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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55년(2025)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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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문예공모전 : 포기하지 않을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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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문예 : 산문 장려

 

포기하지 않을 용기

 

 

평해8 방면 교정 문소윤

 

▲ 박달산과 방곡리 전경 (2018년 10월 촬영)



  지금껏 경험했던 답사와는 사뭇 다른 여정이었다. 처음으로 장거리 운전을 맡아 긴장된 마음으로 핸들을 잡고 떠난 길이었기에, 모든 것이 새롭게 다가왔다. 이른 저녁부터 서둘러 잠자리에 들었고, 차량 점검에도 더욱 신경 써야 했다.
  대구에서 출발하여 도착한 곳은 도전님께서 탄강하시고 유년 시절을 보내신 충청북도 지역이었다. 약 1시간 30분을 달려 도착한 충북의 날씨는 영하 15도를 기록하고 있었다. 쏟아지는 눈과 매서운 바람에 걱정이 앞섰지만, 막상 도착하니 생각보다 추위는 견딜 만했다. 대구에서는 보기 힘든 하얀 눈이 소복이 쌓인 풍경은 마치 동화 속 세상에 들어온 듯한 설렘을 안겨주었다. 아무도 밟지 않은 눈길에 발자국을 남기는 순간은 마치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듯한 벅찬 감동을 선사했다. 특히, 도전님 탄강 전 부모님께서 백일 정성을 들인 충주 미륵대원지에 발자국을 남겼다는 사실은 더욱 특별하게 다가왔다. 

 이번 충청도 지역 도전님 관련 답사를 위해 사전 학습을 했지만, 자료가 부족하여 궁금증은 더욱 커져만 갔다. 여러 고민 끝에 우선 도전님께서 1917(정사)년 11월 30일(음력) 박달산 자락의 충북 괴산군 장연면 방곡리에서 탄강하셨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탄강 후 방곡리 서당에서 한학을 배우셨고, 17세에 수안보 보통학교를 졸업하셨다. 1937~1938년에는 진대사립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셨지만,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와 식민지 교육 강화로 학교를 그만두시고 경씨 가문이 운영하는 괴산군 연풍면 유하리 내응마을 신흥서당에서 교편을 잡으셨다. 

 첫 도착지인 미륵대원지를 꼼꼼히 둘러보고 싶었지만, 함박눈이 계속 내려 아쉬움을 뒤로하고 다음 답사지로 발길을 옮겨야 했다. 미륵대원지를 떠나기 전, 석등 사이로 보이는 미륵불의 온화한 미소는 내게 말을 건네는 듯했다. ‘너희도 정성으로 태어났으니, 수도하며 겪는 어려움을 달콤하게 녹여내어 정성껏 수도하라’고 말하는 것 같은 미륵불의 미소는 지금도 마음속에 따스하게 남아있다.
  두 번째 답사지는 신흥서당 터였다. 일행보다 먼저 도착하여, 우리는 신흥서당 터를 둘러보았다. 청주 경씨가 설립한 신흥서당에는 7세에서 12세가량의 학생들이 다녔다. 일제강점기에 신흥서당 주변 마을 학생들을 받아 계몽을 위한 교육을 하셨다고 한다. 도전님께서는 그 시절이나 현재나 살아갈 날들의 교육을 참 중요히 여기셨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가지붕 모양을 했던 그때의 건물 형태는 사라지고 지금은 내응새마을 창고가 들어서 있어 조금은 아쉬웠다. 눈은 그쳤지만 매서운 바람이 불어와, 우리는 원을 그리며 새마을 창고 앞 넓은 공터에서 뛰기 시작했다. 한참을 뛰고 나서야 일행이 도착했고, 우리는 그곳이 예전 신흥서당 운동장이었다는 설명을 들었다. 우연히 뛰었던 곳이 운동장이었다는 사실에 우리는 서로를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그곳에는 오랜 세월을 간직한 듯한 커다란 느티나무가 서 있었다. 도전님께서 직접 심으신 커다란 나무는 본래 두 그루였지만, 현재는 한 그루만 남아있다고 했다. 우린 도전님께서 직접 심으셨단 나무를 더욱 경건한 마음으로 바라보며 손을 얹어 보았다. 추위 속에서도 따뜻한 전율이 느껴지는 듯했다. ‘도전님, 저희 왔습니다. 뜨거운 초원 위 한 그루 나무가 지친 이들의 쉼터가 되고 희망을 주듯이, 도전님께서 심어주신 나무가 저희의 희망이 되는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 신흥서당 터와 도전님 교편생활하실 때 심어진 느티나무 (2018년 10월 촬영)



