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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문예 : 산문 가작
人心惟危 道心惟微 (인심유위 도심유미)
잠실30 방면 선무 서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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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회사를 다니던 아버지께서 중동으로 파견을 가게 되어 가족들이 같이 옮겨 가면서 저는 그곳에서 고등학교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다소 특이한 환경 속에서 지내다 보니 철학, 심리학 등 인문학에 관심이 생겼고, 이 세상의 진리나 이치에 대한 호기심이 점차 커졌습니다. 졸업 후 한국에 들어와서 친구를 통하여 도를 알아보게 되었습니다. 입도 후 듣는 교화는 저에게 신세계였습니다. 진리적인 궁금증이 많던 저는 포덕소나 회관에서 교화를 들을 때마다 감화가 되었습니다. 특히 상제님께서 인세에 오셨다는 사실을 들었을 때는 몹시 놀랐습니다. 상제님의 진리를 듣고 제가 찾던 진리라는 확신이 들었고, 수도를 열심히 해서 도통을 받아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대학 입시 준비 중이던 저는 외국에서 들어왔기에 대학을 갈 수 있는 길이 많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선각들의 말씀을 듣고 진학을 잘하여 수도와 병행할 수 있게 해달라고 정성을 들였고, 좋은 학교에 합격했습니다. 덕화로 합격한 것 같아서 기쁘고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저는 선각들께 다짐했습니다. “학교 들어가도 마음 변치 않고 열심히 수도하겠습니다.” 그러나 예상과 다르게 신입생인 저에게 학교생활은 유혹이 참 많았습니다. 각종 행사와 모임이 끊이지 않았고, 봄날의 캠퍼스는 낭만이 가득했습니다. 살랑살랑 마음에 바람이 불자 이런 마음이 불쑥 올라왔습니다. ‘연애하면서 도 닦아도 되지 않을까? 나도 즐기고 싶은데….’ 그렇게 연애를 시작하니 마음속 우선순위가 바뀌었습니다. 매일 가던 방면은 가끔 가게 되었고 기도 모시거나 교화 듣는 일이 뜸해졌습니다. 괜히 제 마음이 불편하고 눈치 보이니까 도를 더욱 외면하고 멀리하게 되었습니다. 도를 잘 닦으리라던 다짐이 무색하게도 저는 대학 생활과 연애에 빠져 시간을 보냈고 수도는 뒷전이었습니다. 이따금 도의 행사에 참여하거나 방면에 가서 선각들과 말씀 나누고 교화 들을 때면 이러한 저의 이중성 때문에 괴리감이 들었습니다. 즐겁기만 한 연애일 줄 알았는데, 좁고 이기적인 마음으로 인해 관계에서 문제를 많이 겪었고 나중에는 헤어지게 되었습니다. 여자 친구를 만나며 제 내면의 문제도 알게 되었습니다. 스스로가 변화되지 않고는 행복하기 어렵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또한 도 닦아서 도통 받아야 하는데 제가 뭐하고 있는 것인가 싶은 회의감도 갈수록 커져서 더는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다시 수도를 시작했습니다. 포덕을 하며 진솔한 대화로 소통도 하고 상제님의 진리를 전할 수 있어 뿌듯하고 즐거웠습니다. 그러면서 선무 임명도 모시게 되었습니다. 또한 학교생활도 열심히 하며 학군단에 입단하였고, 졸업 후에는 장교로 군에 입대하였습니다. 복무 기간이 2년 반 정도로 길다 보니 이 동안 도심을 잘 지킬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습니다. 다행히 부대가 서울과 가까워서 주말이면 방면에 갈 수 있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덕분에 주말에는 기도도 모시고 치성에도 참석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이 부대에 배치된 것이 도를 잘 닦으라고 펼쳐진 상황이라 생각되어 감사함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해이한 마음이 들며 도심이 조금씩 약해졌습니다. 주말에 포덕소에 가는 대신 좀 더 여유롭고 편하게 보내고 싶다는 마음이 쑥 올라왔습니다. 참 희한하게도 마음이 변하자 보직도 바뀌어서 일이 배로 많아졌고 실제로 주말에 올라가지 못하는 날이 많아졌습니다. 