 안목에서 비롯된 것이다. 반면 송시열은 자신의 글이 의례적 격식에는 충실했으나, 허목의 글에 비해 상황에 적중한 표현을 드러내는 힘이 부족하다는 점을 스스로 인정하였다. 결국 두 사람 모두 높은 수준의 식견을 지녔기에, 한쪽은 간결함 속에 정수를 담았고 다른 한쪽은 그 탁월함을 알아보고 자신의 부족함을 겸허히 인정할 수 있었다.
  이러한 식견은 우리의 삶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식견은 지식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사물의 본질을 꿰뚫는 힘이다. 즉, 식견은 단순히 학문적 기량을 드러내는 데 그치지 않고 사물을 올바로 바라보는 통찰력으로서, 삶을 이끄는 근본이 된다. 식견은 지식과 체험이 함께 쌓일 때 비로소 직관적 안목으로 드러난다. 여러 차례의 시련과 경험을 거쳐야 사람과 사물을 온전히 이해하는 눈이 열리듯, 식견은 학문적 지식만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삶 속에서 부딪히고 체득하는 과정을 통해 길러지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옛사람도 “글이 좋고 나쁨은 문장이 아니라 식견에서 생겨난다. 식견은 뿌리이고, 글은 가지와 잎새다”03라고 하여, 식견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다.
  수도에서도 식견은 바른 분별과 실천을 가능하게 하는 중요한 자질이 된다. 그렇다면 이러한 식견은 어떻게 길러질 수 있을까? 상제님께서 “가장 두려운 것은 박람박식(博覽博識)이니라.”(교법 2장 24절)라고 말씀하셨다. 박람은 ‘넓게 보고 두루 접하는 것’, 박식은 ‘폭넓고 깊이 아는 것’을 뜻한다. 상제님께서 박람박식이 두렵다고 하신 뜻은 사람과 사물에 대한 안목을 갖추기 위해 넓게 보고 깊이 알아가는 과정이 중요함을 말씀하신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즉 박람박식을 통해 식견이 깊어질 수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도전님께서도 지식을 쌓고 견문을 넓혀야 모든 상황에 적중하게 할 수 있다고 강조하셨다.04 예컨대 상제님의 진리를 전하고자 할 때, 식견은 상황에 따라 간결하게 혹은 충분히 설명할 수 있는 분별력을 길러준다. 상대방이 살아온 과정이나 처지를 살펴 알맞은 말과 적절한 표현으로 전하는 힘은 바로 이러한 식견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도인에게 박람박식은 단순히 지식뿐만 아니라 진리에 대한 깊은 이해와 확신을 갖추기 위한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박람박식을 통한 식견의 함양은 상제님의 진리를 바탕으로 자신을 한층 성숙하게 하고, 수도의 목적을 이루어 나가는 든든한 토대가 된다.

 

 

 


 01 정민, 『스승의 옥편』 (서울: 마음산책, 2007), pp.253-254 참고.
02 같은 책, pp.253-254 참고.
03 이하곤(李夏坤), 『산보고문집성서(刪補古文集成序)』, “文之工拙, 不生于文, 而生于識也. 識者根也. 文者枝葉.”; 정민, 앞의 책, pp.261-262 참고.
04 「도전님 훈시」(1985. 8. 7) 참고. “『전경』에 ‘박람박식(博覽博識)이 가장 두렵다’ 하셨으니, 남을 다스리려면 먼저 지식을 쌓고 견문이 넓어야 매사에 적응하여 말 없는 가르침이 되어 무언행교(無言行敎)의 폭이 넓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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