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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공 한유를 제도한, 한상자
출판팀 한상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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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선 한상자, 「김홍도 필 파상군선도」 8폭 병풍 중 7폭 부분, 국립중앙박물관
「팔선도」에서 피리를 들고 있는 미장부(美丈夫)가 한상자(韓湘子)다. 그의 이름은 상(湘)이고 자는 청부(淸夫)다. 후세 사람들이 이름자 뒤에 자(子)를 붙여 한상자라고 불렀다. 당대(唐代) 명문장가로 유명한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 중 한 사람인 한유(韓愈)의 조카라고 전해진다. 한상자는 선골을 타고났으며 그 품성이 세속 사람과 크게 달랐다. 번화하고 화려한 것을 싫어하고, 담백하고 청아한 것을 좋아하며 심지가 곧았다. 그의 아버지 한회(韓會)는 한상자가 어린 시절부터 유달리 총명한 것을 알았다. 동생 한유에게 “이 아이는 타고난 재질이 뛰어나 장래 큰 재주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선생을 초청해 공부시키는 게 어떻겠는가?”라고 물었다. 한유는 사방에 수소문하여 훌륭한 스승을 모셔 조카에게 학문을 전수케 하였다. 그러나 한상자는 태어나면서부터 전생의 지혜를 가진 듯, 어떤 경서(經書)를 막론하고 한 번 보기만 하면 암송하였고 선생의 도움이 없어도 그 깊고 현묘한 이치를 깨달았다. 12살이 되던 해, 이미 이름난 스승들을 여럿 거치자 신동이라는 소문이 수백 리에 퍼졌다. 그러나 그는 다른 부유한 집안의 자제들과 달리 관직에 들어갈 생각이 없었다. 대신 그는 주변의 산을 올라 피리를 연주하며 자연과의 교감을 갈망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꽃이 피고 지는 것을 보고 “모든 생명은 변화의 흐름 속에 있다”라고 말하곤 했는데, 이때부터 이미 도의(道義)에 눈을 떴다고 한다.
여동빈을 스승으로 만나다
한유는 “시정의 소인배도 한두 가지 재주를 배워서 먹고살려고 애쓰는데 너는 장래 어떻게 살려고 하느냐?”라고 크게 꾸짖었다. 하지만 한상자는 웃으면서 “숙부님, 더는 마음 쓰실 필요 없습니다. 제가 배우고자 하는 것은 숙부님과 다릅니다. 세상 밖의 공부일 따름입니다”라고 하였다. 어느 날, 그는 스승을 찾아 도를 배우겠다고 출가하여 마침내 여동빈을 만났다. 한상자는 오랫동안 본가와 소식을 단절한 채 각지를 돌며 도술을 연마했다. 그는 수련의 비법을 마음에 깊이 새기며, 외단인 황백지술(黃白之術) 즉 연단술(煉丹術)에 전념하였다. 기(氣)가 내단(內丹)이면 약(藥)은 외단(外丹)이다. 그는 곧 연단에 성공하여 선단을 만들어 복용한다면 상선(上仙)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는 스승과 함께 서왕모의 반도원(蟠桃園)에 놀러 가서 깊은 산속을 돌다가 무르익은 선도(仙桃)를 보았다. 나무에 올라가 선도를 따려다 가지가 부러지면서 땅으로 떨어졌다. 그 순간, 그는 육신을 벗어두고 마치 매미가 껍질을 벗어두고 창공으로 날아가듯 등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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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부 한유를 교화하다
득도한 한상자는 숙부 한유를 찾아가 선계(仙界)로 인도하려는 마음을 품었다. 한유가 당대의 유학자이자 문장가로 이름을 날리고 있어 특별한 도술로 그의 마음을 바꾸려고 했다. 마침 그해는 온 나라에 가뭄이 들었다. 황제는 한유를 시켜 장안 남쪽 천단(天壇)에 나가 비를 내려 달라는 기도를 올리게 했다. 한유는 비가 오기를 바라며 간절한 기원문을 지어 성심으로 제를 올렸으나 하늘은 오랫동안 응답이 없었다. 그때 한상자가 도사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그는 “비나 눈을 팝니다”라는 글을 써놓고 앉아 있었다. 누군가 그 사실을 한유에게 알렸고 한유는 도사를 시켜 기도를 올리게 했다. 도사가 단 위에 올라 기도하며 도법을 시행하자 잠시 후 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한유는 그의 신통력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한유의 의심에 도사는 이번 비는 평지에 꼭 한 자 깊이로 내릴 것이라 예언했다. 얼마 후 비가 그쳤고 한유가 사람을 시켜 재어보았더니 정말 그러하였다. 한유의 생일 잔칫날, 그는 고관대작과 벗들을 불렀다. 그때 한상자도 잔치에 참석해 조카로서 숙부에게 건강을 축원하는 잔을 올렸다. 한유는 마음속으로 기뻐하면서도 진노했다. 이어 한유는 한상자를 가까이 불러 “너는 어찌하여 아무 소식도 없었느냐? 그간 어디서 무엇을 배웠는지 시를 지어 너의 공부와 뜻을 말해보아라”라고 했다. 그러자 한상자는 즉석에서 시를 읊었다.