평일에는 야근하고 주말 출근도 잦아서 막상 원하던 여유와 휴식은 누릴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 전역 6개월 전 팬데믹이 터져서 부대에 전적으로 묶여있는 상황이 되다 보니 도심이 점차 희미해졌습니다. 또한 전역하기 전 가장 큰 고민은 취업이었기에 전역하자마자 취업 준비를 바로 시작했습니다. 자격증이나 어학 점수 등 취업에 필요한 스펙을 쌓으려 했는데, 걱정과 불안이 많다 보니 집중이 안 되고 마음도 답답했습니다. 당시 저의 집은 지방이었습니다. 선각들은 서울에서 지내며 기도도 모시고 정성도 들여서 저와 인연 있는 회사에 들어가는 게 어떻겠냐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를 위해 해주시는 말씀인 걸 알지만 제 상황에 매몰되어 그 말씀이 잘 들리지 않았고, 집에서 혼자 준비하겠다며 고집을 피웠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혼자 하는 취업 준비는 쉽지 않았습니다. 공부한다고 카페나 도서관에 가서 딴짓만 잔뜩 하고 결국 시간 낭비하기 일쑤였습니다. 그리고 지원했던 회사들은 모두 서류전형에서 떨어졌습니다. 취업도 안 되고 시간만 보내던 중 시학공부 자리가 나왔다고 하셔서 공부를 가게 되었습니다. 입대 후로는 도장에 거의 가지 못했다 보니 몇 년 만에 방문한 도장이 새로우면서도 정겨웠습니다. 대학생 때 열심히 수도하고 포덕하던 때의 기억도 났고 지금의 저는 그러지 못하고 있어서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공부 들어가기 전 심고를 드리는데 갑자기 눈물이 펑펑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번 생에 상제님의 천지공사를 받들겠다고 다짐에 다짐을 하고 왔는데, 제 작은 욕심을 채우고자 헤매고 방황한 시간이 너무 후회되었고, 그런 자신이 참 부끄러웠습니다. ‘제가 진정 염원하고 바라는 건 상제님의 뜻을 잘 받들어 사람을 살리고 도통을 받는 것인데 그동안 약속을 저버려서 정말 죄송합니다. 수도를 정말로 열심히 할 테니 잘할 수 있게 도와주십시오’하고 간절히 심고 드렸습니다. 공부 다녀와서 이틀 뒤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습니다. 어느 기업의 인사담당자였는데 구직 사이트에서 제 이력서를 보고 연락을 했다며 몇 가지를 물어보더니 면접을 보러 오라고 했습니다. 며칠 뒤 또 다른 회사에서 연락이 와서 면접을 보고 최종 합격하였습니다. 회사 위치도 서울이었고, 포덕소와 멀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숙소도 제공이 되었고 그 외에 여러 가지가 도를 잘 닦을 수 있는 환경이었습니다. 막막하고 잘 풀리지 않던 취업 문제가 이렇게 일주일 만에 일사천리로 해결된 걸 보며 제가 드린 심고를 들어주셨다는 게 정말로 와닿고 신기했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제가 도의 일을 하고자 마음을 먹으면 현실적인 문제들은 무위이화로 잘 풀어나갈 수 있게 해주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회생활 시작하니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저는 인사과로 배정되었고 사람들과 소통해야 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수도하고 포덕하며 경험하고 배웠던 것들이 회사 생활에 있어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일을 하면 할수록 더 잘하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커졌습니다. 실력도 키우고 성취감도 느끼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경제적으로나 상황적으로 안정이 되고 여건이 되니까 다시 연애하고 싶은 마음도 생겼습니다. 입사 초반에는 주기적으로 방면에 가고 교화도 듣는 등 나름대로 해나갔지만, 점차 회사와 일, 그리고 연애가 우선시 되었습니다.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 마음이 다른 게 이런 것인가 싶었습니다. 도를 잘 닦지 못하고 있다는 현실에 찜찜함을 느끼면서도 그 마음이 불편하여 스스로 타협하고 합리화했습니다. 그렇게 1년 가까이 도를 외면하면서 제가 하고 싶은 것만 하며 살았습니다. 