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0호 다시보는 우리문화 : 장례문화

장례문화

 

 

글 교무부

 

 

 

  사람이 태어나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관습인 관ㆍ혼ㆍ상ㆍ제(冠婚喪祭)는 우리 조상의 혼과 사상이 담겨 있는 아름다운 풍습이다. 그 중 삶을 마무리하는 상(喪)에는 조상을 위한 우리의 효 사상과 정서가 고스란히 스며들어 있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면 반드시 죽는다. 이것은 자연의 섭리이기도 하다. 사람이 운명하고 치러지는 장례[葬禮 또는 상례(喪禮)]는 옛부터 인간의 도리를 중시하는 우리 선조들 사이에서 전통예절 중 가장 엄숙하고 중요한 예법의 하나로 인식되어 왔다. 더불어 오랜 역사를 거치면서 삶에 대한 조상들의 가르침과 정서도 녹아들어 함께 전해지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기원과 매장풍습의 변화

  사람이 죽으면 그 주검을 처리하는 방법으로, 땅에 매장하는 토장(土葬)과 시신을 태우는 화장(火葬)이 대표적이다. 이 외에 좁은 땅의 작은 섬에서 행한 풍장(風葬)과 물밑에 가라앉히는 수장(水葬)이 있었으나 지금은 사라진지 오래다. 이러한 장묘제도는 시대에 따라 변화 발전하였는데, 선사시대부터 삼국시대까지는 매장법이, 통일신라 이후 고려시대까지는 불교의 영향으로 화장법이 주류를 이루었다. 이때 골호(화장을 하고 난 유골을 담아 묻는 항아리)가 유행하였다는 기록으로 보아 납골묘의 기원을 이 시대 이후로 추정해 볼 수 있겠다. 조선시대로 접어들면서 유학의 이념 아래 다시 매장이 제도화 되었다.

  우리나라의 장례는 조선시대 이전에는 불교적 색채가 강했지만, 조선시대 이후에는 유학의 영향을 받은 『주자가례(朱子家禮)』가 기본이 되었다. 하지만 『주자가례』는 중국의 풍습을 기본으로 하였기에 우리의 실정에 맞지 않는 복잡한 절차 및 형식이 나오게 되었다. 이로 말미암아 학자들 사이에 논란이 생기고 일반 백성들까지 혼란이 생겨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숙종 때 이재(李縡)의 『사례편람(四禮便覽)』에 의해 일단락되었고, 이후부터 『사례편람』에 의해 우리의 전통장례절차가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장례에 담긴 의미

  장례는 죽은 자를 보다 아름답고 깨끗하게 그리고 편안하게 보내 드리기 위한 의식인 동시에 인간의 존엄성을 밝히고 평생의 공적을 기리고 새기는 의식이라 할 수 있다. 관혼상제의 관례와 혼례가 부모가 주관하는 것이라면 상례와 제례는 자손이 주관하는 의식이므로 모든 책임도 자손에게 있다. 자손은 부모 및 조상에 대한 예를 다하기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여기에다 오래전부터 내려온 조상 숭배의 정신은 유교와 결합하면서 더욱 심화되었다. 유교에서는 후손이 끊어지는 것을 두려워했다. 이러한 바탕에는 조상으로부터 자신에게 이르는 삶이 계속 유지된다는 의식이 깔려 있고, 후손이 이름을 드높이는 것이 조상에 대한 마땅한 도리(道理)요, 보본(報本)이라고 여겼다. 그리하여 대를 잇는 출생도 중요하지만 조상이 있었기에 현재의 자기가 존재하여 대를 이어가는 영광을 누릴 수 있다는 마음에 장례는 그 의미를 더 크게 하였다. 또한 『예기(禮記)』에 따르면 고조부까지는 조상신(祖上神)이 존속하여 자손을 돌본다고 하였기에 죽은 자를 위해 장례를 잘 치르는 것이 곧 산 자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정성을 다하였다.

  그리고 장례의 밑바탕에는 우리의 효사상이 있다. 효를 으뜸으로 삼았기 때문에 슬프고 애절한 마음의 표현으로 정성을 다해 장례를 지내는 것이 자식 된 도리였다. 예전에는 늙은 부모를 정성껏 봉양하고, 부모가 돌아가시면 삼년상을 치르는 것이 법도였지만 시대의 흐름에 따라 그 법도를 따르지 못함이 현실이 되었다. 하지만 그 마음만은 간직하며 여러 가지 방법으로 효를 다하고 있다.

