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순종학과?” 너도 다닐 수 있어~
자양8 방면 교무 염명숙
.jpg)
나는 지금 종단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대진대학교 대순종학과에 다니는 중이다. 교수님, 조교 선생님들의 배려와 학생들을 위한 마음을 듬뿍 느끼며 학교에 다니고 있다. 지금 생각해 봐도 내가 대진대학교에 다니고 있다는 게 신기하고 감사할 따름이다. 대진대학교에 다니게 될 운명이었을까? 어떻게 접하게 되었는지 기억 나지 않지만, 대순진리회의 교육 사업에 관해 얘기를 듣고 ‘대진대학교에 도인 자녀들이 다니면 참 좋겠다. 나도 나중에 결혼해서 자식을 낳으면 종단에서 설립한 학교를 보내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했다. 궁금한 것들이 많았다. 그래서 대진대학교에 직접 찾아가서 한 바퀴 돌고 오기도 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대진대학교에 다니는 선무와 대화하게 되었다. 나는 회사에 다니고 있었고, 경제적 형편이 되지 않아서 학교에 등록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당시 코로나 상황이라 비대면으로 강의하고 등록금도 지원해 준다고 했다. 나는 기회가 되면 대진대에 다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후로 종단 홈페이지에 게시되는 공지를 살펴보았다. 하지만 공지가 올라와도 그때마다 일이 생겨서 접수하지 못했다. 몇 년 후, 여주본부도장에 식당 당번을 들어가게 되었다. 전에 회관에서 작업을 할 때 알게 된 도인이 같이 식당 당번을 하게 되었다. 이 사람은 대순종학과에 입학했다며 학교에 관해 많은 얘기를 해주었다. 대순종학과에 다니면 도장 치성에도 참석할 수 있다고 하니 정말 좋았다. 다음엔 꼭 접수하겠다고 마음먹었다. 이 사람이 추가 모집이 있다며 학교 홈페이지를 유의해서 살펴보라고 알려줬다. 나는 서류를 준비해서 공지가 올라오자마자 접수했다. 짧은 기간에 급하게 준비해서 접수하기까지 정신이 없었다. 꼭 합격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지만 고등학교 성적이 내가 기억하는 것보다 좋지 않았다. 게다가 추가 신청자가 많아서 떨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아, 꼭 되었으면 좋겠다’라는 설렘 반, ‘어쩌면 떨어질 수도 있겠다’라는 걱정 반으로 발표를 기다렸다. 기다리는 동안 개인적으로 힘든 일을 겪었다. ‘화복이라 하는데 이러다가 나 합격하는 거 아냐?’라고 생각이 들 정도였다. 마침내 합격 통지를 받았다. 등록금을 급하게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신기하게 돈이 생겨서 무사히 등록했다. 나의 수도생활을 돌아보면 입도를 한 지 20년이 조금 넘었다. 방면에서 도의 일을 하면서 보낸 시간보다 사회생활을 하며 보낸 시간이 더 길었다. 투병 중이던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수도를 잘하지 못했던 나의 잘못으로 이런 상황이 벌어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더는 수도에 전념하지 못했다. 선각과 연락을 안 하고 지낸 기간도 상당했다. 예민한 탓에 견디지 못하고 수도를 하다가 안 하고를 반복하기도 했다. 그렇게 살아가다가 나는 아버지와 같은 병에 걸렸다. 그 후 다시는 건강한 날이 올 거라고 생각도 못 할 정도로 고통스러운 치료를 받았다. 그래도 나의 상황을 이해해 준 회사 덕분에 주로 재택근무를 하게 되었다. 회사에 가는 날은 줄었지만 시간 내에 끝내야 하는 업무와 책임져야 할 상황이 많이 생기니 건강이 안 좋아져서 결국은 수술할 상황에 이르렀다. 분당제생병원에서 수술 날짜를 잡고 입원했는데 한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우리는 동갑이라 서로 얘기가 통하는 부분도 있었다. 그 친구의 상황이 안타까워 도를 알려주고 싶었다. 이 친구와 몇 번 만나서 얘기를 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얘기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나는 방면 선감께 교화를 부탁했고 친구와 같이 만나기로 약속을 정했다. 그런데 갑자기 그 뒤로 연락이 안 되었다. 이런 경우가 처음은 아니었지만 내가 너무 답답했다. 대순진리를 공부해 보려고 했지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치료를 받고 나서 기억력이 떨어진 나는 자신이 없었고 시작하다가 멈추고, 다시 시작하다가 멈추고를 반복하면서 막막하기만 했다. 