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너별 보기
   daesoon.org  
대순156년(2026) 2월

이전호 다음호

 

도전님 훈시 종단소식 정심원 전경 속 이야기 기획연재 생각이 있는 풍경 대순캠프 대순광장 신선 이야기 대순문예공모전 안내 나누고 싶은 이야기 알립니다

도전님 훈시 : 상제님을 받들고 도주님의 유법(遺法)을 지키는 것이 올바른 믿음이다

상제님을 받들고 도주님의 유법(遺法)을
지키는 것이 올바른 믿음이다

 

 


  항상 얘기하지만 도란 어려운 것입니다. 그저 모르고서도 따라가면 됩니다. 조금 안다고 잘못 얘기하면 죄를 짓게 됩니다. 몰라도 모르는 대로 믿고 나가면 되는 것입니다. 알려면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잘못하면 자기도 죄짓고 딴 사람도 죄인을 만들게 됩니다. 상제님께서는 “시속에 병신이 육갑한다는 말은 서투른 글자나 배웠다고 손가락을 꼽작이며 아는 체한다는 말이니 이런 자는 장차 죽음을 면치 못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알려면 똑바로 알아야 하고, 모르면 배우고 나가야 합니다.
  예를 들어 납평치성(臘平致誠)의 경우가 있습니다. 납평치성을 하라고 한 지 3년 되었으니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하라고 했으면 그냥 따라서 하면 되지, 마음대로 해석하지 말아야 합니다. 아닌 얘기를 만들어 하게 되면 죄를 짓게 되고 그 말을 듣고 따라서 얘기하는 사람도 같이 죄를 짓게 됩니다. 치성은 정성으로 하면 되는 것입니다. 납평치성이란 옛날 제후들이 천자를 위해서 자기 정성을 다 바쳤던 치성입니다. 치성이라고 하면 그냥 올리면 되는 것이지, 뭘 안다고 이러고저러고 해석을 합니까! 이 말은 어려운 것이 아니고 아주 간단한 것입니다. 치성이 다른 것이 아닙니다. 상제님, 도주님의 화천일 치성이 다른 게 아닙니다. 음식 장만하고 절하고 그러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제사입니다. 제사를 우리는 치성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집에서 음식을 해놓고 절하면 누구에게 하는 것입니까? 돌아가신 분에게 하는 것입니다. 자기 정성을 다 바쳐서 음식을 준비하고 돌아가신 조상에게 절하는 것입니다.
  납평치성도 음식을 갖추고 우리의 정성을 올리는 것입니다. 치성에는 함께 모여서 도장에서 올리는 것하고, 지방 각처에서 올리는 것이 있습니다. 지방에서 올리는 것은 도장 즉 영대에 올리는 것입니다. 제사는 모든 음식을 갖춰서 생존해 계시지 않는 분께 올리는 것입니다. 죽은 사람한테 올리는 것이 제사입니다. 치성도 제사와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도에서 천상에 계시는 하느님께 올리는 것과 집에서 제사 지내는 것이 비슷한 것입니다. 구천상제님 하감지위, 옥황상제님 하감지위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모든 음식을 갖다 놓고 하감하시고 응감하시도록 정성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 음식을 잡수시고 보충하시는 것입니다.
  납평치성을 나에게 올리는 치성이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내가 죽었다는 것입니까? 살아있는 사람에게 하는 치성은 자고로 없는 것입니다! 잘못했으면 그것을 알고 깨우쳐야 하는데…. 방면에서 자기도 죄짓고 다른 사람도 죄짓게 만들고 결국은 도를 못 믿고 떨어집니다. 신명이 떨어냅니다. 쫓아냅니다. 이런 것은 신명을 부인하는 것이고 도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도를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남까지 망치려고 그러는 것입니다.
  일부러 그러는 사람도 있습니다. 일부 그런 사람 때문에 많은 사람이 피해를 입습니다. 그런 사람일수록 가장 나를 위하는 척합니다. 그러니 잘 알고 잘들 해야 됩니다. 옛날 연동흠이 그러지 않았습니까? 연동흠은 나 이상은 없다고 하고 다녔습니다. 안 그러면 사람들이 자기를 안 따르기 때문입니다. 자기를 따르라면 사람들이 따르겠습니까? 그저 나를 위하는 일이라고 해야 따릅니다.