  장례란 부모의 은혜에 극진히 보답하여 마지막 효성에 유감이 없도록 하기 위해 제정한 것이다. 그러므로 옛사람들은 장례를 일컬어 ‘송종지미덕(送終之美德)’이라 하였다. ‘송종’은 마지막을 보내는 것이다. 형식절차는 어떤 것이 취사선택되든 간에 중요한 것은 마음으로 지극한 정성을 다하는 것이다. 이는 교육적 차원에서도 의미가 있다.

 

 

우리의 정서가 녹아있는 장례식

  사람은 죽음을 삶의 연속적인 것으로 보고 이를 극복하려 노력해 왔고, 이를 제의의 형태로 장례문화를 만들었다. 장례문화는 죽음에 대한 충격을 극복하려는 종교적 기능, 생전에 맺어왔던 관계의 단절에서 오는 여러 가지 문제를 공동체와의 유대 속에서 풀어 나가려는 사회적ㆍ공동체적인 기능, 그리고 시신을 현실적으로 처리하는 실제적인 기능 등이 모여 이루어진 것이다. 유교사상이나 교설(敎說)을 보면 죽음과 관련한 상례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중에서 유교의 효사상(孝思想)은 현세의 윤리에 그치지 않고 저승으로까지 이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시신 처리에서도 풍수지리설로 인해 산 자의 번영을 꾀하기도 하였다.

  장례가 소중히 여겨진 만큼 폐습 또한 존재하였다. 조선 왕조 500여 년은 장례와 제사에 국력이 소비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장례와 제사 격식을 두고 세세히 그 시비를 따지느라 거의 조용할 날이 없었다. 예송논쟁(禮訟論爭)01이 그 폐해의 대표적 사례이다.

  장례행렬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으로 영여(靈輿)와 상여(喪輿)가 있다. 영여는 상여보다 앞장서서 가는 작은 가마로, 혼백상자와 향로, 영정 등을 실어 영혼이 타고 가는 것임을 상징한다. 상여는 가마 모양과 비슷하나 조금 더 길다. 몸체는 단청식으로 여러 가지 채색을 하고, 네 귀퉁이에는 기둥을 세워 위로 포장을 쳐 햇빛을 가리며, 상여 뚜껑에는 연꽃·봉황 등으로 장식한다. 상여를 메는 사람을 상여꾼·상두꾼·향도군(香徒軍)이라 하며, 대개 천민들이 메는 것이 보통이었으나 후에는 동네 청년들이나 망인의 친구들이 메기도 하였다. 오늘날의 장례행렬에서는, 영여와 상여 대신 죽은 이의 사진이나 혼백을 실은 승용차가 앞장서고 주검을 실은 영구차가 뒤에 따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장례절차

전통적인 장례절차는 다음과 같다.

1) 임종(臨終): 마지막 숨을 거두는 상태를 말하며 운명(殞命)이라고도 한다.

2) 수시(收屍) 또는 정제수시(整齊收屍): 운명이 확인되면 먼저 고인의 명복을 빈 다음에 시신을 바로 잡는 것을 말한다.

3) 고복(皐復)과 사잣밥: 육신을 떠난 혼(魂)을 다시 부르는 것으로 초혼(招魂) 또는 복(復)이라고도 한다. 고복이 끝난 뒤에는 메[흰 밥] 세 그릇, 술 석잔, 나물 세 그릇, 동전 3개, 짚신 세 켤레 등을 조그만 상 또는 채반 등에 차려 대문 밖에다 내놓는데, 이를 사잣밥이라고 한다.

4) 발상(發喪): 고복을 하고 난 뒤에는 상제들이 머리를 풀고 곡을 하며

초상이 났음을 알리는 것이다.

5) 전(奠): 염습이 끝나고 처음으로 상복을 입는 성복제(成服祭) 이전까지 죽은 사람이 살아 있을 때와 똑같이 섬긴다는 의미에서 조석으로 주과포를 올리는 것을 말한다.

6) 습(襲): 향나무나 쑥을 삶은 향탕수(香湯水)로 시신을 정결하게 씻기는 것을 말한다.

7) 소렴(小殮): 반합이 끝난 뒤에 시신에게 수의를 입히고, 이불로 싸는 절차를 말한다.

8) 대렴(大殮): 소렴이 끝난 뒤 시신을 대렴포로 싸고 묶어서 입관하는 절차이다.

9) 성복(成服): 대렴이 끝난 이튿날 즉 운명한지 나흘째 되는 날 상주 이하 내외복인(內外服人)이 모두 복제에 따라 각각 상복을 입는 절차를 말한다.

10) 치장(治葬): 묘자리를 정하는 택지(擇地)에서 매장하여 봉분을 만드는 성분(成墳)까지의 절차를 말한다. 장례일이 정해지면 개영역(開瑩域: 산소 자리를 팜)을 시작한다. 산역을 시작하기 전에 지신에게 사토제(祠土祭)를 지낸다.

