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너별 보기
   daesoon.org  
대순156년(2026) 5월

이전호 다음호

 

도전님 훈시 종단소식 글로벌 대순 울타리 종단 역사 기획 연재 대순광장 생각이 있는 풍경 전경 속 이야기 대순문예 전경 성구 알립니다

전경 성구 : 속수지지(束手之地)와 와해지여(瓦解之餘)

속수지지(束手之地)와

와해지여(瓦解之餘)

 

 

교무부 최정락

 



  공사 3장 39절에는 상제님께서 중국 삼국시대 촉한(蜀漢)의 재상인 제갈량(諸葛亮, 181~234)과 한(漢)나라 초의 무장인 한신(韓信, 미상~기원전 196)을 언급하신 구절이 나온다. 바로 “속수지지 갈공모계 불능선사(束手之地葛公謀計不能善事) 와해지여 한신병선 역무내하(瓦解之餘韓信兵仙亦無奈何)”라는 내용이다. 하지만 『전경』에는 이 성구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없어 그 의미를 파악하기 어렵다. 상제님의 이 말씀은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까? 이 글에서는 이 성구의 의미를 구체화하기 위해 각 구절의 문자적 의미를 살피고, 이를 바탕으로 상제님께서 전하고자 하신 가르침을 이해하고자 한다.

 

‘속수지지 갈공모계 불능선사’와 ‘와해지여 한신병선 역무내하’  

 