결국은 ‘나는 안 돼. 나는 못 해’라면서 포기하기도 했다. 도를 알리고 싶은 마음까지도 그랬다. ‘지금은 아니야’라고 생각하면서. 이 상황에서 그나마 내가 할 수 있었던 건 아침마다 눈을 뜨면 드리는 심고였다. ‘대순진리를 바르게 공부하고 이해하고 깨달아서…’로 시작하는 심고를 몇 년간 드렸고 지금도 그렇다. 심고가 결국 이루어진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공부를 잘하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대학에 가고 싶었다. 상황이 좋지 못해서 대학에 가지는 못했으나 그 마음이 마흔이 넘은 지금 대학교에 갈 용기를 내게 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내가 대학교를 나왔다면 지금 대순종학과에 들어와서 공부할 생각을 했을까? 과거 상황은 내게 상처였지만 이렇게 대순종학과에 들어오기 위해서 그 상황들을 겪지 않았나 싶다. 입학을 한 것만으로도 너무 좋았다. 대학 생활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좋았다. 입학식 때 학교 옆에 있는 포천수도장에서 떡국을 먹었다고 하는데 나는 회사 일로 참석하지 못했다. 오리엔테이션은 대진청소년수련원에서 했다. 대순종학과 전체가 모여 도장에서 영대 배례를 드리고 박물관에서 교화도 들었다. 저녁은 푸짐한 삼겹살과 음식들로 배부르게 잘 먹었다. 다 같이 모여 레크리에이션으로 즐거운 시간도 보냈다.
.jpg)
대순종학과에서는 1년에 한 번, 2박 3일로 답사도 간다. 경상도, 충청도에 갔고, 전라도에도 갈 예정이다. 상제님, 도주님, 도전님의 발자취를 따라서 답사하고 교화도 들었다. 『전경』에서 봤던 장소들을 직접 방문하고 교화를 들으니 더 많이 마음에 와닿았다. 우리들을 위해 많은 준비를 해주셨고 편안한 잠자리와 맛있는 음식들을 준비해 주셔서 정말 행복한 마음으로 답사를 다녀왔다. 비대면 학생들이 4박 5일 동안의 대면 수업을 하는 시간도 가졌다. 교수님도 직접 뵙고 대면 학생들과 수업도 듣고, 성향 검사, 바자회 등 여러 행사도 마련해주셔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나를 더 좋은 인상으로 만들고 세련되게 해주었고, 바자회에서는 필요한 물건들을 저렴하게 구입했다. 성향 검사를 통해서 나를 더 잘 알 수 있는 시간도 가졌다. 일일이 다 얘기할 수는 없지만 이 외에도 정말 다양한 것들이 있다. 비대면 학생들에게 참여할 기회가 주어져서 감사했다. 나 스스로가 뭐든지 참여하려고 하고, 내가 경험해야 다른 사람들에게도 잘 전달을 해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대순종학과에서 가장 중요한 수업! 이 부분은 정말 내가 표현하기가 너무 어렵다. 직접 들어봐야만 한다. 놀랍다. 깊이에 놀라고,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봄에 놀라고, 그냥 모든 게 다 놀랍다. 나는 기회가 된다면 꼭 입학해서 수업을 들어보라고 주위에 권한다. 내가 생각했던 그 이상으로 너무나 많은 것을 배우고 경험해 나가고 있다. 솔직히 나는 대학에 가고 싶다는 단순한 생각으로 입학했기에 학교생활이 어떻게 돌아갈지 생각지도 못했다. 처음에 적응하는 시간도 필요했고 아는 것도 없고 머리도 아팠다. 창피하지만 읽은 책이 손가락에 꼽힐 정도로 나는 책도 좋아하지 않는다. 사실 책을 못 읽는다. 한 구절을 봐도 보고 또 보고 해야 …. 책 읽는 게 너무 힘들다. 공부라는 게 나에게는 너무 어렵고 힘든 거였다. 많은 것을 알고 서로 대화하는 학우들을 보며 의기소침하기도 했다. 책 읽기나 공부가 습관이 되지 않은 나에겐 자신감도 없고 내가 4년을 잘 견디어 나갈 수 있을지 걱정도 되었다. 나는 아직 부족하지만, 열정적인 교수님들과 배려 깊은 조교 선생님들이 우리가 공부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주신다. 거기에 나의 노력이 더해지면 졸업 때 나도 몰라보게 성장할 수 있게 되리라는 기대감이 생긴다. 졸업할 때 나는 어떤 모습이 될지 현재 알 수는 없지만 상제님의 일꾼으로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는, 상제님의 천지공사에 동참할 수 있는, 나처럼 답답한 마음을 가졌던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그런 모습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품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