11) 천구(遷柩): 영구를 빈소에서 대청으로 옮기는 것을 말한다.

12) 발인(發靷): 영구가 장지로 떠나는 절차를 말한다. 날이 밝으면 영구를 상여에 옮겨 모시고 견전(遣奠)을 지낸다. 견전은 영구를 상여에 옮겨 실은 뒤에 마지막으로 올리는 전을 말하며 요사이 흔히들 발인제 또는 영결식이라고도 한다.

13) 운구(運柩), 급묘(及墓): 급묘는 묘지에 도착하는 것을 이른다.

14) 하관(下棺): 시신을 내광에 모시는 것을 말하는데, 이를 폄 이라한다.

15) 성분(成墳): 하관을 마치면 흙과 회로 광중을 채우고 흙으로 봉분을 만드는 것을 말한다.

16) 반곡(反哭): 주상과 복인들이 신주와 혼백 또는 영정을 영거(盈車)에 모시고 곡을 하면서 상여가 왔던 길을 되돌아오는 것을 말한다.

17) 우제(虞祭): 초우(初虞), 재우(再虞), 삼우(三虞)를 통틀어 일컫는다. ‘우(虞)’란 위안한다는 뜻으로 사자의 신령을 편안케 하는 동시에 생자의 마음을 위로해 주는 안위의 제사이다. 즉 우제란 시신이 지하에 매장되었으므로 그 영혼이 방황할 것을 염려하여 영혼을 달래고 평안케 하기 위해 지내는 제사를 말한다.

18) 졸곡(卒哭): 수시로 하던 곡을 그친다는 뜻이다.

19) 부제(咐祭): 졸곡을 지낸 다음 날 지내는 제사로, 망자의 신주를 사당에 모셔져 있는 조상들의 신주 곁에 함께 모시는 절차를 말한다.

20) 소상(小祥): 만 1년이 되는 날에 지내는 제사로서 ‘상(喪)’ 자 대신 ‘길(吉)’의 의미가 담겨 진상(祥) 자를 써서 제사명도 소상(小祥)이라 한다.

21) 대상(大祥): 초상을 치른 지 만 2년 만에 지낸다. 제사의 절차는 소상때와 같다.

22) 담제 : 대상을 지낸 뒤 두 달이 되는 날 거행하는 상례로 초상으로부터 27개월 째 해당하는 달에 지낸다.

23) 길제(吉祭): 길제는 신주를 모신 가정에서 모든 조상의 신주를 고쳐쓰고 죽은 이의 신주를 사당에 안치하기 위해 지내는 제사이다.

 

 

장례에 대한 마음가짐

  예법은 사람이 만든 것으로, 시대가 바뀌고 변화되면 거기에 맞추어져야 한다. 오늘의 현실적 상황에선 정해진 통일안이 없고, 자신이 속한 종교예식이나 공동체의 생사관이 반영된 장례예식을 따르고 있다. 그러나 그 본래의 의미와 절차만은 제대로 알고 있어야 한다. 모든 행사를 경건(敬虔)하게 정성을 다하여 행하면 예에 가까워질 것이다. 모름지기 시대의 흐름과 가정 및 사회 환경의 변화를 따르고, 전통상례를 참작하여 예에 어긋남이 없도록 하는 것이 돌아가신 분에 대한 도리라고 본다.

  “제수(祭需)는 깨끗하고 맛있는 것이 좋은 것이요. 그 놓여 있는 위치로써 귀중한 것은 아니니라. 상복은 죽은 거지의 귀신이 지은 것이니라.”(교법 1장 48절) 이는 형식보다는 정성을 다하는 마음이 중요함을 일깨워주시는 것이리라.

 

 

 

 참고자료

ㆍ 박의서, 『한국의 전통장례』, 도서출판 재원, 2002

ㆍ 로저 자넬리, 『조상의례와 한국사회』, 임돈희, 일조각, 2000

ㆍ 임동권 외, 『청양의 관혼상제와 풍수』, 청양문화원, 2003

ㆍ 전통예절 연구회 편, 『상례와 제례』, 도서출판 신나라, 1991

ㆍ 이무영, 『한국가정의례』, 한국예절대학, 2009

ㆍ 김득중, 『지향가정의례』, 중화서원, 2007

 

 

 


01 조선 현종 때 궁중의례의 적용문제, 특히 복상(服喪)기간을 둘러싸고 서인과 남인 사이에 크게 논란이 벌어진 두 차례의 사건(기해예송, 갑인예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