▲ 진대마을 전경《대순회보》 189호, p.29



  감동을 뒤로하고 다음 일정으로 향해 갔다.  맑게 갠 하늘 아래 용이 지나가는 듯한 구름 아래 박달산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는 도전님 생가와 진대사립학교 터를 둘러보았다. 1946년 정월 보름, 도전님께서 처음 태을주와 주문을 들으시고 그 내용을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하셨던 이모님 댁과 그 후 상제님의 대순하신 진리를 깨닫고 4월에 입도식을 하셨던 백부님 댁은 시간 관계상 잠시 멈춰 설명을 듣고 지나쳐야 했다. 
  도전님께서 나고 자라신 1917년부터 1945년까지는 우리나라가 일제강점기에 속해있던 시기이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도전님께서는 입도식 전, 일제 강제 징용이라는 큰 고초를 겪으셨다.
  1941년, 일제의 민족 말살 정책과 황국신민화 정책으로 신흥서당이 폐교된 후, 경제적 어려움으로 도전님께서는 1943년 만주로 떠나셨다. 1년 후, 조부의 병환 소식에 어머니의 편지를 받고 방곡리로 돌아오셨다. 제2차 세계대전 중이던 당시 일제는 ‘국가총동원법’을 시행하여 전쟁 수행에 필요한 인적, 물적 자원을 동원하고 있었다. 1943~1945년은 조선인 강제 징용이 집중적으로 이루어지던 시기였다. 이에 도전님께서는 집안 사정을 고려하여 동생 대신 1944년 10월, 강제 징용을 떠나셨다.
  징용 장소는 일본 아오모리현 미사와 비행장이었다. 도전님뿐 아니라 강제 징용자들의 하루하루는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이었을 것이다. 그 고통을 견디고 1945년 8월 15일 해방을 맞이했지만, 징용자들은 광복의 기쁨을 누리지 못한 채 바다에 잠들어야 했다. 일제는 강제 징용이라는 전쟁 범죄를 은폐하고, 한국인들의 보복을 두려워하여 귀국선 우키시마호를 바다 한가운데서 폭침시켰다. 정원 4천 명인 배에 정원의 두 배가 넘는 한국인과 수많은 폭탄을 싣고 출항하여, 부산으로 향해야 할 배를 마이즈루만으로 돌려 폭침시켰다. 그렇게 한 많은 영혼이 차가운 바다에 잠들게 되었다. 그 사건 속에 도전님께서 계셨다는 사실은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했다.
  TV나 라디오에서 징용자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안타까움과 분노를 느꼈다. 하물며 도전님께서 겪으신 고통은 얼마나 컸을까? 관련 자료를 찾던 중 《대순회보》 90호에서 도전님 말씀을 접할 수 있었다.
  “일본군이 배를 가라앉히기로 하고 억지로 출항시켰지. 하필 내가 그 배를 탔잖어. 배를 타고 가는데 속이 영 답답해서 바람을 쐬려고 올라와 보니까 갑자기 폭발 소리가 나더니 배가 가라앉았어. 그래서 돛대를 붙들고 있다가 바다에 뛰어들었는데 바위 같은 게 바다 위에 떠 있어서 올라탔어. 나중에 다시 배를 타고 부산으로 와 15일 만에 걸어서 집으로 왔어.”
  그리고 그 바위는 거북이였다고 하셨다.  
  훈시 말씀을 들으니 여러 의문이 들었다. 배가 폭침되어 혼란스러운 바다에 거북이는 어떻게 왔을까? 도전님께서는 왜 그때 갑판에 계셨을까? 수많은 의문이 머릿속을 스쳤지만, 답은 하나였다. 도전님이시기에, 도전님이셨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 <순난의 비> 우키시마호 침몰 희생자 추모비, 1978년 건립, 출처: 종단역사사진전



  매서운 바람과 눈보라 속에서 잠시 서 있는 것조차 힘들었던 답사. 잠시의 추위도 견디기 어려웠던 우리가 감히 도전님의 고통을 헤아릴 수 있을까? 모진 어려움을 겪어내신 도전님의 모습은 존경스러웠다. 혹독한 겨울을 견뎌낸 꽃만이 아름다운 꽃을 피우듯이, 도전님께서도 수많은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고 지금의 자리에 서 계실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답사지를 둘러보며 끊임없이 나 자신에게 질문을 던졌다. ‘나의 수도는 어떠한가?’ 수많은 어려움과 방황의 시간을 거쳐 왔고, 함께했던 사람들과 헤어짐도 반복되었다. 청춘을 바친 수도 생활 끝에 남은 것은 희미한 상처와 간신히 움켜쥔 희망이란 조각뿐이었다. 하지만 그 희망의 끝자락에서 만난 이번 답사는 마치 메마른 사막에서 발견한 오아시스 같았다.  답사를 통해 나의 수도 생활을 되돌아보고, 나 자신을 다시 한번 마주할 수 있었다. 살아있음을 느끼며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알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포기하지 않을 용기를 가지는 거였다.
  『전경』에 하늘이 사람을 낼 때 헤아릴 수 없는 공력을 들이며 모든 사람의 선령신들은 60년 동안 공에 공을 쌓아 쓸 만한 자손 하나를 타 낸다라고 하셨다. 나 또한 그렇게 태어났을 것이다. 그리고 ‘천장강대임어사인야 필선노기심지 고기근골 아기체부 궁핍기신행 불란기소위 시고 동심인성 증익기소불능(天將降大任於斯人也 必先勞其心志 苦其筋骨 餓其體膚 窮乏其贐行 拂亂其所爲 是故 動心忍性 增益其所不能)’이라는 『전경』 구절처럼, 내가 쓸 만한 자손인지, 큰일을 맡겨도 될지 시험하고 계신다고 생각하니, 그 어떤 어려움에도 포기하지 않을 용기를 가져야겠다고 다짐했다. ‘나를 얼마나 크게 쓰시려 이렇게 단련하려 하시는 걸까?’라는 설렘과 기대를 품고, 내 희망의 씨앗에 용기라는 꽃을 피워보려 한다. 
  끝없이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에도 저를 붙잡아 주고 도와주신 수많은 분께 감사의 꽃을 한 아름 안겨드리며, 이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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