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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54년(2024)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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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문예 공모전 : 600억의 선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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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문예 : 산문 우수


600억의 선각



달성8 방면 정리 윤정




  어렸을 적부터 저는 다양한 별명이 있었습니다.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돌연변이, 마녀, 깡패, 또라이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한 사람이 나쁜 뜻을 가진 별명을 이렇게나 많이 갖는 것이 쉽지 않은데 말이죠. 그렇다고 학교 폭력을 했거나 선생님께 인정받지 못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성격이 예민하고 기분이 좋았다가 갑자기 나빴다 하는 등 감정을 컨트롤하는 것이 어려워 교우관계에서 대단히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대부분 성격과 기질은 유전이나 가정환경으로부터 비롯된다고 하던데 한창 사춘기 시기에 장남인 아버지가 조부모님과 합가를 하면서 어머니의 시집살이, 부모님의 불화, 다른 여러 가지 이유로 우리 집은 상극 그 자체였습니다.
  저와 아버지는 서로에게 내뱉는 말에 칼이 들어있지는 않을까 할 정도로 상처가 되는 말을 했고 할머니, 할아버지도 서로 욕을 하며 싸우기 바빴습니다. 이러한 환경에서 저와 남동생은 집에 들어가고 싶지 않았고 제가 어머니에게 난 괜찮으니 이혼하라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그때마다 어머니는 “너희 때문에 산다”라고 하며 모른 척을 하셨습니다.
  딸 바보란 말이 당연시되는 이런 시대에 저는 부모님에게 “잘한다”라는 흔한 칭찬조차 듣지 못하고 자랐습니다. 결국은 20대가 되어서 아빠와 싸우고 집을 나가 외할머니와 살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살다가는 둘 중 하나는 죽을 수도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극심한 우울증과 대인기피증으로 핸드폰도 없이 집안에서 몇 년 동안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무심코 빌린 만화책에서 ‘모든 것은 마음에 있으니, 마음먹기에 따라 내가 살 수도 있고 죽을 수 있다’라는 글귀를 보고 정신을 차리고 일을 구해 사회생활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동안의 우울하고 폭력적인 성격이 어디 가진 않아서 직장에서 몸이 갑자기 아프다던가 상사와 싸우거나 멀쩡하던 회사가 망해서 쫓겨나거나의 이유로 항상 직장 생활을 1년을 못 채우고 그만둬야 했습니다. 이런 것이 반복되어도 ‘잘못됐다, 뭔가 이상하다’ 생각을 못 하고 남 탓만 하며 허송세월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가 대구에 사는 막내 이모에게 가더니 밝고 환하게 웃으며 돌아왔습니다. 중학생 때 이후로 저는 어머니가 웃는 것을 본 적이 없었는데 그날은 이상한 날이었습니다. 알고 보니 대순진리회에서 입도치성을 했다고 했습니다. ‘대순진리회는 이상한 데라고 하던데?’ 여기서 더 내려갈 데도 없는 집안 분위기임에도 불구하고 ‘집안이 풍비박산 난다고 하던데? 어머니가 그런 데서 입도를 하셨다고?’라고 생각하면서도 “하지 마세요” 말하기보단 어머니가 웃으니까 ‘너무 좋다, 거기가 어딜까?’ 궁금했습니다.
  그날부터 어머니는 태을주에 대해 알려주고 주문을 외우면 모든 일들이 좋아진다며 해원상생을 알려주려 노력하셨습니다. 설마 ‘그런 데가 있겠어’ 하면서도 얼굴에 먹구름이 가시지 않던 어머니가 변하니 집 분위기도 조금씩 달라지고 가족들도 대순진리회가 무엇인지 잘 모르지만, 어머니를 믿고 모두가 입도치성을 모셨습니다.