  상도방면도 그런 식이 먹혀 들어가고 있습니다. 상도방면 임원들은 각성해야 합니다. 이해를 못합니다. 들으면 알 텐데, 무슨 얘기를 해보아도 바로 들어가지가 않습니다. 상도방면 임원들이 자기들도 모르게 자꾸 못 헤어나고 빠져 들어가고 있습니다. 나를 어떻게 받들어야 되는가에 대해서 그렇습니다. “구천상제님을 옥황상제님이 그 자리에 만들어서 앉혀 줬고, 옥황상제님을 도전님이 그 자리에 만들어서 앉혀 줬다. 그러므로 도전님은 우리가 자리를 만들어 앉혀 줘야 한다.”고. 이것이 죄를 지어도 보통 짓는 죄이겠습니까? 도를 옳게 믿은 것인가요? 구천상제님을 옥황상제님께서 봉안하여 만들어 놓고, 옥황상제님을 도전님이 만들어 드렸으니, 도전님도 자기네가 만들어 드려야 한다는 말은 곧 자기를 그렇게 만들어 달라는 말입니다. 나중에는 박성구 자기가 받듦을 받아야겠다는 것이니 결국 자기를 천자로 만들어 달라는 뜻과 같습니다. 과거 연동흠이 좋은 예입니다. 그걸 모릅니다. 이런 죄가 어디 있습니까! 신명이 용서치 않습니다. 어디 그 말이 용서될 말입니까! 신명이 용서하겠습니까? 입에도 못 담을 얘기입니다. 입에 올리기에도 죄송스러운 말입니다.
  누가 만들어 주어서 상제님이 된 게 아닙니다. 구천상제님은 천지의 권능을 자유자재로 임의대로 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이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밖의 다른 사람들도 상제님이라고 추종해 나가는 것입니다. 『전경』에도 있고 성화(聖畵) 모신 데도 있지 않습니까? 『전경』도 안 읽은 것입니다. 『전경』에 “원시의 모든 신성과 불과 보살이 회집하여 인류와 신명계의 이 겁액을 구천에 하소연하므로 내가 서양 대법국 천계탑에 내려와 천하를 대순하다가 이 동토에 그쳐 모악산 금산사 삼층전 미륵금불에 이르러 삼십 년을 지내다가 최제우에게 제세대도를 계시하였으되 제우가 능히 유교의 전헌을 넘어 대도의 참뜻을 밝히지 못하므로 갑자년에 드디어 천명과 신교를 거두고 신미년에 강세하였노라”고 하셨듯이, 누가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구천상제님께서 스스로 말씀하시고 스스로 행하신 것입니다. 상제님, 도주님을 누가 만들어드립니까? 도전이 누가 만든다고 되는 일입니까! 이런 말들은 자기도 죄짓고 다른 사람도 죄짓게 하는 것입니다. 누가 만들어서 되는 게 아닙니다. 나를 인격(人格)으로만 보니까 자기(박성구)도 할 수 있는 것인 줄 압니다. ‘내 밑에 도인이 몇인데, 내가 도전님을 어떻게 만들어 주면 된다’고 하는 결과적으로 그런 생각이었습니다. 속아 넘어가는 사람도 그런 것입니다. 구천상제님께서는 스스로 천지의 권능을 임의용지(任意用之) 하셨습니다. 다른 데서도 그것을 보았기 때문에 믿는 것입니다. 그런 분을 도주님께서 그렇게 제위에 모셔서 만들었다고 얘기할 수 있습니까! 그것을 누가 만들어 줍니까! 입에 올리기나 할 말입니까! 그러므로 첫째, 믿어야 합니다. 기도, 수련만 해서 되는 게 아닙니다. 그저 무조건 믿어야 합니다. 모르고 믿으라는 것이 아니고 우리의 진리를 완전히 이해해서 옳고 그른 것을 판단해서 믿어야 합니다. 우리는 확실한 것은 인정해야 합니다. 상제님은 누가 만들어 드린 것이 아니고 스스로 천지를 건지려고 탄강하셨고 권능을 임의대로 하신 것입니다. 기도와 정성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믿어야 합니다. 꼭 인정하고 믿는 것에 성공이 있습니다. 도주님의 일도 아무나 한다고 되는 일이 아닙니다. 
  모르고 믿으라는 것이 아닙니다. 진리가 있지 않습니까. 바르게 알고 믿어야 합니다. 무엇을 도라 합니까? 전 우주, 천지 전체, 모든 것이 생하고 크고, 수많은 생물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온갖 법칙, 변칙, 조화를 도라고 합니다. 5일을 1후(候)라 하고, 3후면 보름이라 하니 이것이 1절후입니다. 1절후가 음과 양으로 한 달을 이룹니다. 한 달이 세 개 모여 봄, 여름, 가을, 겨울 사철이 되고 1년이 되는 것입니다. 1년에는 72후가 있고 24절후가 있고 12달이 있습니다. 시간이 모여서 날이 되고, 날이 모여서 달이 되고, 달이 모여서 1년이 됩니다. 시간에도 음양이 있고 날짜에도 음양이 있어 그날의 음, 양에 맞추어 기도주, 태을주를 읽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수도 공부입니다. 1후는 5일이고 그 이치로 주일을 봅니다. 공부도 여기에 맞추어서 합니다. 5일을 공부하게 되면 5개 반이 되고, 이게 모여서 초강식(初降式)을 합니다. 보름이 되면 초강이 3번이고 합강(合降)이 됩니다. 이것을 자리공부라 합니다.