  ‘속수지지 갈공모계 불능선사(束手之地葛公謀計不能善事)’에서 속수지지의 의미를 살펴보자. 사전적으로 ‘속수’는 ① 팔짱을 끼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상태이거나 ② 손이 묶여 속수무책인 상황을 의미한다. 이 구절에 관한 기존 연구는 이를 “두 손을 팔짱을 끼고 있는 상황에서는 제갈공명이 일을 꾸며 계획한다고 하여도 능히 일을 잘할 수 없다.”01라고 풀이하며, 아무리 좋은 계획이나 지략이 있어도, 그것을 현실에서 실행하지 않으면 아무런 성과를 거둘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는 “모든 일을 알기만 하고 쓰지 않는 것은 차라리 모르는 것만 못하리라”
(교법 3장 28절)라는 말씀과 뜻이 통하며 도인이 지녀야 할 실천적 자세를 일깨워 준다.
  실제로 ‘속수’는 위급한 상황에서 대책 없이 방관하거나 무기력하게 대처하는 태도를 경계하는 맥락으로 사용되었다. 일례로 조선 선조(宣祖) 때의 문신인 정탁(鄭琢, 1526~1605)의 시문집인 『약포선생문집(藥圃先生文集)』에서는 “우리 조상 대대로 이어온 빛나는 대업을 어찌할 수 없다고 내버려 둔 채, 그저 팔짱만 끼고 기다릴 수 있겠습니까”02라며 위기 상황에서의 능동적인 실천을 촉구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사전적 의미 중 기존에 논의되지 않았던, 손이 묶여 어찌할 수 없는 ‘속수무책’의 상황에 주목하고자 한다. ‘속수’를 앞의 ②와 같이 개인의 의지를 넘어서는 환경적 제약으로 본다면, 이는 조직 기틀의 안정을 강조하는 ‘와해지여’와 상관성을 지닌다. 즉, ‘속수’가 역량을 발휘할 통로가 차단된 상황이라면, ‘와해’는 그 역량을 담아낼 기틀 자체가 붕괴된 상태를 함의한다. 이는 제갈량이나 한신과 같은 사람의 탁월한 능력도 견고한 체계 안에서만 온전히 구현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 구절의 본의를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속수’와 ‘와해’ 뒤에 붙은 ‘지(地)’와 ‘여(餘)’의 의미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선 ‘속수지지(束手之地)’에서 ‘지(地)’는 본래 딛고 서 있는 땅을 의미하지만, 처해 있는 ‘형편’이나 ‘처지’를 뜻하기도 한다. 즉, ‘속수’가 손이 묶인 개인의 상태를 말한다면, ‘속수지지’는 내 마음은 간절해도 도저히 역량을 발휘할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에 놓여 있음을 강조한다. 아무리 지혜로운 인물일지라도 이미 손발이 묶인 상황[地]에 처하게 되면, 그 어떠한 방책도 실질적인 결실로 이어지기 어렵다는 이치를 담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개인의 역량보다 이를 둘러싼 환경적 국면에 주목하는 ‘속수’의 구체적인 함의는 여러 고전 문헌에 기록된 역사적 실례를 통해 확인된다. 중국 삼국시대의 중요한 전투인 적벽대전 직전의 상황을 기록한 『삼국지』 「오주전(吳主傳)」에는 조조(曹操)가 손권(孫權)에게 보낸 위협적인 편지에 “유종(劉琮)의 손이 묶였다(劉琮束手)”라는 기록이 있다. 당시 유종은 부친인 유표(劉表)의 뒤를 이어 막강한 군사력과 풍부한 물자를 보유한 전략적 요충지 형주(荊州) 지역을 다스리던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는 조직 기반이 취약했던 상황에서 조조의 압도적인 군세와 참모들의 투항 권고에 눌려 저항 의지를 상실하였다. 그 결과 유종은 조조의 대군이 당도하기 전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한 채 무력하게 투항했고, 이 소식은 손권 진영에 큰 충격을 주었다. 편지를 받은 신하들은 조조의 위세에 눌려 사색이 되어 항복을 주장하였다.03
  또 다른 예로 임진왜란의 의병장 곽재우(郭再祐, 1552~1617)가 선조 33년(1600년)에 올린 상소문에는 “손을 묶고 앉아 있다가(束手而坐) 적이 오면 물러나야 하니 실로 부끄럽습니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이는 적의 침입이 예견된 상황에서도 조정의 잘못된 국방 방침과 당파 싸움 탓에 장수의 전략과 용기를 펼칠 길이 막힌 절망적인 무력감을 나타낸다. 곽재우는 자신이 더 이상 나라에 보답할 방도가 없음을 한탄하며, 무능하게 자리를 지키기보다 차라리 강호로 물러나겠다는 의지를 이 단어에 담았다.04 이로 볼 때, ‘속수지지’는 조직 내부의 문제를 포함한 외부적 한계로 인해 개인의 역량을 발휘할 수 없는 상황을 의미한다.
