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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문예 : 산문 가작
절대 인연
자양11 방면 선사 김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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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날 일은 어떻게든 일어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제가 겪은 지난 이야기가 수도인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글을 적어 봅니다. 저는 대학교 2학년 때 도를 만났습니다. 어느 선각분도 저한테 수도에 전념할 것을 권하지 않으셨지만 내가 가야 하는 길이란 걸 느끼고 도를 닦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수도에 전념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쉽게 일이 풀리지 않았고 수도를 지속하지 못하는 상황이 왔습니다. 이 지옥 같은 시간에서 저를 꺼내어서 다시 수도의 길로 들어설 수 있게 해 준 사람이 남편입니다. 남편은 도를 만났을 때 군대 제대하고 일주일밖에 지나지 않은 상황이라 의심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입도하고 첫날 교화를 듣다가 어떤 내용이 마음에 걸렸고 “뭐 이런 데가 다 있어” 하고는 집으로 갔다고 했습니다. 모든 도인이 ‘저 외수는 인연이 여기까지 인가보다’라고 생각했는데, 남편은 다음 날 귤 한 박스를 사 들고 조용히 포덕소로 다시 왔다고 합니다. 교화 듣던 자리를 박차고 집으로 갔는데 꿈에 할아버지가 “내가 너한테 해 준 게 얼만데 이 정도도 못 해주냐” 하셔서 다시 포덕소로 오게 되었다네요. 사람들이 다 놀라고 신기해했습니다. 남편은 보통 사람들과 약간 다릅니다. 남편은 35살까지 결혼하지 못하고 있었고, 시어머니께서 “너 이러다 장가도 못간다”라고 하셔서 자격증을 취득하고 하려면 늦겠다는 생각에 결혼을 결심하게 됐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키도 작고 체구도 작습니다. 집안에 유전적으로 자궁내막증이 있어서 한 달에 2~3일 정도는 움직이지 못할 때가 많았고 몸이 많이 약했습니다. 언니도 같은 증상이 있어 아이가 없습니다. 이런 저를 10년을 봐 왔었기 때문에 제가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몸이란 걸 남편은 어렵지 않게 알았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남편은 아이가 없어도 된다고 생각했는지 저에게 “우리 집은 아들이 3명이라서 아이를 안 낳아도 됩니다. 제가 부모님께 말씀드리겠습니다”라며 프로포즈했습니다. 하지만 노력은 해 보자며 결혼 전부터 남편 직장 옆에 유명한 한의원을 갔고, 여기서 진맥 후 당장 약을 먹어야 한다는 말에 10달 정도 먹었습니다. 남편이 시부모님께 이 애는 몸이 약해서 아기를 못 낳으니까 아기 낳으라고 하지 말라는 말에 시부모님들께서는 꼭 그런 애랑 결혼해야 하겠냐 하셨고 남편은 이 사람 아니면 결혼 못 할 것 같다고 강하게 말했던 것 같습니다. 시부모님께서는 어렵게 결혼을 허락하셨습니다. 제가 결혼할 당시는 35살이 늦은 나이였습니다. 장남이 늦은 나이에 결혼한다고 데리고 온 며느릿감이 몸이 약해서 아이를 못 가진다니…. 그래도 시부모님께서는 어렵게 구한 산삼 4뿌리를 저에게 주셨습니다. 시댁은 자연산 버섯찌개 가게를 하시는데 시아버지께서 간간이 산삼을 사서 유통하는 일을 하셨고, 불임부부 중에 산삼을 먹고 아이가 생긴 부부를 보셔서 며느리로 들어온 저에게도 그 비싼 산삼을 주셨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산삼을 먹고 바로 남편이 태몽을 꾸게 됩니다. 어머님께서 남편을 가졌을 때 태몽이 옹달샘에서 큰 배추가 솟아나는 걸 품에 안는 꿈이었답니다. 그런데 남편이 꿈에 작은 동산을 오르며 벚꽃이 흩날리는 걸 보고 너무 예뻐서 손으로 꽃잎을 잡았는데 그게 배춧잎 모양인 걸 알고 깜짝 놀라서 깼다고 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태몽 같은데 태몽 얘기를 하면 아이를 바라는 것 같아서 바로 얘기하지 못하다가 한 달이 지나고 저한테 얘기했고 테스트 후 임신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정말 꿈만 같은 순간이었습니다. 