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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이 된 머슴
교무부 조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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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 선술을 얻고자 十년 동안 머슴살이를 하다가 마침내 그의 성의로 하늘에 올림을 받은 머슴을. 그는 선술을 배우고자 스승을 찾았으되 그 스승은 선술을 가르치기 전에 너의 성의를 보이라고 요구하니라. 그 머슴이 十년 동안의 진심갈력(盡心竭力)을 다한 농사 끝에야 스승은 머슴을 연못가에 데리고 가서 “물 위에 뻗은 버드나무 가지에 올라가서 물 위에 뛰어내리라. 그러면 선술에 통하리라”고 일러 주었도다. 머슴은 믿고 나뭇가지에 올라 뛰어내리니 뜻밖에도 오색구름이 모이고 선악이 울리면서 찬란한 보련이 머슴을 태우고 천상으로 올라가니라.(예시 83절)
상제님께서는 때로 옛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곤 하셨는데 선술에 통한 머슴의 일화는 그중 하나다. 위 인용문은 신선이 되겠다고 생각한 머슴이 스승을 만나 10년 동안의 성의를 다한 끝에 신선이 되었다는 내용이다. 상제님께서는 종도들에게 이 머슴의 이야기를 들려주시며 무엇을 깨달으라고 하신 것일까? 이 일화를 곱씹어 보면 우리의 수도와 관련하여 생각해 볼 내용들이 있는 것 같다. 먼저 이런 점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머슴이 10년 동안 진심갈력(盡心竭力: 마음과 힘을 다함)을 할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이었을까? 신선술을 알고 있었던 스승에 대한 믿음이었을까? 스승에 대한 믿음 때문일 수도 있지만 존경하는 스승을 만난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진심갈력하지는 않는다. 머슴에게는 다른 무엇이 있었을 것이다. 아마도 머슴이 10년 동안 성의를 다했던 것은 신선이 되겠다는 확고한 생각이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신선이 되어야겠다는 그의 생각은 신념이 되었고 그 신념은 그로 하여금 스승을 찾아 나서게 하였다. 스승을 만난 후, 성의를 보이라는 스승의 요구에 머슴은 진심갈력으로 10년을 농사하여 성의를 보였다. 이와 같이 신선이 되어야겠다는 머슴의 신념은 고난에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이어졌다. 그의 믿음은 『대순진리회요람』에 나오는 내용과 거의 같은 것으로 생각된다.
한마음을 정한 바엔 이익과 손해와 사(邪)와 정(正)과 편벽과 의지로써 바꾸어 고치고 변하여 옮기며 어긋나 차이가 생기는 일이 없어야 하며 … 기약(期約)이 있어 이르는 것과 같이 하고 한도가 있어 정한 것과 같이 하여 나아가고 또 나아가며 정성하고 또 정성하여 기대한 바 목적에 도달케 하는 것을 신(信)이라 한다.01
위 내용은 ‘신선이 되어야겠다’고 ‘한 마음’을 정한 머슴이 10년 동안 변치 않는 마음으로 정성에 정성을 다하여 마침내 신선이 되었던 구도(求道) 과정을 연상케 한다. 이렇게 믿음은 목적을 향해 나가는 동력이며 이를 위해 정성을 다할 수 있도록 하는 힘이 될 수 있다. 머슴이 10년 동안 ‘한 마음’을 지키며 진심갈력했던 성의는 마침내 그를 신선의 길로 이끌었다. 도전님께서는 이러한 정성과 믿음에 대하여 “정성은 믿음에서 나오고, 수도도 믿음으로 이루어집니다.”02라고 강조하셨다. 상제님께서 말씀하신 머슴의 일화는 전해 내려오는 옛이야기를 일러 주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와 비슷한 내용의 옛이야기가 있을까? 경상북도 영덕군 달산면의 전설 중에 신선이 된 머슴의 일화03가 있어 흥미롭다. 이야기의 내용은 이렇다.