  천지를 도라 하고, 천지가 음양입니다. 천자(天子)는 하늘의 아들이고, 도문소자(道門小子)는 도의 아들을 말합니다. 소자는 윗전에 자신을 낮춰 칭하는 것으로 도에 내 몸을 낮추어 말하는 것입니다. 도(道)를 천지라고 합니다. 천지는 음과 양이 아닙니까? 하늘ㆍ땅은 음양인데 하늘ㆍ땅은 눈에 보이지만 음양은 보이지 않습니다. 천(天)은 양이니 음이 없습니다. 하늘이 높습니까? 도가 높습니까? 하늘이 큽니까? 도가 큽니까? 하늘의 아들이 큽니까? 도의 아들이 큽니까? 도의 아들이 큽니다. 우리 도는 순리로 보아야 합니다. 하늘이 큽니까? 도가 큽니까? 그래도 모르는 사람은 모릅니다. 눈을 꼭 감고 있어서 모르는 게 아닙니다. 세 살 먹은 어린애도 알 것입니다. 하나가 큽니까? 둘이 큽니까?
  구천상제님을 하느님이라 합니다. 전 도인은 다 구천상제님, 옥황상제님의 아들입니다. 양위 상제(兩位上帝)님 전에 도인은 다 같습니다. 차별이 없습니다. 나도 상제님 전의 도문소자입니다. 주문 읽을 때 도문소자라고 안 그럽니까! 도인은 다 똑같습니다. 나는 여러분들과 다 똑같은데 도전이란 게 다릅니다. 알려면 똑바로 알아야 합니다. 어떤 단체가 있다면 그것을 이끌어 나가는 책임 있는 사람이 있어야 됩니다. 나는 도인들을 통솔해 나가는, 영도(領導)해 나가는 사람입니다. 다른 게 아닙니다. 내 책임이란 게 그것입니다. 도주님께서, 옥황상제님께서 그런 책임을 나에게 직접 주셨습니다.
  도(都)가 ‘맡을 도’라 했더니 박성구가 옥편에 맡을 도(都) 자는 없더라고 말합니다. 그럼 내가 일부러 없는 글자를 만들었단 말입니까? 설령 아니라 할지라도 내가 말하면 믿고 들어야 되는데도 박성구는 수반들에게 자기 말을 믿으라고 할 것입니다. 내가 확인해 봤습니다. 시봉 시켜서 옥편 찾아봤는데 거기에 ‘총(總)’의 뜻으로 나와 있습니다. 거느릴 총(總), 총지휘, 총재, 모두 도(都), 맡는다는 것과 같습니다. 거느릴 총(總) 자나 맡을 도(都) 자나 뜻이 다를 게 뭐가 있습니까. 전(典)이란 법 전(典) 자, 법이 되고 주장(主張), 주인 주(主)입니다. 모든 걸 주장하는 사람입니다. 나도 하느님의 아들이고 너도 하느님의 아들입니다. 다 같은 도문소자입니다. 부모한테 소자, 소녀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나하고 다르다는 것은 내가 통솔해 나간다는 것입니다.
  심우도(尋牛圖)가 있습니다. 대순성전 한편에 심우도를 그려 놓았습니다. 심우도가 다른 게 아니라 도를 찾는 것입니다. 도를 찾는 그림으로 흰 소를 찾는 것입니다. 희다는 것은 백(白) 자로, 백(白)은 사람 인(人)에 뫼 산(山)이니 인산(人山)이고 신선 선(仙) 자입니다. 사람 산(山)과 신선의 도를 찾는다는 것, 그게 백(白) 자 안에 숨겨진 이치, 비결입니다. 도(道) 하면 증산상제님, 정산님을 받들어 모시는 것입니다.
  우리 도는 누가 만들어서 되는 것이 아니고 아무나 해서 되는 것도 아닙니다. 구천상제님께서 천지를 임의로 하셨기에 다른 데서도 상제님을 믿는다지만 진리가 없습니다. 진리가 무엇입니까? 이치입니다. 이치가 경위인데, 다른 데는 이론이 안 맞습니다. 우리하고 믿는 것이 다릅니다. 다 같이 상제님을 믿는데 이치와 경위, 그게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행하신 일, 이러이러한 일을 하셨다는 것뿐입니다. 그래서 적극성이 없습니다. 믿는 게 다릅니다. 우리는 적극성이 있습니다. 적극성이 없으면 안 됩니다.
  증산(甑山), 정산(鼎山)의 도가 음양의 도입니다. 정산님은 12월 4일에 강세하셨습니다. 12월은 사철로 도를 뜻하며, 4일의 4는 사철을 의미하니 12는 곧 4입니다. 4일, 곧 초나흗날은 초생달이니 소월(小月)입니다. 비결에 “수종백토주청림(須從白兎走靑林)” 즉 청림도사를 찾으라는 말이 있습니다. 십이월(十二月)은 청(靑) 자이고, 4일은 소월(小月)이니 청(靑)은 곧 소월(小月=肖)이 되어 주청림(走靑林)은 조(趙)를 말합니다.01 그 외도 이것저것 여러 가지 많습니다. 상제님께서 강세하신 곳은 손바래기, 객망리, 시루산, 증산입니다. 시루에는 솥이 들어가야 합니다. 이런 것을 비기(秘記)라 하는 것입니다.
