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순문예 : 산문 장려
자식, 쉽고도 어려운 후각
구의8 방면 교령 윤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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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20대에 도를 만났다. 그 만남은 내 삶의 방향을 바꾸었고, 이후 같은 길을 걷는 남편을 만나 도인 부부가 되었다. 수도를 하며 가정을 꾸리고, 직장 생활과 수도를 병행하는 바쁜 나날 속에서도 우리는 세 딸을 낳고 키웠다.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부모를 따라 기도를 모시고, 도장 참배를 하며 우리와 함께 자연스럽게 도를 접하며 성장했다. 우리는 그것이 참으로 감사하고 기특했고 주변에서도 “아이들이 참 잘 자라고 있다”라는 칭찬을 들었다. 나는 막연히, 그리고 확신에 가까운 마음으로 ‘이 아이들은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도인이 되겠구나’라고 믿었다. 수도는 내 삶의 중심이었고, 사람이 가야 할 가장 바른 길이라 생각했기에 우리 아이들도 그 길을 걸어가길 바랐다. 그러나 사춘기가 되면서 아이들의 태도는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단순한 반항처럼 보였다. 아이는 혼자 있고 싶어 하고 부모와 거리를 두려 했고, 세상의 기준과 또래 집단의 시선을 의식하며 도장에 가는 것을 피하고 심지어 부모가 대순진리회를 믿고 수도하는 것 자체를 힘들어하기 시작했다. 나에게 수도란 단순한 신앙이 아니라, 올바른 인격을 기르고 세상을 이롭게 하는 공부였다. 수도를 하는 것이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며, 상제님께서는 이 세상을 광제창생 하시려고 강세하셨고, 그 뜻을 받들어 수도하며 살아가는 것이 가장 가치 있는 삶이라 생각했다. 그렇기에 아이들도 어떤 직업을 가지든, 어떤 삶을 살든 수도를 통해 성장하기를 바랐다. 수도는 한 사람의 삶을 다듬고 올바른 길로 이끄는 가장 중요한 과정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신앙을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상제님께서 경석에게 가르치신 “모든 일이 욕속부달(欲速不達)이라. 사람 기르기가 누에 기르기와 같으니 잘 되고 못 되는 것은 다 인공에 있느니라.”라는 말씀이 떠올랐다. 누에는 작은 온도 변화에도 민감하고 사소한 환경 변화에도 영향을 받는다. 정성을 다해 보살피고, 좋은 뽕잎을 주어야 건강하게 자라서 실을 뽑아낼 수 있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도를 전하고 수도의 길을 열어주려 해도, 결국 그 사람이 받아들이고 자라는 데에는 정성과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아이들이 그 길을 스스로 걸어갈 수 있도록 계속 정성을 들여야겠다고 생각했다. 방면 선감께서는 도전님께서 말씀하신 전인교육을 강조하시고 “아이들의 인성을 바르게 하여 사회의 훌륭한 인재로 성장해서, 세상에 도움이 되면서 도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라고 가르쳐 주셨다. 그 말씀에 따라 나도 스스로 마음을 다지며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도에 젖어 들게 하고,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설명하고 경험할 기회를 만들어 주려고 노력하기 시작했다. 참배할 때 예를 잘 갖출 수 있도록 의미를 가르쳐 주었고, 도장에서 하는 작업이나 식당 당번 등에 참여해 보게도 하면서 단순한 노동이 아니라 복을 짓고 남을 잘 되게 하는 공부를 하고 있음을 조금씩 깨닫게 하려고 했다. 