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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제님 덕화로 다시 태어난 딸
구의8 방면 선사 최양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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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에게는 딸이 한 명 있습니다. 도인의 길을 걷다가 늦은 나이에 같은 길을 가는 도인을 만나 결혼해서 30대 후반에 얻게 되었습니다. 시댁 형님께서 태몽을 꾸셨는데, 아름드리 감나무에 감이 주렁주렁 달린 것을 남편과 조카들이 함께 따면서 바구니에 담는 꿈이었다고 합니다. 그 꿈을 꾼 다음 날 신기하게도 큰 조카는 명문대에 합격했고, 저는 임신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형님은 바라던 두 가지 소원이 모두 이뤄졌다며 기뻐하셨습니다. 저는 임신 5개월째에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지혜롭고 조카처럼 공부도 잘하는 아이를 염원하며 정성을 들였습니다. 매일 아침 5시에 일어나서 버스를 타고 회관에 가서 아침 7시 기도를 모셨습니다. 그리고 『전경』, 『대순지침』, 도전님 훈시 말씀을 반복해서 읽으면서 어떻게 하면 수도를 잘할 수 있을지 고민했습니다. 그러한 정성 덕분인지 노산임에도 불구하고 순산했고, 아이는 잔병치레 없이 건강하게 자라주었습니다. 유달리 책을 좋아했으며 부모 말도 잘 듣는 착한 아이였습니다. 방면 포덕소에 갈 때든 도장에 갈 때든 즐거워했고 방면 도인들을 삼촌, 이모라고 부르며 잘 따랐습니다. 그러나 아이는 중학생이 되면서 부모를 멀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집에 오면 문을 잠그고 방에 들어가서는 잘 나오지 않았고 대화를 거부했으며, 제가 대화를 시도하면 부모를 원망하는 말만 하고는 했습니다. 혼자 있는 동안에는 핸드폰을 보는 일이 다반사였고, 그러다 보니 학교 성적도 많이 떨어졌습니다. 그 당시에는 매달 도장 참배를 하고 있었고, 다른 아이들은 부모님을 따라서 참배를 왔는데 우리 아이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방면 선감께서는 참배 때마다 “『전경』에 박람박식(博覽博識)이 가장 두렵다 하셨으니, 도인들은 솔선하여 전인교육에 힘쓰고 자녀교육에도 충실하라”라는 도전님 말씀을 전하시며 전인교육의 중요성에 대해서 교화하셨습니다. 아이들에 대해 수도를 통한 인성교육과 함께 학교 공부를 통해 성실하고 실력 있는 도인으로 성장하여 도와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인재가 될 것을 강조하셨습니다. 저는 우리 아이가 도의 기운을 받으며 인성과 실력을 갖추기를 간절하게 바랐습니다. 그래서 그동안 나태하고 부족했던 수도를 깊이 반성했고, 선각분들을 자주 찾아뵈며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지적해 주시는 것은 어떻게든 고치려고 했고 선각분들 말씀에 따르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아이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었고 아이에게 올바른 가치관과 인성, 그리고 성실함을 갖출 수 있도록 교화를 지속해서 해주었습니다. 이렇게 정성 들이다 보니 아이의 태도가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고 고등학생 때부터는 참배에 오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가기 싫은 마음을 이겨내느라 출발이 지연되어 참배 시간에 맞추기 위해 서울에서 여주까지 택시를 타고 내려간 적도 있습니다. 그 후로 아이는 택시비로 나가는 돈이 아깝다며 시간 내에 준비를 마치려고 했고, 저 역시 자동차를 미리 준비해서 아이가 너무 힘들어하지 않도록 배려해 주었습니다. 그러던 중, 어느 날에는 아이가 공부할 시간을 자꾸만 뺏긴다는 생각에 걱정이 많이 됐는지 물었습니다.