  그 후로 그 당시 선사였던 선각은 고작 입도치성 때 딱 하루 봤을 뿐인 저에게 “윤 내수요. 보고 싶어요. 뭐 하고 있어요?”라며 3일이 멀다 하고 전화를 했습니다. 정말 부담스럽고 피하고 싶은 전화였습니다. 낯을 가리며 집안에만 틀어박혀 있는 제가 뭐가 좋다고 열심인지, 가끔은 전화를 꺼버리기도 했습니다. 그런데도 선사는 기분이 나쁘지도 않은지 오히려 저를 걱정했습니다. 그렇게 전화를 피하고 퉁명하게 굴면 기분이 나빠서라도 연락하지 않을 텐데 부모님보다 저에게 더 정성이었습니다.
  비록 입도는 하였지만, 뿌리 깊은 상극기운이 사라진 것은 아니어서 집을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당시 미용업을 하던 이모가 가게 차릴 때 같이 하자고 미용 자격증을 따러 대구에 오라고 권했습니다. 저는 집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대구로 내려가 이모 댁에 얹혀 있으며 미용 공부를 했습니다. 얼마 안 돼 자격증을 땄지만, 미용 일이 생각만큼 쉽지 않았습니다. 30대라는 늦은 나이에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친구들의 텃세 속에 일하는 것도, 같은 나이의 상사에게 무시당하고 적응하는 것도 힘들었고 실력이 전혀 늘지 않는 것도 힘들었습니다. 세상은 열심히만 하면 무슨 일이든 된다고 했는데 놀랍게도 저에게는 해당이 되지 않았습니다.
  여기저기 미용실을 옮겨 다녔는데 새로 옮긴 곳의 첫 휴일에 선감께서 절 찾으셨습니다. 저에게 선감은 어려운 분인데 그런 분이 부르신다니 ‘내가 뭘 잘못했나’ 하는 생각에 뵙기 전까지 무척 긴장했습니다. 선감께서는 회관 사무실 종사원을 해보면 어떻겠냐고 하셨습니다. 입도는 했지만, 도에 대해 알지 못했던 저에게 종사원을 하라니 두렵기도 하고 여러 감정이 올라왔습니다. 선감께 선뜻 “네 알겠습니다”라고 대답을 할 수 없었습니다. 한참을 말 못하고 머뭇거리니 선감께서는 깊이 생각해보라고 하곤 자리를 떠나셨습니다.
  그 후에 선각들이 저를 설득했습니다. 지금 하는 미용 일에 소질이 있고 재미가 있으면 좋은데 체력도 안 되고 실력도 늘지를 않으니 걱정이다, 차라리 몸과 마음도 차분히 하고 수양도 할 겸 다른 종사원이 들어올 때까지만 맡아달라고 했습니다. 몇 시간을 입씨름하고 떼를 쓰며 하지 않겠다고 버티다가 겨우 마음을 돌려 종사원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회관에서의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종일 업무를 보며 짬짬이 『전경』도 쓰고 시간에 맞춰 기도를 모셨습니다. 이런 일들이 생소하였고 사회에서 일할 때보다 어렵게 느껴졌습니다. 사회에서는 모르고 한 일은 크게 혼나지 않았는데 도 안에서는 모르고 잘못한 일들도 꾸중을 들었습니다. 저 혼자 잘못한 일에도 다른 종사원들까지 같이 꾸중을 모시니 난감했습니다. 게다가 아무도 저를 타박하지 않고 같이 잘해보자며 격려까지 해주셔서 더 죄송스러웠습니다. 그런데도 일은 뜻대로 되지 않았고 한쪽 다리를 다치기까지 했습니다. 선각들이 상제님을 처음 따르는 사람에게 미처 생각지 못한 허물을 하나하나 깨우쳐 주시고 또 반드시 그의 몸을 위하여 척신과 모든 겁액을 풀어 주셨다는 교운 1장 2절 구절처럼 제 안의 척신과 겁액을 풀기 위한 과정이라는 것, 또한 몸이 아파도 계속 수도를 해나갈 수 있는지 신명들이 단련시켜 주신다는 것을 말해주었지만, 감사함을 모르고 오히려 도를 접하게 해준 전도자이자 선각인 어머니와 이모를 원망하였습니다.
  그런 제가 걱정되었는지 선각들은 매일같이 찾아와서 이야기를 들어주고 격려도 해주며 고충은 없는지 지금 마음은 어떤지 물었습니다. 한동안은 눈물만 나와 말을 못 할 지경이었습니다. 왜 잘못하지 않은 일에 꾸중을 듣고 종사원으로서 더 엄격하게 지내야 하는지 아픈 다리로 인해 예민해져서 선각들께 하소연하고 화를 내었습니다. 그런데도 선각들은 그런 저를 많이 다독여 주고 교화도 해주며 신경 써주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명절 전, 회관 대청소하는 날이었습니다. 종사원들이 모여 회관의 물건들을 닦고 있다가 문득 “저는 언제까지 이 일을 하게 될까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런 저에게 다른 종사원은 “도의 일은 퇴직이 없습니다. 마음만 먹는다면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할 수 있어요.”라고 했습니다. 그 말이 무섭고 버겁게 느껴졌습니다. 내가 이 일을 계속해야 한다니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였지만 그만큼 마음이 힘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날 밤 꿈을 꾸었습니다.


  대순진리회 도인들이 다니는 학교에 상급임원부터 평도인까지 많은 사람이 한 교실에 모여있었습니다. 복도를 지나가던 한 도인에게 물었습니다. “여기를 다니고 싶지 않아요. 어떻게 하면 다니지 않을 수 있죠?” 그러자 교무실로 가보라고 해서 교무실로 향했습니다. 교무실에 계시는 분에게 똑같이 여쭈었습니다. 그랬더니 “아, 그건 쉽습니다, 대순진리회 자퇴서를 내면 됩니다.” 너무 기뻐서 어서 자퇴서를 달라고 했습니다. “네, 자퇴서는 600억을 내시면 드립니다.”
  ‘600억?’