영어 공부나 독서, 운동 등 자기 계발에 대한 계획도 세워서 하나씩 실천해 보았습니다. 이렇게 살면 마음도 채워지고 성취감도 있을 줄 알았는데, 문득문득 마음 깊은 곳에서 공허함과 회의감이 올라왔습니다. 하고 싶은 걸 다 해도 공허함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퇴근하고 집에 들어오면 지쳐서 침대나 바닥에 뻗는 일이 허다했고, 자기 계발 대신 누워서 휴대폰만 보며 시간을 헛되게 보냈습니다. 저는 서서히 무기력과 우울감에 빠졌습니다. 무엇에도 온전히 집중하기가 어려웠고 나중에야 이것이 저의 겁액 중 일부임을 깨달았습니다. 제 인생에만 집중해 보아도 진정으로 기쁘거나 보람 있는 삶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럴 때면 상제님의 진리를 전할 때 가슴 벅차오르고 충만했던 그때의 심정이 종종 떠올랐고, 막연히 그때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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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선각을 만나 이런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았습니다. 선각은 저에게 “너가 도를 닦고자 태어난 사람인데 포덕을 다시 해보는 게 어떻겠니?”라고 권했습니다. 그 말씀을 듣자 ‘다시 한번 해 볼까’ 하는 마음과 동시에 ‘과연 잘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도를 닦아야 할 사람이고 도의 일을 할 때 가장 뿌듯하고 행복하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다시 용기 내서 수도를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시행착오도 많았습니다. 마음을 비우고 집중하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선각들이 한결같이 이끌어주시고 도와주신 덕분에 여러 고비를 잘 넘어갈 수 있었습니다. 새로운 마음으로 포덕을 시작하니 마음이 다시 살아나는 것을 느꼈습니다. 회사 다닐 때 늘 무기력하고 에너지가 없었는데 도의 일을 하니까 같은 사람인가 싶을 정도로 많이 변화되었습니다. 그리고 오히려 도의 일을 하면서 현실적인 문제들이 무탈하게 풀리는 것을 느꼈습니다. 고대 중국의 성군이었던 순 임금이 우 임금에게 왕위를 물려주며 다음과 같이 얘기했습니다. “인심은 늘 위태롭고, 도심은 잘 드러나지 않고 미약하다. 오직 정밀하게 살피고 한결같이 지켜 그 중심을 붙잡아야 한다(人心惟危 道心惟微 惟精惟一 允執厥中).” 인심이란 사사로운 사심을, 도심이란 공적인 양심을 말합니다. 입도 당시의 저는 도를 닦는 것보다 중요한 건 없다고 생각했고 이 마음이 영원할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환경에 따라 갈대처럼 흔들리는 제 마음을 여러 번 경험하고 나니 제가 참 오만했고 저에 대해 무지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 마음은 상황이 조금만 바뀌어도 사심에 의해 송두리째 흔들릴 만큼 위태로웠고, 도 아니면 안 될 것 같던 마음은 손바닥 뒤집듯 쉽게 뒤집혔습니다. 이기심이라는 게 대단히 큰 욕심만이 아니라 조금 더 편하고 싶고, 조금 더 즐기고 싶은 작은 사심에서부터 출발한다는 것도 느꼈습니다. 그렇게 사심을 따라가게 되면 당장은 편해도 결국에는 마음이 불안하고 공허했으나, 양심을 지키려고 했을 때는 조금 수고스러워도 마음의 안정감이 생기고 힘이 솟았습니다. 지난날 사심에 사로잡혀 상제님에 대한 맹세를 저버린 제가 많이 반성이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몇 번이나 저에게 수도할 기회를 주시고, 모든 상황을 조화롭게 풀어주신 모든 분께 정말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이제는 제 마음의 문제에 대한 답도 찾아가고 있고 내면의 중심도 세워나가는 중입니다. 앞으로는 사심에 치우쳐 저의 도리를 저버리는 일이 없도록 굳게 다짐해 봅니다. 그리고 상제님 덕화를 무수히 받은 만큼 많은 사람에게 상제님의 진리를 잘 알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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