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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56년(2026)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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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광장 : 길흉과 수도

길흉과 수도

 

 

교무부 강대성

 



  인간은 예로부터 삶의 불확실성과 불행에 대한 불안으로 ‘길흉(吉凶)’의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져왔다. 풍수나 명리학에서 길흉은 ‘운이 좋고 나쁨’을 뜻하는 것으로 운명이나 예언의 문제와 연결된다. 그러나 수도의 관점에서 길흉은 단순히 운명이나 예언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가느냐, 어떠한 행동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길화개길실 흉화개흉실(吉花開吉實 凶花開凶實)’의 문제로 확장된다. 즉, 길흉은 외적 운명의 작용을 가리킨다면, 길하고 흉한 결과는 모두 그에 상응하는 원인과 행위에서 비롯된다.01 본 글에서는 이러한 길흉의 문제를 수도적인 시각에서 어떻게 이해하고, 마음과 행동으로 어떻게 길화로 전환할 수 있을지 살펴보고자 한다.
  길흉은 동아시아 고대의 점복 문화 속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녔다. 고대 중국 상(商, 서기전 1600년경~서기전 1046년경)나라 시대에는 국가적 대사인 전쟁이나 농사와 관련하여 거북이 껍질이나 동물의 뼈에 홈을 파서 그곳에 달궈진 쇠꼬챙이를 넣어 껍질이나 뼈가 갈라지는 모양을 보고 길흉을 점쳤다. 이러한 점복(占卜)은 갑골문(甲骨文)에 나타난다.02 고대 사회는 자연재해, 전쟁, 질병처럼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위험 요소가 많았다. 이러한 위험을 미리 대비하기 위해 왕이나 지도자는 국가의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점을 치고 그 길흉의 결과를 근거로 삼았다. 갑골문에서 보듯 길흉을 점쳤던 의례적 행위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비함은 물론 인간의 삶과 사회 전체를 유지하기 위함이었다.
  이처럼 고대 사회에서 사람들은 미래와 운명에 대한 예측에 큰 관심을 두었다. 예측할 수 없는 미래 앞에서 인간은 불안을 느끼며, 이를 해소하기 위해 점을 치는 행위를 하였다. 이는 과학과 기술의 발달로 합리적 사고가 강조되는 현대사회에서도 깊이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 현상 속에 점을 치는 행위에 대한 부정적 측면이 문제시되고 있다.
  예를 들어, 모든 것을 정해진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운명론적 허무주의에 빠지게 한다. 그리고 점은 과학적 근거 없이 ‘불길한 사건이 올 것이다’와 같은 모호한 예측을 제시한다. 이런 근거 없는 예측은 실제보다 더 큰 불확실성을 느끼게 해 불필요한 사회적 불안감이나 위기를 조성할 수 있다. 또한, 점술에 의존하면서 발생하는 경제적, 심리적 비용의 낭비도 무시할 수 없는 문제이다.03 인간은 본래 스스로의 마음가짐과 도덕적 실천을 통해 삶을 완성해 나갈 수 있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지나치게 길흉을 점치는 행위는 삶의 주체성을 외부 요인에 의존하게 만들 수 있다. 특히 수도적 관점에서 볼 때, 진리에 대한 확신 대신 운명론에 의존하게 한다는 점에서 경계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전경』에는 길흉이나 운명을 점치는 행위와 관련한 상제님의 가르침이 담겨 있다. 상제님께서는 “현세에 아는 자가 없나니 상도 보이지 말고 점도 치지 말지어다.”(교법 1장 65절)라고 말씀하셨다. 이는 상제님의 천지공사로 인해 천지 도수가 변경되어 선천의 방법으로 점을 치는 행위로는 인간의 길흉을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알 수 없는 길흉을 미리 아는 것보다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가느냐가 중요한 문제이다. 이러한 점에서 행록 5장 38절 「병세문」은 길흉과 관련하여 생각해 볼 수 있는 구절이다. 「병세문」은 상제님께서 화천하신 후 거처하시던 방에서 발견된 흰 병의 병마개에 적힌 글이다.


  吉花開吉實 凶花開凶實

 

病有大勢
病有小勢
大病無藥 小病或有藥
然而大病之藥 安心安身
小病之藥 四物湯八十貼

大病出於無道
小病出於無道  

忘其父者無道
忘其君者無道
忘其師者無道
世無忠 世無孝 世無烈 是故天下皆病
   
 