옛날 어느 마을에 부모 없이 남의 집에서 머슴을 살던 한 아이가 있었다. 그는 스무 살이 되었으나 새경(한 해 동안 일한 대가로 받는 돈이나 물건)을 모을 줄 몰랐다. 그는 항상 자기보다 형편이 어려운 사람이나 배고픈 사람들에게 새경으로 받은 것을 나누어주었고, 추위에 떨고 있는 사람에게는 자기 옷을 입히며 서른이 될 때까지 그렇게 살았다. 그런 그에게는 평생소원이 있었는데 그것은 신선이 되는 것이었다. 마을을 떠나 “어떻게 하면 신선이 되느냐”고 사람들에게 물으며 다니다가 어느 마을의 욕심 많은 부잣집에서 하루를 유숙하게 되었다. 집주인이 그에게 “어디 가는 길이냐?”라고 묻자 “제 평생소원이 신선이 되는 것인데 그 길을 아는 분을 가르쳐 주면 그리로 가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주인은 “그럼 우리 집에서 이십 년 동안 머슴을 살면 신선이 되는 길을 가르쳐 주겠다”라고 말하였다. 그는 반가운 마음에 “그리 하지요”라고 대답하였다. 다음 날부터 머슴살이를 시작하여 2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주인은 머슴을 불러서 좋은 옷과 음식을 대접하며 “네가 내일은 신선이 되는 날이다.”라고 말했다. 그날 밤 머슴은 잠도 안 자고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다음 날 주인은 머슴을 데리고 인적이 없는 깊은 산중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깊은 연못이 있고 그 연못가에는 가지가 드리워진 큰 나무가 서 있었다. 주인은 머슴에게 “네가 저 나무에 올라가 소(연못)에 뚝 떨어지면 신선이 된다”라고 하였다. 머슴은 새경을 아까워하는 주인이 자기를 죽이려는 줄도 모르고 주인에게 백배 감사의 인사를 하고 나무 위에 올라 연못에 몸을 던지자 물이 솟구쳐 오르며 용이 구름을 타고 승천하였는데 머슴도 함께 하늘로 올라갔다. 이후로 그 연못은 ‘신선소(神仙沼)’ 혹은 ‘용천(龍泉)’으로 불렸다고 한다. (*이 내용은 필자가 편집하여 정리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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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설은 상제님께서 들려주신 이야기와 거의 비슷한 내용이다. 이 전설에는 머슴의 마음이 좀 더 잘 드러나 있다. 머슴은 신선이 되는 것 외에는 바라는 것이 없어서 돈을 모으는 데는 관심이 없고 신선이 되게 해주겠다는 주인의 말을 의심 없이 믿고 20년 동안 머슴살이를 했다. 그리고 머슴은 나무에 올라가 연못에 뛰어내리면 신선이 된다는 주인의 말에 따라 주저함 없이 뛰어내렸다. 이러한 모습에서 신선이 되려는 그의 신념을 엿볼 수 있다. 머슴의 강한 신념은 자연스럽게 진실된 마음과 헌신적인 행동으로 이어졌다. 앞의 인용문에서 머슴의 행동에 대하여 상제님께서는 ‘진심갈력’이라고 표현하셨다. 진심갈력은 머슴의 신념과 정성스러운 마음이 잘 담긴 표현인 것 같다. 스승을 만나 신선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확고한 그의 믿음은 온 마음을 다하는 정성으로 나타났다. 『대순진리회요람』에는 정성에 대하여 “정성이란 늘 끊임이 없이 조밀하고 틈과 쉼이 없이 오직 부족함을 두려워하는 마음”04이라고 하였다. 머슴이 10년 동안 진심갈력을 했던 농사는 이러한 정성과 일맥상통하는 것으로 그의 정성은 신념에 바탕을 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상제님께서 말씀하셨던 머슴의 일화는 수도를 하는 우리에게 신념과 정성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한다. 신선이 되겠다는 머슴처럼 우리는 신념을 가지고 있는가? 신념이 있다면 이를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위 일화에서 머슴이 신선이 되겠다고 마음먹은 후 진심갈력을 한 머슴살이는 우리에게 있어서 수도 과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머슴이 스승을 믿고 신선이 된 것처럼 상제님에 대한 믿음으로 도통을 할 것이라는 신념은 우리 수도 생활의 동력이기도 하다. 그리고 머슴의 10년 진심갈력의 농사에 해당하는 것이 상제님의 뜻을 받드는 정성일 것이다. 진심갈력으로 정성을 들일 수 있는 것에는 어떤 일이 있을까?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그중 하나가 포덕이다. 포덕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강세하신 상제님의 덕화를 세상에 전하는 일이다. 상제님께서 천하창생을 구제하기 위해 행하신 천지공사의 대의를 많은 사람이 따르고 참여하도록 하는 것이 바로 포덕인 것이다. 도전님께서는 “우리의 소원이 천하포덕에 있으므로 수도(修道)도 포덕 하는 데 있는 것입니다.”05라고 하시며 포덕의 중요성을 강조하셨다. 『전경』에도 상제님께서 종도 류찬명과 김자현에게 “각각 십만 인에게 포덕하라”라고 말씀하시는 내용이 나온다.06 포덕이 상제님께서 행하신 천지공사의 일부임을 깨닫게 하는 구절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가 상제님께 성의로써 보일 수 있는 정성 중의 하나는 포덕이라 할 수 있다. 포덕은 일상생활 속에서 상제님의 뜻을 전하는 일이기 때문에 정성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다. 우리가 진심갈력을 다해야 하는 포덕은 많은 사람이 도통을 할 수 있는 대열에 동참할 수 있게 하는 일이기도 하다. 포덕에 대한 동력이 약해질 때마다 신선이 되려 했던 머슴의 진심갈력을 생각해 보면 어떨까?
01 『대순진리회요람』, p.16. 02 「도전님 훈시」(1990. 2. 10). 03 「용천(龍泉)에서 신선이 된 사람」, 한국학자료통합플랫폼 (kdp.aks.ac.kr) 04 『대순진리회요람』, p.16. 05 《대순회보》 45호, 「도전님 훈시」. 06 행록 3장 3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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