산삼을 먹지 않았다면 제가 아이를 가질 수 있었을까, 그리고 이렇게 비싼 산삼을 저한테 줄 수 있는 사람이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남편과 저는 어렸을 적에 길 하나를 사이에 둔 동네에 살았고 한 번도 만난 적은 없지만 제가 초등학교 1년 후배입니다. 결혼 후 몇 개월 정도 지나고 남편과 저는 간식을 사서 친정집으로 갔습니다. 주말이었지만 친정아버지는 일이 많아서 늦게까지 과수원에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윗 과수원에 계신다는 말에 빵을 들고 올라갔는데 남편이 소스라치게 놀라는 게 아닌가요. 왜 저러지 하는데 친정아버지께 “저 과수원, 제가 초등학교 때 사과를 따 먹었던 곳입니다”라고 하였고 이 말을 들으신 친정아버지께서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길옆에 나무 하나는 편하게 따먹으라고 남겨뒀다”라고 하시는 겁니다. “아버지는 25년 전부터 사위를 키워오신 거네요”라고 남편이 말했습니다. 친정아버지께서는 애들이 따먹는 걸 알고 나무 하나를 일부러 남겨 두셨고 남산 밑에 과수원이 여럿인데 남편이 그중에 우리집 과수원 사과를 따 먹었다니…, 그 아이가 미래에 사위가 되었다는 걸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학업을 접고 12년을 수도에만 전념했으니 집에서 저는 몹쓸 딸이 된 건 맞습니다. 결혼한다고 집에 인사를 오고 나서 남편이 저에게 했던 말이 “자기 혹시 입양됐어?”라는 말입니다. 이 얘기를 듣고 정말 많이 웃었던 기억이 납니다. 친정집 분위기와 제가 안 맞아서 입양했다고 확신하고 저한테 물어본 것 같습니다. 남편은 친정집에 가서 분위기를 보고 본인이 ‘뭘 해야 될까?’ 생각하고 제가 친정집에 해놓은 모든 것들을 지우기 시작합니다. 남편은 매주 주말마다 친정집을 갔고 “엄마, 나 이제 엄마라고 합니다. 제 아내의 엄마니까 나한테도 엄마이니 엄마라고 부릅니다”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지금까지 남편은 친정엄마한테 엄마라고 합니다. 그리고 결혼 초기에 남편이 친정엄마한테 “엄마, 매주 오는데 여름에는 삼겹살이 비싸니까 여름에는 수입산 드시고 겨울에는 국산 사 올게요. 그리고 올 때마다 씻고 차려입고 오면 어디 가는 거 같아서 힘들 수 있으니까 집에 오는 것처럼 편하게 올 테니까 그러려니 해요”라고 했습니다. 이때는 친정에 할머니가 살아계셨고, 친정집에 갈 때마다 할머니랑 화투를 치고 엄마 아버지 옆에 가서 수다를 떨고 명절날 작은아버지들이랑 술을 마시고 공무원 시험 준비한다는 사촌 동생들 격려하는 책과 술을 사주는 등 정말 진심으로 여러 가지 노력을 했습니다. 지금은 친정엄마가 남편에게 제 흉을 볼 정도로 둘이 가까워진 것이 사실입니다. 이제는 친정에서도 우리집에 김치 떨어진 것을 걱정해 주시고 어디 갔다 올 때 뭐라도 주고 가려고 하십니다. 제 사촌 동생이 최근에 “그래, 매형이 십 년 전에 들어오고 큰집 분위기가 바뀌었어”라는 말도 하게 됩니다. 남편의 십 년 노력이 없었어도 친정 분위기가 이렇게 회복이 됐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남편은 감이 빠르고 예민한 만큼 본인이 단명할 수 있다는 것을 느낌으로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남편은 입도 후 도장 영대나 회관 봉심전에서 상제님께 살려달라는 심고만 드렸고 다른 심고를 드린 적이 없다고 합니다. 본인이 일찍 죽을 수도 있단 걸 느낀다는 게 참 설명하기 쉽지 않습니다. 결혼 직후에 남편이 3~4번 정도 저에게 “자기야, 혹시 나 쓰러지면 원주로 가.”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충주에서 한 시간 거리에 원주기독병원이 있습니다. 남편은 평소에도 본인이 일찍 죽을 수 있다는 걸 느끼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남편은 2020년 8월에 뇌동정맥류 뇌출혈로 쓰러졌습니다. 