  너무 놀라 꿈에서 깼습니다. 꿈을 깨고서도 한참 동안 멍했습니다. ‘대순진리회의 자퇴서가 그렇게 값이 나간다니, 뭐가 그렇게 대단한 거야’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로또 1등에 당첨되어도 갚지 못할 금액이었습니다. 꿈 이야기를 당시 선사께 말씀드렸습니다. 한참을 웃던 선사는 “윤 내수가 대순진리회에서 반드시 도를 닦아야 하는 이유가 있었네요. 속으로는 수도에 마음을 잡지 못하고 갈팡질팡하고 있었는데 윤 내수 조상님들은 이렇게라도 깨달음을 주셔서 마음을 바로잡기를 바라고 계시는 것 같아요. 어서 마음을 다잡고 도통에 목적을 두려고 해봐요”라고 했습니다. 너무 터무니없는 말이라고 그런 게 어디 있냐고 반문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꿈이 너무 생생했고 힘든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생각을 하자마자 꾼 꿈이기에 믿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600억의 큰 금액이지만 왠지 마음 한편에서 덕을 쌓아서 갚아야 할 것 같은 책임감이 생겼습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해보자. 조금이라도 600억을 갚아보자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러한 과정에서 선각들의 속을 참 많이 썩였습니다. 선각의 말을 듣고 따르는 것이 마치 복종하는 마냥 자존심이 상했고 “네”라고 대답하는 것이 죽기보다 싫었습니다. 눈에 거슬리는 사람이 있어 선각께 말씀드리면 그 모습이 나라고 안타깝게 생각하며 자신을 고치라고 말씀하시니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찬찬히 생각해보면 선각 말씀이 맞는데도 억울하고 분했습니다. 화를 내고도 선각들께 죄송하다고 잘못했다고 말씀드리지 않고 마치 당연한 듯이 행동하며 선각들 마음에 대못을 박았습니다. 그렇게 도가 몸서리칠 정도로 싫으면 포덕소에 안 가고 고향으로 가버리면 그만인데, 성격이 다혈질임에도 그것만은 하지 않는 것이 이상할 정도였습니다. 600억을 갚기는커녕 오히려 더 빚을 지우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래도 선각은 제게 눈 한번 흘기지 않고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반겨주었습니다.
  그렇게 싸우고 대들면 부모자식 간이든 친구 사이든 의절하고 다신 얼굴 볼 일 없다며 헤어졌고 그렇게 친구들을 많이 잃었는데 선각은 저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부모님조차 포기하고 고치지 못한 제 큰 단점들을 때로는 온화하게 때로는 호되게 야단도 치며 고쳐주려 노력했습니다. 어떻게든 포기하지 않고 고쳐주려는 선각들이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점점 선각의 말씀을 들으며 조금씩이나마 변하는 제 모습을 보게 됐습니다. 가끔 만나던 친한 동생이 예전의 제 모습은 날카롭고 예민해서 말 한마디 할 때마다 살얼음 위를 걷는 것 같았는데 오랜만에 본 제가 많이 부드러워지고 밝아졌다며 무슨 좋은 일 있냐고 물었습니다. 상대에게 잘 보이려고 억지로 밝은 척 부드러운 척할 필요 없이 자연스럽게 변한 모습이 신기했고 만나기만 하면 싸우던 아버지도 달라진 제 모습에 신기해하셨습니다. 아버지는 같이 있으면 불편하고 싫은 존재였는데 선각은 그런 아버지를 해원상생의 마음으로 바라보라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그렇게 싫어했던 아버지도 다르게 보였습니다.
  선각은 항상 권위적이고 무서웠던 아버지도 그 당시에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고 힘든 시기를 보내며 나름의 고충이 있었을 거라며 이제 마음을 풀고 먼저 다가가면 아버지 또한 달라질 거라 하셨습니다. 선각의 말씀을 따르고 그대로 행하니 물과 기름 같던 부녀 사이가 전에 없이 부드러워졌고 아버지께 처음으로 “딸, 사랑한다”라는 말도 들었습니다. 유년 시절의 응어리가 풀리는 듯했습니다. 그제야 선각께 감사하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도 말리지 못하고 변화시키지 못하는 저를 선각은 상제님의 말씀과 덕화를 그대로 전하며 저를 일깨워주고 변화시켜 주셨습니다. 대순진리회에 입도하지 않았다면, 그리고 제 곁에 계시는 선각들을 만나지 않았다면 저는 지금과는 다른 힘든 인생을 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아직도 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저는 600억을 빚진 것이 아니라 600억의 가치를 지니신 선각들을 만났습니다. 항상 불행하고 인복도 없는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그런 저에게 선각은 가족보다 더 가까운 사이가 됐고 덕분에 저는 이 세상 최고의 행운아이며 인복이 많은 사람으로 변했습니다.
  선각요! 감사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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