  이 성구에 등장하는 제갈량[葛公]은 중국 삼국시대 촉나라의 재상으로, 뛰어난 지략과 행정 능력을 갖춰 ‘지혜의 화신’이라 불릴 만큼 천재적인 정치가였다. 당시의 혼란 속에서 위기에 처했던 촉나라를 일으켜 세우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이처럼 탁월한 역량을 갖춘 인물이라 할지라도, 이미 판세가 기울어 손발이 묶인[束手] 상황[地]에 처하게 되면 자신이 세운 계획[謀計]을 온전히 실현하지 못하여 결국 일을 제대로 마무리할 수 없게 된다[不能善事]. 이는 아무리 뛰어난 개인의 재능이라 하더라도 그 역량을 펼칠 수 있는 객관적인 상황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개인적 노력만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한계가 있음을 보여준다. 이로 볼 때, ‘속수지지 갈공모계 불능선사’는 “손이 묶인 상황에서는 제갈량과 같은 계책으로도 일을 제대로 처리할 수 없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다음으로 ‘와해지여 한신병선 역무내하(瓦解之餘 韓信兵仙 亦無奈何)’에서 ‘와해지여’의 의미를 살펴보자. 이 구절에서 ‘와해(瓦解)’는 ‘기와가 부서진다’라는 뜻으로, 조직이나 계획이 무너져 흩어진 상태를 비유한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와해지여(瓦解之餘)’의 ‘여(餘)’는 본래 ‘남다’ 혹은 ‘뒤, 이후’를 의미한다. ‘여’에는 어떠한 일이 일어난 뒤의 남겨진 상태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즉, ‘와해’가 조직이나 계획이 한순간에 흩어지는 현상을 의미한다면, ‘와해지여’는 기와가 부서져 흩어지고 남은 상황을 뜻한다. 이는 조직의 기틀이 이미 무너져 내려 인력으로 수습하기 어려운 사후적 국면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아무리 병법이 뛰어난 인물이라 할지라도, 군사들의 마음이 이미 기와처럼 산산조각 난 뒤[餘]의 상황에 놓이게 되면, 그 어떠한 용병술로도 이미 꺾여버린 대세를 되돌릴 수 없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이러한 조직 붕괴의 위기 상황을 뜻하는 ‘와해’의 실질적인 양상은 사료에 기록된 군 진영의 몰락 과정을 통해 엿볼 수 있다. 중국 남북조 시대의 역사서인 『후한서(後漢書)』에는 공손찬(公孫瓚) 군대 진영의 와해 과정이 기록되어 있다. 당시 공손찬은 백성들을 가혹하게 대하고 성안에서 방어에만 전념하는 전략을 고집하여 군사들의 신뢰를 크게 잃었는데, 이를 본 참모 관정(關靖)은 “지금 장수의 병사 중 와해할 마음[瓦解之心]을 품지 않은 자가 없다.”05라고 경고하였다. 이는 기와가 깨져 사방으로 흩어지듯 군대의 사기가 바닥나 조직이 곧 무너질 것을 뜻하며, 외부의 공격보다 내부의 분열이 더 위험한 상태에 직면했음을 나타낸다.
  조선시대 최대의 국정 기록물인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에서도 영조 시대의 경상감사 김상성(金尙星)이 임금과 신하의 소통이 막히고 민생이 방치되는 상황을 경계하며, 민심이 안정되지 않으면 국가 체제가 ‘토붕와해(土崩瓦解: 흙더미가 무너지고 기와가 부서진다)’할 수 있다는 경고를 남겼다.06 이는 국가의 기강이 무너지는 현상을 기와가 부서지는 것에 비유하여 통치자의 각성과 책무를 강조한 내용이다. 그래서 ‘와해지여’는 조직이 무너져 혼란스러운 상황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이 성구에 등장하는 한신(韓信)은 진(秦)나라 멸망 후 초(楚)나라와 한(漢)나라가 패권을 다투던 혼란기에 한고조 유방을 도와 천하 통일에 기여하였으며, ‘병선(兵仙)’이라 불릴 만큼 탁월한 군사적 재능을 발휘한 인물이다. 그러나 이처럼 전략과 용병술을 갖춘 인물이라 할지라도, 조직의 기반이 기와처럼 산산조각 난[瓦解] 뒤의 상황[餘]에 놓이게 되면 그 능력을 발휘할 방도가 없게 된다[亦無奈何]. 이는 아무리 뛰어난 인물이라 하더라도 그 역량을 담아낼 조직의 토대가 이미 무너져 버린 상황이라면, 개인의 역량만으로는 꺾여버린 대세를 되돌릴 수 없는 한계가 있음을 함의한다. 이로 볼 때, ‘와해지여 한신병선 역무내하’는 “와해되어 흩어진 상황에서는 병법의 신선이라 불리는 한신과 같은 사람이라도 역시 어찌할 수 없다.”라는 의미이다.