  부산에서 나를 나오게 한 사람들이 아니었으면 내가 서울에 올라오지 않고 그냥 부산에 있었을 것입니다. 부산에 도주님께서 직접 만들어 놓으신 대강전이 있고 그곳을 도주님의 가족들 중 아들이 차지했지만 지금은 아무도 없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없이 나왔습니다. 그 후 부산 태극도는 발전은 고사하고 포덕할 사람도 없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감천에 가면 대순진리회 도인들이 더 많습니다.
  본인들은 다 압니다. 연동흠이 자기가 한 사람이라도 포덕한 게 있습니까! 여기에 있는 사람 꼬여서 한 것입니다. 몇몇 방면의 사람들이 연동흠에게 갔습니다. 지금은 몇천 명일지라도 나중에 가서는 누가 그를 믿겠습니까? 다 속았다고 하고 나갑니다. 밖에 연동흠 하나지, 딴 사람이 있습니까?
  도주님께서 강세하신 날이 12월 4일이고, 나는 11월 30일입니다. 11월 하고서 30일(1月)이 더해지면 12월입니다. 도주님께서 태을주로 본령합리(本領合理)를 이루는 23세 시에 득도하시었습니다. 그때가 정사(丁巳, 1917)년 2월 10일로 내가 나던 해입니다.
  『전경』에 보면 시루산[甑山]에 상제님께서 오셨고, 부정리(扶鼎里), 쪽박골이 있습니다. 시루, 솥에는 불[火]이 안 들어가면 안 됩니다. 다른 사람이 아무나 한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상제님께서 인간의 모습으로 강세하시기 전에 금산사 미륵불에 임하여 계셨습니다. 솥 위에 시루가 있는데 솥 위에 미륵불을 세우고, 좌우에 보호불을 세우고 또 그 옆에 작게 두 개 보호불을 더 세웠습니다. 그래서 출(出) 자 형상이니 양산(兩山)이고, 그게 증산, 정산입니다. 상제님께서 화천하실 때 “나를 보고 싶거든 금산사로 오너라.”고 하신 말씀은 미륵금불을 보라고 한 것이 아니고 그 진리를 찾아서 오라는 말씀입니다. 다른 데서는 모두 미륵금불에 계신 줄 압니다. 그게 미륵을 따르라는 얘기지 절에 오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나의 일은 판 밖에 있다’는 상제님 말씀이 있습니다. 도주 옥황상제님은 상제님 재세 시에는 곁에 안 계셨습니다. 아예 만나신 적이 없으셨습니다. 그때 직접적으로 공사 보실 때 따라다녔던 김형렬, 문공신, 박공우 등 24종도 중에 속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그 종도들 중에서 상제님의 도덕을 펼친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오직 도주 옥황상제님께서 하시지 않았습니까! 도주님께서 창도하시고 펴놓으신 것이 세상에 알려지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서가여래를 모시고 있는데, 박성구는 그것이 오류라고 합니다.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내가 입도를 할 때 “구천 하감지위, 옥황상제 하감지위, 서가여래 하감지위” 같은 주문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상제님께서 다 만들어 놓으신 것입니다. 나는 그것이 궁금하여 알아보려고 입도를 했었습니다. 상제님께서 해놓으신 그것이 오류라고 하면 상제님을 욕하는 게 아닙니까! 그것보다 큰 죄가 어디 있습니까! 박성구가 납평치성 때 서가여래 자리가 내가 있을 곳이라 하여 사배를 모셨다고 합니다. 또 최해경과 같이 내정에 올라와서 나의 얼굴 그림을 서가여래 자리에 봉안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것은 상제님을 역행한 짓입니다. 이보다도 더 큰 죄가 없습니다.
