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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시더라
서초4 방면 교정 임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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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티 인사이드>라는 드라마를 봤습니다. 한 달 중 일주일 동안 전혀 다른 사람으로 살아가는 병이 있는 인기 배우 여주인공과 사람 얼굴을 못 알아보는 재벌 3세 남자 주인공이 나오는 판타지 로맨틱코미디 드라마입니다. 두 주인공은 직업상 사람들한테 자신의 약점이 걸릴까 봐 항상 조마조마해하며 삽니다. 여주인공은 자신이 남녀노소 무엇으로 변해도 일관되게 바로 알아봐 주는 남주인공을 만나게 되면서 그녀의 인생이 바뀝니다. 남자도 비슷한 처지의 여자에게 비밀을 들키고 나서 인생이 달라집니다. 그들이 현실을 함께 헤쳐 나아가면서 드라마는 해피엔딩으로 끝이 납니다. 이 드라마를 보는 내내 너무 공감이 갔습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사람 얼굴을 못 알아봅니다. 남자 주인공이 사람을 구별하기 위해 머리 모양, 의상, 습관 등 신체 외적인 요소를 꼼꼼히 적어두는 것을 보며 속으로 ‘맞아맞아’라고 외쳤습니다. 우리 같은 사람의 마음을 누가 알까요? 저도 제가 그러고 있었다는 것을 이제 알았습니다. 저는 어릴 때 교무실에 담임 선생님 뵈러 가면 한쪽 구석에서 누가 그 선생님 이름을 부르거나 선생님 지정석에 앉으실 때까지 계속 기다린 적이 많았습니다. 얼굴을 못 알아보는데 목소리까지 안 들리면 정황상 찾는 길밖에 없었습니다. 영화를 볼 때는 중간에 배우가 옷을 갈아입고 나오면 못 알아보고 옆 사람에게 저 배우는 누구냐고 살짝 물어보기도 했습니다. 금방 본 배우가 광고에 나와도 같은 사람인지 모를 때도 많았습니다. 오래 본 사람도 의외의 장소에서 마주치면 못 알아보거나 그 사람인지 확신이 들지 않았습니다. 인사하기가 난감하면 길을 돌아가기도 했습니다. 영상을 떠올리지 못하니 누군가가 안경을 썼다면 종이나 머릿속에서 ‘안경 썼음’이라고 분류해야 기억에 남았습니다. 이런 작업을 하지 않으면 상대가 키가 큰지 안경을 썼는지 단발머리인지 거의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남주인공처럼 머릿속에서 엄청난 분류 작업을 하며 살았던 겁니다. 이렇게 준비를 해도 종종 당황할 일이 생겼습니다. 한 번은 길을 가다 아는 사람을 만났는데 분명 아는 사람 같은데도 너무 화가 나 있는 얼굴이라 자꾸 다른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들어 우물쭈물하다 인사를 안 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 후에 내가 인사 안 하는 무례한 사람이라고 사방에 얘기하고 다녔는데 참 난감했습니다. 사람을 잘 못 알아봐서 그랬었다고 이유를 자세히 설명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반대로 겉과 속이 같아 한결같은 사람은 알아보기 쉽긴 합니다. 표정도 행동도 항상 같은 사람은 먼발치에서 올 때부터 걸음걸음까지 한결같아 거의 틀림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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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게도 저는 드라마를 보고 나서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이제는 뭔가 변화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저는 워낙 심한 내향인이라 평소에도 사람 마주치는 게 적잖은 스트레스였습니다. 이제 보니 상대를 못 알아본다는 것을 무심결에 안 들키려고 조마조마했던 것이 스트레스에 큰 몫을 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생각을 바꾸기로 했습니다. 이제는 처음 만나는 사람한테 먼저 밝힙니다. 미안하지만 다음에 만나도 내가 못 알아볼 수도 있다고 말합니다. 시간이 걸리고 오래된 관계에서도 가끔 못 알아본다고 말합니다. 당연히 저 같은 경우가 드물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제 말을 들은 상대의 반응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의외로 사람들은 자기 주위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다고들 합니다. 자기도 그렇다고 반가워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아니 나 말고도 더 있었구나. 나만 그런 줄 알았네. 휴….’ 한편으로 안심이 되면서 한편으로는 괜한 걱정을 평생 할 뻔했구나 싶었습니다. 제가 이런 이야기를 했을 때, 다들 여태 그런 줄 몰랐다고 했습니다. 심지어는 내성적인 성격인지 몰랐다고 안 믿긴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입도하고 나서 뭔가 많이 바뀌긴 했나 봅니다. 제 주변에는 사람을 한번 보면 수년 후에 봐도 척척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저만 비정상인줄 알고 끙끙거렸었습니다. 이 드라마를 보면서 ‘에라 모르겠다, 남들이 뭐라 생각하든 이제는 그냥 속 편하게 살련다’라는 심정으로 커밍아웃한 건데 잘한 것 같습니다. 이제는 상대가 A라는 100% 확신이 없는 상황에서 인사하기도 합니다. 며칠 뒤에 A가 아니라 B였다는 것을 알게 되지만 괜찮습니다. 인사가 나쁜 건 아니니까요. 자신감이 생기니 전보다 사람 얼굴을 잘 기억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말도 많아졌습니다. 실수도 하지만요. 걱정만 하며 아무것도 안 할 때보다 행복합니다. 이런 날이 올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성격 개조하려고 별로 한 것도 없는데 성격이 바뀌다니, 도 안에 있어서 그런가 봅니다. 덕화 말고는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이 글을 빌어 그동안 제때 인사 못 받으신 분들에게 언짢으셨다면 죄송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물론 내일도 똑같은 실수를 할지 모릅니다. 말도 못 하고 끙끙거릴지도 모릅니다. 부족해서 그렇습니다. 그리고 저같이 소심하고 인사 못하는 도우분들 화이팅하시길…. 언젠가는 체질과 성격이 고쳐지는 날이 온다고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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