그렇게 정성을 들이다 보니 아이들도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큰아이가 고등학교 3학년이 되면서 대학 진학을 앞두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유독 큰아이는 어려서부터 도의 교화를 좋아했다. 그 아이가 상제님 이야기, 신명계, 전생 등의 교화에 공감하며 받아들이는 것을 보며 나는 『전경』에 “삼생의 인연이 있어야 나를 좇으리라”라는 상제님 말씀이 떠오르며, 큰아이가 도와 인연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춘기에 한때 방황하기도 했지만, 많은 대화 속에 도의 이치에 공감하는 순간들이 많아졌다. “엄마,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나도 도와 인연이 깊은 것 같긴 해.” 그런 말을 들을 때면, 나는 언젠가 아이가 수도의 길을 스스로 선택하게 되리라는 희망을 품었다. 그래서 대학을 고민하던 아이에게 조심스레 이야기했다. “대순종학과에 가서 도를 더 학문적으로 배워 보는 건 어떨까?” “엄마, 나는 보통 사회의 흐름 속에서 내 진로를 찾고 싶어. 도는 그냥 종교로만 간직하고 싶어.” 아이는 도는 소중하고 좋지만, 온전히 자신의 삶을 채우기에는 아직 확신이 없다고 했다. “그래, 네 인생이니까 네가 원하는 길을 가야지.” 하지만 속으로는 고민이 되었다. 이 아이를 어떻게 해야 할까? 아이의 선택을 존중해야 한다는 마음과 도와 인연이 깊어 보이는 아이를 수도의 길로 이끌어야 한다는 마음이 부딪치며 밤마다 기도 속에서 답을 찾으려 애썼다. 아이의 선택을 존중하되, 도의 가르침이 마음 깊이 스며들 수 있도록 심고 드리고 정성 들였다. 고등학교 때부터 광고나 디자인 쪽에 관심을 보이던 아이는 지방 H대 디자인과에 합격했다. 그런데 대학원서 접수 마감이 다가오던 어느 날, 아이의 마음에 변화가 찾아왔다. 수도를 접하며 살아온 자신의 삶을 다시 돌아보던 아이는 마치 이끌리듯 대진대학교 대순종학과를 선택했다. 나는 그것이 결코 우연이 아니라고 느꼈다. 게다가 입학식 날, 마침 여주에서 포천으로 향하는 도로가 개통되었다. 평소라면 두 시간이 넘게 걸릴 길이 단 한 시간 만에 닿을 수 있게 되었다. 마치 아이의 앞길이 활짝 열리는 듯한 기분이었다. 지금, 아이는 대순종학과에서 학업과 수도를 병행하고 있다. 내가 그렇게 바라던 길을 이제는 아이가 스스로 선택하고 걸어가고 있다. 앞으로도 많은 변화가 있겠지만 어떤 길을 가더라도, 상제님의 가르침을 귀하게 받아들이고 바르게 실천하는 도인으로 성장하기를 바란다. 아이들은 도인 가정에서 태어나 쉽게 도와 인연을 맺은 거 같지만, 도인으로 키우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단순히 부모로서 사랑을 주는 것을 넘어, 도인으로서 아이들을 가르치려고 노력했다. 나에게 자식은 쉽고도 어려운 후각이다. 『맹자』에 역자교지(易子敎之: 옛 사람들은 아버지가 자식을 서로 바꾸어 가르쳤다)라고 하였듯이, 자식은 가까이 있기에 쉬운 면이 있지만, 무조건적인 사랑과 관심을 줄 것이라는 부모에 대한 기대감 때문에 교화를 하기에 어려움이 더 많은 것이 현실이다. 부모는 아이들이 어떤 길을 선택하기를 바랄 수는 있겠지만, 결국 아이들은 자신만의 감각으로 세상을 알아가고, 자신만의 속도로 성장한다. 하지만 부모가 흔들리지 않고 정성을 들이며 길을 비추어 준다면, 아이들도 결국 바른길을 가게 된다고 생각한다. 수도란 결국 사람이 사람을 올바르게 길러내는 과정이며, 그렇게 자란 사람이 세상을 이롭게 한다는 것을 나는 수도를 통해 배웠다. 오늘도 나는 심고 드린다. 내 아이들이 어떤 길을 가든, 그 길이 바르고 따뜻하기를. 그리고 언젠가 스스로 도의 깊은 향기를 맡고, 그 가치를 깨닫는 날이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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