  간단하게 얘기해서 구천상제님께서는 절과 연관해서 강세하셨습니다. 금산사에 임어하셨습니다. 불교에서는 결혼을 하면 안 됩니다. 선지조화(仙之造化), 불지형체(佛之形體), 유지범절(儒之凡節)이라 하지 않았습니까. 불지형체(佛之形體)이니 불교란 것은 쉽게 얘기해서 형상만 있는 것이지 실체는 없습니다. 나오지도 않은 뱃속의 태아입니다. 그래서 하는 법이 태아가 앉는 태좌법입니다. 태 속에 들은 어린애입니다. 석가불은 어린애이니 미성(未成)입니다. 그러니까 결혼이 없습니다. 미성이 무슨 결혼을 합니까. 어린애니 머리를 박박 깎고 앉아있습니다. 미륵불은 갓 쓰고 서 있는 어른입니다. 어른이 된다고 하면 근본은 어린애서부터 어른이 되는 것입니다. 이게 진리이고 원칙입니다. 처음부터 어른이 될 수는 없습니다. 석가불은 삼천 년 운이고, 미륵불은 오만 년 운입니다. 작은 것이 먼저 나오고 긴 것이 나중에 나오는 것이 순리입니다. 앞으로는 미륵불 운입니다. 그래서 상제님께서 미륵불로 오신 것입니다. 불교가 있으므로 해서 우리의 법이 나올 수 있는 것이고, 그래서 석가모니를 봉안한 것입니다. 아무나 만들면 되는 줄 알고 있는데 그게 아닙니다!
  제주도에 갔을 때 서귀포 여관에서 하룻밤을 묵은 적이 있었는데, 사수 권 선감이 하도 잠자리가 좋아서 다음에 혼자서 갔더니 전혀 그렇지가 않더라고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도장 안에서는 도인이 아닌 사람이라도 저절로 머리가 숙여집니다. 옳고 좋다는 걸 알았다면 무조건 받아들이고 따라야 합니다. 내가 콩을 팥이라 그래도 믿고, 소금을 이고 물속으로 들어가라고 해도 인정을 하고 들어가야 합니다. 이게 사실입니다. 기름을 들고 불 숲으로 들어가라, 소금가마를 지고 물속으로 들어가라고 해도 나의 말은 절대적으로 따라야 합니다. 불에 타고 소금가마를 버리는 줄 알면서도 그대로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전경』에 ‘천자부해상(天子浮海上)’은 수륙병진(水陸竝進) 도수를 보신 것입니다. 그것은 내가 부산에서 나와 서울로 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배가 꼭 바다의 배를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법은 서울에서 만방으로 나간다고 하셨습니다. 서울 중곡동 2층도 봉강전이라 하는데 이것은 강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기운이 내려오는 것을 강(降)이라 합니다. ‘공부 기운을 받는다. 기운 내려오는 것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그 강(降)을 받드는 곳입니다. 여주 봉강전 4층에는 진영(眞影)을 모셨고 1, 2, 3층은 공부방입니다. 공부를 하면 수련 20일, 공부 20일 도합 40일이 걸립니다. 집에 걱정이 없는 분들로 공부반을 짜기 바랍니다. 여기서 하는 공부 기운은 그 방면 도인이면 다 받습니다. 지방에 있는 도인들도 그 기운을 다 받습니다. 지금 수련은 끝이 없습니다. 처음 수련 시작했을 때는 쉬고 잠재우고 했습니다. 지금은 그러지 않습니다. 지금은 밥 먹는 시간, 잠자는 시간만 있습니다. 지금까지 기운을 쭉 받은 것입니다. 40일을 집에 안 갔다 와도 될 사람을 뽑으면 됩니다. 
  가면으로 하지 말아야 합니다. 못 씁니다! 속은 그렇지 않으면서 겉으로 그러면 안 됩니다. 꼭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됩니다. 운수도 그렇습니다. 있다고 믿으면 있고, 없다고 생각하면 없습니다. 도통도 있다면 있고, 없다면 없는 것입니다. 개안(開眼)은 눈을 여는 것, 눈을 뜨는 것입니다. 신안(神眼)이라고도 합니다. 신안이 열리면 멀고 가까움이 없고 막히는 게 없습니다. 훤합니다. 믿는 사람도 되지만 없다는 사람한테도 힘은 들지만 됩니다. 안 되는 사람은 없습니다. 다 됩니다.
  우리가 집을 지어놓은 것을 보기 바랍니다. 밖의 사람은 못 합니다. 학교 공사 잡부를 추천하세요. 이번에 학교 짓는 것도 일할 줄 모르는 사람, 기술 없는 사람을 시킬 것입니다. 모자란다고 할 때는 임원들을 시킬 것입니다. 중간 임원과 선무들이 3∼4일만 일하는 식이라면 2년에 한 번 정도 돌아갈 것입니다. 될 수 있으면 일할 줄 모르는 사람을 쓰겠습니다. 임원 아닌 사람들을 시키려고 그럽니다. 
  도에는 법이 있고 제도가 있습니다. 이걸 지킨다는 것이 참으로 어렵습니다. 옳고 좋다는 것만 알면 쉽습니다. 모든 것을 참고 이겨 나갈 수 있다는 말입니다. 법이라는 것이 도입니다. 상제님, 도주님의 유법(遺法)을 받들고 믿는 것입니다. 옳고 좋다는 것을 안다면 무조건 받들어야 합니다. 도의 진리, 대순진리뿐입니다. 믿는다는 것에 절대 자기 뜻대로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도의 법방(法方) 아래에서 움직여야 합니다. 도인은 절대 딴마음 먹어서는 안 됩니다.