 
속수지지와 와해지여의 교훈

 

  상제님께서는 이 성구를 통해 우리에게 무엇을 전하려 하셨을까? 이 구절에는 크게 두 가지 경계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 먼저 ‘속수’는 앞서 살펴보았듯이 위급한 상황에서 팔짱을 끼고 수수방관하는 개인의 무기력한 태도를 경계한다. 이는 아무리 좋은 계획이 있어도 실행하지 않으면 성과가 없다는 실천적 자세를 강조한 것이다. 동시에 이 구절은 제갈량과 한신처럼 탁월한 재능을 지닌 개인일지라도, 내외부적인 한계 상황에 손발이 묶이거나 조직의 근간이 와해된 상태에서는 자신의 역량을 온전히 발휘할 수 없다는 환경적 제약에 대한 교훈도 함께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곧 개인의 역량 못지않게 그 역량을 뒷받침할 조직적 기틀과 구성원 간의 화합이 필수적임을 의미한다.
  이러한 가르침을 ‘환경적 제약’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개인의 역량 못지않게 조직 기틀이 중요하다는 사실은 우리의 수도 과정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상제님께서 뜻하신 지상천국 건설이라는 대업(大業)을 이루는 길은 바로 수도의 조직 체계를 통해서 가능하다. 우리가 마주하는 수도의 환경 또한 때로는 개인의 의지만으로는 돌파하기 어려운 외부적 시련과 내부적 위기가 닥치기 마련이다. 방면이라는 조직 체계는 이러한 한계 상황 속에서도 우리가 수도를 잘해 나갈 수 있도록 지탱해 주는 든든한 근간이다.
  이처럼 공사 3장 39절에 담긴 상제님의 가르침은 위기 상황에서 수수방관하는 개인의 태도를 경계함과 동시에, 아무리 능력이 출중해도 환경적 제약과 조직의 붕괴 앞에서는 무력할 수밖에 없음을 일깨워 준다. 이는 상제님의 도를 세상에 펼쳐 나가는 도인들에게 지속적인 성찰의 계기를 제공한다. 특히 ‘속수’와 ‘와해’라는 위기 상황을 극복하고 상제님의 덕화를 천하에 선양하는 관건은 구성원 간의 견고한 결속과 진정한 화합에 달려 있다. 임원과 수반이 상호 은의(恩義)로 융화되어 방면 체계의 생명력을 유지할 때, 비로소 상제님의 덕화가 온 세상에 널리 퍼져 포덕천하(布德天下)의 목적이 달성될 것이다. 

 

 

 

 


 01 교무부, 「천계탑: 속수지지 갈공모계 불능선사(束手之地 葛公謨計 不能善事)」, 《대순회보》 28호 (1991).
02 『약포선생문집(藥圃先生文集)』 권2, 「재차(再箚)」, “我祖宗二百年相傳赫業, 豈可付諸無可柰何之域, 而束手以待耶.” 이와 동일한 취지의 서술은 다음 대목에서도 확인된다. “우리 조종 200년 동안 전하여 온 기업(基業)을 어쩔 수 없는 궁지에 방치하고서 손을 놓은 채 기다릴 수 있겠습니까(我祖宗二百年相傳之業, 豈可置之無可奈何之域, 而束手以待邪).” (『약포선생속집』 권4, 「有明朝鮮國忠勤貞亮扈聖功臣, 大匡輔國崇祿大夫, 領中樞府事, 西原府院君藥圃鄭先生行狀」)
03 『삼국지(三國志)』, 「오주전(吳主傳)」 “江表傳載曹公與權書曰: ‘近者奉辭伐罪, 旄麾南指, 劉琮束手. 今治水軍八十萬衆, 方與將軍會獵於吳.’ 權得書以示羣臣, 莫不嚮震失色.”   
04 『난중잡록(亂中雜錄)』, 「경자(庚子)」, “願守邊城, 圖報涓埃, 愚計歸虛, 更無可爲, 束手而坐, 賊至而退, 臣實恥之.”
05 『후한서(後漢書)』, 「유우공손찬도겸열전(劉虞公孫瓚陶謙列傳)」, “長史關靖諫曰: ‘今將軍將士, 莫不懷瓦解之心.’”
06 『승정원일기』 967책, 영조 20년(1744년) 1월 2일 기사, “誠恐民志靡繫, 將有土崩瓦解之漸. 宗國安危之機, 間不容髮, 思之及此, 直欲慟哭而不可得也.”

 

관련글 더보기 인쇄

Copyright (C) 2009 DAESOONJINRIHOE All Rights Reserved.
경기도 여주시 강천면 강천로 882 대순진리회 교무부 tel : 031-887-9301 mail : gyomubu@daesoon.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