의사의 말로는 정맥과 동맥은 혈압 차이가 크게 나기 때문에 바로 연결된 혈관 기형이 있는 사람은 일찍 터져서 40살을 넘기고 사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남편은 43살까지 안 터지다가 인구 20만 명밖에 되지 않는 충주에 뇌심혈관센터가 생기고, 뇌출혈 수술 중에서도 제일 난이도 높은 뇌동정맥류 수술과 뇌척수액을 복부로 내려주는 션트수술을 할 수 있을 때 쓰러졌습니다. 담당 의사도 “남편분은 깨어나야 깨어나는 거고, 장애가 없어야 없는 겁니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당시 남편은 직장 생활하면서 어려운 자격증 공부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주말부부로 살고 있었습니다. 6년을 주말부부로 살았는데 평일에 본인이 죽을뻔한 날을 골라 집에 온다는 것도 설명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그 후 남편은 4번의 큰 수술을 하고 크리스마스가 지난 시점에 재활을 위해서 서울에 있는 병원으로 옮겼습니다. 남편은 여름인데 TV에선 캐롤이 나오고 ‘여기가 어디지’, ‘나라에 뭔 일이 있구나. 여름인데 캐롤을 틀어주고…’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분명히 자신의 마지막 기억은 여름이었는데 갑자기 겨울이 된 상황이니 많이 놀랐던 것 같습니다. 게다가 아내 없이 병원에 혼자 있으니 버려졌다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이때만 해도 남편은 재활 전이라 전신을 움직일 수 없는 몸이었습니다. 남편은 답답한 상황에 시어머니께 전화하게 됐고 그제야 뇌출혈로 쓰러져서 서울병원으로 옮겨진 것을 알게 됐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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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이 단기기억상실증은 지금도 돌아오지 않고 있습니다. 쓰러진 후 4개월 이외에 과거를 단편적으로 기억 못 하는 상황이긴 합니다. 그렇게 힘들게 재활을 끝내고 2021년 2월 19일 집으로 왔습니다. 이때부터 남편의 새로운 삶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마치 남편이 쓰러지기를 기다린 것처럼. 평소 저랑 남편은 집에서 방면 얘기나 도의 사업에 관한 어떤 얘기도 한 적이 없었는데 제 후각의 이혼 문제가 터지면서 제가 교화를 부탁했습니다. 남편의 교화 덕분에 그 부부의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제 후각인데 남편과의 인연으로 수도를 하는 내수가 아들을 데리고 병문안을 왔습니다. 아이 얼굴에 병색이 심한 걸 보고 남편은 그 내수에게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이상이 없고 부부 사이에 문제가 없다면 다른 이유가 있을 거라며 아들 주위를 살펴보라고 일러 줬습니다. 그 말에 내수는 아들이 만나는 모든 사람을 살펴보았고 아들이 자주 만나는 형이 있는데 만날 때마다 문제가 생기는 걸 보게 됩니다. 그래서 내수가 그 형을 떨어뜨려 놓으려고 애쓰고 그 집을 방문할 때 아들은 안 데리고 갔다고 합니다. 그러고 나서 정말 아들의 병색이 눈에 띄게 사라졌고 내수는 도에 마음이 더 깊어졌습니다. 그리고 제 후각 중 은행 다니는 내수는 20살 때 입도식만 했던 사람인데 남편이 대학도서관에서 취업 준비할 때 만나 교화를 듣고 월성을 모시며 수도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남편이 큰 수술을 4번에 재활 치료하고 휴직 중이라는 얘기를 듣고 언어 장애가 생겼으면 어떡하나 생각하며 왔다고 합니다. 뇌출혈 환자들이 보험 청구를 하러 올 때 장애를 앓고 있는 것을 봤기에 남편도 그렇게 됐을 거로 생각하고 걱정을 많이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남편의 모습에 정말 놀라며 살아있는 것도 감사한데 이렇게 장애가 없는 게 너무 감사하다며 울먹였습니다. 그 후 신경외과 정기 진료 때 담당 의사가 뇌출혈 수술 때 머리를 열지 않고 코일링 수술을 하는 이유가 개두술을 했을 경우 지능이 떨어질 위험이 있기 때문인데, 남편 경우는 정말 특이하다고 했습니다. 