1991. 2. 12(음 1990. 12. 28)

 

 

 


 * 아래의 각주는 위 훈시 말씀의 이해를 돕기 위해 교무부 편집팀에서 첨부한 것입니다.
 01 이 말씀에 대한 이해는 다음의 훈시를 참고할 수 있다. “비결에 ‘옥토(玉兎)는 만월(滿月)이요 백토(白兎)는 소월(小月)이라 수종(須從) 백토(白兎) 주청림(走靑林)’이라 했습니다. 파자(破字)로 풀면 백토는 소월(小月)이므로 주(走)+소월(小月)은 조씨(趙氏)가 됩니다. 도주님이 틀림없지 않습니까! 청림(靑林)의 청(靑)은 十二月이고 림(林)은 十八十八이니 36을 의미합니다. 36은 360일입니다. 그러니 조씨의 도를 일 년 열두 달 좇으라는[須從] 말이 됩니다.”(1989. 4. 12, 《대순회보》 291호) 

 


도전님 훈시│ 267호부터 게재하고 있는 「도전님 훈시」는 1984년부터 1995년까지 훈시하신 말씀입니다. 이는 종무원에서 공식적으로 기록한 것을 기본으로 하고, 여러 임원이 기록한 내용을 참고하여 대순종교문화연구소에서 정리한 것입니다. 그 내용은 모두 자문위원들의 고증을 거쳤습니다. 기존의 《대순회보》에 기재한 15편의 「도전님 훈시」는 제외하고 시간적인 순차에 따라 게재하고 있습니다.

 

관련글 더보기 인쇄

Copyright (C) 2009 DAESOONJINRIHOE All Rights Reserved.
경기도 여주시 강천면 강천로 882 대순진리회 교무부 tel : 031-887-9301 mail : gyomubu@daesoon.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