“엄마, 나 대학 못 가면 엄마가 책임질 거예요?” “그럼. 우리 딸은 엄마가 책임질 수 있지. 도에 정성을 들이면 자연스레 네가 잘되게 된단다. 마음을 바르게 하고 정성을 다하면 반드시 좋은 일이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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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아이를 달래면서 아이가 마음을 바꿀 수 있도록 교화했고, 도의 일을 함에 있어서는 물러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기도 모실 때마다 ‘상제님, 저희 아이가 건강하고 훌륭하게 성장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라고 간절하게 심고 드렸습니다. 참배는 고등학교 3학년이 된 후에도 지속되었습니다. 잘 따라주는 아이가 참으로 고맙고 대견했습니다. 이렇듯 지속적인 정성을 들이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아이는 더 이상 부모를 원망하지 않았고 대화의 문도 열기 시작했습니다. 학업에도 열심히 임해서 서울 중위권 대학 사회학과에 합격했습니다. 하지만 합격의 기쁨도 잠시 자신의 진로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던 아이는 수능시험에 재도전해서 상위권 대학에 들어가고 싶다고 했고 저는 아이의 선택을 존중해서 지원해 주기로 했습니다. 아이는 대학 생활을 하면서 틈나는 대로 수능시험을 준비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성적이 잘 오르지 않아서 걱정하던 차에 선각분의 권유로 한 학기를 마치자마자 휴학하고, 용인에 있는 기숙학원에 보냈습니다. 다행히도 학원 담임 선생님의 따뜻한 보살핌으로 기숙학원 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기숙학원 생활하는 동안에도 학원으로부터 외출을 허락받아서 참배에 참석 했습니다. 서울에 있는 집에서 용인에 있는 학원까지 가서 아이를 데려다가 참배를 마쳤고, 다시 기숙학원에 데려다주기를 여러 번 반복했습니다. 특히 좋았던 부분은 기숙학원에 있는 동안 차로 이동하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자연스레 서로 많은 대화를 주고받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조금씩 변해가던 아이는 모의고사를 치를 때마다 성적이 올랐고 수능시험에서 영어 2등급을 제외한 모든 과목에서 1등급을 받는 기적과 같은 일이 생겼습니다. 아이도 믿기지 않은 현실에 놀라워하며 진심으로 저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했습니다. 수능이 끝난 다음 달, 여주로 이사를 오게 되었습니다. 여주로 오게 되니 아이도 자연스럽게 포덕소에 들러서 선각분들을 뵙고 교화 들을 기회가 많아졌고 도장에서 기도며 치성 참석, 도장 식당 당번, 대보름날 달집태우기 행사 등 도의 행사에까지 참석하며 한층 수도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그동안 많은 신경을 써주신 방면 선각분들의 은혜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고3이 되는 방면 아이의 학습지도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정성을 들이다 보니 S대 경제학과, G대 한의예과, K대까지 지원한 대학에 모두 합격하는 덕화를 입게 되었습니다. 잠시 진로에 대한 고민도 있었지만, 결국 로스쿨에 진학하여 법조인의 길을 가고자 하는 아이의 바람대로 S대 경제학과에 입학했습니다. 학교는 국립대라서 장학금 혜택이 많아 경제적인 부담을 크게 덜 수 있게 되었고, 여주로 이사 온 덕분에 지방 학생에게만 주어지는 기숙사에도 입소하게 되었습니다. 아이는 글로벌 기숙사에 들어가게 되어서 영어도 잘하는 독일인 여학생과 같은 방을 쓰게 되어 영어 회화도 많이 늘 것 같다고 기뻐했습니다. 저는 아이에 대한 이 모든 과정이 상제님의 덕화로 생각했고, 아이가 도에 감사함을 마음속 깊이 늘 간직하기를 바랐습니다. 아이의 짐을 챙겨 기숙사에 입소하러 가는 차 안에서 아이에게 해원상생(解冤相生)과 보은상생(報恩相生)에 대해 교화를 해주었습니다.
“해원상생과 보은상생 벽화를 본 적이 있지? 해원상생은 어머니가 자식에게 아무 조건 없이 무한한 사랑을 베풀어 주는 자모지정(慈母之情)과 같은 것이고, 보은상생은 부모의 따뜻한 보살핌으로 장성하여 그 은혜에 보답하려는 모습과 같은 거란다. 도전님께서는 ‘은의를 알고 그 은의에 보은하여야 하며 배은망덕이 되어서는 아니된다’라고 하셨어. 앞으로 해원상생과 보은상생을 잘 실천해서 늘 따뜻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세상을 보고 사람들을 대하길 바란다. 너의 노력도 컸지만, 그 노력이 열매 맺을 수 있게 도와주신 상제님 덕화와 방면에서 이끌어주신 선각분들, 그리고 부모님의 은혜를 항상 마음속에 깊이 새기고 앞으로 도에 그리고 사회에 많이 베풀면서 살아가야 해.”
아이는 교화 내용에 귀 기울이며 해원상생과 보은상생을 잘 실천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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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인연을 맺게 됩니다. 그중에서 양위 상제님과 도전님, 그리고 선ㆍ후각의 인연이 가장 크고 소중하다고 생각합니다. 사춘기 때 가치관의 혼란으로 반항하고, 방황했던 아이를 이렇듯 다시 태어날 수 있도록 덕화를 베풀어 주신 상제님의 은혜, 그리고 올바른 가치관을 세워 인성과 성실함을 갖출 수 있도록 이끌어주신 선각분들의 은혜로 기적 같은 일들이 찾아왔음에 한없이 감사할 따름입니다. 앞으로 아이가 실력 있는 도인으로, 그리고 도에 기여할 수 있는 성공적인 사회인으로 성장하고, 도와 세상에 해원상생ㆍ보은상생을 잘 실천하여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성숙한 도인이 되도록 더욱더 정성 들여 나가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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