청산운수격(靑山雲水隔) 구름과 물에 막혀있는 푸른 산, 차지시오가(此地是吾家) 이 땅이 나의 집이라. 종일찬운액(終日餐雲液) 종일 구름의 진액을 먹고, 청신철낙하(淸晨啜落霞) 맑은 새벽에는 떨어지는 노을을 맛본다. 금탄벽옥조(琴彈碧玉調) 거문고로 벽옥조를 타며, 노련백주사(爐煉百朱砂) 화로에서는 백주사를 단련한다. 보정존금호(寶鼎存金虎) 보배 솥에는 황금 호랑이가 있고, 지전양백아(芝田養白鴉) 지초밭에서는 하얀 까마귀를 기른다. 일표장조화(一瓢藏造化) 표주박 하나에 조화가 감춰져 있고, 삼척참요사(三尺斬妖邪) 석 자 검으로 요사한 것들을 벤다. 해조준순주(解造逡巡酒) 준순주를 즉석에서 만들고, 능개경각화(能開頃刻花) 능히 순간에 꽃을 피울 수 있다. 유인능학아(有人能學我) 나를 따라 배우는 사람이 있다면, 공동간선파(共同看仙葩) 함께 신선의 꽃송이를 볼 것이다.
한유는 그의 시를 보고 놀라며 “네가 정말 한순간에 꽃을 피우게 할 능력이 있느냐?”라고 물었다. 한유는 즉석에서 맹물로 술을 만들고 꽃을 피워보라고 명령했다. 한상자는 커다란 나무통을 내다가 물을 반쯤 채우게 한 뒤 놋쇠 양푼을 덮고 주문을 외웠다. 잠시 후 양푼을 들춰보니 나무통 안에는 아주 잘 익은 준순주(逡巡酒)가 담겨 있었다. 그리고 화분에 흙을 담은 후 병풍으로 잠시 가려 놓았다가 병풍을 걷으니, 그곳엔 모란과 비슷하나 더 크고 진한 보라색의 아름다운 꽃이 피어 있었다. 바로 한순간에 피어나는 경각화(頃刻花)였다. 그는 하인을 시켜 화분을 숙부에게 올렸다. 한유가 자세히 보니 꽃잎에 시 두 구절이 새겨져 있었다.
운횡진령가하재(雲橫秦嶺家何在) 구름 드리워진 진령에 내 집은 어디인가? 설옹남관마부전(雪擁藍關馬不前) 눈 덮인 남관에 말조차 나아가지 않네.
한유는 시구를 읽고도 무슨 내용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는 “훗날 숙부께서 직접 경험하실 것입니다. 다만 천기를 미리 누설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숙부의 생일 잔치에 모인 모든 사람이 그의 도술에 놀라며 감탄했다. 손님들이 모두 떠난 후 두 사람은 서재에서 마주 앉았다. 한유는 “네가 어렸을 적 아주 총명했었지. 이십 년이 지난 지금 마음이 바뀌지 않았느냐? 지금이라도 벼슬에 뜻을 두고 네 재주와 능력을 펴 보이지 않겠느냐?”라고 물었다. 그러자 한상자는 “제가 장안에 온 까닭은 숙부님께 인사드리려고 온 것입니다. 결코 도포를 벗고 관복을 걸칠 생각은 없습니다”라고 답했다. 이후 그는 조용히 일어나 숙부에게 인사를 올리고 어디론가 떠나갔다.
