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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위복을 겪으며
기흥2 방면 선사 박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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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나이가 드니 어깨통증과 팔이 뻐근하고 불편하다고 느껴서 도수치료라도 받아 보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때마침 수원에 사는 친구가 건강검진을 하는데 같이 가자고 해서 같이 병원으로 갔다. 의사 선생님이 유방초음파를 찍고 조직검사를 해보자는 말을 듣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둘째를 낳고 5살이 되었을 때 의정부에서 용인으로 이사 갔는데, 검진을 안 하고 있다가 2021년에 코로나가 기승을 부릴 때 백신을 2차로 맞고 일주일 후 가슴이 약간 뭉치는 느낌은 있었다. 하지만 모유 수유를 많이 했었고, 가족력도 없고, 아파서 병원에 가 본 적이 없는 나이기에, 설마 ‘무슨 일이 있겠어’라며 애써 진정하고 있었다. 열흘 후에 결과는 유방암 2기였고, 큰 병원에 가라는 소견서를 받았다. 방면 선감께 전화하니, 심고 잘 드리고 분당제생병원으로 가는 게 좋을 것 같다 해서 그곳으로 갔다. 조직검사 결과를 들고 가니 의사 선생님께서 2기에서 3기로 진행된 상태라 검사받고 바로 수술을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암담했지만 그래도 죽을병은 아니니까 치료를 무사히 마치고 수도를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아이에게는 “엄마가 배가 아파서 수술하러 간다”라고 안심을 시켰는데 순간 큰아이가 “암만 아니면 안 죽어”라고 하는 것이다. 아이들이랑 일주일 넘게 떨어져 있어 본 적이 없어 걱정되었지만, 치료를 잘 받아서 건강한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다행히 무사히 수술을 끝내고 열흘이 지나서 집으로 돌아왔지만,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남편이 한 달 동안 휴직하고 나와 아이들을 돌보며 마음 고생을 했다. 나는 항암 8차와 방사선 치료 30회를 받게 되었다. 항암 2차를 받고 나니 영화에서 보던 모습처럼 온몸에 털이 다 빠지고, 항암치료를 받을 때마다 면역력이 떨어져 걸음을 걷는 것조차 힘에 겨웠다. 하지만 나는 두 아이의 엄마이자 선사이고 수도를 잘하지는 못했지만, 30년 넘게 수도 해오면서 후회를 해본 적이 없었다. 내가 전생, 현생에 남의 가슴을 아프게 한 일이 많아서 이렇게 고통을 겪는 걸까? 아니면 49살 삼재라서 그런 걸까? 백신의 부작용 때문일까? 많은 생각이 들었다. 교법 1장 19절에 “자고로 화복이라 하나니 이것은 복보다 화를 먼저 겪는다는 말이니 당하는 화를 견디어 잘 받아 넘겨야 복이 이르느니라.”라는 구절과, “‘함지사지이후(陷之死地而後)에 생(生)하고 치지망지이후(置之亡地而後)에 존(存)한다’는 옛사람들의 말이 있음과 같이 복(福)은 곧 복마(伏魔)로 풀이함은 화복(禍福)이란 말과 대등할 것”이라는 『대순지침』의 구절이 떠올랐다. 서서히 상처가 아물어 갔지만 일을 제대로 못 하니 그냥 흘러가는 시간이 아깝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때 수반의 권유로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고자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공부했다. 그래서 다음 해에 굴삭기와 조경기능사 자격증을 땄다. 시간이 빨리 지나갔던 것 같고, 아이들도 이런 엄마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힘을 낸 것 같았다. 그리고 틈틈이 수반을 챙기면서 포덕도 하고, 병원에서 만났던 사람에게도 정성을 들여 나가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생로병사에서 자유롭지 못하기에, 항상 부족하고 겸손하며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어느덧 몸이 아팠던 이후로 네 번째 봄을 맞이한다. MRA를 받을 때마다 심고를 드리며 치료를 받으니 양위 상제님과 도전님의 덕화에 감사함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 선각분들과 주변 도인들이 진심 어린 심고를 드려주셔서 늘 감사함을 느끼며, 그래도 아직 내가 쓰임이 되고 있다고 믿으면서 수도를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 앞으로 하루하루를 헛되이 보내지 않고 위기를 기회로 생각하며, 부족하지만 성경신을 다하며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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