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너별 보기
   daesoon.org  
대순154년(2024) 12월

이전호 다음호

 

도전님 훈시 종단소식 특별기획 일각문 대순포커스 울타리 2025 대순청소년 겨울캠프 일정 기자 수첩 생각이 있는 풍경 대순문예 공모전 교리소개 알립니다

울타리 : 오늘은 여러분들이 선생님이고 내가 학생이다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오늘은 여러분들이 선생님이고 내가 학생이다



인성교육지원팀 대진디자인고등학교 이승재


  나는 현재 학교법인 대진대학교 인성교육지원팀 인성교육 협력분과 소속이며 대진디자인고등학교 인성 위원으로 학교에서 인성 수업을 담당하고 있다. 인성교육지원팀 소속의 위원들과 인성교육에 관해 많은 대화와 토론을 해왔지만, 이 순간까지도 인성교육의 기준과 방향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하고 있다.



  도전님께서는 전인교육을 통한 참된 인간을 육성하는 것이 학교 교육의 목적이라 하셨다. 그런데 전인적인 인간을 양성하기 위해 교육에 어떤 내용을 담아야 하며 어떤 방법으로 실현해야 하는지는 역시 어려운 일이다. 아무튼 이러한 딜레마 속에서 나름 깊은 고민을 하면서 인성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고민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지만, 내 인성 수업의 길라잡이가 된 실제 수업 사례가 있어서 그 이야기를 풀어볼까 한다.
  수업 시간에 모든 학생이 ‘나는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으며, 현재는 어떻게 살고 있고, 앞으로는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주제로, 매 수업 학생 한 명이 반 친구들 앞에서 발표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그날 역시 해당 순서의 한 학생이 발표를 시작했다.
  교탁 앞에 선 학생의 첫 마디는 “저는 나중에 정말 좋은 아빠가 되고 싶습니다”였다. 이 첫 구절을 듣고서 든 생각은 ‘장난하는 건가?’였다. 간혹 장래 희망을 얘기할 때 “좋은 아빠, 좋은 엄마가 되는 것이 꿈입니다”라고 장난스레 말하는 학생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발표를 중단시킬까 하다가 일단은 좀 더 지켜보기로 했다. 자신이 좋은 아버지가 되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은 이유를 ‘자신이 살아온 과정과 부모님의 삶을 담은 가정환경’을 얘기하면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 학생의 가정환경은 대략 이러했다.
  아버지는 경제적으로 무능하고, 직장생활도 오래 하지 못하며, 심지어 주식투자로 큰 손실까지 봤다. 현재는 건강까지 안 좋아져서 집에서 쉬고 계신다. 거기에다 가족들에게 자상한 모습을 보인 적이 없다. 집안의 가장이 이러고 있으니 어머니께서는 새벽에 가락시장에 나가서 채소 다듬는 일을 하시면서 가정 경제를 책임지고 계신다. 어머니가 너무 안쓰러운 동시에 아버지가 너무 원망스럽다. 그런데도 아버지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도 해봤다. 아버지는 어렸을 적 부모님(학생의 조부모님)을 여의고 큰아버지 손에서 자랐다. 큰아버지는 부모 없는 자식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게 하려고 너무나도 엄하게 대하셨다는데 거꾸로 매달아 놓고 매질할 정도였다고 하니 엄한 정도가 짐작이 갔다. 아버지가 이러한 환경에서 부모님의 제대로 된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랐기 때문에 당신의 자식과 가족을 사랑하는 방식을 모를 수도 있겠다 생각하니 부모ㆍ자식 관계를 떠나 인간적으로 가엾게 여겨지기도 한다고 했다. 아무튼 “이러한 가정환경에서 살고 있는 자신은 정말 좋은 가장, 자상한 아버지가 되어 단란하고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싶고, 꼭 그렇게 할 것임을 여러분 앞에 약속드린다”라는 말로 발표를 마무리하였다.
  나는 이 학생의 발표를 듣는 내내 어떤 걱정이 앞섰다. 어떤 걱정이란, ‘발표 학생의 불우하고 가난한 가정환경을 알게 된 반 친구들이 해당 학생을 무시하고 깔보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학생들의 반응은 나의 예상을 완전히 빗나갔다. 발표가 진행되는 어느 시점부터 훌쩍거리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리기 시작했다. 발표가 진행될수록 훌쩍거리는 소리는 점점 더 커지고 많아졌다. 많은 학생이 고개를 숙인 채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순간 다리에 힘이 풀리고 현기증이 났다. 너무 부끄럽고 미안해서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친구의 불우하고 가난한 가정환경을 무시의 대상으로 여기리라 생각했는데 우리 학생들은 진심으로 공감하고 있었다. 이런 학생들을 나는 도대체 어떤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던 것인가. 너무 부끄럽고 미안했다. 발표가 끝났는데도 교탁 앞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스스로 교탁에 설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한참을 교실 뒤에 우두커니 서 있으니, 학생들이 하나둘 나를 바라본다. 어쩔 수 없이 두 다리를 움직여 교탁 앞에 섰다. 나는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어떤 말도 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무슨 말이라도 해야만 하니 너무 괴로웠다. 한참을 고개 숙인 채 말없이 서 있다가 “오늘은 선생님이 여러분들한테 많이 배우고 간다. 오늘은 여러분들이 선생님이고 내가 학생이다”라는 말을 남기고 교실을 빠져나왔다. 그날의 수업은 교사에 의한 학생 인성 수업이 아니라, 학생에 의한 교사 인성 수업이었다. 교사인 내가 학생들로부터 확실한 인성교육을 받은 날이요, 학생이 교사요, 교사가 학생인 날이었다.
  나는 이 일을 겪고 나서 인성 수업의 방향을 수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자각함과 동시에 인성 수업이 꼭 필요하다는 것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우리 학생들 대부분은 이미 기본적인 인성을 갖추고 있고 인성 함양을 위한 바탕이 되어있다. 그런데 이미 갖추고 있는 인성을 스스로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을 뿐이고, 발휘하고 실천할 방법을 모르고 있었을 뿐이다. 이미 갖추고 있는 인성을 스스로 자각하게 하고, 발휘할 수 있게 하는 인성 수업이 필요했는데, 나는 그동안 학생들에게 무엇인가를 갖추게 해야 한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앞으로의 인성 수업에서는 학생들에게 무엇을 갖추게 하는 수업뿐만 아니라 이미 갖고 있는 것을 자각하게 하고, 스스로 발휘하고 실천할 수 있게 하는 장을 만들어 주고 싶다.





관련글 더보기 인쇄 이전페이지

Copyright (C) 2009 DAESOONJINRIHOE All Rights Reserved.
경기도 여주시 강천면 강천로 882 대순진리회 교무부 tel : 031-887-9301 mail : gyomubu@daesoon.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