눈 속에 갇힌 숙부를 구하다
당시 시대적 상황을 보면, 당나라 헌종(憲宗)은 불교를 독실하게 숭배했다. 헌종 재위 중에 서역에서 승려 편에 석가모니의 몸에서 나온 진신 사리를 보내왔다. 그것은 크고 하얀빛이 나며 투명하고 정결한 사리였다. 헌종은 크게 기뻐하며 성대한 의식을 거행하고 부처의 사리를 친히 모셔 환궁했다. 이에 유학자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았다. 한유도 상소를 올려 이를 직간하였다가 헌종의 노여움을 샀다. 헌종은 한유를 강등시켜 멀리 남쪽 광동성의 조주자사(潮州刺史)로 내보냈다. 귀양길에 오른 한유는 험한 눈보라 속에 앞으로 계속 나아갔으나 높은 산등성이 어느 곳인가에 이르러서는 더 갈 수가 없었다. 이미 눈은 서너 자나 쌓여 말도 갈 수 없고 길을 찾을 수도 없었으며, 잠시 쉴만한 인가나 돌아갈 길도 없었다. 바람은 점차 사나워지고 눈이 휘날려 옷마저 모두 젖어 추위와 굶주림 그리고 절망 속에 낙담한 한유에게 누군가 눈을 치우며 다가오는 이가 있었다. 한유가 자세히 바라보니 조카 한상자였다. 그는 한유 앞에 다가와 “그 전날 꽃잎에 쓰여 있던 시 구절을 기억하십니까?” 그 말에 한유는 한참 동안 크게 탄식하더니 그에게 “세상만사가 이미 다 정해진 운수가 있는 법, 내가 너를 위해 그때의 시를 마저 지어보겠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눈보라 속에서 시를 읊었다.
일봉조주구중천(一封朝奏九重天) 아침에 상소 하나 황제께 아뢰다가 석폄조주로팔천(夕貶潮州路八千) 저녁에 조주로 좌천되니 길은 팔천리라네. 본위성조제폐정(本爲聖朝除弊政) 본디 성스러운 조정을 위해 폐정을 없애려 한 것이니, 감장쇠후석잔년(敢將衰朽惜殘年) 장차 늙어 죽을 몸이 남은 세월을 아까워하리? 운횡진령가하재(雲橫秦嶺家何在) 구름 드리워진 진령에 내 집은 어디인가? 설옹람관마부전(雪擁藍關馬不前) 눈 덮인 남관에 말조차 나아가지 않네. 지여원래응유의(知汝遠來應有意) 네가 먼 길 걸어온 뜻을 알겠나니, 호수오골장강변(好收吾骨瘴江邊) 장강가에 내 뼈나 잘 거두어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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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는 그의 도움을 받아 남관의 객사에 도착해 같이 유숙했다. 한유는 조카의 말이 허황된 것이 아니며 그 도술이 진실임을 알게 되었다. 그날 밤, 두 사람은 지나간 일과 수도에 대해 서로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일설에는 남관에서 한유가 비로소 출가의 길을 걸으려 하자, 한상자가 그를 인도하여 두 스승 종리권과 여동빈을 만나게 했다고 전해진다. 두 신선이 전생의 일을 설명하자 한유는 높은 학식과 지혜가 있고, 또한 태어나면서 도가와 연이 있어 자연스럽게 깨달았다고 한다. 마침내 숙부인 한유를 제도한 한상자는 종남산(終南山)으로 들어가 깨달음을 완성하고 신선의 반열에 올랐다.
【참고문헌】 •김관종ㆍ전윤주, 『팔선열전』, 인천: 리토피아, 2015. •구보 노리타다, 『도교의 신과 신선이야기』, 이정환 옮김, 서울: 뿌리와 이파리, 2004. •사가데 요시노부, 『도교백과』, 이봉호ㆍ최수빈ㆍ박용철 옮김, 서울: 파라북스, 2018. •쫑자오펑, 『도교사전』, 이봉호ㆍ최수빈ㆍ박용철 옮김, 서울: 파라북스, 2018. •진기환, 『중국의 신선이야기』, 파주: 이담북스,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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