  「병세문」은 첫머리에 ‘길화개길실, 흉화개흉실’이라는 구절이 있고, 그 아래에 상제님께서 세상을 진단하신 내용과 그 처방에 관한 구체적인 말씀이 있다. 이런 병세문의 구조로 보았을 때, ‘길화개길실, 흉화개흉실’은 병세문의 내용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길한 꽃은 길한 열매를 맺고, 흉한 꽃은 흉한 열매를 맺는다’라는 의미로 길화와 길실, 흉화와 흉실과의 인과 관계를 말씀하신 것이다. 또한 세상이 무도(無道)하여 병이 들었다고 진단하셨다.
  상제님께서는 세상의 병을 크게 대병과 소병으로 구분하시며 이 병은 모두 무도(無道)에서 생긴 것이라 하셨다. 그리고 대병에는 물질적인 약이 없고, 소병은 때에 따라 사물탕 팔십첩이 약이 될 수 있다고 하셨다. 또한 충ㆍ효ㆍ열의 도(道)가 무너져 세상이 병들었으므로 이를 치유할 근본적인 처방으로서 안심(安心)ㆍ안신(安身)이 대병의 약이라는 것이다. 이 말씀에 비추어 보면 길화와 길실, 흉화와 흉실의 인과 관계는 도가 있고 없음의 차이에서 생기는 것이기 때문에 길흉이란 사람의 마음가짐과 행동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도전님께서는 “…천명을 순종하여 안심ㆍ안신의 수도가 되어야 대병(大病)의 약이 됨을 의통(醫統)에 명기하신 것이다.”04라고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길화’는 무도병의 원인을 바르게 인식하여 안심(安心)ㆍ안신(安身)의 수도를 의미하고, ‘길실’은 그 결과인 의통이라는 복된 결과를 뜻한다고 할 수 있다. 반대로 ‘흉화’는 무도병의 실상을 깨닫지 못하고 안심ㆍ안신의 필요성을 알지 못하는 상태를 비유한 것이며, 그로부터는 흉한 열매가 맺힐 수밖에 없다. 이러한 길흉의 이치를 바탕으로 「병세문」은 세상의 병을 치유하는 바른길로서 안심ㆍ안신을 제시하고 있다.
  『대순진리회요람』에서는 안심을 “…진실(眞實)하고 순결(純潔)한 본연(本然)의 양심(良心)으로 돌아가서 … 당치 않는 허욕(虛慾)에 정신(精神)과 마음을 팔리지 말고 … 마음을 안정(安定)케 한다.”라고 하였다. 또한, 안신에 대해서는 “…모든 행동(行動)을 법례(法禮)에 합당케 하며 도리(道理)에 알맞게 하고 의리(義理)와 예법(禮法)에 맞지 않는 허영(虛榮)에 함부로 행동(行動)하지 말아야 한다.”05라고 하였다. 세상은 인간의 끝없는 욕망으로 인해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를 겪고 있다. 그러므로 지나친 욕심과 욕망을 버리고 본래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참되고 깨끗한 마음을 회복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자기 분수를 넘어서는 욕망과 도리에 어긋나는 행동을 경계해야 한다.


 
  앞서 서두에서 언급하였지만, 길흉 자체는 나의 의지와 직접적인 연관성이 부족한 외적 운명의 작용이다. 길흉은 고정된 것이 아니어서, 오늘의 길함이 내일의 흉함이 되기도 하고, 오늘의 흉함이 내일의 길함으로 바뀌기도 한다. 이 변화의 흐름을 깨닫고 마음가짐과 행동을 바르게 하면, 흉한 일도 길한 방향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 결국 수도의 본질은 흉을 미리 알아서 극복하고 피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안심ㆍ안신을 실천하여 지혜롭게 풀어나가는 것이다. 안심ㆍ안신의 수도는 흉을 길로 변화시키는 근본이 된다.
  길흉과 유사한 말로 화복이 있다. 제생 43절에서는 “…又其次 與鬼神同 有吉凶禍福之道….”라 한 것처럼 길흉과 화복은 서로 연결되어 쓰인다. 화복은 재화(災禍: 재앙과 화난)와 복록(福祿: 복되고 영화로운 삶)을 의미하며, 일상에서 길흉과 화복은 혼용되어 사용된다. 상제님께서는 “자고로 화복이라 하나니 이것은 복보다 화를 먼저 겪는다는 말이니 당하는 화를 견디어 잘 받아 넘겨야 복이 이르느니라.”(교법 1장 19절)라고 말씀하셨다. 여기서 화를 견디어 잘 받아 넘겨야 복이 이른다고 하신 것은, 화를 당한 상황에서도 안심ㆍ안신의 실천을 통해 화를 복으로 전환시킬 수 있다는 의미이다.



  이상에서 길흉에 대해 수도의 관점에서 살펴보았다. 「병세문」에서 밝히듯 대병의 약은 안심과 안신이라 하였다. 인간이 인륜 도덕을 잃어버려 세상이 무도병에 걸렸다. 이러한 세상은 진멸에 이를 수 있는 지극히 흉한 상태라 할 수 있다. 이처럼 길흉은 인간 개인 차원에 머물지 않고, 세계와도 직결되어 있다. 그러므로 인간이 사사로운 욕망을 버리고 안심ㆍ안신을 꾸준히 실천할 때 비로소 세상의 병도 치유될 수 있다. 나아가 상제님께서 처방하신 진리를 바탕으로 바른 마음과 도리로 심신을 안정시킬 때, 궁극적인 길함인 도통(道通)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01 교무부, 「천계탑: 길화개길실 흉화개흉실(吉花開吉實 凶花開凶實)」, 《대순회보》 18 (1990) 참고.
02 양동숙, 『갑골문 해독』 (서울: 월간 서예문인화, 2007), p.4, pp.13-14, p.959 참고.
03 문애순, 「점복(占卜)의 의의와 사회적 기능에 대한 연구」 (대구한의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2020), p.41 참고.
04 「도전님 훈시」(1986. 9. 2).
05 『대순진리회요람』, p.15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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