심지어 머리를 4번이나 열었던 환자이기에 남편이 저렇게 멀쩡히 직장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의학적 지식으로는 설명이 안 된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이후 다른 종교 때문에 머리 아픈 일이 생긴 교무, 선택의 기로에 놓인 남편의 선각들까지, 신경 쓸 수밖에 없는 일들이 줄줄이 생겼지만 다 잘 풀렸습니다. 남편이 쓰러지고 깨어난 후 남편의 영향으로 무언가를 바꾸게 된 사람이 여러 명입니다. 이것을 실시간으로 보고 있는 저로서는 남편은 안타깝지만, 반드시 쓰러졌어야 했고, 살아나서 방면에 인연 있는 사람을 살렸어야 하는 운명인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뇌동정맥류는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병인데 45년 후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예견되어 있었다는 게 말이 되냐며 남편이 가장 무섭다고 한 부분입니다. 남편이 뇌동정맥류로 쓰러지지 않았다면 계속 공부를 하고 있었을 것이고 도에 인연이 있는 사람들은 힘들게 살고 있었을 것입니다. 삼생의 연이 있어야 이 길을 가고 도의 인연이 가장 깊은 인연이라고 들어 왔습니다. 정말 도인과 도와의 인연은 어떻게 설명할 수 없는 큰 인연이란 것을 남편의 사건으로 남편과 저희 방면 사람들을 하나하나 보게 되면서 깊게 깨닫고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후각들을 신경 쓰는 남편을 보면서 고생하고 애쓴다고 저의 선각께서 VIP건강검진권을 주셨습니다. 마침 남편이 건강검진을 앞두고 있었고 정밀 검진이 가능한 검진권으로 청주에 있는 병원을 예약하고 갔습니다. 대장 내시경은 50대부터 약식으로 가능하고 40대는 별도의 돈을 내야 받을 수 있는 검사였는데 검진권 덕분에 대장 내시경을 받게 됩니다. 남편에게서 용종이 두 개 나왔습니다. 이것에 대한 정밀 검사를 하였고, 일주일 후에 검사 결과를 들으러 병원으로 갔습니다. 이때 의사로부터 “두 개 중에 한 개는 근육종이고 한 개는 암으로 진행될 수 있는 선종입니다. 깨끗하게 제거했습니다. 근데 크기가 커서 클립으로 집어놨으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라는 얘기를 듣게 됩니다. 시할머니와 시아버지도 암 병력이 있으셨는데 남편도 어떻게 될지 몰랐겠구나 싶었습니다. 집으로 오면서 진심으로 남을 잘되게 최선을 다하니까 우리가 덕화를 받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충주로 오는 중에 길을 잘못 들어서 남편이 “여긴 어디야? 생전 처음 보는 길인데 청주에서 충주 가는 길에는 이런 데가 없는데, 가다 보면 나오겠지 뭐” 하며 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이정표에 방골, 다음은 방곡리, 그리고 장연면이 보였습니다. “아, 여기가 방곡리구나.” “방곡리가 어디야?” “도전님 고향인데 몰라?” “난 괴산까지 밖에 몰라. 자긴 어떻게 방곡리까지 알아?” “….” “우리가 하고 있는 일들이 큰 복을 받을 일들이고 도전님의 뜻에 가깝게 가고 있다는 걸 알려주시는 것 같아.” 이렇게 저와 남편의 대화가 오고 갔습니다. 그리고 남편이 가장 좋아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남편은 예민한 만큼 정말 꿈을 심하게 꿉니다. 새벽 4시 전에는 꿈을 하도 많이 꾸니 자나 마나해서 새벽 4시 정도까지는 늘 깨어있거나 술을 마시고 자는 게 습관이었습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을 잘되게 해 준 뒤로는 꿈을 안 꾼다고 합니다. 그렇게 예민했던 사람이 이제 베개에 머리만 닿으면 잠이 듭니다. 아침에도 정말 가뿐하게 일어나니 남편이 우스갯소리로 “정말 요즘처럼만 자면 시험에 붙었을 수도 있었겠는데”라고 말할 정도입니다. “우리 착한 일을 하긴 했나 보다. 정말 큰 선물을 많이 받았다. 더 착하게 살자.” 남편이 요즘 저에게 하는 말입니다. 도에서 남편을 만나서 결혼하고, 저는 남편 덕에 친정을 가화할 수 있었고, 저를 만나 43살에 죽을 수 있는 본인의 목숨이 늘어나는 경험을 하면서 이것이 수도를 하면서 완성되는 절대 인연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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